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상부

2013. 2. 14.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조승상부를 구경합니다.

춘추루 뒤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조조가 승상으로 있을 때 관청인 조승상부가 보입니다.

그 뒤로는 옛날 허주부위(許州府衛)라는 관청건물이 있습니다.

그 건물은 열쇠로 단단히 잠가놓아 걸어 잠근 상태로 무엇을 보여주려고 만들었나 모르겠습니다.

 

멋진 패방이 보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조조의 석상이 있습니다.

천하를 모두 품고자 하는 그런 모습으로 보입니다.

생전에는 천하 통일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황제보다 더 황제 짓을 하고 살다 갔기에 후회도 여한도 없을 겁니다.

만약,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게 있다고 한다면 그건 조조의 탐욕일 뿐입니다.

 

조조 석상이 있는 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조승상부로 들어가는 문이 보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서 조조가 칼을 든 손으로 친절하게 입구를 알려주네요.

조조가 태어난 곳은 여기서 멀지 않은 보저우(亳州 : 박주)라는 곳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쉬창에서 동쪽으로 쭈욱 선을 긋다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서기 155년에 출생해 220년 죽었으니 당시로는 제법 오래 산 셈이네요.

나관중은 조조를 죽일 놈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 일면식도 없고 생몰연대도 맞지 않은 화타를 출연시켜 조조의

병을 진단케 하고 도끼로 머리를 뽀개자 했다고 조조가 화타를 죽이는 악역을 시켰지요.

이렇게 나관중은 역사에도 없는 이야기를 조작해 조조 죽이기에 두 팔 걷고 앞장섰습니다.

사실 화타의 고향도 조조와 같은 보저우 출신인데 동향인 사람을 어찌 이리도 매도하는데 이용했을까요?

 

위의 사진은 조조가 화타를 죽도록 매질해 감옥에 가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림의 문 앞에 보시면 화타가 썼다는 청낭서(靑囊書)라는 책이 보입니다.

크하하~ 저 책만 있으면 佳人도 명의 소리?

아닙니다.

면허가 없다고 돌팔이라고 하겠지요.

 

조조는 정말 억울할 겁니다.

그것도 너무 편파적인 일로 관우까지 등장시켜 관우는 생살 찢고 수술해도 눈도 깜짝이지 않고 바둑만 두게 하고

조조는 머리에 생긴 병은 수술로만 고칠 수 있다는 말만 듣고 신의라는 화타를 죽이는 악역을

개런티도 없이 출연시켰습니다.

 

그날 조조는 눈만 꿈뻑이며 그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모습을 佳人은 똑똑히 기억합니다.

조조가 왜?

만인의 공적이 되어 간웅이니 뭐니 하는 겁니까?

 

조조는 子가 맹덕이라 하지요.

그를 일컬어 정치가라고도 하고 군사가라고도 합니다.

개혁가이며 혁명가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시인이라고 하는 것은 조조만의 찬사일 겁니다.

조조는 문학가로 불리길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간웅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할 겁니다.

 

조조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의 자리에 올라(공명도 촉한의 승상이라 했던가요?)

황제보다 더 폼나게, 황제보다 더 힘있게 음메~ 기 살아 하며 지내던 곳이 승상부겠지만,

이게 어디 그때의 건물이겠어요?

 

이제 그 문안으로 들어갑니다.

남쪽 담장으로 예전 궐 모양의 망루 건물이 서 있네요.

용도야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겠지만, 저 망루가 크면 대궐이라고 해 보통 황제가 사는 곳에 있어

그곳을 대궐이라 한다지요.

 

그 담장에는 조조가 지었다는 시를 표현한 동으로 만든 멋진 대형 부조가 있습니다.

그 이름이 관창해랍니다.

조조가 북방을 정리하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지은 시라고 합니다.

 

그 바다가 발해만이라고 하며 지금 친황다오와 베이징 사이의 산에 새겨놓았다고 하는데 사실 그곳인지 아니면

낙양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그런데 발해만은 이런 파도가 치는 바다가 아니지요.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런 짓을 합니다.

 

그 뒤로 첫번째 건물 영현당(迎賢堂)이 있네요.

조조의 치적 중 하나가 바로 인재등용이 아닐까요?

배경보다는 실력, 능력만 있으면 등용한다는 게 조조의 용인술입니다.

당시만 해도 실력으로 뽑는 공정한 등용이 아니라 끼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효렴이라는 제도에 의한 추천에 의해

등용했던 시기라 능력보다는 빽이요,

실력보다는 뇌물이 아니겠어요?

하지도 않은 봉사활동 증명서가 실력보다 앞섰던 시기였습니다.

 

영현당 안에는 조조의 인재등용에 대한 구현령이라는 포고문으로 보입니다.

구현령으로 널리 인재를 구하는 방을 죽간에 새겨놓았습니다.

우선 제일 앞의 건물인 영현당(迎賢堂)을 보면 조조가 그때까지의 인사제도를 송두리째 파기하고 인재위주로

파격적으로 관리를 증용 했다는 것입니다.

현자를 널리 구한다는 말일 겁니다.

이는 당시로는 혁명에 가까운 일이지요.

 

당시 인사제도는 효렴이라는 제도로 충효를 기본으로 자질을 갖춘 사람을 추천이나 천거에 의해 선발한

제도였다는데 효렴이란 그 말은 처음에는 능력이 있고 많은 사람이 칭송하는 사람을 뽑아 썼으나 점차 능력과는

무관하게 세도가가 자기 자식이나 친인척을 뽑아 썼다는 말일 겁니다.

