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판(송주)의 밤풍경

2013. 9. 20. 08:00중국 여행기/구채구, 쑹판

이제 송주고성에도 밤이 찾아왔습니다.

세상이 모두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 갈 시간인가 봅니다.

그래도 그냥 숙소에 머문다는 일은 여행자에게는 아무래도 용납되지 못할 듯한 일이 아니겠어요?

주섬주섬 챙겨 다시 고성을 걸어봅니다.

 

이번 여행이 삼국지 기행이라고 하고는 삼국지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곳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고성 안에는 이 지방 특유의 염장한 고기를 가게마다 걸어놓고 팔고 있습니다.

저 고기가 바로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오래도록 보관하며 먹었던 방법인 삶의 지혜가 아닐까요?

비가 풍족하게 내리지 않아 쌀농사가 어려운 곳이기에 육식이 많았던 곳에서는

이렇게 고기를 염장해 보관하고 오래도록 두고 먹었나 봅니다.

 

이곳의 건조한 기후와 소금으로 염장해 서늘한 그늘에 말려두면 아주 오래도록 먹을 수 있다고

하며 오래전부터 이 지방은 사냥으로 시작해 식생활이 육류 위주였을 겁니다.

사실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은 지도 문성공주가 시집오며 떠돌아다니는 유목생활에서

집을 짓고 농사법을 배우며 곡식을 재배하며 정착생활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짐승을 사냥할 때부터 내려온 습관으로 고기를 염장해 말려두고 먹나 봅니다.

모두 같아 보여도 집집이 양념이나 염장 방법이 다르기에 맛 또한 천지 차이라 합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 고기는 어느 부위일까요?

오뉴월 뭐 늘어진 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습니다.

무척 딱해 보입니다.

 

널어놓은 고기를 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인육에 얽힌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습니다.

제발 그 이야기가 낭설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인육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송주고성 위로 아련히 초승달이 보입니다.

우리 여행도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집니다.

여행자는 달을 바라보면 공연히 고향을 그리나 봅니다.

여기서 바라보다 집에서 바라보나 같은 모양의 달이기에...

 

오래전 우리나라에 개봉된 영화 중에 얼라이브(Alive)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972년 10월 13일 금요일, 영화는 그날로 돌아가 시작됩니다.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우루과이 대학의 럭비팀 선수들을 태우고 칠레로 향하던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다.

비행기 동체는 두 동강 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험난한 안데스 산맥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다.

 

충격으로 기절했던 난도 파라도가 깨어났을 때 함께 탑승했던 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구조를 기다리며 버티지만, 조난 8일 뒤, 부상을 당한 여동생마저 죽고 만다.

갑작스러운 눈사태로 몇 명이 더 죽고, 남은 안테나를 이용해 간신히 라디오 방송을 듣지만

구조를 포기했다는 소식만이 들려온다.

결국, 이들은 생존을 위해 죽은 자의 인육을 먹기로 하고, 만약 자신이 죽었을 때 동료가

자기 육신을 먹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10주가 지난 후,

더는 앉아서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난도는 로베르토 카네사를 설득해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나는데...'

 

이렇게 영화는 사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고,

결국, 이들에게는 살아남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구출의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며

해피엔드로 끝을 맺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도 유비가 인육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후돈도 먹었지요?

물론 하후돈은 남의 살이 아니고 화살에 꽂힌 자기 눈알을 먹었지만,

엽기적인 장면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니 不敢毁傷이 孝之始也)라고

했다지만... 자기 눈알을 먹는 일은 그리 유쾌한 모습은 아니지 싶습니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서주를 차지하고 있을 때 여포는 장요, 고순과 같이 서주 공략에

나서는데 사실 여포에게는 삼 형제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길 수 없지요.

결국,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성은 함락되고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 지경에 이릅니다.

관우는 장비와 함께 패잔병 몇 명만 데리고 산속으로 줄행랑칩니다.

 

유비요?

말해 무엇합니까?

유비가 잘하는 것이 우는 것과 도망질이라 했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처자식 정도는 챙기고 도망가야지 유비는 늘 혼자 그냥 빼버립니다. 

얼마를 정신없이 도망을 쳤나 모릅니다.

그때 곁에서 지켜보니 유비는 정신이 반은 나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길도 없는 산속을 혼자 달아나는데 누가 뒤에서 "태수님~"하고 부릅니다.

죽을 둥 살 둥 도망 치는 사람에게 태수는 무슨 얼어 죽을 태수입니까?

뒤를 돌아보니 손건입니다.

 

두 사람은 그래도 의지가 되어 샛길로만 허창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데 이때가 초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제법 추웠지만, 사실 춥다는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합니다.

이튼날 해가 서산을 넘어갈 즈음 문득 허기가 지는 것을 느낍니다.

얼마나 식겁하고 도망다녔으면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배가 고픈 것을 느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제 아침부터 밀어닥친 여포의 군사 때문에 어제 점심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성을 버리고 도망했잖아요.

오늘도 밥을 한 끼도 먹지 못했으니까 하루 반나절을 그냥 굶었다는 말이네요.

그래도 목숨만 건진다는 생각에 배고픈 줄 몰랐는데 여기까지 제법 멀리 달아났다 생각하니

한꺼번에 허기가 몰려옵니다.

허기를 느낄 정도면 이제 살만하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산속에 있는 화전민이 사는 곳이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산속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유안이라는 사람의 집에 들러 "밥 좀 주세요~"라고 합니다.

유안이라는 사람은 유비와 손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잠시만 기다리라 하고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마련해 한참 후 나타납니다.

 

상을 보니 상 위에는 고기와 산나물이 올려져 있습니다.

무슨 고기냐고 물었지요.

