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카테드랄의 모습

2015. 3. 2. 08:00스페인 여행기 2014/산티아고

위의 사진은 왼쪽에는 베네딕토 16세의 모습입니다.

독일 출신으로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265대 교황으로 계셨던 분이지요.

오른쪽은 우리에게도 친근한 모습으로 각인된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입니다.

이 두 분의 교황이 이곳 산티아고 성당을 방문했나 봅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산티아고 성당 내부와 외부의 모습을 요모조모 구경합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까미노를 걷는 이유가 바로 이곳 카테드랄을 찾아오기 때문이죠.

그 역사 또한 천 년도 더 넘었다는 것 아니겠어요?

교황도 여러분께서 다녀가셨고 최근엔 요한 바오로 2세도 다녀가셨다고 하니

그만큼 여느 성당과 다르지 않을까요?

 

산티아고 대성당은 다른 성당에서는 보기 어려운 보따 후메이로라고 부르는 대향로가 있고

이곳에 향을 사르며 보는 미사가 유명하다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천장에 매달린 지름 2m나 되는 대형 향로가 왔다 갔다 그네 타듯 움직이지요.

그 모습이 여느 성당과는 다르기에 여러 날 동안 까미노를 걸어온 순례자에게 더 큰 감동을 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천장에는 위의 사진처럼 지지대를 설치하고 줄을 당겼다 놓기를 반복하여 향로가 그네 타듯 움직이게 한답니다.

매일 그러냐고요?

아니랍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는 꼭 향로미사를 진행하고요.

 

그리고 많은 순례자가 매일 도착하기에 12시 미사에 향로 미사를 여는데

그 전날 헌금이 200유로가 넘어야만 열린다 하니 만약, 그게 꼭 보고 싶은데 헌금이 미달하여 열리지 않는다 하면

그 모자라는 금액을 채워서 보시면 어떨까요?

그런 일과 관계없이 매일 향로미사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일도 좋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순례자가 매주 금요일에만 도착하는 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도착하잖아요.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향로 미사에 원가가 많이 들어가 그랬을까요?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를 위해 쓰신 김에 조금 더 쓰시면 어떻겠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검은 성모상은 효험이 좋다는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상의 짝퉁이 아닐까요?

몬세라트의 황금옷을 입힌 모습과는 다르게 완전히 검은색이라는 게 조금 다르지만...

 

안으로 들어가 주 제단에 성 야고보의 조각상이 또 있습니다.

무척 화려하게 조각한 곳입니다.

순례자는 이 주제단 뒤로 돌아 계단으로 올라 성 야고보의 조각상을 한 번 더 안아보고 간다고 합니다.

아마도 후일을 도모하려고 그럴까요?

혹시 아나요?

죽음의 길에 접어들었을 때 두 갈레 중 어디로 보낼까 망설일 즈음 이곳을 찾아 야고보 상을

한 번 안아본 사람은 가산점이 주어질지 모르잖아요.

 

제단 밑은 야고보의 무덤으로 그의 두 제자인 테오도르와 아타나시우스가 함께 모셔졌다 합니다.

위의 사진처럼 은으로 만든 관인가 봅니다.

혹시 산티아고를 직접 찾아가지 않더라도 이 사진만 뚫어져라, 바라본다면 후일에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주 제단 앞에는 교차랑 이라는 곳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두 개의 아치를 가진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을 은세공의 문이라 부르는데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조각으로 남겨 무척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이런 은세공 양식의 파사드는 살라망카에서 보았으니 이제 우리도 여기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단언컨대, 여기는 살라망카의 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佳人의 짧은 소견으로 추리게라 형제는 위대한 건축가였습니다.

 

그중에는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에 관한 묘사가 흥미롭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찾아보세요.

파사드 왼쪽에 있습니다.

그 사과가 부끄러움을 알게 했다고요?

제일 왼쪽 중간을 보시면 이브가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손으로 중요한 곳을 가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행하며 이런 모습을 찾아보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佳人이 너무 이런 그림만 밝힌다고요?

올려다 보니 보이는 걸 어떡합니까?

다른 내용도 성경을 알면 모두 설명드리겠지만, 성경을 모르는 佳人이기에 통과합니다.

 

이번에는 면죄의 문을 찾아갑니다.

카테드랄 뒤로 돌아가면 칸타나 광장이 있습니다.

그 광장에서 카테드랄로 들어가려면 문이 하나 있는데 그 문은 위의 사진처럼 늘 닫혀있다 합니다.

아무나 시도 때도 없이 죄를 면해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방침인가요?

 

이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그동안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에 면죄의 문이라 부른다는데

성 야고보의 날인 7월 25일이 일요일과 겹칠 때만 연다고 하니 이 또한 너무 야박합니다.

문 위에 야고보가 큰 창이 달린 모자를 쓰고 그의 분신인 지팡이를 들고 반갑다고 손까지 흔드시는데...

모든 사람의 죄를 씻기기 위해 만든 문이라면 늘 열어두어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하는 게 참 종교가 아닐까요?

옛날에는 까미노만 걸어도 죄를 거래하듯 퉁~ 쳐주었으면서...

 

우리나라 정치인은 죄를 지으면 몇 번 재판받다가 금세 감형에 복권되어 언제 죄를 지었느냐는 듯 뻔뻔스럽게

다시 정치판에 돌아와 정치보복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핏대까지 올리는데

우리 같은 민초는 그리 안 되잖아요.

이런 정치인에게는 면죄보다는 빠떼루형으로 다스려야 할까요?

 

우리 같은 민초는 이런 곳에서만이라도 죄를 용서받게 하면 안 될까요?

