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현 무후묘(武侯墓)

2013. 5. 16.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아주 많은 생각이 들게 한 곳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삼국지가 배출한 슈퍼스타 공명이 잠든 곳을 찾아갑니다.

사실, 공명은 삼국지의 조연이지만, 그러나 진짜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같은 사람이죠.

공명이 없는 삼국지는 아주 재미없는 하품만 나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공명은 죽은 곳은 오장원이지만, 그의 안식처는 면현의 정군산기슭의 무후묘(武侯墓)라는

곳으로 하늘을 읽고 세상의 흐름을 이해한 공명이지만, 그도 제 죽음만은 어찌하지 못했나

본데 사람의 명은 오직 하늘만이 결정하나 봅니다.

공명은 이렇게 하늘의 부름을 받고 이곳 면현의 조용한 곳에 잠들었습니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무후묘라는 게 무척 많습니다.

그 묘라는 게 모두 사당이라는 의미의 묘(廟)를 쓰는 곳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무후묘라도 무덤이라는 묘(墓)를 사용하는 유일한 곳이죠.

 

입장료 50원이며 반표는 25원입니다.

무척 저렴합니다.

왜?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관우의 머리만 았다는 뤄양의 관우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미어터지게 밀려들어오지만요.

 

면현이라는 지역은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지역이 아닌가 봅니다.

워낙 험한 진령산맥을 넘어와야 하고 청두에서도 접근한다는 일이 쉬운 일은 절대로 아닌

곳으로 그러다 보니 이곳도 찾는 사람 별로 없는 외로운 곳이네요.

공명은 중국인에는 관우보다 못하기에 중국 어디나 쉽게 볼 수 있는 관제묘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찾아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느라 저잣거리처럼 혼잡하지요.

 

 

정군산에 올라 산길을 헤매다 겨우 길을 찾아 내려오다 보면 왼쪽으로

무후묘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입니다.

입구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국수 공장이 있네요.

어린 시절 보았던 그런 풍경입니다.

오늘 같은 날은 가을볕이 좋은 날이기에 저렇게 국수를 말리면 금방 마를 것 같습니다.

저 국수를 걷어다 멸치 국물로만 맛을 낸 국물에 말아 먹거나 시원한 열무김치 국물에

말아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무후묘 마당에 공명을 석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겁니까?

균형미라고는 전혀 없잖아요.

동네 어린이 놀이터에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여기는 세상에 유일한

공명의 무덤이 아니겠어요?

 

이는 공명을 의도적으로 헐뜯으려는 조직적인 작태가 아니면

이런 상을 만들면 안 되는 일이잖아요.

학우선만 들면 공명이 되는 겁니까?

그럼 佳人도 학우선을 하나 사서 들어볼까요?

공명의 얼굴은 왜 심술 영감처럼 표현했나 모르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또 무엇입니까?

공명이 삼고초려를 하며 찾아온 유비를 만나 융중대책을 알려주는

장면이라고 만든 모양입니다.

천하 삼분지계를 말입니다.

그런데 얼굴 생김새가 마치 날건달들이 작당하는 얼굴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난 저 날이 공명이 겨우 27살인데 환갑도 더 넘은 노인네로 만들었잖아요.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은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들인가 봅니다.

정만 들고 쪼면 석공이 되는 겁니까?

조폭들 회의하는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이걸 만든 모든 사람을 여기에 집합시키고 단체로 빠떼루를 주고 싶습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갑니다.

헉! 이번에 이건 또 뭡니까?

저 개는 제갈 공명이 아니라 제갈 멍멍이라도 된답니까?

 

지가 왜 얼른 뛰어나와 우리를 반기는 겁니까?

갑자기 오솔길을 부지런히 뛰어나오더니만 꼬리 치며 반깁니다.

공명이 출사표에서 말한 견마지로를 다한다는 바로 그 개란 말입니까?

오늘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오늘 무후묘에는 구경 온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 외에는 관리하는 직원만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사당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진을 보여 드리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니라고요?

오히려 간단해서 좋다고요?

그렇군요~

 

 

안으로 들어가면 또 무후묘라는 문이 있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내전이 있네요.

내전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조벽이 하나 서 있습니다.

그 조벽에 충무라는 글이 보입니다.

공명이 죽자 이곳 정군산에 시신을 안치하고 황제가 그에게 내린 시호가 충무후라고 해

충무라는 글을 새겨 놓았나 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순신 장군에 내린 시호가 충무라고 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으로 불리죠.

 

 

5차에 걸친 북벌에 진을 다해 234년 공명이 오장원에서 과로가 누적되어 54세로

숨을 거두며 그의 유언에 따라 여기 정군산기슭에 묻었고 그때까지 승상 무향후라고

칭했으나 사후 시호를 충무후를 내림으로 공명을 모신 사당의 이름이

무후사라고 부른다 합니다.

 

 

내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걸린 그림 두 점을 보겠습니다.

"선제께서 신을 비천하다 여기지 아니하시고 황송하옵게도 삼고초려를 하시어

신의 초막을 찾으셔 당세의 일을 물으셨습니다.

이에 신은 감격하여 견마지로를 다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출사표의 일부입니다.

 

개나 말처럼 달린다는 견마지로를 다하다 과로사로 죽은 게 맞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이 삼고초려를 하기 위해 공명의 초막을 찾는 모습입니다.

