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神醫) 화타

2014. 9. 1.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조조와 화타는 보저우(박주 : 亳州)가 고향으로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네요.

보저우는 사실 특별히 마음먹고 찾아오기 전에는 지리적으로 어정쩡한 곳이기에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보저우나 이 주변이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말입니다.

오늘 구경하는 화조암은 중국 한나라 말기의 전설적 명의 화타를 위해

지어진 사당으로 해마다 화타를 기리는 제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합니다.

 

우선 위의 지도부터 다시 보고 갑니다.

조조와 화타 두 사람이 태어난 마을이 걸어서 마실 다닐 정도로 멀지 않습니다.

화조암은 화타의 집이고 조조가 태어난 마을은 위무고리라는 곳입니다.

실제 우리 부부는 위 지역을 모두를 대부분 걸어 다녔습니다.
 

위의 사진은 예전의 수술도구로 보입니다.

물론, 화타가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믿기는 어렵지 않겠어요?

화타의 태어난 시기가 불분명하지만, 먼저 죽은 것으로 보아 조조보다는 더 나이가

많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 당시 어린 시절 두 사람이 이웃마을에 살았기에 마을 아이들끼리

편싸움을 하다가 만났을지 모르겠네요.

그때 조조가 화타보다 어렸다면 화타에게 뒤지게 얻어터졌을 겁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이런 기록이 있다 합니다.

치풍질신의신사, 전유명간웅수종(治風疾神醫身死, 傳遺命奸雄壽終), 그러니 이 말은

풍을 고치는 신의가 죽고 간웅의 수명이 다했다는 의미로 화타와 관우, 화타와

조조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비롯해 수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고 하네요

화타는 보저우 시민뿐만 아니라 전 중국인이 사랑하는 인물입니다.

 

안후이성의 서북부에 위치한 보저우는 3500여 년 전 상나라의 성탕(成湯)이

이곳에 도읍을 정한 이후 걸출한 인물들을 대거 배출했다고 알려진 곳이라네요.

위(魏)나라의 시조 조조와 신의(神醫)라고 불린 화타(華陀)를 비롯해 중국 역사명인

대사전에 언급된 인물만 100여 명에 달한다고 하네요.

그중 으뜸은 화타와 조조가 아닐까요?
 

화타가 들고있는게 무얼까요?

신비의 불로초라도 되나요?

화타는 지금 구경하는 화조암이라는 곳이 고향이고 조조는 위무고리라고 부르는

곳으로 나중에 들려볼 생각입니다.

화조암과 조조운병도 그리고 그 부근이 옛날 보저우성이 있던 자리입니다.

그러니 조조는 변두리 출신이었나 봅니다.
 

촌놈이라는 말이지만, 당시 조조의 할아버지는 환관 출신으로 조조 아버지를

양자로 들였으니 대단한 권력과 부를 지닌 가문이었을 겁니다.

양자가 아니라면 환관이 후손을 볼 수 없었겠지요.

 

위의 사진이 바로 화조암에 걸려있는 조조의 고향집 마을입니다.

저 사진을 보고 조조의 집을 찾는다고 고생했습니다.

저곳에 가면 조조의 어린 시절이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러나 지금 위무고리는 저런 옛 모습이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 사는 동네더군요. 

 

화타를 중국에서는 신의(神醫)라 부르며 당시로는 파격적인 마취제를 만든 사람이죠.

술과 함께 먹여 마취 효과를 보았다는 마비산이 있고 탕제로 만든 마폐탕도 있고요.

그럼 술김에 마취된 것이 아닐까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우물은 화조암 안에 있는 것으로 당시 화타가 약을 만들 때

사용했던 우물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물론, 최근에 만든 것이겠지만...

이 물로 빚어만든 환약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 단약이었을까요?

이런 약제는 치료제가 아니라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를 하는 보조적인 약제라 하기에

화타를 외과의사로 부르나 봅니다.

그의 참모습은 바로 수술하는 외과의사의 모습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약제라도 그 성분, 함량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매일 먹는 음식에도 레시피가 있는데...

아마도 그 처방을 청낭서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했을 텐데, 그만 오 서방의 마누라가

태워버리는 바람에 역사적인 처방이 그만 안타깝게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지요.

 

관우와 조조는 같은 시대를 살며 애증의 관계였지만, 화타와 두 사람의 관계는

순전히 소설 속의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소설은 세 사람의 관계를 아주 사실적으로 꾸며 영웅과

간웅으로 만드는 역할을 화타에게 맡겼습니다.

이는 화타를 두 번 죽이면서 말입니다

 

작가의 번쩍이는 감각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화타가 죽어서도 빙의가 되어 나타났나요?

귀신까지 불러와 세 사람과 연관 지은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조조 죽이기에 귀신까지 불러낸 나관중이야말로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요.

이러니 조조는 천하의 죽일 놈이 되고 말았다네요.
 

화타에게 물어보아야겠어요?

"쟤들 알아요?"

뭐라 할까요?

화타가...
 

"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쟤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이런 노래라도 불렀을 겁니다.

 

위의 사진은 화타의 수술장면입니다.

수술 부위가 화타의 손놀림으로 보아 맹장 수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니라고요?

고래 잡는다고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보저우는 조조 (AD 155~AD 220)와 화타(AD ?~AD 208)의 고향이랍니다.

고향은 같았지만,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살았던 시기가 비슷했나 봅니다.

그러나 죽은 해가 화타가 조조보다 12년이나 빠릅니다.

조조가 머리에 생긴 병 때문에 머리를 열고 수술하자는 화타를 죽였다는 말은

소설 속에서만 있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고향 사람을 이용해 조조를 나쁜 놈으로 만든 작가의 저의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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