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귀마개가 있었던 산티아고

2015. 2. 27. 08:00스페인 여행기 2014/산티아고

일단 우리가 이틀 동안 묵을 숙소부터 찾아 배낭을 내려놓고 가볍게 다녀야겠습니다.

원래 산티아고에서는 하루만 자고 이동하려고 했지만, 까미노 시작하는 날 바로 출발했기에 하루가 늘어졌고

몬테 도 고소에서 머물고 다음 날 산티아고로 들어오려고 했다가 바로 오는 바람에 이틀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산티아고에 하루 더 머무르고 포르투에서 하루 더 머물다 가려고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비는 까미노를 걸을 때 그렇게 내리더니만, 이곳에 도착하니 내리다 마다를 계속하네요.

사흘 내내 비를 맞으며 걸었지만, 이상한 것은 까미노 중에는 그렇게 퍼붓다가도

숙소에 도착만 하면 그친다는 점입니다.

누구를 탓하겠어요?

 

모레는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혹시 매진되면 갈 수 없기에 미리 표를 사기 위해 터미널로 가

모레 12시 정오에 포르투로 출발하는 알사 버스를 예매합니다.

포르투는 멀지 않은 곳이지만, 여기서는 나라가 다르기에 국제선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나라를 버스로 이동한다는 일이 신기하기만 하잖아요.

 

차편 또한 많은 편이 아니기에 미리 예매하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버스 터미널은 까미노 길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서 멀지 않은 곳이네요.

위의 지도에서 까미노 길을 걸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도중에 버스 터미널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미리 우리처럼 이동하실 분은 도중에 먼저 표를 사고 구시가지로 들어오세요.

멀지 않으니 구경삼아 다녀오셔도 괜찮습니다.

 

우리도 터미널이 그곳에 있는지 알았으면 시내로 들어올 때 미리 사둘 것 그랬습니다.

여권을 보여주고 표를 사니 버스표가 무척 길고 글자도 무척 많습니다.

버스 요금은 30유로로 제법 비싸네요.

국제버스라 그랬을까요?

그런데 포르투갈 여행을 하다 보니 스페인에 비해 비슷한 거리인데도 요금이 제법 비싸더군요.

 

버스표를 예매한 후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시내구경을 나섭니다.

여행 중 숙소를 정하고 다음 이동할 곳으로 교통편이 정해지면 그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있는 작은 광장은 세르반테스 광장이라네요.

스페인 여행을 하며 세르반테스가 스페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산티아고는 세르반테스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도시가 아닌가요?

 

위의 사진은 카테드랄로 들어가기 전에 뒤를 돌아서 바라본 광장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긴 시간을 걸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이 자리에 서면 순례자 어느 누구도 평소와는 다른 감정을 느끼실 겁니다.

佳人은?

아무 감정이 없었습니다.

워낙 감정에 메마르게 살아왔기에 그랬지 싶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에게는 이렇게 까미노를 걸어 여기에 오면 눈물이 저절로 흐를지 모릅니다.

 

순례자가 까미노를 걸어오며 아마도 가장 감동하는 장소는 마지막 알베르게가 있는 환희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몬테 도 고소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수많은 날을 걸어와 파김치가 되도록 지친 순례자가 바로 언덕에 올라서면

저 멀리 5km 밖에 그동안 그렸던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카테드랄이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우리는 비가 내리고 운무가 심해 그 언덕에 올라서서 바라보아도 볼 수 없었습니다.

평소에 착하게 살아야 할 텐데...

 

그다음 장소는 카테드랄이 있는 광장인 오브라도이로 광장이 아니겠어요?

카테드랄 주변으로 여러 개의 광장이 있지만, 아무래도 정문에 있는 오브라도이로 광장이야말로

그 느낌이 다른 곳이겠지요.

어느 누구는 함께 걸어온 동료와 포옹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광장 바닥에 입맞춤하며 눈물을 흘릴 겁니다.

이제 기나긴 순례의 길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 때문이겠죠.

위의 사진처럼 비가 그치면 순례자들은 광장에 앉거나 누워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며

여유를 즐기며 대성당 파사드를 올려다보며...

 

우리요?

그냥 맹숭맹숭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평생을 살아오며 재미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겠죠.

재미있고 맛있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 답은 우리나라의 포장마차에서 찾을 수 있더군요.

맛있는 삶은 달걀.

그랬습니다.

삶은 달걀이랍니다.

