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신이 된 관우

2013. 3. 7.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부터 관제묘 안을 여기저기 구경합니다.

관우는 하동(河東) 해량(解良)에서 태어났다 합니다.

지금은 산서성 운성 부근인 상평촌(常平村)이라 하네요.

子는 운장(雲長)인데, 본래 자는 장생(長生)이었다고 합니다.

 

여기 잘생긴 사내 관우를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어때요?

위의 사진처럼 오늘 캐스팅된 관우의 모습에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관우는 미염공(美髥公)이라 불리 정도로 수염이 아주 멋진 사내로 알려졌습니다.

이 이야기도 헌제를 알현했을 때 헌제가 관우에게 한 말이라 합니다.

조조가 관우 마음을 잡으려고 비단으로 만든 수염 보자기를 선물한 일도 유명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관우를 그린 그림이나 조상을 보면 늘 관우는 한 손으로 수염을 만지고 있죠.

 

기장숭고(氣壯崇高)라...

이 글은 건륭이 이곳 관림에 왔을 때 쓴 글이라 합니다.

관우가 신의 반열에 오른 것은 청나라 때부터일 겁니다.

 

청나라는 북방민족이지요.

같은 북방계통의 원이 멸망할 때 한족의 명나라는 도망하는 원나라의 병사를 따라

만리장성을 넘어서까지 기를 쓰고 쫓았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원이 힘으로 중원경영을 했기 때문에 다시는 북방 민족이 얼씬하지 못하도록

하려고였는데 그러나 같은 만리장성 넘어의 청나라는 무척 영리했나 봅니다.

 

한족의 상징이며 한실을 다시 일으키려다 비운에 죽어버린 유비보다 관우가 인기검색어

상위에 오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관우 마케팅에 들어가며 공자와 함께 문무이성(文武二聖)으로

한족이 가장 존경하는 두 사람을 더블 포스트로 내세워 중원의 한족 마음을

다독거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늘이 내린 천하기재라는 공명도 관우 언저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좌우지간 관우는 갖춘 능력보다 훨씬 높은 과대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청나라는 원나라의 세 배나 되는 시간 동안 중국의 중원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관우는 결국, 능력보다는 북방이민족의 중원 경영을 위한 마케팅 도구였는지 모릅니다.

물론, 송나라 때도 한족의 애국애족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미염공이라고 멋들어진 수염은 관우의 상징입니다.

물론 붉은 홍시 같은 얼굴도 수염에 뒤지지 않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많은 여성으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佳人이 저랬습니다.

말을 하고 나니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위의 사진은 관림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있는 나무입니다.

무슨 꽃이 저렇게 피었을까요?

가만히 보니 꽃이 아니라 소원을 적은 종이를 매달아 놓은 모습입니다.

관우의 파워가 느껴지지 않나요?

 

청대의 사람이 저술한 청음소집(淸音小集)이라는 책에 의하면 관우의 원래 성은 풍(馮),

이름은 현(賢), 그리고 자는 수장(壽長)이라고 한다네요.
그렇다면, 어찌하여 관우는 성과 자를 고친 것일까요?

관우 마음이겠지요.

이 말의 의미는 과거를 감추고 싶어했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관우는 그냥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네요.

23살 때 고향마을 호족인 여웅이란 자가 만행을 부리자 의협심이 강한 관우에게 맞아 죽었다나요?

그래서 관우는 살인자가 되어 고향을 등지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림이 관림에 있더군요.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림입니다.

앗! 몽둥이가 아니라 칼을 휘둘렀군요?

 

이것은 실수로 죽인 게 아니라 죽이려는 의도가 다분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작정하고 한 살인이라는 말이 아닌가요?

살인자 관우?

칼을 휘두른 것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정상참작도 되지 않잖아요.

 

안으로 들어가면 많은 사람이 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찍어줄 사람이 없으면 셀카로도 찍습니다.

왜?

관림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기 때문이겠죠.

위의 관림이라는 현판이 걸린 문을 의문(儀門)이라 합니다.

 

청대에 밖으로 대문을 따로 만들었기에 의문으로 사용되나 그전에는 대문의 역할을 한 곳일

득하며 의문이란 사람을 영접하거나 의식을 행할 때 주로 사용하는 문으로 명대까지는 대문으로

사용되었으나 청대에 이르러 바깥에 산문을 만들었기에 이 문을 의문으로 사용하나 봅니다.