유안은 여기는 깊은 산 속이라 소나 돼지는 없고 산짐승인 이리 고기라 했다네요.

유비와 손건은 아주 배불리 저녁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이튼날 길을 나서려고 뒤뜰에 매어놓은 말을 가지러 뒤뜰로 가다 보니

부엌에는 젊은 여자가 죽어 있더랍니다.

그 여자의 허벅지와 팔다리가 예리한 칼로 잘려나가고...

깜짝 놀라 유안에게 유비가 묻습니다.

"이게 도대체 웬일이냐! 왜 젊은 여자가 부엌에 죽어있느냐?"

 

유안은 눈물만 뚝뚝 흘리며 죽은 여자는 자기 아내인데 존경하는 유비가 왔는데

대접할 게 없어 아내를 요리해 대접했다고....

참 지랄같은 존경입니다.

이런 존경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는 정사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 내용이고 나관중의 이야기에 나온 이야기랍니다.

여기서 나관중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 백성이 유비를 얼마나 존경하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산속에 화전을 일구고 사는 사람이 어찌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이리도 자세히 알고 있고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기에 자기 마누라를 죽여서까지 대접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밤이 다되어 찾아온 자가 유비라는 것을 TV를 통해 얼굴을 익혔답니까?

그리고 당시 유비는 아직 제대로 된 지역조차 변변치 못한 떠돌이 신세였다는데...

여러분 중에 혹시 남편이 정치인을 유안처럼 존경해 정신차리지 못한다면

언제나 경계하며 살아야 할 겁니다.

그리고 밤 늦게 그 사람이 집에 찾아온다면 더욱 경계해야 하고요.

 

이런 이야기 자체가 나온다는 말은 이미 중국인들 사이에 인육을 먹는 그런 풍습이

널리 퍼져있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유비의 인기와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일지라도

너무 오버하여 엽기로 범벅을 만들었습니다.

유비는 한실의 먼 황족이랍니다.

삼국지연의는 한족을 띄우려는 용비어천가가 아니라 한비어천가일지라도...

 

이미 중국에서는 사마천의 사기에도 나오는 은나라 주왕의 이야기에

이미 인육을 요리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기술되어 있답니다.

해라고 하여 인육을 잘게 썰어 젓갈처럼 만든 것이 있고, 포라고 하여 말린 게 있습니다.

자라고 구운 고기가 있다고 합니다.

또 탕으로 끓여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 고조 유방은 팽원을 죽여 소금에 절여 신하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하고, 수나라 양제는

자신에게 거역하는 신하를 삶아 그 국을 문무백관에게 하사해 마시게 했다는 기록도 있답니다.

당나라 측천무후 때는 군중이 악질관리 래준신을 뜯어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때의 이야기를 기록한 자치통감에는 래준신은 이때 달려든 군중에 의해 산 채로 살이 뜯기고

순식간에 동이났다 합니다.

한식이 시작되는 날을 만든 인물인 개자추도 주군을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국을 끓여먹였다지요.

 

당나라 때에 인육시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합니다.

혹시 이곳 쑹판에서도 그런 시장이 형성되었을지 모릅니다.

인육이 너무 많이 유통되어 다른 고기의 값이 폭락할 정도였다 합니다.

이런 기록이 중국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상인에 의해 유럽에도

전해졌고 마티니라는 사람의 견문록에도 나타나 있다네요.

 

그리고 마르코 폴로도 동방견문록에서 자신이 직접 목격한 복주의 식인 문화를

아주 자세히 기록했다고 합니다.

인육을 요리하는 방법을 기술한 책이 전해지고 본초강목에는 인체의 부위별로 약으로서의

효능효과가 적혀 있다고 하고요.

한족은 문명인이라 하며 다른 민족을 비하했지만, 인육을 먹어야 문명인이 된다면

차라리 오랑캐로 살겠습니다.

 

문명은 개뿔!

개나 주라고 하세요.

인육은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 합니다.

다른 고기의 20% 선이나 기근이 심해지면 폭등해 천정부지라 합니다. 

 

사실, 극한상황에 처해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리지만, 이렇게 널리 민중에 의해

인육을 먹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말을 듣지 않는 신하를 벌하기 위해....

좌우지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삼국지에서도 자주 언급됩니다. 

 

인육요리가 주군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혹시 남편이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어느 날 허벅지 살을 내놓으라 하면 어쩌시겠어요.

 

중국에서는 부정하고 숨기고 싶은 사실이지만, 과거에는 이런 일이 무척 보편적이었다는

의미로 중국의 드라마나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무척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상나라 달기에 관한 이야기에도 주왕을 거스른 신하의 인육을 요리해

다른 신하에게 먹이고 심지어 자식을 죽인 후 그 아비에게 먹인 이야기도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게 문명국 중국의 전통이고 음식문화였나 봅니다.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과 이야기로 쑹판이라는 송주고성을 구경 다녔습니다.

문성공주...

그 아름다웠던 사람 때문에 지금 티베탄이 고통받는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녀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드니 여행을 하다 보니 왜 자꾸 삐딱선을 타나 모르겠어요.

오늘은 추운 쑹판에서 코~ 자고 내일 일찍 또 청두로 돌아가

다음 여행지인 따주석각이 있는 대족으로 가려고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아무리 중국의 음식문화라 해도 인육을 먹는 음식문화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작가는 아무리 한실의 상징인 유비에게 존경과 충성심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글로 부각하고 싶었겠지만, 엽기적인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널리 읽혔다는 말은 이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에서

식인문화가 보편적이고  널리 퍼져있다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물론, 삼국지에서는 유비를 존경한다는 의미로 그리했나 모르겠지만,

중국에서는 존경심도 엽기적으로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