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살아있다.

2013. 1. 22.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도 어제 이어 업성박물관을 구경합니다.

업성박물관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만들고 있으니까요.

 

중국의 박물관은 그 크기가 우리의 상상을 늘 넘어섭니다.

이곳은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다고 하며 앞으로 얼마나 더 보완해야 할지도 모른다 합니다.

지금도 이 부근을 빗자루로만 쓸어도 유물이 나온다 합니다.

그러니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인 셈입니다.

 

동작대 터에서 발굴한 청석이수(螭首)랍니다.

이수라 하면 이두라고도 하고 건축물에서 뿔 없는 용의 모습을 새긴 장식물로

아무 곳이나 만들어 사용할 수 없고 주로 왕궁에서 섬돌로 사용했다 합니다.

 

그러니 동작대의 급이 다른 건축물과는 비교된다는 말이 아닐까요?

처음에 보았을 때는 뿔이 없어 용인지 모르고 돼지 주둥이인지 알았어요.

라이언 킹에 나왔던 멧돼지 품바 말입니다.

 

넌 누구냐?

조조랍니다.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조 말입니다.

 

당시의 생활모습을 표현한 것인가 봅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도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생활도구를 만드니까요.

 

이것도 여기서 발견된 치미(鸱尾)라는 것입니다.

치미를 망새라고도 한다는군요.

건물의 지붕 양 끝에 놓이는 매 꼬리 모양의 장식물이죠.

 

위의 사진은 수면와(獸面瓦)인데 동물의 형상을 한 무서운 얼굴의 기와로

아마도 귀신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미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곳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절대로 귀신이 아니고 사람이 아닐까요?

 

위의 유물은 1944년 京深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현장에서 발견한 것이라 합니다.

흙으로 구워 만든 소와 우마차네요.

晉 16국 시대에 만든 것이라 합니다.

그럼 그때도 고속도로가 있어 저 우마차가 시속 100km로 달렸을까요?

 

서문표 사당에서 발견한 유물이라 합니다.

서문표가 이 지방 현령으로 와 무당을 혼내고 치수를 하여 이 고장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기에 그를 칭송하는제사를 매년 성대하게 치렀던 모양입니다.

이 명문으로 옛 장하의 위치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합니다.

 

한위 시대에 만든 거북이 모양의 도기라는군요.

 

한대에 사용하던 도장인가 봅니다.

신분에 따른 도장의 모양을 달리해 구분했나 봅니다.

佳人은 제일 왼쪽의 도장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해서요.

예전에 佳人이 자주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청동으로 만든 그릇인가 봅니다.

화로 같기도 합니다.

동물 머리 모양의 손잡이가 인상적이네요.

생활용기에도 멋을 내어 만든 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의 삶도 무척 멋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옥으로 만든 유물로 사람의 형상을 조각한 백석조상좌(白石造像座)라고 하네요.

 

이번에는 동물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네요.

가운데는 봉황이라 생각되고 양쪽으로 사자인지 개인지?

물론 사자로 만들었겠지만, 강아지로 보입니다.

 

북제(北齊)시대의 작품이라 합니다.

장식용으로 만든 조각으로 보입니다.

 

배병조상(背屛造像)으로 북제시대의 작품이라 합니다.

일부는 깨져버려 아쉽네요.

중국의 불교 작품 중 우리와는 다른 게 우리는 비천상으로 표시하는 게 중국에서는

힌두교 압사라에 거의 완벽하게 매치된다는 점입니다.

 

전국시대에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냥 조형물인지 누구를 특별히 상징한 것인지...

예전에 만든 유적의 발굴품인지, 그냥 빈자리를 채워주셔서 감사하게 전시한 것인지...

 

역시 삼대의 모습이네요.

육조고도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이곳을 처음으로 계획적으로 발전시키고

중앙 무대로 진출시킨 사람이 바로 조조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조조가 이 동네에서는 왕입니다.

 

이렇게 박물관 구경을 아주 간단하게 모두 마치고 밝은 세상으로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박물관을 통째로 전세 내고 구경했습니다.

역시 지금도 내다 보니 들어오는 개미 한 마리 없습니다.

 

궐을 상징하는 건축물과 조형물이 물에 비치어 반영이 아름답습니다.

박물관 내부는 대부분 사진촬영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만 있기에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순전히 손 삼각대로 몰래몰래 몇 장만 찍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기는 아직 진행 중인 곳입니다.

중국의 유물은 지금 지하에 얼마나 더 묻혀있는지 알지 못한다 합니다.

이곳이 앞으로 중국 유물의 보고가 될 곳임이 분명합니다.

물론, 다른 곳도 발굴이 되지 못한 곳이 많지만,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고 농사만 짓는

들판이기에 바로 발굴작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지방은 명대에 일어난 황하의 범람으로 유적이 그대로 땅속에 묻혀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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