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님은 떠났습니다...

2013. 9. 17. 08:00중국 여행기/구채구, 쑹판

위의 사진은 송주 고성의 동문입니다.

서문은 하늘 위에 있어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나머지 세 개의 문도 온전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문의 모습이 모두 같은 듯 다르기에 성문 구경만으로도 재미있습니다.

 

동문 앞으로는 민강이 흘러 해자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동문 앞을 흐르는 민강은 그냥 남쪽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동문을 지나면

송주 고성 안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이 또한 일반적인 성벽 건설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송주 고성은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라 생각합니다.

고성의 이런 부분을 구경하는데 놓치면 손해입니다.

 

대체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 주변에는 언제나 깊은 해자를 파고 물을 담아 둡니다.

그게 바로 성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수비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기 송주 고성은 우리의 그런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립니다.

 

민강은 남으로 흐르다 갑자기 서쪽인 성 안으로 흘러들어 성 가운데를 통과해 다시 남으로

흘러가는데 이는 만약 적에 의해 외부가 봉쇄되어도 물로 말미암은 고통을 없애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이 강물은 아마도 송주 고성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물줄기였을 겁니다.

 

오늘은 이제 문성공주와 송찬간포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렵니다.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지요.

송찬간포는 문성공주와 혼인하고 아름답고 꿈같은 세월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9년 만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임자! 나 먼저 가네~"라 하며 북망산으로 갑니다.

 

에고 에고 어찌합니까?

그 우람했던 근육질의 사내가 34살에 가다니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사내 나이 34살이면 역발산기개세(力拔山 氣蓋世)라는 나이가 아니겠어요?

이 말이 어디 항우에게만 적용해야 합니까?

佳人도 그 나이에는 날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님을 남기고 초원을 거침없이 내달리며 천하를 가슴에 품었던 송찬간포는 갔습니다.

아~ 사내 나이 34이면 세상을 들어 올려도 시원치 않을 나인데...

갔습니다.

송찬간포가요.

그런데 항우의 조각상은 왜 여기에 만들었지요?

한족과 장족 간에 화친의 의미인가요?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눈을 감을 수 있을까요?

역발산기개세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물 설고 낯 설은 머나먼 이곳에 누굴 믿고 왔겠어요.

이제부터 문성공주는 누굴 믿고 살아야 합니까?

 

남자가 먼저 이렇게 요절하는 일은 일부는 여자 잘못 아닌가요?

정말 문성공주를 보는 순간 첫눈에 뻑~ 소리 나게 송찬간포는 갔더랬지요.

그것은 佳人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사실입니다.

 

상큼한 살 냄새에 푹 빠져 행복하게 살았지요.

우리는 첫날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부터 쭈욱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우쒸~ 이제 알콩달콩 사는 맛을 알 때가 되니 가다니요.

 

아주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와 살다 보니 너무 무리했나 봅니다.

아마도 사인은 과로사가 아닐까요?

사랑의 과 로 사.

 

당시 관습은 남자가 죽으면 여자는 자기가 원래 살았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답니다.

인생은 편도표 한 장이지만, 결혼은 왕복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지요.

이 얼마나 그리고 바라던 일이었을까요?

물론 짐은 택배로 부치고 말입니다.

 

문성 공부는 당나라 장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성공주는 척박한 토번에 와 자기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새롭게 눈을 뜹니다.

슈바이처도 그랬고 테레사 수녀도 그랬걸랑요.

 

장안성 안의 편안한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과 보람을 문성공주는 척박한 라싸에서

느꼈으며 사랑은 받을 때 행복하다 하지만, 사실은 줄 때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문성공주는 알아버렸습니다.

행복함을 아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보냈던 시절을 생각하면 공주는 이곳의 사람들을 버리고

쉽게 떠날 수 없습니다.

티베탄의 투박한 미소가 눈에 밟혀 떠날 수 없어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오히려 여기가 천국이고 해야 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문성공주는 "그래! 결심했어~ 나는 나를 원하는 곳에서 살꼬야~"라고 마음먹습니다.

