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우고역도(金牛古驛道)

2013. 7. 31.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봉추비랑에서 한참을 구경했습니다.

글은 모두 읽지는 못하지만,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서예라고 하는가 봅니다.

글을 몰라도 구경하는 것은 누가 시비하지 않더군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글도 모르는 사람이 어찌 그게 예술적인지 아느냐고요?

그렇군요.

그래도 식당에 가서 비싼 음식 시켜먹지는 않더라도 메뉴판은 볼 수 있잖아요. 그쵸?

돈도 들지 않는 음식사진이나 메뉴판도 못 본답니까?

 

이제 봉추비랑을 돌아 위의 사진에서 보신듯이 남문 성문 위에 서서 청두 쪽을 바라봅니다.

여기부터 청두방향은 산이 별로 보이지 않는 아주 평평한 곳처럼 보입니다.

북벌을 위해 청두를 출발한 공명도 아마 이 길로 올라와 여기서 하루 정도는

쉬었다 가지 않았을까요?

물론, 유비가 유장을 치기 위해 익주로 군사를 이끌고 내려갔던 길도 이 길이었을 겁니다.

역시 중국의 날씨는 이렇게 운무에 싸여있습니다.

 

남문을 내려와 서쪽에 난 오솔길을 따라 걷습니다.

우물 하나가 보입니다.

여기는 녹두산 정상부근인데 물이 나오는 샘이 있다니요?

아마도 여기 주둔했던 병사에게는 무척 요긴하게 쓰였을 것 같습니다.

마속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여기도 같은 산 정상인데 왜 물이 나오느나고 따졌을 겁니다.

 

오솔길은 숲 속으로 만들었고 담장을 끼고 걷게 되어있습니다.

북쪽 모서리에 전각 하나가 보이는 데 글쎄 장비전이라는군요.

장비가 왜 여기 외진 곳에 숨어있지요?

아무것도 없는 담장 구석에 혼자 쓸쓸히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 되니 이런 외진 곳을 찾아왔지 여기는 관광객이 거의 다니지 않을 곳입니다.

혹시 장비가 계급장 떼고 여기 모서리에 경비 서고 있는 것 아닙니까?

쩍벌남 장페이! 자네 정말 물먹은 겨?

마치 왕따라도 당해 구석에 숨어지내는 형국이네요.

 

이제 장비전을 보고 나면 백마관 안의 모습은 거의 모두 본 셈입니다.

잠시 백마관 북문의 관루 위에 올라 구경하고 가렵니다.

왜?

방통에게 물어보려고...

 

백마관 관루에 걸린 편액에는 하늘의 뜻이라는 천의(天義)라는 글이 걸려있습니다.

그래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의 뜻인가 봅니다.

이제 하늘의 부름을 따른 방통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그 장소로 가렵니다.

그 길은 바로 금우도라는 도로만 따라가면 됩니다.

 

이 도로를 진촉금우고도(秦蜀金牛古道)라고도 부른다고 하네요.

방통이 죽었다는 낙봉파로 가는 길은 아주 간단합니다.

문표를 파는 북문에는 위의 사진처럼 금우고역도가 있고 북문 앞으로 난 금우고역도를 따라

그냥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백마관 북문을 나서 북으로 곧장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잠시 내려가면

방통이 죽은 자리인 낙봉파라는 곳이 있고 방통의 혈묘도 있습니다.

금우도라는 고촉도는 기원전 3세기경 고촉국 개명왕이 장안에 있다는 금소를 가지러 가기 위해

다섯 명의 용사에게 산을 가르고 바닥에 석축을 쌓아 금똥 싸는 금소를 가지러 가려고 만든

길로 이미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여기에 왔잖아요.

 

이 금우도라는 길이 바로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입니다.

그러니 장안까지 910km의 긴 거리를 이렇게 바닥에 돌을 깔아 만든 길입니다.

여기부터 익주라고 했던 청두까지는 90km라 하니 청두에서 장안인 시안까지 모두 1.000km라는

말인데 옛날 다녔던 그 모습이 그대로 돌 길 위에 남아있습니다.

길은 외줄기 수레자국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 방법은 어떨까요?

새로운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면 좋지 않겠어요?

