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로 다시 돌아가는 길.

2013. 9. 23. 08:00중국 여행기/구채구, 쑹판

2012년 11월 18일 여행 31일째

 

어제 도착할 때 미리 예매해 둔 표로 아침 7시 버스로 다시 청두로 갑니다. (124원/1인)

이곳 송판의 7시는 아직도 컴컴하네요.

숙소가 바로 버스 터미널 앞이라 쉽게 버스에 오릅니다.

이른 아침이라 무척 날씨가 차네요.

 

버스는 구채구로 올 때의 그 길을 그대로 다시 가네요.

달리는 차창 너머로 뿌옇게 보이는 마을 모습이 마치 고향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 이런 곳을 뛰어다니며 놀던 생각 때문에 중국 여행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나 봅니다.

사람에게는 늘 고향을 그리는 그런 마음이 남아있나 봅니다.

 

흔들리며 달리는 차 속에서 창문 너머로 사진을 찍다 보니 선명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유리창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아침에는 도로를 따라 소 떼나 양 떼를 몰고 가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아마도 어느 초지까지 몰고 가 그곳에서 풀을 먹이려나 봅니다.

덜수는 벌써 부지런하게도 양 떼를 산 위에 풀어놓았습니다.

저 양이 얼마 지나지 않아 꼬치가 되어 불 위에 좌우로 뒹굴며 여러분을 기다릴 겁니다.

 

지금 자동차 길을 따라 그 옆으로는 옛날에 걸어 다녔던 차마고도의 옛길이 그대로 남아있네요.

돌을 깨고 바닥을 다지고...

저 길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켠에 아린 기분이 듭니다.

 

삶의 길...

마방의 길...

인생의 길...

눈물과 땅방을을 쏟았던 길...

한숨과 땀방을이 뒤엉켜 알알이 저 길 위를 수놓았을 겁니다.

 

가다가 길을 더는 내기 어려우면 개울을 건너 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나 봅니다.

지금이야 거의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길입니다.

저런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습니다.

그냥 마방이었던 덜수가 되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걷는 겁니다.

 

안 된답니다.

막아놓았습니다.

중간마다 막힌 곳도 있고 새로 보수해 사용하는 길도 보입니다.

위의 저 길은 위험한가 봅니다.

지금은 좋은 길이 있어 위험한 길로 다니지 못하게 하나 봅니다.

 

송판을 조금 지나 무척 가파른 산길을 내려갑니다.

정말 험한 길입니다.

산 이래 마을은 강족의 마을이라 했던가요?

 

저 길을 차(茶)를 지게에 싣고 올라갔으며 말을 끌고 내려왔을 겁니다.

차마호시는 이렇게 서로의 필요한 것으로 바꿔 갔을 테니까요.

얼마나 많은 땀방울이 저 길을 적셨을까요?

얼마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을까요?

 

그 땀방울과 한숨 속에서도 사랑이 꿈틀거렸고 무지갯빛 미래가 있었을 겁니다.

그런 미래가 없었다면 저 길은 의미 없는 그런 고행의 길이었을 테니까요.

佳人은 그런 땀 냄새와 한숨 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거의 다 내려온 곳에 있는 옛 차마고도에는 위의 사진처럼 차마고도 유지를 만들어

말과 차를 싣고가는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끄하! 말이 황금말입니다.

 

그런데 누가 저곳에 가서 구경할까요?

마을도 없고 차는 서지도 않고 쌩쌩 달려 지나치는데...

순간적으로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사실 이 모습은 보여 드릴 수 없었을 겁니다.

비록,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찍었기에 선명하지는 못하지만...

 

이곳에도 지진 때문에 많은 돌이 굴러 떨어져 있고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두었네요.

자연의 재앙은 이렇게 인간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버꾸나 봅니다.

우리가 이곳을 다녀간 후 금년에 다시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산 아래 내려오면 강족의 마을이 보입니다.

집 모습이 다르고 옷차림이 달라집니다.

송판에도 강족이 살지만, 그곳은 강족보다는 티베탄이 더 많아 거의 장족의 옷차림만 보았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알고 싶었고 궁금했을까요?

왜 저리도 높은 망루를 짓고 미어캣처럼 뒷발만 높이 들고 바라보았을까요?

 

험한 길도 보입니다.

지그재그로...

사람을 이어주고, 문명을 이어주고...

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또 어떤 모습일까요?

가보고 싶지만, 우리같은 여행자에게는 그냥 꿈의 길입니다.

