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8.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치열했던 조조의 삶, 그 후반전을 잠시 구경하렵니다.
정말 파란만장한 조조의 삶은 그게 영웅이 길인지는 몰라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반동탁 연합군을 일으켰다 동탁을 잡는데 실패하고 이제 연주라는 곳을 차지하고 비록 지방의 작은
군벌이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올라오자 조조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조조는 효자입니다.
자식이 반듯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부모를 가까이 모시겠다면 기뻐하지 않을 부모 어디 있겠어요.
룰루랄라~
오늘 콧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콧노래는 바로 조조 부모의 마음이지요.
그래서 낭야라는 곳에 피신해 살고 있던 부친 조승은 조조가 있는 연주로 가기 위해
서주를 거쳐 가게 되었는데 그러나 서주에서는 조조에게 잘 보이려고 극진한 대우를 했지만,
그곳에 호위를 맡았던 서주의 장수는 바로 얼마전까지 황건적을 이끌던 소대장 출신의 장수였답니다.
그 녀석은 머리를 굴려봅니다.
천성은 어쩌지 못하나 봅니다.
이렇게 사느니 지금 조조 부모가 지닌 저 보따리만 털면 평생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
결국, 조조 부모를 살해하고 보따리를 챙겨 산속으로 들어가버립니다.
보따리 털고 난 후 사람 죽이는 일...
네! 맞습니다.
바로 도둑의 원래 본업으로 돌아간 겁니다.
조조는 이 사실을 알고 천하가 듣도록 큰 소리로 웁니다.
왜?
부모의 죽음은 조조에게 또 다른 생각을 하게 하니까요.
그렇습니다.
부모 원수 갚겠다고 기병해 군사를 끌고 서주까지 집어삼켜 세력을 키우는 겁니다.
이렇게 서주는 조조의 손에 아주 피바람이 불었고 이어 서주살륙으로 이어졌답니다.
이렇게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서주 살륙이 끝나고 황실의 피폐한 재정을 일으켜야 합니다.
나라가 살아야 민초가 살고 민초가 튼튼해야 나라가 튼튼해집니다.
당시 민초는 이렇게 난을 피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신세였으니 민초의 삶이 어떠했겠어요?
많은 민초는 전란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고 천하에 원망의 소리가 하늘을 덮었습니다.
모두 원망의 소리를 들었지만, 어느 군벌 하나 나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난을 평정한 후에도 민초는 먹고 살 일이 막막하여 다시 황건적이 되어 천하를 떠돌았기에
조조는 둔전법이라는 토지개혁을 단행해 난민을 다시 농토로 불러들입니다.
나라에서 정한 세금만 내고 마음껏 농사를 지어 농부가 가져가는 둔전법은 수탈과 편법으로
피폐한 농촌을 다시 일으키는 묘약이 되었습니다.
흥농부국(興農富國)
바로 윈윈이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조조가 이런 일을 할 때도 유비는 자기 세력 키우는 일에만 골몰했지요.
조조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가 아마도 둔전제가 아닐까요?
우선 떠돌아다니며 사는 민초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적당한 세금만 내게 함으로 농민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 적정량의 세금만 물고 모두 가족을 위한 양식이 된 더는 무슨 바람이 있겠어요.
이제 천하에 풍년가가 울려 퍼지고, 민초는 신이나 농사를 지으니 이게 바로 바른 정치가 아닌가요?
민심은 천심이라 했습니다.
누가 이 암울한 시대에 나서서 이런 일을 했습니까?
간웅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조조였습니다.
그리고 쉬창에 운하를 팝니다.
물론, 그 운하는 지금도 쉬창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물길입니다.
지금도 운량하(運粮河)라는 이름으로 쉬창 시내를 흐릅니다.
글자 그대로 곡식을 운반하는 역할만 한 게 아니고 농사를 더 편하게 지을 수 있는 수로며
언제든지 논에 물을 댈 수 있는 일이기에 쾌적한 삶을 위한 물길이었지요.
이 물길이 바로 조조와 황제가 재정을 튼튼히 하는 생명의 물길이며 게다가 뉴딜 정책과 같은
토목공사였기에 민초에게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국책사업이었지요.
드디어 조조는 북방지역을 통일하기 위한 전쟁에 돌입합니다.
