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은의 길 그리고 푸엔테 로마노

2015. 1. 17. 08:00스페인 여행기 2014/살라망카

위의 사진은 조개의 집 창문 장식입니다.

장식이라기보다 용도는 방범창이겠죠.

조개는 야고보가 전도를 위해 길을 걸었던 까미노를 상징합니다.

이 방범창을 보니까 가우디 건축에서 보았던 철 장식이 생각납니다.

그의 철장식은 가우디의 독창적인 게 아니라 가우디 이전부터 있었던 많은 건축 장식을

가우디가 인용해 발전시켰을 뿐입니다.

 

이곳 살라망카에서도 까미노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길바닥에 표시한 가리비인 조개 모양의 장식은

바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까미노란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말이라 합니다.

이런 장식만 따라가면 제대로 가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또 이런 조각상도 보입니다.

비쩍 말랐지만, 순례자의 길을 걷는 그런 모습을 그린 것이겠죠.

이런 장식이 내포하는 의미란 순례자란 신앙의 힘으로 고독하고

힘든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순례자의 상징은 조개와 지팡이 그리고 표주박이라 합니다.

 

이제 우리 부부도 내일이면 짧은 거리지만, 이곳을 떠나 순례자의 길이라는

까미노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종교와는 무관한 일이고 단지 스페인에 까미노 길이 있기에 이번 아니면

언제 다시 오겠느냐는 마음에 걸어볼까 합니다.

순전히 맛만 보고 오려고 걷는 겁니다.

걷다가 힘이 들면 차편을 알아보고 차 타고 가고요.

 

앞으로 까미노를 하면서 위의 사진 같은 십자가를 자주 만나겠지요.

그게 바로 제대로 길을 걷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여기서 출발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프랑스 생장이라는 곳에서

800여 km를 약 한 달에 걸쳐 걷는다는군요.

그러나 우리 부부는 그냥 까미노 길의 맛만 보려고 사리아부터 116km만 걸어보려 합니다.

혹시 끼미노를 생각하고 계신 분은 프랑스 생장부터 걸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 부부처럼

최소한의 거리인 100km만 걸을 것인가를 결정하면 되겠네요.

 

왜 100km인가 하면 까미노를 인정하는 거리가 걸어서 100km 이상만 되면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네요.

자전거나 말을 타고 가려면 200km 이상이 필요하고요.

인증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규정이 있기에 그 거리를 걸어보려고 합니다.

 

살라망카에는 아주 오래된 돌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의 역사가 무려 이천 년이나 된답니다.

그러니 로마 시대에 만들었다고 하여 로마 다리라는 의미의 푸엔테 로마노입니다.

 

토르메스 강을 가로지르는 푸엔테 로마노는 과거 로마가 이 지역을 장악했을 때

철광석을 수송하기 위한 은의 길이었고 살라망카는 그 수송로의 아주 중요한 거점 도시였을 겁니다.

그러니 이 다리의 중요성은 그때는 로마를 살찌웠던 동맥과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이 다리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고 갔을까요?

이곳에 살았던 주민들은 로마인이 수탈해가는 그 철광석을 바라보고 뭐라고 했을까요?

"님아! 우리 자원을 싣고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아직도 사람이 이용하는 튼튼한 다리입니다.

물론, 자동차도 다닐 수 있지만, 지금은 다니지 않고 사람만 건너 다닐 수 있지요.

이베리아 반도의 북에서 남쪽으로 연결하는 그 장대한 수송로의 한 부분이었겠지만,

튼튼하게 건설했기에 지금도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돌다리 입구에는 비록 머리는 사라졌지만, 다리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만

동물 석상이 여태까지 서 있습니다.

누구는 사자상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황소상이라고도 한답니다.

그러나 돼지라는 동물의 상이 가장 근접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님아! 여태까지 서 있는겨?

 

살라망카 대학뿐 아니라 대학 주변의 건물도 예술입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인 콜럼버스도 세르반테스도 이 학교에서 수학했다고 하네요.

대학 본관으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4유로나 내야 하네요.

학생도 매일 내고 다닐까요?

 

우리야 당연히 그곳을 포기하고 다른 캠퍼스를 기웃거립니다.

이곳은 이슬람 양식의 캠퍼스네요.

건물은 중국의 사합원처럼 삥 둘러 있고 가운데 파티오라고 부르는 정원이 있습니다.

이 파티오가 이슬람 건축 양식의 대표라 할 수 있겠지요?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유대인이나 이슬람 양식의 건물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건물의 특징은 중국의 사합원과 다름이 없습니다.

외부와 등을 지고 서로 안에서만 마주 보며 살아가는 폐쇄적인 삶 말입니다.

그 이유가 많은 전쟁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의 개방적인 주거환경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사립문 하나로 집과 외부를 이어주고 낮게 두른 담장은

외부와 바로 소통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중국이나 여기에 살았던 사람은 전쟁이라는 외부적인 환경에 대처하는 방법은 아닐까요?

 

또한, 중국의 후통이라고 부르는 골목과 이 나라의 구시가지 골목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판박이인지...

외부의 적이 말을 타고 빨리 지나갈 수 없도록 좁고 휘어지게 하였지요.

그 지방의 역사와 환경이 그런 문화를 만들지 않을까요?

 

책임질 수 있겠냐고요?

제가 누굽니까?

아니면 말고의 대가가 아니겠어요?

 

물론, 남부지방 안달루시아 지방의 골목은 여름의 강렬한 햇볕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시원하게 지내려 골목 사이를 좁게 만들어 그늘이 지게 하려고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골목을 다녀보면 더운 날에도 소위 골바람이라고 부르는 바람이 골목으로 불어와

시원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 모두가 외부와의 환경이나 자연을 이기는 지혜가 아니겠어요?

 

우선 지금까지 지나온 도시를 잠시 살펴보고 갑니다.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도착한 아침에 바로 먼저 세고비아로 올라갔습니다.

세고비아에서 1박 한 후 남서쪽에 있는 아빌라를 그다음 이동했고요.

두 도시는 마드리드에서 비슷한 거리에 있고 세고비아와도 비슷한 시간이 걸리는 곳이죠.

그러나 살라망카는 마드리드에서 아빌라를 거쳐 와야 하는 곳으로 제법 먼 곳에 있습니다.

 

살라망카는 동서는 물론 남북으로도 길이 사통이 열린 교통의 거점도시로

로마 시대에 은의 길이라 부른 거점 도시였습니다.

이 지방을 엑스트레마두라 지방이라 카스티야 이 레온과는 다른 지역에 속합니다.

지리적으로 이런 곳은 도시로서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나 봅니다.

그게 자연에서 온 환경이든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든...

살아가는 일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인간은 이를 해결해 나가는 지혜를 가지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