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5. 08:00ㆍ포르투갈 여행기 2014/리스본
오늘 이야기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돌아본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탑이 있는 지역은 리스본의 서쪽입니다.
트램이나 버스를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타면 30분 정도 걸리니
리스본의 변두리 지역이라는 말인가요?
여기서 바로 대서양이 코앞이랍니다.
아침 10시 50분경에 트램을 타고 벨렝 탑에 도착했을 때 11시 25분이었고
벨렝 탑을 구경하고 그다음 잠시 걸어 발견의 탑을 구경하니 12시 25분 정도 되었습니다.
두 곳은 각각 한 시간 이상이 걸리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다음 길을 건너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12시 45분에 들어갔습니다.
조금 일찍 출발해서 이곳에 오면 이 모든 곳을 오전 중에 마칠 수 있다는 말이 되겠네요.
물론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수도원 건물과 성당까지 봐야 하기에 조금 시간을
넉넉하게 잡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1시간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겁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다리가 그 유명한 4.25 다리입니다.
발견의 탑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다리의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건너편과 연결하는 테주 강의 다리를 4월 25일 다리라 부른다네요.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로 알려졌습니다.
1966년에 완공한 다리로 길이가 2.278m라 합니다.
강폭이 대서양과 거의 만나는 지점이라 엄청나게 넓습니다.
거대한 현수교로 위로는 차량이 그리고 아래로는 기차가 다니는 이층 다리네요.
건설 당시는 독재자였던 살라자르의 이름을 따서 "살라자르의 다리"라 했지만,
1974년 4월 25일 독재자를 몰아낸 후 다시 이름을 바꾼 다리라네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다리도 불명예스럽게 쫓겨나면 이름도 사라진다는 사실...
테주 강의 길이는 1.008km로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가장 긴 강이라지요?
다리의 건설은 미국 회사가 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언뜻 생각납니다.
다리 건너에는 크리스토 레이라는 거대한 예수의 조각상이 있습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한 석상을 본 떠 1959년 만든 것으로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습니다.
저 예수상에도 안으로 엘리베이터가 있어 올라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곳까지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기에 그냥 사진으로 대치합니다.
나중에 스페인으로 가기 위해 에보라라는 도시로 갈 때 우리가 탄 버스가 저 다리를
건넜는데 그때 찍어둔 사진이 있기에 여기에 미리 올려봅니다.
이 지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하는 수도원과 탑이 있는 지역입니다.
수도원은 일요일에는 2시까지 무료입장이랍니다
그러나 리스보아 카드를 구매한 사람은 언제나 무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화려한 파사드가 보이십니까?
이 지역은 대항해 시대를 연 엔히크 왕자와 연관이 많은 유적이 있는 곳이라 합니다.
바스쿠 다 가마와 엔히크 왕자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빼놓을 수 없는 곳이죠.
170년간이나 지었다는 말입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 위로 성모상이 있습니다.
성모상 아래에 출입문이 있고 출입문 사이에 보이는 조각상이
바스쿠 다 가마 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뭐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 문은 늘 닫혀있나 봅니다.
여기 파사드를 바라보는 것은 무료입니다.
창문이 예쁘기도 하여라!!!
창문 주변으로 만든 조각이 밧줄을 표현한 게 아닐까요?
저런 밧줄을 즐겨 사용한 건축 양식이 바로 포르투갈 전통의 마누엘 양식이라 하지요.
오늘 건축 양식에 대해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엔히크 왕자와 바스쿠 다 가마의 세계 일주를 기념하기 위해
1502년 마누엘 1세가 짓기 시작해 1672년 완공했다고 합니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옆으로 따로 있네요.
그 문을 통해 들어가다 보면 위의 사진처럼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입니다.
그러니 우선 수도원 구경을 한 후 나오다가 성당으로 들어가면 되지 싶습니다.
이곳을 통과할 때 리스보아 카드로 그냥 통과할 수 있습니다.
우선 수도원 안뜰로 먼저 들어가 구경하렵니다.
입구로 들어가니 입이 따악 벌어집니다.
처음 위의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명성과는 달리 아주 단순합니다.
그러나 여기 보이는 게 전부입니다.
처음에 벌어진 입은 이게 전부이기에 실망해 또 벌어집니다.
수도원이라고 해 모두 구경하는 것은 아니고 바로 이 건물 하나만 보는 거네요.
그래도 아름답기에 용서가 됩니다.
아직 수도원으로 이용하는 중인가요?
공개하는 곳은 여기 뿐이니까요.
아마도 이 수도원 건물이 당시 포르투갈의 저력을 보여주는 증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기념품이랍니다.
세상에 기념품 치고는 엄청나게 큰 기념품이네요.
인도항로를 발견했다고 이렇게 큰 선물을 준단 말입니까?
인도항로의 의미는 어떤 일일까요?
사실 그의 업적에 비하면 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바로 향료와 도자기가 아니겠어요?
당시 향료란 유럽인이 환장했던 것으로 금보다 더 비싼
음식재료였다고 합니다.
특히 냉장고가 없던 시기라 후추 같은 향료는 음식물을 장기 저장할 수 있는 묘약으로
생각되었고 각종 향료는 소금 외에는 음식에 넣을 게 별로 없던 유럽에서는 음식의 맛을
한층 돋보이게 하니 이게 바로 마술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유럽인이 환장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겠죠.
소금 외에는 별로 내세울 조미료조차 없던 유럽 촌놈들이 향신료 맛을 보니
"세상에 이런 맛난 세상도 있구나!" 하지 않겠어요?
천지개벽이요, 충격 그 자체였지 싶네요.
바로 유럽인의 삶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의미지 싶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먹는 즐거움이 사는 즐거움 중 제일이 아니겠어요?
특히 귀족들에게는 말입니다.
그전에는 대상을 통해 소량씩 건너오다 보니 일부 귀족만이 맛볼 수 있었고
대상이 오는 길목에 오스만 튀르크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어 모든 무역에 대한
권리를 자기 마음대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이런 귀한 향료를 바스쿠 다 가마가 배로 가마니 채로 대량 싣고 오니
포르투갈은 돈 셀 일만 남았잖아요.
그뿐인가요?
새로운 항로의 발견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남미와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 경영에
발 벗고 나아가 식민지로부터 들여오는 막대한 재화는 작은 포르투갈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겁니다.
유럽의 변두리 국가였던 포르투갈은 황금 방석에 앉게 되었다는 의미지 싶네요.
그래서 이렇게 그의 업적을 가리는 거대한 수도원을 지어 헌정하게 되었나 봅니다.
위의 사진 저너머 보이는 곳은 일반 관광객에 개방되지 않은 곳입니다.
아마도 저쪽은 아직도 수도원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다시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구경하지 못한 곳과 바스쿠 다 가마의 석관이
있는 성당을 찾아가 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속에 찌들어 그 삶이 피곤하고 힘겨워도.....
사람마다 삶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
혹한을 견디며 피어나는 꽃이 더 아름답고 향기롭다고 했습니다.
행복한 인생은 기다리는 게 아니고 스스로 찾아가는 셀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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