 

이제 카테드랄 안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왜?

산티아고에서 갑은 카테드랄이고 사실 여기를 빼면 크게 볼 것도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산티아고에 오는 이유는 바로 카테드랄에 오기 위함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문과 파사드를 마테오라는 사람이 12세기에 만들었다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이랍니다.

200개 이상의 성인을 문에 조각으로 남겼다네요.

20년간이나 만들었다고 하니 반평생을 여기다 바쳤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림막을 치고 보수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보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걸작은 무슨 걸작?

 

이런 대단한 성당의 파사드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면 운도 따라야 합니다.

적어도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계단을 올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처음 마주하는 게 바로 주 출입문입니다.

이 문을 영광의 문이라 부릅니다.

지금은 영광이라기보다는 공사판입니다.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에게 영광이 주어지나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중앙의 기둥에 보이는 순례자의 모습을 한 성 야고보를 새겼다는 점입니다.

문 중앙의 기둥에는 야고보의 조각상을 새긴 이유는 아마도 먼 길을 걸어온 피곤한 순례자를

문앞에서 맞이하려고 했을 겁니다.

버선발로 뛰어나오지 않고 맨발로 달려 나오려고 신발도 신지 않았을까요?

 

그 아래를 보면?

또 야고보입니다.

순례자는 바로 이곳에 입맞춤하고 꿇어앉아 기도합니다.

입맞춤하기에는 조금 지저분해 보이지 않나요?

그러나 종교인에게는 절대로 지저분한 곳이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서서 야고보와 입맞춤 대신 눈 맞춤으로 대신합니다.

나중에 천국의 문에서 만난다면 통과시켜달라고 부탁이나 하려고요.

 

 

카테드랄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위의 사진에 노란 원으로 표시한 세 개의 문을 따라

들어갈 수 있도록 나뉘어 있답니다.

십자가 모양으로 지은 성당 왼쪽 서쪽으로 열린 문은 기독교도가 이용하고

아래인 남쪽은 유대교도, 그리고 위쪽인 북쪽은 이교도를 위한 통로라 합니다.

우리는 세 군데 모두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습니다.

그래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지친 순례자는 야고보의 조각상이 있는 기둥을 잡고 무사히 순례의 길을 마친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의미에서 기둥을 쓰다듬을 겁니다.

우리야 그냥 사진 한 장 찍고 힐끗 올려다보고 말았지만...

같은 장소에 서 있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이렇게 다르네요.

 

주 제단은 추리게라 양식으로 만들었다 합니다.

가운데는 성 야고보의 동상을 모셨습니다.

역시 이곳은 성 야고보가 갑입니다.

황금 옷을 입은 모습은 원래 야고보의 모습은 아니지 싶네요.

전도를 위해 먼 곳으로부터 오랜 시간 걸어온 성자의 모습은 위의 모습처럼 금수저는 절대로 아닐 겁니다.

 

주 제단 뒤쪽 계단을 이용해 순례자는 성 야고보의 망토에 입맞춤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냥 등을 두드리고요.

또 많은 사람은 흉상을 뒤에서 끌어안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표현은 달라도 같은 의미가 아니겠어요?

 

뭐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그냥 사진만 찍고 내려왔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야고보와 포옹하기 위해 기다리기에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카테드랄의 다른 모습은 내일 더 보렵니다.

 

위의 사진은 산티아고 숙소에서 佳人을 감동하게 한 물건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고 포르투갈 포르투행 표를 산 후 산티아고 시내구경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에 들어가니

佳人 침대 매트 위에 놓여있던 귀마개입니다.

바로 옆자리에 있던 젊은 여행자 한 분이 놓아둔 귀마개입니다.

자신이 밤에 코를 고는 잠버릇이 있다고 시끄러우면 사용하라고 놓아둔 귀마개입니다.

 

제 여행기를 계속 읽으신 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까미노 이틀째 독일산 증기기관차에 놀라 꼬박 밤을 새웠던 佳人이 아니겠어요?

사람은 누구나 피곤하면 코를 골 수 있습니다.

佳人도 사실 피곤하면 조금은 코를 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같은 도미토리 방에 머물 이웃을 위해 배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비록 작은 귀마개지만, 여행 중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여행 중 느꼈던 많은 이야기 중 가장 큰 감동을 준 귀마개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면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내일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나간 어제가 이미 내 것이 아니듯이 내일도 내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이 내가 생에 마지막 간절히 원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