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기재 제갈 량.

2013. 5. 18.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무후묘를 나오려는데 자꾸 눈에 밟혀 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공명이 자꾸 조금 더 머물다 가라고 하는 듯합니다.

한국 사람은 이곳을 거의 찾지 않는다고...

이만큼 나오다 다시 돌아보고...

우짜면 좋겠습니까?

그래서 조금 더 경내를 돌아다니며 두리번거리다 가렵니다.

 

한중이라는 지역은 그 이름은 한수라는 강의 중류에 있는 지역이라고 해 웃기지도 않게 지었지만,

유방이 여기서 힘을 몰래 키워 진창도로 나가며 중원의 항우를 제압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는데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겉으로는 잔도를 보수하는 척하며 적을 안심시킨 후에

몰래 진창도를 통해 북진했다는 말입니다.

순수한 우리 말로는 뒤로 호박씨 까고 자빠졌다는 말이지요.

그때 만든 나라 이름이 바로 한나라라고 하지요.

이렇게 호박씨 까며 세웠던 한나라도 헌제에 이르러 이제 천운을 다했나 봅니다.

 

공명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역사에도 없는 일을 하고 왔지요.

예전에 조조가 뒷문을 잠근다고 북쪽의 지배자였던 원소를 관도대전을 통하여

말끔히 정리한 것을 보았기에 작가는 공명에 칠종칠금이라는 이상한 짓을 하게 했지요.

그러니 남쪽 문을 잠근 그런 일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 내용이 하도 황당해 마치 꿈을 꾸는 듯하더군요.

 

무슨 매직쇼를 보는듯한 이상한 경험을 독자에게 선물하더군요.

신비의 세상을 오고 가는 이야기가 전개되어 삼국지라는 이야기와 일치하지 않아

어리둥절했던 일이 바로 남만정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그때 그 대목에서는 방송사고가 난 지 알았다니까요.

나관중은 이때 반지의 제왕이니 아바타 같은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어 독자를

우롱했고 그때는 그게 사실인지 알았지만, 지금은 나관중의 상상력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여기서 공명에 물어보았습니다.

"공명께서는 왜 남만이라는 이상한 세상의 경험을 독자에게 보여주셨습니까?"

공명이 뭐라 했겠어요?

"내가 언제? 그건 나관중이 혼자서 생 쇼한 거예요~"

 

한중으로 올라온 이유는 아마도 유방의 기운을 받기 위해 유비는 공명과 더불어

조조의 땅이었던 이곳 한중을 강제 점령했지요.

조조와 한 번 붙어보니 철벽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이제 천하가 보이기 시작했으니

사실 그때까지 조조와 별로 맞닥뜨리지도 못했고 붙으면 거의 도망만 다녔잖아요.

이제 한중을 공략하며 조조군과 부딪혀보니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때 북벌을 결심했을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공명은 우선 물산을 장려하고 내실을 기합니다.

위연을 이곳 태수로 임명해 민심을 추스르고 경제를 살리자 합니다.

그때도 경제 살린다고 난리 했나 봅니다.

누가 경제를 죽였나요?

부를 축적해야 원활한 전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며 때를 기다립니다.

위의 사진이 농기구를 만드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곳을 점령한 공명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유비에게 권했습니다.

뭘?

한중왕에 오르라고요.

왜?

한나라의 시작이 여기였으니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면 천하의 한족이 모두 유비만이

유일한 후계자라고 생각한다고..

참 절묘한 노림수입니다.

 

유비야 그때까지 명함에 "유관장 중 따거"라는 것 외에 새길 직함조차 변변한 게 없었는데

속으로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날 밤 유비는 밤새 이불 속에서 낄낄거리며 즐거워했을 겁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면서요.

물론, 나중에 더 좋은 자리인 촉한의 황제에도 올랐지만...

조조가 위왕인데 유비도 비록 셀프지만, 한중왕이라고 명함에 새기고 다니니

왜 즐겁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얼마 후 유비는 관우가 죽자 이성을 잃고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 침공에 나섭니다.

공명은 오나라는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동맹의 대상이라 극구 말렸지만, 유비의 똥고집에는

당할 수 없었으며 유비 스스로 공명이 물이고 자기는 물고기라고 신군수어라 했지만,

물의 말을 듣지 않고 물을 떠난 물고기는 혼자 오나라 침공에 나섰다가 육손의 화공에 그만

불고기가 되어 백제성을 도망해 피로와 화병으로 명을 다합니다.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에고에고 진작 공명의 말을 들을걸...

이래서 쪼다라는 비난을 듣지요.

물론, 관우의 죽음은 모두를 슬프게 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고 경중의 차이가 있음을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비는 그릇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세상에 성질 없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그쵸?

 

이렇게 북벌은 관우의 오만과 건방으로 시작해 장비의 목이 달아나고 유비마저 불고기가 되므로

공명 한 사람에게 넘겨졌습니다.

공명은 이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생각해 북벌에 착수하지요.