자꾸 아까 보았던 그 개가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위의 사진도 무후묘 내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걸린 또 다른 그림으로 백제성에서

유비가 가쁜 숨을 몰아쉴 때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여기서 공명은 유비에게 위의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무슨 말?

견마지로요.

 

그러나 출사표는 위의 사진에 보시듯이 유비 옆에 고무신에 껌 붙은 것처럼

애처롭게 붙어있는 유선이 황제가 된 후 유선에 올린 글입니다.

저 띨띨하고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나라를 맡긴다고 유비는 과연 눈을 감을 수 있었겠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유비가 묻습니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저는 아빠 황제와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환장할 아들이 아니겠어요?

위의 두 사진을 비교하면 공명의 초막에서 심부름하는 아이와 유선이라는 아이가 나오지만,

얼굴 표정만 보아도 똘똘함과 안 똘똘함이 여실히 나타납니다. 

 

 

내전의 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에 삼대유재(三代遺才)란 편액이 걸려있네요.

이는 공명의 성품과 식견, 재능이 하, 은, 주  三代의 현인들과 비견된다는

뜻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이 말로 공명은 이미 천하의 공명이라는 말이기도 하지요.

 

오른쪽에는 그의 명성이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드리웠다는

명수우주(名垂宇宙)라는 말이 아닌가요?

만약, 공명이 다시 살아나 이 글을 보았더라면 뭐라 했겠어요?

"날 보고 지구를 떠나라고?"

 

 

공명 또한 이미 서산을 넘어가는 한실의 재건은 어렵다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그게 공명 한 사람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오죽 좋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다시 출병하며 올린 후출사표를 보면 마지막 글에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모든 일이 이와 같아서 미리 헤아리기란 어렵고 다만, 신은 진력을 다할 것이며

죽은 후에 그만둘 것입니다." ”(凡事如是難可逆見 臣鞠躬盡力死而後已)" 

이처럼 공명은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오로지 한실에 모든 것을 바침으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을 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북벌이 성공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중도에 그칠 수도 없고 죽은 후에야

멈춰지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나 봅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아닐까요?

그래요.

일은 인간이 도모하지만, 결과는 하늘이 정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공명은 북벌의 성공 여부를 떠나 다만, 최선으로 다하고 살아서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공명의 출사표를 곱씹어보면 공명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잖아요.

 

 

왜 공명의 무덤이 이런 시골구석에 묻혀있을까요?

면현은 생각보다 무척 작은 도시입니다.

살아있을 때도 위의 사진처럼 면현(당시는 황사라 불렀음)에서 군사와 함께

농사지으며 둔전도 일구었습니다.

공명은 죽으며 자신의 시신을 정군산에 묻고 머리는 북으로 해달라 유언했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지금 정군산기슭에 공명의 무덤이 있고 바로 그곳이

작은 마을인 면현이라는 곳입니다.

공명은 군사와 함께 농사지으며 지냈던 이곳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기였나 봅니다.

이때가 무척 그리웠나 보네요.

 이 무후묘(武侯墓)는 측백나무의 배열이나 건물의 배치도가

팔괘의 원리에 따라 지어졌다고 합니다.

 

아마도 유선이 있는 그곳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요?

왜?

한심한 유선을 보면 죽어서도 숨이 막혔을 테니까요.

 

 

바로 한중이라는 땅에서 유방의 의해 유 서방의 나라인 한나라가 시작했고

유비가 먼저 죽은 후 어리삐리우스 유선이 황제라 칭하고 있지만, 공명이 여기

한중의 면현에 묻히며이제 한나라 재건의 꿈은 사라지고 맙니다.

시작과 끝이 한중에서 확실했던 한나라는 이렇게 사라지지만, 지금 중국에는

漢이라는 글자가 차지하는 것은 대단하지요.

 

 

중국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한족(漢族)이라는 말로부터 시작해 한자(漢字), 한문(漢文),

한인(漢人) 등등.. 그야말로 漢이라는 글자는 중국인의 근본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영혼의 글자가 漢이라는 글자가 아니겠어요?

그 글자의 시작은 바로 이곳 한중이기에 한중에서 가까운 정군산에

공명은 잠들기를 원했나 봅니다.

성공하지 못한 북벌의 한을 죽어서도 잊지않으려고 머리를 북으로 놓아달라고 하며 말입니다.

 

 

같은 길 즉, 진창도를 통해 군사를 이끌고 중원으로 나갔지만, 유방은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통일해 한나라를 세웠지만, 공명은 같은 길로 나아갔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고 맙니다.

지금 위의 사진이 진창도의 잔도를 만드는 모습을 형상화한 미니어처입니다.

이렇게 일은 인간이 꾸미지만, 그 해답은 하늘이 알려주지요.

 

 

위의 사진은 한중에 있는 고호두교에서 위연을 죽이는 장면입니다.

공명은 죽기 전에도 이미 위연의 모반을 예상하고 양의와 마대로 하여금

준비해 두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이러니 죽어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었나 봅니다.

 

 

그래도 사람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 이승에 남았다 하더라고 결국, 누구나

영원한 숙제로 남겨두고 가고 맙니다.

천기를 읽었다던 공명도 죽음 앞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 세상을 등지고 마네요.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천하가 모두 슬퍼했지만...

내일은 공명이 잠든 무덤을 구경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가 시도했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더라도

그것은 또 하나의 전진이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가 실패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시도한 것은 기억할 것입니다.

공명은 이렇게 견마지로를 다하며 온 정신을 쏟았기에 후회 없이 눈을 감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