그러니 서로 봉사활동의 품앗이를 해주는 식으로 돌려 가며 천거하는 모습이지요.

 

이런 제도는 그때까지 내려온 규범인데 이를 타파하고 인재를 능력 위주로 뽑았다는 일은 조조의 큰 업적입니다.

구현령에 유재시거(唯才是擧)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재능이 있는 자를 추천하면 과감히 등용하겠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러나 이 또한 능력 위주로만 보다가는 또 문제가 생길 수 있지요.

요즈음 우리 정치판에 청문회니 검증이니 하는 이야기가 바로 능력을 갖추었더라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는

등용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어요?

 

가장 비근한 예가 관우에게 적토마까지 주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하여가를 불렀지요.

조조의 휘하 장수 중 조조가 키운 장수는 악진 뿐이고 나머지 서황, 장합, 장료, 우금 등 대부분이 굴러 온 돌이잖아요.

조조는 적이라도 필이 꽂히면 '내 안에 너 있다,'라는 일념으로 발탁했답니다.

 

조조가 간웅이면 인재가 모여들었겠어요?

스스로 따라 죽음을 무릅쓰고 충성을 했겠어요.

어느 장수가 전쟁터에서 앞장서 적을 무찌르고 조조가 위험에 빠질 때 자신의 목숨보다 조조를 구하려고 했겠어요.

택도 없는 일이 아닙니까?

조조는 상대가 현인이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허리를 굽혔습니다.

 

조조는 그 스스로도 대단했지만, 그의 인재 등용으로 그를 더욱 대단한 사람으로 만든 게 아닐까요?

왜 인간적이고 항상 남을 배려한다는 유비는 늘 인재부족에 허덕였을까요?

공명을 얻기 위한 삼고초려 외에는 이렇다 할 실적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스스로 찾아오거나 대부분 공명이 데려왔잖아요.

초빙하기 위해 노력이나 해 보기나 했어요?

사실 공명이 없었다면 유비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떠돌이 신세였을 겁니다.

시정잡배로 끝날 유비를 황제의 자리에 올린 사람은 공명이라고 생각되네요.

 

인재가 없어 북벌을 하는 동안 공명은 과로사하고 그 주변의 인물은 강유 하나를 빼면 엉뚱한 욕심이나 내며

다른 생각이나 하는 사람만 있었지요.

오죽하면 역모의 성격을 지닌 위연을 중히 썼겠어요.

두 장수를 제외하면 장수조차 변변히 없이 북벌을 하며 공명이 과로사하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지요.

공명은 그 스스로가 일에 미친 워커 홀릭이었다면 할 말이 없고요,

 

조조는 직접 머리를 맞대고 전쟁에 관한 토론을 주고받았지만, 유비는 별로 그런 적이 없고 모두 공명에만

맡겨버려 전술에 관한 내용도 모르고 나머지 사람도 공명의 비단 주머니나 풀어보며 나중에야 알았다잖아요.

결국, 공명을 따라 다니며 조금은 배웠다고 마지막 효정 전투에서 숲 속에 진을 쳤다가 오나라 육손의 화공에

수십 만명의 군사를 모두 생화장 시키고 혼자 또 줄행랑을 쳐 백제성으로 피난해 결국, 그곳에서

마지막 들이마신 숨조차 내 뱉지 못하고 띨띨이 아들을 2세 황제로 부탁하는 몰염치한 짓을 한 인물이지요.

 

조조를 위해 조조처럼 보좌한 사람들입니다.
너는 곽가냐? 난 김가다.

정욱, 최염, 모개, 만총, 임준, 조지도 보입니다.

주로 행정가들이죠.

그러다 보니 전쟁 위주의 삼국지에서는 노출 빈도가 낮아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네요.

무장으로 출연한 사람과 비교하면 출연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겁니다.

조조는 정말 망해가는 기업을 탄탄한 반석 위에 올린 전문 CEO였는지 모릅니다.

유비는 먼 곳에 숨어 한이라는 짝퉁 기업을 만들어 유사제품을 만들어 팔다가 부도 맞은 입장이고요.

 

조조는 사실 환관에 양자로 들어간 아버지 때문에 조 서방이 되었지만, 사실 족보로 따지면 하후씨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변에는 하후씨가 늘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조를 간웅이니 뭐니 하며 조 서방네만 욕을 먹잖아요.

앞으로 조조라 하지 마시고 욕을 할 때는 하우조라고 욕을 하셔야 할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환관이 무슨 재주로 후손을 보겠어요.

만약, 그랬다가는 황궁의 많은 여자가 외로운 밤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을 겁니다.

환관이란 모두가 조용히 잠든 밤에도 혼자만 외로워 눈물 흘리며 베개를 흠뻑 적시면 추야 장장 긴 밤을

홀로 지새우는 사내입니다.

위의 사진은 조조의 아비인 조숭(하후승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이 조조를 낳고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조조는 아비 조숭은 환관인 조등의 집에 양자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당시 동한 말에는 환관의 세력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아는 10상시라는 것만 보아도 환관은 엄청난 권력을 지닌 집단이었잖아요.

조조는 환관의 손자로 그 출신성분이 조조의 앞길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것은 조조가 다른 사람보다 뜻을 펴기에는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 환관 집안 출신이라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늘 의식하며 살았을 겁니다.

걸림돌인 동시에 디딤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