문 주변에 새긴 조각상이 정말 멋지네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라는 지명은 산티아고(Santiago)라는 말은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랍니다.

그리고 콤포스텔라(Compostela)라는 말은 별들이 쏟아지는 들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별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발견된 야고보의 무덤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말이겠지요.

 

그러니 산티아고는 야고보요, 야고보가 산티아고인 셈이겠죠?

이렇게 산티아고라는 도시 이름이 사람 이름에서 유래한 곳입니다.

성 야고보의 유골을 안치한 카테드랄은 예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과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로마에 이어

가톨릭 세계 3대 성지가 되었고, 이때부터 유럽의 각 지역으로부터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향한 순례길에 나서게 되었다네요.

 

처음의 시작은 신자들의 순례길이었지만, 지금은 명상의 길이고, 아름다운 길이고, 걷고 싶은 길이기에

많은 사람이 걸어서 찾아오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럼 이 도시로 운행하는 버스나 기차는 없습니까?

산티아고는 비행장도 있던걸요.

 

재미있는 일은 야고보가 죽은 후 그의 유해를 실은 배는 강을 따라 바다에 이르고

배는 그가 처음 전도활동을 했다는 갈리시아 지방에 도착하게 되었다네요.

마치 내비게이션이 정확하게 작동한 것처럼...

 그를 알아본 갈리시아 주민이 유해를 거두어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묻었고 그 무덤 위에

야고보의 무덤이라는 표시로 가리비로 덮었답니다.

 

위의 청동 문에 새긴 조각이 바로 예수의 출현과 야고보의 전도 활동, 참수 그리고 배에 실려

이곳으로 오게 된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네요.

 

제일 위의 그림부터 나누어 보겠습니다.

왼쪽은 머리에 후광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모습이 아닐까요?

종교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이 그림이 의미하는 내용을 설명드릴 수 있지만...

그리고 오른쪽은 가운데 예수의 모습으로 보이고 그 주변으로 모두 열두 제자의 모습으로 생각되네요.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민초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라고 하는 듯합니다.

 

가운데 그림입니다.

왼쪽의 그림은 산티아고 지역민에게도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모습처럼 생각되네요.

오른쪽의 그림은 헤롯왕에 의해 참수당하는 모습이 너무 리얼합니다.

요즈음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았던 모습처럼 생각되네요.

얼마 전 우리는 IS라는 이상한 무리들이 참수가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입니다.

왼쪽은 참수당한 야고보의 시신을 그의 제자들이 거두어 배에 태워 바다로 보내는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오른쪽의 그림은 그의 시신을 발견한 목동 펠라요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 지방의 주교인 테오도미르가

무덤을 열어 야고보의 시신을 확인하는 모습이지요?

순례자가 주교의 모자를 만져 반질거립니다.

주교의 머리 위로 별빛이 반짝이는 동네라는 콤포스텔라를 알려주기 위해 별까지 새긴 친절한 조각입니다.

이 청동문 사진 한 장이면 모두 설명이 되는데 佳人이 공연히 길게 이야기했지요?

 

이렇게 누구나 드나드는 문이지만, 그 문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아도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해외여행이 어려우시다고요?

여행이 얼마나 쉽고 편합니까?

 

그 소식을 들은 가톨릭 국가였던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인 알폰소 2세는

놀라움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답니다.

왜 아니겠어요?

야고보라면 열두 제자 중 제일 먼저 순교한 성인이고 그의 조상이 이슬람과의 전투에 거의 밀려  백척간두에 서

있을 때 하얀 백마를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때까지 승승장구하던 이슬람 대군을 쓸어버렸잖아요.

 

그는 즉시 행장을 꾸려 왕국의 도읍인 오비에도에서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합니다.

아스투리아 왕인 알폰소 2세가 아마도 최초의 순례자가 되어 까미노를 걸어 산티아고로 왔다고 우겨도 되겠어요.

주교는 알폰소 2세에게 그 무덤이 발견된 장소에 교회를 짓자고 청원했고 이로써 처음으로 작은 교회가

지어졌으며 이 이야기가 중부 유럽으로 퍼지며 점차 야고보의 무덤을 참배하고자 이곳을 찾는 순례자가

늘어나다니 작은 성당 건물로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로써 874년 좀 더 큰 성당을 세웠으나 977년 이슬람의 알만소르 군대가 산티아고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불을 지르니 성당은 소실되고 맙니다.

이곳도 이슬람의 공격으로부터 도시가 초토화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이베리아 반도는 대부분 이슬람 세력 아래 있었나 봅니다.

 

1075년 다시 이 도시는 재건되며 튼튼한 성벽을 쌓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 번째 성당 축성에 들어갑니다.

그 후 1100에 이르러 성당을 카테드랄인 대성당으로 바꾸기 위해 당시 제일 유명한 마테오라는 사람에게

성당 건축을 의뢰해 짓게 되며 지금의 성당 정면과 영광의 문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마테오의 솜씨를 구경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보수하느라 가림막을 설치해 버렸습니다.

 

그 후 11~13세기에 걸쳐 수없이 개축과 증축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성당 모습은 바로크 양식이라 합니다.

바로크 양식은 스페인에서는 흔하지 않은 건축 양식이라 합니다.

사실, 그 양식의 특징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을 살다 보니 우리 앞에는 늘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주저앉으면 그곳까지가 우리의 한계입니다.

걸림돌을 내가 다시 일어나는 디딤돌로 생각하고 일어서 넘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걸림돌과 디딤돌...

똑같은 돌이지만, 바로 내 마음이 결정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