이런 여자이기에 토번 사람에게 아직도 깊이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아름답게 산 문성공주도 54세의 나이로 라싸에서 숨을 거둡니다.

평생을 라싸에서 지내며 장안의 뉴 트렌드를 언제나 앞장서 받아들여 라싸에 가져왔고

토번 사람이 조금 더 행복해지고 편리해질 수 있다면 어떤 일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그녀가 티베탄에게 끼친 영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그녀는 문성 할머니가 아니라 공주입니다.

1500년도 지났지만, 지금도 문성공주입니다.

한번 공주는 영원한 공주입니다.

송찬간포는 가슴으로 한 여자를 품에 안았지만, 문성공주는 모든 티베탄을 가슴에 안았습니다

 

아름답게 산다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명품가방을 들어야만 행복하다 느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봉사함으로 삶의 의미를 느끼고 살아가지요.

 

그녀가 죽자 토번은 마치 친어머니가 죽은 것처럼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겼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녀를 기리는 사당을 티베트 어디에나 볼 수 있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살아도 이렇게 아름답게 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정략결혼이었고 공주도 아닌 여자를 공주로 과대 포장하여 시집을 보냈지만,

티베트는 그녀를 통하여 중원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임으로 대변혁을 이루었으며 당나라도

골칫거리인 토번이나 그 이웃에 있는 민족으로부터 한동안 조용히 살 수 있었습니다.

 

비록 척박한 땅으로 시집을 왔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일을 함으로 아직도 티베탄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 때문에 중국이 티베트에 대한 억지 지배를 함으로

지금의 티베트는 나라 잃은 민족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그때 두 나라 사이에 혼사가 없었다면,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할 명분 하나가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역사에 만약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때 당과의 관계가 없었다면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여 자기의 영토라고

주장할 거리가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도 티베트에는 많은 사람이 중국의 지배에 항거하며 분신을 시도합니다.

중국은 그게 국내문제라는 말로 외부와 차단함으로 잘 알려지지 않지요.

중국이라는 나라로 갈려면 물론, 비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에서 티베트로 가려면 외국인은 또 퍼밋이라는 허가증을

중국에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곳은 중국 땅이 아니라 임시로 지배만 한다고 봐야 할까요?

 

얼마 전에는 그 퍼밋에도 몇 개의 나라는 퍼밋조차 받을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답니다.

 그중에 한 곳이 우리 대한민국이었지요.

왜?

 

여수 엑스포에서 여러 나라 승려가 모여 불교 대회를 열었는데 달라이 라마의 승려가

참석한 게 시빗거리였다 합니다.

중국의 깡패 승려가 그 현장에서 물리력을 동원해 달라이 라마의 승려를

회의장에서 몰아냈다 합니다.

남의 나라에서 그런 추태를 부리는 중국의 행동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요?

그런 일을 허용했다고 대한민국 사람은 라싸로 들어가는 허가증인 퍼밋을 내주지 않았답니다.

남의 나라에 와 깡패짓을 한 일에 대해서는 아주 당연한 일을 했다고 하면서...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인도 북부에 다람살라라는 도시가 있답니다.

그곳에는 우리도 잘 아는 티베탄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습니다.

그곳 다람살라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는 촬영이 없는 시간에는 늘 그곳에 가 달라이 라마를 도와준다 합니다.

 

佳人에 작은 희망이 하나 있다면 다람살라를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곳 망명정부에는 학교도 있어 티베트를 탈출한 사람을 위해 교육도 한다 합니다.

그곳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독립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답니다.

혹시 다람살라에 다녀온 외국인은 중국 정부에서 입국 금지를 시킬까요?

 

아 다람살라....

아무리 밤이 깊어 어둡더라도...

아무리 밤이 오래도록 계속된다 하더라도...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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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행복하게 하고 싶으면

자비를 베풀라. 

자신이 행복해지고 싶으면

자비를 베풀라!!!

(달라이 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