 

의문 안으로 들여다보니 주랑을 만들고 양쪽으로 돌기둥을 만들어 그 위에 사자상을

올려놓았고 그 길을 따라 저기 보이는 건물이 배전(拜殿)이라고 부르는 대전이 보이네요.

의문에서 대전으로 이르는 길을 관림석사어도라 부른다는데 양쪽으로 돌로 만든

사자상이 있기에 그리 부르나 봅니다.

양쪽으로는 깃발을 꽂아놓았는데 關이나 忠 또는 漢이라는 글자가 정신 사납게 펄럭입니다.

 

의문 바로 지나면 청동으로 만든 사자상이 있습니다.

무게가 3천 근이 넘는다 하네요.

높이가 2.77m나 되는 큰 사자상인데 지금까지 주로 돌로 만든 석 사자상은 많이 보았지만,

청동 사자상은 자금성을 제외하고는 별로 본 기억이 없네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척 오래전에 만든 게 분명합니다.

제일 오른쪽에 보면 대명(大明)이라는 글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500여 년도 넘은 거라는 말인가요?

 

의문 위에는 관림이라는 편액이 걸렸습니다.

양쪽으로는 관경제군상과 관제시죽이 붙어있습니다.

 

역시 관우를 말할 때 빼면 제일 서운해할 것이 관제시죽이라는 시죽도일 겁니다.

시죽도도 이렇게 칼라플하게 탁본 뜬 것도 보입니다.

과연 저 그림을 관우가 그렸을까요?

엉아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을 대나무 잎으로 만든 의(義)의 화신 관우의 편지랍니다.

물론 관우가 그린 것은 아니겠지만...

관우 마케팅에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후세에 만든 게 아닐까요?

 

관우가 이름을 바꾼 이야기를 계속하렵니다.

고향에서 관리를 살인했으니 이제 더는 고향땅에 살 수 없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일단 고향을 등지고 도망을 하게 되었답니다.

어느덧 동관(潼關)이라는 곳까지 도망쳤을 때 관헌의 추적이 심해서 황하의 물로

 얼굴을 일부러 더럽게 했다 합니다.

관우는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왜?

얼굴이 원래 대추처럼 붉었다 하니까요.

 

이때 동관을 지키던 문지기가 "넌 누구냐?"하고 묻자 얼떨결에 관우는 손으로 관문(關門)을

 가리키니 문지기가 동관이라고 쓴 현판을 올려다보더니 "그럼 관이 네 성이냐?" 하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부터 관을 성으로 삼았고 나중까지 이것을 고치지 않았다고 하네요.

사실인지 아닌지 佳人에 따지지 마세요.

 

물론, 佳人의 모든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죠.

그래도 글을 읽을 줄 아는 문지기를 만났기에 그랬지 만약, 글도 모르고 까마귀라도

푸드덕 날아갔다면, 관우의 성은 까마귀 "오(烏)"나 "푸드덕"이 되었을까요? 
그러니 풍현이 불심검문을 당하자 당황한 나머지 순간적인 기지로 관문을 가리켜

자기 성이라 했다는 말인데, 과연 관우다운 재치라는 말인가요?

하지만 이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관우의 키는 9척이라 하니 이는 207cm로 지금도 큰 키지만, 옛날에는 대단히 큰 키라

할 수 있고 그가 사용한 무기는 청룡언월도라고 하며 무게가 82근으로 17.8kg인데

과연 이걸 쉽게 휘두를 수 있는지 의문이네요.

여기에 있는 게 진품이라 하는데 사실 관우는 이런 칼을 쓴 적이 없잖아요.

청룡언월도는 후세에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그런데 가는 곳마다 진품이래요.

 

원래 한나라 시기에는 언월도라는 무기가 없었고 한족의 무기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후대의 북방민족의 무기를 관우가 빌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용했다면

가능한 이야기인데 타임머신을 타고 말입니다.

어쩐지 관우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백 투 더 퓨처"라도 하며 살았나 봅니다.

 

중국에서 관우는 신입니다.

이곳에 참배한 모든 중국인은 마치 조상에게 절을 하듯 아주 깍듯하게 절을 합니다.

그냥 멀뚱거리며 보는 사람은 佳人 같은 외국인일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관우는 중국사람에게는 정말 신과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

중국 어디를 가나 관제묘가 있고 집안마다 관우 조상이 보입니다.

어디 집안에서만 모실까요?

식당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조상이 관우 아닌가요?

 

죽어 신이 된 사람은 관우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닌가요?

누구나 신이 될 수 있지요.

귀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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