이 정도의 거리라면 한 달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멋진 트레킹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가는 까미노에 비견될 만한 길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이백이 읊었던 촉도난이라는 험한 길은 바로 여기부터 북쪽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여기가 시작이며 끝 지점이라는 말이기도 하지요.

왜?

여기부터 청두에 이르는 남쪽은 그야말로 아주 평평한 평야 지대니까요.

 

낙봉파라는 장소가 어디에 있을까요?

물어볼 필요도 없이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북문 백마관 관루 앞에 광장이 있고 광장 끝으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괘경대(挂鏡臺)라는 문이 하나 보입니다.

그냥 그 문을 통과해 쭈욱 내려가면 됩니다.

문 양쪽으로는 창선, 단악이라는 글이 보입니다.

의미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권선징악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뒤돌아보면 이렇게 백마관이 보이고요.

어때요?

웅관(雄關)으로 보이시나요?

 

잠시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 고역도라는 글이 새겨진 도로를 만납니다.

역도란 바로 역참을 연결하는 길이라는 말일 겁니다.

 

옛날의 금우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터널을 빠져 들어가면

당시 역도의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우리의 덜수 모습입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외발 수레를 이용했나 봅니다.

그러니 도로 가운데 한 줄만 쭉 그어졌잖아요.

 

금우도에 관해 이런 전설이 전해 내려온 답니다.

금우도는 전국시대 중기에 옛 촉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개명왕이

진나라의 혜문왕에게 속아 만든 도로라고요.

개명왕은 욕심이 많은 왕이었던 모양입니다.

 

진나라 혜문왕은 촉을 정복하려고 했지만, 촉으로 들어가는 길이 너무 험해 고민했답니다.

이때 생각해 낸 일이 바로 고촉 개명왕의 욕심을 역이용하게 됩니다.

금소를 만들어 개명왕에게 선물하려 하지만, 길이 험해 들어갈 수 없다고요.

그래서 개명왕은 다섯 명의 전사에게 명령하여 산을 깎고 관문을 열어 길을 내라 했답니다.

"네가 그때의 금소냐?"

 

이리하여 다섯 명의 전사는 산을 지키던 큰 뱀의 요괴와 치열하게 싸우며 대량산을

대검산과 소검산으로 나누었다 합니다.

이게 지금의 검문관이 있는 갈라진 곳이지요.

바로 위의 사진이 그때 뱀과 싸우며 산을 둘로 갈라 길을 내는 모습입니다.

이미 검문관에서 보았지만, 그때의 사진을 보지 못한 분을 위해 다시 올렸습니다.

 

그때는 금우도라 불렀지만...

지금은 다른 말로 석우도라고도 한답니다.

 

"자네가 탐욕 덩어리 개명왕이냐?"

이렇게 개명왕이 고생하며 금소를 얻기 위해 길을 열었더니 진나라 혜문왕은 기다리고

있었듯이 잘 닦은 그 길로 군사를 몰고 들어와 촉을 멸망시키고 진나라 땅으로 만들었답니다.

작은 탐욕이 나라까지 잃어버리는 일이 생긴 겁니다.

 

또 어떤 이야기는 금똥을 싸는 금소가 있었다 합니다.

좌우지간 금소와 관련해 만들어진 길이기에 지금까지 금우도(金牛道)라고 부른다지요.

물론 역참을 잇는 도로이기에 옛날의 역도라 하여 고역도라고도 부른다네요.

이 길이 이렇게 1.000km나 계속 이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길은 외줄기로 이 길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기원전 3세기경이라 하니 정말 오래된 길입니다.

이랬기에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든 포장도로라는 로마의 아피아 가도보다

4년 앞서 만들었다고 자랑하나 봅니다.

자랑해도 되겠어요. 그쵸?

그런데 고역도를 자세히 보니 최근에 만들며 일부로 저렇게 바퀴자국을 만든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데 이 멋진 길을 왜 그냥 내버려 두나 모르겠습니다.

트레킹 코스로 개발해 많은 사람이 걸어갈 수 있도록 청두와 시안 간을

모두 연결해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길을 따라 저 앞에 보이는 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낙봉파가 나옵니다.

내일은 낙봉파 구경이나 할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완벽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가 완벽이다.

생택쥐페리가 한 말입니다.

佳人의 여행기는 전부 빼야 할 것만 있는 글입니다.

참고하시고 읽으셔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