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콩키스타의 시작과 완결은 야고보입니다.

2015. 3. 3. 08:00스페인 여행기 2014/산티아고

이틀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머무르는 동안 비가 계속 오락가락합니다.

숙소를 한인 민박으로 했기에 아침은 한식으로 먹어 한결 입맛이 나네요.

사실, 마눌님과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여행 중 현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입니다.

단기간 여행에서는 한식이 그렇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장기간 여행 중일 때는 이렇게 가끔 한식으로 입맛을 돌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원래 일정을 계획할 때 산티아고에는 하루만 머물고 떠나려 했지만,

울 마눌님이 힘들어하기에 이틀을 쉬었다 갑니다.

같은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은 대부분 땅끝마을이라는 피스테라로 다시 길을 떠납니다.

물론, 일부는 걷고 또 다른 사람은 버스를 이용해 다녀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리스본에서 땅끝마을이라는 호카 곶을 가려고 계획했기에

이곳은 포기하고 하루 더 쉬었다 갑니다.

 

음악의 쉼표처럼 여행길에서도 쉼표가 필요합니다.

우선 먼저 오늘은 까미노를 걸으며 크레덴시알에 받아둔 스탬프를 까미노 관리 사무실에

제출하고 완주증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까미노를 걸어오며 크레덴시알에 지나는 마을의 숙소나, 식당

그리고 가게에서 무료로 도장을 찍어줍니다.

 

이렇게 받은 도장이 찍힌 크레덴시알을 사무실에 제출하면 그곳에서 봉사하는

자원 봉사자가 확인하고 완주 증명서를 줍니다.

이게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도중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제법 힘들게

걸어왔기에 받아두어야죠.

낮에 도착했을 때는 증명서를 받으려는 순례자가 많아 포기하고 오후 늦게 찾아가니

그나마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처럼 낮에 도착해 대기자가 많을 때는 오후 늦게 찾아가시면 조금 수월하게 받을 수

있기에 그 시간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다니는 게 더 효율적이지 싶습니다.

 

이렇게 증명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증명서보다 스탬프가 빼곡하게 찍힌 크레덴시알이 나중에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니 여기서 멀리 떨어진 코르도바에서 우연히 알베르게에 2박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크레덴시알을 제출하면 숙박요금의 10%를 할인해 주어 8유로나 아낄 수 있었습니다.

여행 중 예상하지도 못한 이런 일을 겪게 되면 횡재한 기분이 들잖아요.

 

예전에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이 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할 때에 이베리아에서 살았던 원주민이 쫓겨서 밀려 올라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가톨릭 세력을 형성하고 지켜내고 있었다네요.

그런 의미에서 북부지방은 나중에 국토를 다시 찾는 일이었던 레콩키스타의 본거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역이라지요?

 

비록, 무어인에 쫓기고 도망하며 북부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쥐 죽은 듯이 살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점차 서로 단결하고 모이며 왕국의 규모를 갖추어 힘을 키웠나 봅니다.

어느 정도 힘이 생기자 이제는 잃어버린 옛 땅을 찾자는 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게 되었다네요.

그 기폭제가 된 일이 바로 코바동가 전투였나 봅니다.

718년 펠라요 1세가 무어인을 상대로 코바동가 전투에서 승리하며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게 되었고 그로부터 우리도 하면 된다는 생각에 레콩키스타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로는 이슬람 세력이 워낙 강성했던 시기라 국토회복운동도 미약했으며

11세기에 접어들며 이슬람 세력 간에 서로 갈등이 생기며 단결력이 약해지자 당시

십자군 전쟁의 영향을 받아 이곳에서도 점차 군사적인 행동을 감행하며 순차적으로

이슬람 세력을 남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네요.

아마도 무어인이 하나로 뭉쳐 강한 힘을 가졌다면 어림없는 일이었겠지만,

이들은 서로 부족마다 독립적으로 작은 세력으로 나뉘게 되어 그런 세력이 뭉친 연합체였으니

그런 힘은 서로의 주장에 집착하다 보면 아무래도 결속력이 약해지며 무너지게 마련이지요.

 

그 중심에 섰던 나라가 부르고스와 레온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던 카스티야 왕국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북부는 지금의 스페인을 이루는 주축 세력이었을 겁니다.

나라를 다시 찾은 자부심도 강했을 것이고요.

결국, 카스티야 왕국은 카탈루냐 지방의 아라곤 왕국과 혼사로 맺어지며 강력한 힘을 키워

레콩키스타를 완성했다죠?

이는 아라곤 지역이었던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독립을 요구하는 일의 시초가 되었을지도...

"우리가 남이가?"라고 해도 "그래 남이다!"라고 하는 가 봅니다.

 

많은 도시가 북부지방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만큼 널리 알려진 도시도

없을 것이며 우리에게 순례자의 길로 알려진 그 길의 종착 지점은 산티아고라는 도시가 아니겠어요?

성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며 이 도시는 기독교인에게는 성지로 발돋움하며 중세부터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가 까미노 길을 걸어 산티아고로 행했다지요?

 

요즈음은 순례자보다 우리 같은 일반 관광객이 훨씬 더 많이 그 길을 따라 걸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주 올레길이 바로 까미노 길을 모델로 만들었으며 지방마다 둘레길이라고

걷는 길을 많이 만들어 걷기 열풍을 일으킨 원조 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겁니다.

