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탑(Padrão dos Descobrimentos)

2015. 5. 4. 08:00포르투갈 여행기 2014/리스본

오늘은 어제 구경했던 벨렝 탑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발견의 탑이라는 곳을 구경합니다.

발견의 탑을 발견 기념비라고 한다지만, 여기서는 그냥 발견의 탑이라 하겠습니다,

먼 곳이 아니기에 그냥 걸어서 갑니다.

가는 길 중간에 비행기 한 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형 비행기라 생각했지만, 아주 의미 있는 실제로 운행했던 비행기라 합니다.

비행기 앞에 있는 비행기에 대한 내력을 적어놓았습니다.

 

이 비행기는 최초로 여기 리스보아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횡단해

남미 브라질까지 갔다 온 비행기라 합니다.

당시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작은 비행기에 생명을 맡긴 조종사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러나 인류의 발전은 이런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에 따라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럽 대륙의 끝에서 대서양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아무래도 포르투갈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대서양 시대를 여는 대항해 시대의 종결자는 스페인이라고 봐야겠지요.

시작은 포르투갈이었지만...

발견의 탑은 범선 모양의 배의 형상입니다.

 

그러나 스페인보다 더 일찍 세계화를 부르짖고 바다로 나아간 나라는 포르투갈이라네요.

사실, 일찍이 항해술과 조선기술이 스페인보다는 포르투갈이 먼저 앞섰나 봅니다.

그 이유는 이슬람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래서 나선 사람이 바로 엔히크 왕자가 아니었나요?

스페인어로는 엔리케라고 하지만, 포르투갈의 왕자니까 포르투갈식으로 엔히크라고 불러야

하며 이 기념비는 엔히크 왕자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1960년에 만들었다네요.

위의 사진을 보니 범선을 손에 들고 앞장선 엔히크를 따라

오늘 여기서 반상회라도 하려나 봅니다.

 

그러니 포르투갈이 해양국가로의 초석을 다진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라고나 할까요?

그게 바로 발견의 탑이라 부르는 범선 모양의 돌탑입니다.

아무래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기에 아직도 돌가루가 떨어지기에

유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이 자리가 바로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개척할 때 출발했던 지점이라고 하네요.

 

발견의 탑 높이는 53m로 건물 내부로 엘리베이터를 운행해 위로 올라가 볼 수 있답니다.

그러나 외부 주변을 그냥 구경하는 것은 무료입니다.

기념비 내부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네요.

위의 사진 아래를 보시면 문이 하나 보이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고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답니다.

 

제일 먼저 앞장선 사내가 바로 엔히크 왕자고 아마도 그는 뭐

"나를 따를껴? 말껴?"라고 하는 겁니까?

그 뒤를 이어 콜럼버스.

그대는 왜 이곳에 있는겨?

그대 처갓집이 포르투갈이라 놀러 왔는감?

그리고 마젤란, 바스쿠 다 가마 등이 줄줄이 따라갑니다.

대장만 갑니까?

선원도 가야죠.

천문학자, 지리학자, 선교사, 주방장 등 모두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까?

오늘 뱃사람들이 여기 모여 반상회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제일 뒤에 덜수는 왜 따라갔을까요?

줄을 잘못 서서 얼떨결에?

 

위의 지도가 발견의 탑 광장 바닥에 보이는데 포르투갈의 이런 뱃사람들로 말미암아

세계로 나간 연도를 표기해 놓았습니다.

1541년...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한반도 옆에 바로 일본이 보이고 포르투갈이

일본에 진출한 연도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정말 멀리까지 진출하지 않았나요?

 

엔히크 왕자는 왕이 되지 못한 왕자지만, 포르투갈 사람은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줍니다.

해상왕이라고요.

우리나라의 해상왕은 장보고가 아닌가요?

포르투갈을 여행하다 보면 엔히크 왕자의 동상을 제일 많이 보게 됩니다.

그 말은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의 공적으로는 1415년 모로코의 세우타를 처음으로 점령함으로

해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바로 포르투갈의 전성시대를 연 초석을 쌓는 일을 한 사람이라는 말일 겁니다.

 

그 후 그는 항해술을 집대성하고 천문 지리를 공부하여 포르투갈이라는 작은 나라가

세상에 식민지 경영에 제일 앞장선 나라로 발돋움하게 한 장본인이라지요?

그래서 발견의 탑 제일 앞에 서서 범선을 손에 들고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나 봅니다.

"포르투갈의 세계경영은 나로부터 시작이야~"라고 하는 듯합니다.

 

 

범선 모양으로 특이한 모습이지만, 과연 저 돌덩어리가 물에 뜰까?

한번 강물 위로 밀어 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중국 여행 중 보았던 이화원 서쪽에 있는 스팡(石舫 : 석방)이라고 부르는

돌로 만든 배가 있었습니다.

스팡이라는 돌로 만든 배는 중국 여행을 하신 분은 자주 보았을 겁니다.

스팡을 만든 이유는 그 의미가 깊은 이야기가 있다네요.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이 이화원에서 보았던 돌로 만든 배 스팡입니다. 

그 사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춘추시대 사상가였던 순자로까지 올라간다 하네요.

그가 했다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호수에 배를 만들었다 하네요.

"군자주야, 서인자수야(君者舟也, 庶人者水也)"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군주는 배고 백성은 그 배를 받치는 물이다."라는 말이랍니다.

어찌 보면 백성을 물로 보고 하는 건방진 이야기 같지만,

백성은 편안할 때는 배를 받들어 주지만 화가 나면 그 배를 들러 엎어버릴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이 아니겠어요?

(水能載舟, 亦能覆舟 : 수능재주, 역능복주)

 

세상의 역사는 대부분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그러니 백성을 물로 보지만 말고 무서운지 알라는 의미지요.

물론 청나라 황실이 반석 위에 올라서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강산이 수백 번 변해도 달라지지 않고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다."

라는 생각에 만든 석주이지만, 청나라는 결국 물로 보았던 민초에 의해

물 먹고 전복되고 말았습니다.

권력이란 이렇게 허망한 일이기도 하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동서양이 같은 형태로 배를 돌로 만들었지만, 그 배가 의미하는 이야기는 사뭇 다릅니다.

아무래도 동양사상이 우리에게는 더 느낌이 있지 않을까요?

잠시 샛길로 빠졌습니다.

혹시 중국 여행을 하시는 분이 계시면 돌로 만든 배를 보시면 그 의미가 생각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