 

지진 당시의 토사가 흘러내렸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정리하기조차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치 가족을 잃은 남은 가족의 눈물처럼 느껴집니다.

 

당시 이재민을 수용했던 임시 거처 자리인 듯합니다.

아마도 이곳에 임시 건물을 짓고 집단으로 수용했을 겁니다.

지금은 다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모두 떠났나 봅니다.

그런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는 또 오늘도 열심히 살아갈 겁니다.

 

산비탈에 임시로 토사가 쓸리는 것을 방지하는 시설을 했나 봅니다.

과연 저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힘이라 대자연 앞에 아주 작은 낙엽보다도 못한 존재인가요?

 

문천입니다.

지진의 진앙지가 가장 가까운 제일 큰 도시였을 겁니다.

지금은 모두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새로 지은 듯합니다.

산 자는 죽은 자를 가슴에 묻어두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갑니다.

 

토사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건설 자재로 사용하려고 트럭을 동원해 퍼내는 게 아닐까요?

저러다 저 트럭마저 토사에 묻히면 어쩌려고요.

재난은 이렇게 다시 재난 예방을 위한 자재를 공급하나 봅니다.

인간이 산다는 일은 이렇게 불행했던 곳에 다시 뿌리를 내리는 일인가 봅니다.

 

쓸려 내려온 토사 위로 빗물이 흐른 자국도 선명합니다.

빗물이 아니라 가족을 잃은 사람의 눈물이 아닌가요?

이렇게 또 다른 물길이 생기나 봅니다.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의 분량이 아닐까요?

 

이 다리가 원래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다녔던 국도 213선이었나 봅니다.

건너편 토사 아래 자동차도 간혹 보였습니다.

그때 그냥 그대로 토사에 묻혀버렸나 봅니다.

예전에는 이 길을 달려 구채구를 다녀왔을 겁니다.

 

도롯가에 천붕석(天崩石)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오른쪽에 커다란 돌 하나가 서 있네요.

저 높은 하늘 위에서 굴러떨어진 돌인가 봅니다.

하늘이 무너지며 떨어진 돌인가 봅니다.

 

도로 아래로 흐르는 강에는 옛날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마을 모습도 보입니다.

예전에는 제법 큰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토사 때문에 강은 마을보다 더 높아져 버렸나 봅니다.

 

인간은 참 위대합니다.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린 자연을 향해 다시 시작합니다.

인간의 생활터를 덮어버린 그 자연을 다시 인간이 살아갈 건축자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히고 인간은 새로운 집을 짓고 또 살아갈 겁니다.

 

아름다운 구채구를 다녀오는 길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무겁네요.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다르게 쓰촨 대지진이 발생했던 진앙지라는 곳을 돌아가느라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립니다.

올 때는 신남문 터미널에서 출발해 구채구로 바로 왔지만, 돌아갈 때는 송판에서 출발하니

차점자라는 버스 터미널입니다.

당시 학교건물로 정리하지 않고 부서진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나 봅니다.

 

물론, 차점자 터미널은 두장옌으로 갈 때 버스를 탔던 곳이라 그리 낯선 곳은 아닙니다.

오후 2시에 도착하니 7시간 정도 걸린 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일 다주(大足 : 대족) 석각으로 가려고 했기에 그곳으로 가는 버스 터미널을 찾지 못했습니다.

신남문에서 알려준 서문터미널은 전화 연결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없어져 차점자와 합해졌고

차점자에서도 다주로 가는 버스는 없다고 하고...

 

그러나 안내 데스크의 아가씨가 여기저기 전화를 하더니만 우리에게 다주로 가는 버스는

청베이(城北 : 성북)터미널이라고 알려줍니다.

혹시 청두에서 다주로 가실 분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출발시간을 확인하세요.

바로 청두 기차역 옆에 있는 버스 터미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성북 터미널 부근에 숙소를 정하려고 했지만, 대부분 외국인은 받지 않겠고 해 고생 좀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처음 잤던 신남문 터미널 옆에 있는 숙소로 와 하루를 자고 내일 일찍 다주로 갈 예정입니다.

중국에서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외곽에 흩어져 있기에 이동하려면 터미널을 제대로 알아야 갈 수 있네요.

우리 같은 여행자는 무척 불편한 일이지만, 이 또한 그 나라를 여행하는 방법이기에 감수해야 하겠지요?

내일부터는 다주석각보다는 청두 부근의 몇 곳을 더 구경하고 나중에 다주석각의 글을 올리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