병사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원소의 식량기지를 급습함으로 불리했던 전투를 일거에 역전하고
그 유명한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끈 군사의 전문가입니다.
이제 삼국지의 세 세력 중 가장 먼저 가장 넓고 큰 나라를 만든 겁니다.
이로써 천하는 셋으로 나뉘며 삼국지라는 이야기가 제대로 들어맞는 계기를 만든 사람입니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대파시키고 그곳 원소의 근거지였던 업성을 차지한 후 동작대 외에 두 개의
대를 올려 그곳에서 새로운 문학인 건안문학에 새 지평을 여는 문학을 발전시킨 조조입니다.
한때는 어마어마하게 잘나갔지요.
얼마나 흥겨웠으면 저렇게 덩실덩실 춤의 삼매경에 빠졌을까요?
조조가 싸움만 하고 다닌 꼴통이었다고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랍니다.
문학은 예술인입니다.
예술...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몰려다니며 골목 대장질 할 때도 민초가 지은 농사를 망치지 않게 하려고
모든 병사에게 보리밭도 밟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지요.
전투를 위해 식량조달을 하려고 공명은 아직 익지도 않은 밀까지 훑어갔지만...
우리에게도 그 유명한 말로 남아있는 계륵이라는 말을 만든 조조는
바로 한중을 점령하며 생긴 말이죠.
장로의 땅이었던 한중은 조조에게는 계속 주둔하기도 껄끄럽고 그렇다고 철수하자니 아깝고...
그런 조조의 마음이 그날 밤 암호로 정한 말이 계륵이라고 했나요?
머리 좋은 양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고 남보다 빠르게 철수 준비하다
바로 조조에게 참수형을 당합니다.
하루 먼저 가려다 평생을 먼저 간 사람이 양수잖아요.
이 또한 먼 후계구도까지 생각하며 양수를 제거한 투시력까지 지닌 조조입니다.
그래도 조조는 천하를 쥐락펴락했고 모든 것을 가졌지만,
황제 자리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탐하지 않았습니다.
황제 아래 제후 자리인 위왕으로만 만족한 사람이었습니다.
능력이 모자랐겠어요?
아니면 따르는 사람이 없었겠어요.
조조는 자신의 본분과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조조가 위왕에 오른 일도 시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유비는 왜 한중왕에 자기 마음대로 올랐습니까?
황제에게 셀프 한중왕에 올랐다고 통보하는 편지 한 장 보내고 말입니다.
황제가 사라지자 처음에 우는 척 하다가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촉한의 황제자리에도 올랐던 유비가 아니겠어요?
그런 전쟁 중에서도 문학을 장려해 중국의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한 사람이 조조랍니다.
삼조라고 조조와 그 아들 조비와 조식을 묶어 말하지요.
이들로 시작한 건안문학은 건안칠자로 이어지며 지금도 그 화려한 영역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안풍골...
참 멋진 말입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조조도 아픔이 왜 없었겠어요.
손권의 고육계에 당해 적벽으로 내려가 큰 전투를 준비하기도 하며 천하 대업을 꿈꾸었지요
땅바닥에 누워 자빠진 누렁이 황개의 저 리얼한 모습을 보세요.
방통의 연환계에 공명의 부채바람 쇼인 동남풍까지 삼종 종합선물 같은 일에
어이없이 당하고 맙니다.
여기에 조조가 완벽하게 당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원래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 하잖아요.
조조에게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입니다.
그러나 적벽대전에서 애송이라 여겼던 떠오르는 뉴 스타 주유를 만나 인생의 쓴맛을 보았지요.
공명의 해괴한 매직 쇼였던 동남풍...
우리같은 독자는 이 장면에서 박수까지 치며 감동까지 하게 되었잖아요.
이어지는 주유가 이끄는 동오 수병의 불 쇼...
아~ 그 동남풍이 잘나가던 조조를 한순간에 멍청이로 만들었습니다.
처음 대패의 맛을 보고 삶의 회의마저 느끼며 패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날 밤 불어온 동남풍은 조조를 죽이기 위한 공명의 매직 쇼였나 봅니다.
공명을 스타로 받돋움하게 한 부채를 이용한 바람 쇼.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간밤에 무서리가 그렇게 내리듯 말입니다.