"그러면 동네 둘레길이나 걷지! 왜 그 먼나라까지 가서 걸어?"라는 분도 계실 겁니다.

길은 같은 길이지만 느낌이 다른 길이고 스페인에 온 김에 걸어보았습니다.

 

순례자의 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유명한 길이 되었지요.

바로 이런 의미 있는 길이기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순례자가 모여드는 게 아니겠어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말의 콤포스텔라는 라틴어의 Campus Stellae에서 유래했다네요.

야고보의 묘를 처음 발굴한 사람은 목동이라고 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별빛이 그를 인도해

들판에 묻힌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리 이름을 지었나 봅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니 별빛은커녕...

 

신기하고 이상하지만, 그렇다네요.

그런데 야고보의 묘가 발견된 시기가 레콩키스타 운동이 막 시작할 때였다지요.

당시 세력 비교에서는 열세였던 기독교 세력은 정신적인 지주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 의미로 해석하면 조작되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의 무덤 발견은 당시의 사회 상황과 조건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집니다.

이런 이유로 순례자의 길은 그 지역의 맹주였던 아스투리아스 역대 왕에 의해 보호되고 정비되었다

하니 과연 그 무덤이 야고보의 무덤인가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은 필요 없지 싶습니다.

세상을 살면 너무 각박하게 묻고 따지는 일도 서로 갈등만 초래하지 않겠어요?

우리 인간이란 잠시 스쳐가는 구름이고 바람이 아니겠어요?

 

광장문화가 발달한 스페인에서 이곳에서는 오브라도이로 광장이 제일 유명한 광장이죠?

유럽이라는 나라는 원래 아고라부터 시작한 광장문화가 아니겠어요?

카테드랄 주변으로는 모두 4개의 광장이 있습니다.

그중 갑은 오브라도이로 광장일 겁니다.

 

대성당 바로 앞에 있어서라기보다 광장 주변으로는 다채로운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겠죠.

왼쪽에는 대주교좌가 있는 헬미레스 궁전이 있습니다.

일부 내부 구경도 가능한 곳이라 합니다.

 

오른쪽에는 구 왕립병원이 있습니다.

처음 이 건물을 짓게 된 이유는 1489년 스페인 통일의 가톨릭 양왕이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의료시설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국립 호텔인 파라도르로 사용하고 있다네요.

 

그리고 위의 사진에 보이는 대성당 맞은편에는 시청사 건물이 있습니다.

구 락소이 궁전으로 오브라도이로 광장을 둘러싸고 이런 역사적인 예술품 같은 건물이

둘러싸고 있으니 여러 광장 중 단연 갑은 오브라도이로 광장이 아닐까요

 

칸타나 광장은 대성당 뒤에 있는 광장입니다.

대성당 뒷문을 면죄의 문 또는 성스러운 문이라고 합니다.

1611년 페르난데스 레추가가 제작하고 명장으로 알려진 마테오가 조각을 새긴 문으로

예언자 상 등을 새겨져 있습니다.

 

이문은 평소에는 늘 닫혀있다가 7월 25일이 일요일과 겹치는 날에 여는데

평소 매 7년 겹치는 날이 돌아온다 합니다.

이날은 성 야고보의 축제일로 일요일과 겹치는 해를 성스러운 해라고 한답니다.

그러니 오늘 佳人이 열어달라고 해도 어림없는 소리겠지요?

이렇게 대성당을 한 바퀴 돌아보며 여기저기 구경하는 일도 좋아 보입니다.

건물의 의미를 알고 바라보면 더 많은 게 보일 테니까요.

 

이제 내일은 아침에 잠시 산티아고 시내 산책이나 하고 지내다가 12시에 출발하는

포르투행 버스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포르투갈로 갈 예정입니다.

포르투갈에서는 포르투와 리스본을 중심으로 구경하고 에보라라는 작은 도시를 구경한 후

국경을 통과해 스페인으로 다시 이동할 예정입니다.

스페인에서는 바다호스, 카세레스, 트루히요 그리고 메리다를 구경하고

남쪽으로 내려가 세비야로 갈 예정입니다.

 

그동안 무척 지루하셨죠?

이번 여행의 1부를 여기서 마치고 2부는 며칠 쉰 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계속된 이야기가 재미도 없고 너무 지루하신 듯하여 잠시 쉼표를 찍고 가렵니다.

2부는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포르투갈의 포르투와 우리가 리스본이라고 부르는 리스보아의

이야기로 리스보아에서는 신트라를 갔던 이야기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땅끝마을인

호카곶 그리고 에보라에 들렸던 이야기입니다.

 

그다음 3부에서는 스페인의 중서부인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인 바다호스, 카세레스, 트루히요

그리고 메리다를 여행했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채우려고 합니다.

특히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은 포르투갈과 국경을 접한 지역으로 정복자의 땅이라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곳입니다.

그런 이유로 여행 자료도 충분하지 않았던 곳입니다.

비록, 佳人이 전문 여행가는 아니지만, 그 지역의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이 변하기를 소망하지 말고 나 자신이 변하기를 소망합시다.

인생의 주인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단언컨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속상해하지 말고 차라리 내가 변하는 게 더 빠르고 속이 편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