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건봉사(金剛山 乾鳳寺)

2022. 7. 15.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강원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 있는 건봉사에 다녀왔습니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고 있는 유서 깊은 절이지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인적이 뜸해 한적한 고찰이기에 고즈넉한 기분으로 돌아볼 수 있는 절이었습니다.

 

건봉사는 전국 4대사찰의 하나로 만해 한용운 선생이 쓴 건봉사급 건봉사말 사적지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에 아도화상이 원각사를 창건하고 그 후 고려 태조 20년인 937년에 도선국사가 중수하며 절 뒤 서쪽에

봉형(鳳形)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고 이름을 바꾸었으나 고려 공민왕 7년인 1358년에 나옹화상이 중수하며

지금의 명칭인 건봉사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볼 때 1.500년이 넘은 아주 오래된 고찰이더라고요.

 

한국전쟁 중 이 지역은 휴전 직전까지 2여년간 국군과 북한군이 아주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친 건봉산 전투지역으로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로 변했다는데 1994년부터 다시 하나씩 복원되기 시작해 아직도 복원 중이라고 하네요.

한때는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대사찰이었던 곳이 바로 건봉사였다고 합니다.

 

건봉사로 들어서는 입구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불이문(不二門)이 있는데 여느 절과는 달리 산문이나 사천왕문 등이 없고

1920년에 건립한 불이문만이 있는데 이 불이문은 한국 전쟁 때 건봉사의 모든 전각이 사라졌으나 오직 불이문만이

화를 입지 않고 살아남았더고 하는데 불이문은 지금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후 이 지역은 민간인 통제 북쪽이 있어 아무나 드나들 수 없기에 그대로 버려진 체로 남아있다가

1989년부터는 민간인 출입이 허용되며 복원 사업을 시작하였기에 지금 우리도 구경할 수 있더군요.

6·25 전쟁 전까지는 31 본산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라네요.

 

1464년 세조가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게 되자 이때부터 역대 임금의 원당이 되었다네요.

6·25 전쟁 전에는 대웅전, 관음전, 사성전, 명부전, 어실각, 불이문 등 총 642칸에 이르렀으나

6·25전쟁 때 불이문만 제외하고 모두 사라져 폐허화되었다고 합니다.

 

불이문은 둥근 모양의 돌 네 개 위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린 형태입니다.

둥근 돌기둥에는 사진에 보듯이 창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금강저를 나타낸 것이랍니다.

금강저는 고대 인도에서 사용했던 무기라고 하는데 부처를 수호하고 번뇌를 없애는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현판의 글씨는 서예가 해강 김규진이 쓴 글이라고 합니다.

불이란 진리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의미로 이 문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상인 불국토로 들어선다는 의미겠네요.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절은 일주문, 천왕문이 있으나 이곳은 특이하게도 불이문 하나만 두었고 그 둥근 돌기둥에

금강저를 새겨둠으로 사찰을 지키는 천왕문의 의미를 여기에 새겨두었네요.

 

불이문을 지나 잠시 오르다 보니 왼편에 극락전이 보입니다.

극락전 앞으로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범종각이 있고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석비에 새겨진 연도는 불기 2953년 무진년 여름이라고 되어있네요.

 

여기에 아주 멋진 무지개다리가 있습니다.

바로 개울을 건너 건봉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이 다리 이름이 능파교(凌波橋)라고 하네요.

 

능파교는 보물 제1336호입니다.

그러니 대웅전 지역과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로 이 개울을 건너야 대웅전으로 들어갈 수 있지요.

능파교를 처음 축조한 시기는 숙종 30년인 1704년부터 1707년 사이라고 기록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 수차례 홍수로 부서졌다가 다시 축조하곤 했다지요.

폭이 3m이고 길이는 14.3m 중앙 높이가 15.4m로 제법 규모가 큽니다.

축조 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도 함께 있어 우리나라 돌다리 축조에 귀중한 자료를 남겨주었다고 하네요.

 

이제 능파교를 지나서 금강산 건봉사라는 현판 아래 문을 통해 대웅전 안뜰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위의 사진에 보이는 대석단 양 옆으로 두 개의 석주가 보이네요.

다른 절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돌기둥으로 보입니다.

 

이 돌기둥은 높이가 158cm로 기둥에는 십바라밀의 도형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를 십바라밀 석주라고 한다네요.

조성연도는 1920년이라고 하는데 시각적으로 교육효과가 높은 중요한 문화재라고 합니다.

십바라밀은 대승불교의 기본 수행법인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 바라밀에다가 이 여섯 가지를 보조하는

방편, 원, 역, 지의 4 바라밀을 첨가하여 구성한 것이라고 하네요.

 

누각 형태의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대웅전이 있고 그 앞으로 석등이 양쪽으로 보입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건립한지도 오래되지 않기에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1879년 개운사, 중흥사(重興寺), 봉은사, 봉선사(奉先寺), 용주사 등의 도움을 얻어 대웅전, 어실각, 사성전,

명부전 범종각, 향로전, 보안원, 낙서암, 백화암, 청련암을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이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기에 지금의 모습은 최근에 새로 지은 모습이겠네요.

 

그 자리에서 왼쪽으로 보면 보안원이라는 전각이 보입니다.

이 전각 안에는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진신 치아사리는 신라시대 자장 법사가 중국 오대산에 건너가 가져온 100과 중 일부라고 합니다. 

 

보안(普眼)이라는 말은 보안보살에서 나온 말로 널리 일체중생을 관장하는 자비로운 보살의 눈이라는 의미라네요.

또 환(幻)을 여의고 행(行)을 닦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이곳 건봉사에는 12과의 사리가 있었는데 도굴되고 다시 돌아온 사리가 8과였다고 하네요.

8과 중 3과는 사리탑에 모셔졌고 이곳 보안원에는 5과만 친견할 수 있다고 하네요.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는 친견은 할 수 있지만, 직접 사진 촬영은 금하고 있어 멀리 밖에서 사리함 모습만 찍었습니다.

부처가 열반에 들었을 때 속질귀라는 나찰이 부처의 치아를 훔쳐 달아나자 뒤를 쫓아가 잡았다는 동진보살의 

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웅전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으로는 역시 명부전(冥府殿)이 보이네요.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과 시왕(十王)을 모신 법당이라고 하지요.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 왕 가운데 다섯 번째 왕이리고 하네요.

그러니 우리가 죽은 후에는 바로 이들 앞에 서서 판결을 받아 생전 지은 죄에 따라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옥의 왕이기에 미리 이렇게 눈도장을 찍어두면 죽은 후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특히 지장 보살의 눈도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현재 고성 건봉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고, 6·25 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능파교와 십바라밀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진 두 개의 돌기둥,

‘대방광불 화엄경’이라고 새겨진 돌기둥 등이 유명하다고 하네요.

 

건봉사가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