젠장, 패주하며 가는 곳마다 공명의 계략을 우습다 생각하고 이곳에 군사를 매복시키면
적은 군사로도 얼마든지 자기를 쉽게 포박할 수 있다고 껄껄 웃으며 비아냥하다가
그때마다 매복한 적에게 식겁하고 꽁지가 빠지라 도망갔지요.
왜 그때는 크게 비웃기만 하면 매복군이 나타나는지 웃는다는 게 그렇게 무서웠다고
함께 도망한 장수가 佳人에 실토하더군요.
그래요.
웃는다는 일이 공포로 밀려온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웃음이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데 웃음이 불행을 가져온다면 삶의 미래가 암담해지잖아요.
조조인들 웃고 싶었겠어요?
학우선을 들고 사륜거를 탄 저 인간만 생각하면 소름이 돋습니다.
조조의 입장에서는 공명을 저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조조의 본심은 울고 싶었지만, 영웅으로 살아가려면 울고 싶을 때 오히려 웃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당시의 암담한 처지를 생각하면 웃어야 따르던 사람이 믿고 따라오지요.
그리고 자신 스스로 더 강하게 만드는 보약이기도 하답니다.
웃음이란 이렇게 스스로 무서움과 힘든 모습을 감추기 위해 웃어야 한다는 것을
조조는 이미 터득했다는 말이지요.
조조...
웃어도 웃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결국, 마지막까지 화용도에서 공명의 친 마지막 덧인 관우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며 옛정을 생각해
살려달라 애원하고서야 돌아오게 되었고 도읍도 쉬창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하기까지 했답니다.
자다가도 공명만 생각하면 잠이 싸악 달아났다고 하더이다.
조조는 자식교육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어리삐리루스 유비의 아들 유선과는 시작부터 달랐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있는 자의 덕목이라고 하잖아요.
누가 그런 정신을 가진 자입니까?
아들을 군대에도 보내지 않으려는 현 세태인데 조조는 아들을 늘 전쟁터의 맨 선봉에 서게 했습니다.
유비 아들 유선이 전쟁터에서 맨 선봉에 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요즈음 한 세상 힘있는 자리에 살다가 마지막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은
왜 자식도 문제가 많고 본인도 그렇습니까?
佳人은 아들만 둘인데 왜 모두 멀쩡해 군복무를 충실히 했을까요?
뭐가 잘못된 것이지요?
자룡이 유선을 구할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유선이 어리삐리해졌을까요?
백만 조조군을 뚫고 조자룡을 아두 유선을 갑옷 속에 구겨넣고 말을 거칠게 몰았잖아요.
아니면 유비가 자룡이 구해온 아들을 집어던져 그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뇌의 충격으로 그랬을까요.
그때 옆에서도 말릴 틈도 없이 럭비공 패스하듯 유비는 유선을 주저 없이
땅바닥으로 던져버립니다.
자식 때문에 소중한 장수를 잃을 뻔했다는 코멘트에 조자룡은 유비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잖아요.
조조는 식사마저도 간편하게 먹었나 봅니다.
그게 농사를 짓는 민초의 고생을 생각해 그리했다 합니다.
세상에 간웅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조조가 말입니다.
이제 조조도 세상을 하직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참말로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마지막 유언을 하며 평상복차림으로 장사지내고 묘를 화려하게 만들지 말고
그 안에 보석도 넣지 말라는 유언을 합니다.
역시 쉬창은 조조의 홈그라운드이기에 조조의 아름다운 삶만 이야기 하나 봅니다.
그래도 조조가 과연 영웅인가 간웅인가의 판단은 오직 여러분의 몫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조조는 그의 무덤을 아주 간소하게 하라고 했다 합니다.
물론 검소하게 하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도굴을 염려해서일 겁니다.
그는 한창때 군비마련을 위해 옛날의 유명한 사람의 묘를 많이 파헤쳤던 모양입니다.
왜?
그곳에는 아주 귀한 물건이 많아 그것을 도굴해 팔아 군비충당을 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자신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아무것도 넣지 말라고 했으며
무덤도 여러 곳에 만들어 어느 게 진짜인지 알 수 없도록 한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요즈음, 안양과 업성유지 사이에서 차오차오의 리얼 무덤이 발견되었다 하니
정말일까 의심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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