별의 문을 지나 카세레스 구시가지로

2015. 7. 14. 08:00스페인 여행기 2014/카세레스

위의 사진은 구시가지 산타 마리아 광장 한편에 있는 어느 성자 동상의 발입니다.

이 광장을 찾는 많은 사람이 이 동상의 발에 입을 맞추고 손으로 쓰다듬습니다.

그래서 발가락이 아주 반질거립니다.

그런데 밟고 올라선 곳이 혹시 성경책이 아닌가요?

발이 시려 그랬을까요?

 

마요르 광장에서 구시가지라는 역사지구로 들어가는 문은

별의 문(Arco de la Estrella)이라는 곳을 통해 들어갑니다.

Arco de la Estrella는 영어로 Arch of the Star라는 말이라 하네요.

이 문이 카세레스의 랜드마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 뒤를 돌아보면 위의 사진과 같은 모습입니다.

사실 이름은 무척 유명한 문인데 실상은 감동도 없고 멋지지도 않습니다.

 

왜 별의 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아기 예수와 성모상이 보이고 그 옆에 유리로 별 모양을 만들어

밤에는 반짝이도록 했기에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입구 왼쪽은 부하코 탑이고 오른쪽에는 Torre de los Pulpitos라는 탑이 있네요.

탑 위에는 마치 소라처럼 장식했습니다.

별의 문을 지키는 좌청룡 우백호일까요?

 

구시가지는 198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 합니다.

입구에 자랑스럽게 인증 마크를 붙여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세계문화유산을 방문하는 일이 가슴 설레었지만, 스페인에서는 가는 곳마다

모두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하니 이제는 그 의미가 조금은 퇴색되고 덤덤합니다.

지금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하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지 싶네요.

 

카세레스는 바다호스와는 달리 기원전 25년경 로마가 건설한 도시라 합니다.

그렇기에 로마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로마가 보통 로마입니까?

아직 이탈리아를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여행지로는 우선적으로 이탈리아를 꼭 들려보고 싶습니다.

 

로마가 여기다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이 카세레스를 발전시키기 위함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랬습니다,

칸타브리카 산맥에서 채굴한 금과 은이 욕심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북쪽 지금의 오비에도 인근의 히혼(Gijón)지방으로부터 세비야 항구까지

내륙을 종단해 운반할 길을 만들었답니다.

그 이름이 은의 길(Ruta (또는 Via) de la plata)이라고 불렀고 은의 길 중간마다 거점도시를 만들었다는데

여기 카세레스도 그중 하나의 도시로 건설되었답니다.

그 길의 길이가 무려 1.043km라 하니 당시 로마의 저력이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이상한 점은 대서영 연안의 히혼에서 왜 내륙으로 내려왔을까요?

세비야에서 배를 이용해 로마로 실어갈 생각이면 바로 바닷가 인근 도시인 히혼에서

배를 이용해 실어가면 편할 텐데 굳이 내륙으로 힘들게 운반했을까요?

그런 걸 佳人이 왜 따지죠?

 

그러니 우리말로는 수탈을 위한 역참에 해당하는 마을이 아니겠어요?

재미있는 일은 아직도 카세레스의 가장 큰 시내 관통 도로 이름이 은의 길 도로(Av Ruta de la Plata)라고 합니다.

이 도로는 북으로 살라망카로 연결되고 아래로는 메리다로 이어지는 중요한 도로라네요.

 

그 후 이 지역은 이베리아 반도 여느 도시처럼 같은 역사의 길을 걸었기에 다양한 건물이 남아있다네요.

지금은 에스트레마두라 지역의 중심도시로 교통의 주요한 거점 도시라 합니다.

마드리드로부터 기차도 있고 버스로도 서너 시간이면 당도할 수 있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겠네요.

 

처음에는 수탈을 위한 길이었지만, 무어족이 물러간 후 스페인에서도 로마가 만든 그 길인 은의 길을

물류의 통로로 아주 요긴하게 사용한다고 하니 로마가 2천 년을 내다보고 길을 닦았나 보네요.

지금도 스페인의 남북을 연결하는 서부지역 종단도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네요.

 

중세에는 너무 가난했기에 그때까지 무어족이 만들어 놓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며 살다가 그 후 대항해시대에

접어들자 청운의 푸른 꿈을 꾼 젊은이들이 남미나 아프리카 식민지로 진출하게 되었다지요?

그때 덜수도 그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을 겁니다.

우리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지만, 여기는 친구 따라 남미 간다는 말이 있을 겁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벌어온 재화로 신흥 부자가 생겨나 그때 중세의 모습이

여기 구시가지에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다네요.

가난했기에 한이 맺혀 저택을 지어도 집집이 탑을 쌓아 더 크고 웅장하게 보이려고 경쟁적으로 지어

골목은 좁고 저택 대부분이 탑을 가진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카세레스만의 가옥 특징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별의 문이라는 아르코 데 라 에스트레야(Arco de la Estrella)를 지나면 작은 광장이 나옵니다.

이름이 산타 마리아 광장이라고 하네요.

 

그 광장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고 성당 모퉁이에 발이 반짝거리는 동상 하나가 보입니다.

 

16세기 이 지방 출신의 성자 산 페드로 데 알칸타라(San pedro de Alcantare)의 동상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발을 부여잡고 또 입을 맞추고 했으면 저리도 반짝거릴까요?

 

산타 마리아 성당은 일찍이 4세기경 무어인이 지은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지었다네요.

종교적인 건물이 늘 먼저 그곳을 지배했던 종교의 힘을 누르기 위해 그렇게 했나 봅니다.

종교의 본질은 포용과 사랑이 아니고 다른 종교를 누르기 한판으로 제압하는 것인가요?

 

아마도 언젠가 힘에 눌렸다가 먼저의 종교가 다시 힘을 쓸 때면 세상이 또 한 번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어지러워지겠지요.

그러면 결국 민초만 죽어날 겁니다.

그리고 또 역사 지우기고 문화 지우기라고 모두 부숴버리면 그것은 엄연한 유적의 파괴가 아니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을 하다 보니 때로는 실망도 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그 또한 소중한 일이겠지만, 시간만 허비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는 내가 너무 기대치가 높아서일 겁니다.

아마도 있는 그대로 보고 마음에 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난 아직도 참 여행자가 아닌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