너무나도 큰 짐을 공명에 넘기고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이렇게 공명은 유비의 마지막 유업을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때 혼자 결행하기로 작정하고

그 유명한 출사표를 이해조차 하지 못할 것 같은 어린 유선에 올리고

드디어 험난한 북벌을 감행합니다.

여기 한중에서 머물며 유방이 했던 것처럼 몰래 힘을 키워 드디어 북벌에 나서지만,

결과는 참패라고 봐야 할 겁니다.

일부 지역의 작은 전투에 이겼다고 전쟁에 승리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나 절반의 성공이라 감히 평가하고 싶습니다.

왜?

북벌을 감행하는 동안 대국이었던 위나라는 촉한을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방어에만 급급했으니까요.

 

어디 장안의 문턱이라도 넘어보고 장안을 먼발치에서나마 봐도 좋겠습니다.

전혀 장안의 냄새조차 나지 않은 오장원 언덕까지가 공명의 힘이었나 봅니다.

그러기에 공명은 익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죽은 후 여기에 묻어달라고 했나 봅니다.

 

슈퍼맨 공명은 신무기도 개발했습니다.

당시로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맞먹는다는 연노(連弩)라는 연발로 발사되는 화살입니다.

한 번에 열 발의 화살을 장착해 쏠 수 있어 화력에서는 유리하지만, 사거리가 짧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러니 연노를 쏘면 마치 영감 소변 줄기처럼 날아갔나 봅니다.

 

무후묘라고 공명이 만든 연노를 이용해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하나 봅니다.

제갈량이 만들었다고 해 제갈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결국, 이름만 거창했지 실전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나 봅니다.

 

무후묘에 걸린 그림 몇 점 보겠습니다.

선무당 칼춤 추는 그림입니다.

오늘 여기서 무슨 굿이라도 한판 벌리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공명이 동풍을 부르는 모습이네요.

하늘의 천기를 읽어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동풍(祭東風)이라는 바람을 부르는 의식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림이 마치 선무당이 칼춤 추는 것으로 그렸습니다.

이미 제는 상당히 오래 진행되어 바람이 불기 시작한 모습입니다.

공명의 머리카락도 향도 촛불도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장면에서 관객은 모두 손뼉을 치게 되지요.

 

이번에는 화살 10만 개를 구하는 초선차전이라는 그림입니다.

잠시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주유는 공명을 엿 먹이려고 "전투를 하려면 화살이 부족한데 열흘 안에

화살 10만 개를 만들어 줄 수 있겠소? 커이마?"라고 묻죠.

아주 공명을 생각하는 척하며 열흘씩이나 준다고 말입니다.

이때 공명은 단호하게 "커이!"라고 했다죠?

이게 주유가 공명에 족쇄를 채우려는 암수였지만, 공명은 한 술 더 뜨죠.

 

"지금 전투가 한시가 시급한데 열흘이라면 너무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겠소? 사흘 안에 만들죠."

이 말은 '네가 내게 엿 먹으라 했으니 너는 빅엿을 먹으라.'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빅엿 놀이를 그때도 했답니다.

 

공명의 지혜는 이 대목에서 누구나 무릎을 손바닥에 쳤을 겁니다.

앗! 순서가 무릎이 아니라 손바닥이 먼저입니다.

배 안에 앉아 노숙과 술잔을 기울이는 공명을 보시면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 공명입니다.

공명은 사흘째 되는 날 노숙에 배 몇 척과 허수아비를 배에 잔뜩 만들어 배에 세우게 부탁하고

노숙과 함께 안개 자욱한 강을 거슬러 조조의 수채로 향합니다.

 

조조 진영은 오나라의 기습이라 생각하고 화살을 인정사정없이 퍼부었지요.

이로써 허수아비를 세운 공명의 배는 그야말로 고슴도치보다 더 많은 화살이 박혔습니다.

그때 옆에서 佳人이 화살 숫자를 세어보았는데 10만 개가 넘었습니다.

 

사마의를 멍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공성계를 그린 그림인 듯합니다.

사마 중달이 수십 만의 군사를 끌고 밀어닥치자 오히려 성문을 열어놓고 양평관 성문 위에 앉아

태연히 거문고를 연주하는 공명을 보고 오히려 중달이 놀라 자빠지는 모습입니다.

사실, 이때 성 안에는 군사도 없어 싸우나 싸우지 않으나 마찬가지였지요.

 

정사에는 없는 일을 나관중이 공명을 신으로 만들고 중달은 쪼다로 만들기 위해 만든 이야기일

뿐이기에 이렇게 삼국지연의란 7-80%가 허구고 2-30%가 사실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걸 어떡합니까.

 

이번에는 화소신야라는 그림이네요.

아마 이때가 관도대전이 끝나고 유비는 또 울면서 줄행랑쳐 유표에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

이때 유비에게 장비나 관우로만 한실을 재건한다는 게 어렵다는 것과 브레인인 軍師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전투가 바로 신야전투였을 겁니다.

바로 서서 원직이 등장하죠.

위의 그림은 바로 조자룡에 박살 나 도망가는 조인의 모습입니다.

 

이제 조조는 북방에서 거들먹거린 중원 최대 군벌 원소를 때려잡고 눈을 남으로 돌리는데

그의 레이더망에 바로 딱 걸린 게 유표였던 겁니다.

이때 유표가 있는 형주성 제일 위쪽에 유비가 작은 성 하나를 월세를 내 월세살이 하고

지내던 때였는데 사령관에 조인과 작전참모 이전을 보내 치라 하니 조인은 꼴값 떨며

팔문금쇄진이라는 진을 펼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생, 상, 두, 경, 사, 경, 개 라는 이름이 붙여진 여덞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진형으로 사실 조인에게 물어보니 그게 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부풀리기에 들어가 쉬운 이야기를 오히려 몹시 어렵게 설명합니다.

아주 어렵고 난해한 팔문금쇄진을 쉽게 설명하면 팔각형으로 진을 만들어 어느 방향으로

공격해도 그 안으로 들어가면 항아리 안에 갇힌 꼴이 된다는 그런 말일 겁니다.

생이라는 문으로 들어가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그래서 서서가 계책을 주죠.

조자룡에게 군사를 주어 먼저 생문 쪽으로 접근하게 합니다.

그러면, 조인의 군사가 먹이를 삼키려고 대응해 오겠죠.

여기서 용감하다고 그 문 안으로 들어가면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들어가는 척만 하다가 계속 팔각형의 외곽을 돌며 자꾸 집적거리는 겁니다.

 

그러면 오히려 기다리고 있던 적은 먹이를 물려고 하면 달아나 옆으로만 도니까 지들이 돌아버려

혼란에 빠지고 이렇게 혼란에 빠진 적을 오히려 세게 밀어붙이면

팔문금쇄진을 펼친 적이 와해하여 버립니다.

어느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느 문으로 들어가 어느 문으로 나오기만 한다고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전투로 유비는 전투는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느꼈고 넘버 투와 넘버 쓰리였던 두 아우

관우와 장비를 밀어내고 그 위에 삼고초려를 하며 브레인인 군사 공명을 어렵게 맞이합니다.

자기 자리가 밀리면 기분 좋은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 관우는 늘 공명에 툴툴거리며 짜증 부렸는지 모릅니다.

 

여기 재미있는 미니어처가 보입니다.

공명이 장가가는 모습이네요.

공명의 입이 귀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가린 미스 황은 박색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람을 어디 얼굴로 비유해서야 되겠어요?

요즈음 한국인의 힘은 모든 여성을 여신급으로 재탄생시킨다고

중국에서도 원정 성형하러 온답니다.

 

워낙 똑똑한 사위라 생각해 장인이 직접 사윗감을 찾아와 딸을 맡겼다 하나

전쟁터만 다녔던 공명은 언제?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허허~ 모르는 소리...

남녀 사이의 일은 하늘도 모른다고 했어요.

천기를 읽었다는 공명 자신도 언제 부인과 사랑을 나누었고

자식을 낳았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남녀의 사랑은 공명도 난해하게 생각했나 봅니다.

 

북벌한다고 익주를 떠나 편지만 하고 익주로 간 적이 없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래도 자식이 있다는 것 보면 남녀 간의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주공야변이었나 봅니다.

주공야변이 뭐냐고요?

낮에는 공명, 밤에는 변강쇠 말입니다.

 

공명은 17세에 융중에 왔고 10년을 융중에서 지내다 27살에 유비를 만나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 사이 융중에 있을 때 하남의 명사였던 황승언이 직접 자기 딸인 황월령을 데리고

공명에 넘겼다 합니다.

미스 황의 얼굴이 못생겼다고 하는 것은 그녀의 소싯적 아명이 아축(阿丑)으로

불렸다는데 이는 못난이라는 말이라 합니다.

좌우지간 못생겼지만, 박색이라고 까지 하기에는 좀...

그러니 그녀는 무척 재능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똑똑한 사위를 얻어 딸을 토스해버렸으니 황 노인은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다고 佳人에 실토하네요.

 

공명이 생을 마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옆에 앉은 장수가 강유로 생각되고 앞에 차린 제단은 공명이 삶을 더 연장하기 위해

하늘에 삶의 연장전을 부탁하기 위해 빌던 모습으로 보입니다.

제단 옆에 앉은 장수는 위연일 겁니다.

그때 중달이 공명의 건강이 나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군사를 보내 공격하는 것처럼 연출하자

위연이 급한 김에 뛰어들어와 공명에 보고하는 장면이지 싶습니다.

이때 제단을 건드리는 바람에 촛불이 스러지며 지금까지의 기원은 공염불이 되고 맙니다.

지루했던 무후묘 이야기를 마칩니다.

 

내일은 석문잔도를 갔던 이야기를 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때 강유가 칼을 들어 위연의 목을 치려고 했으나 공명이 말렸지요.

인명은 재천이라고...

이게 하늘의 뜻이라면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요.

이날 밤만 넘겼으면 공명은 15년을 더 살 수 있어 우리에게 삼국지가 더 연장되는 즐거움을

주었을 텐데 작가도 밑천이 바닥나 공명 귀천으로 만들어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왜 남만 정벌처럼 판타지 소설을 쓰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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