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현(勉县), 정군산(定軍山)은 북벌의 전초기지

2013. 5. 13. 08:17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2012년 11월 5일 여행 18일째

 

오늘의 일정은 먼저 미엔현(勉县 : 면현)의 정군산(定軍山)을 가려고 합니다.

정군산은 공명이 본격적인 북벌을 시작하기 전 먼저 조조가 장로를 쫓아버리고

차지한 한중을 공략하기 위해 익주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유비와 함께 올라오며

 전투다운 전투가 제대로 벌어진 곳입니다.

그러니 한중을 차지해야 위나라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질 뿐 아니라 본격적으로

북벌을 위해 가장 동선이 짧고 군사와 군량이나 병기를 비축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를 차지하는 중요한 곳이 한중일 겁니다.

 

정군산은 바로 위나라의 영토인 한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위의 침공을 틀어막는 목줄인 셈이죠.

그다음 오장원에서 숨을 거둔 공명의 시신이 묻힌 무덤이 있는 무후묘가 있는

곳이기에 이번 여행 중 오장원을 갈 때 느꼈던 그런 묘한 기분입니다.

 

 

우선 지도부터 보고 갑니다.

한중의 서쪽이 바로 면현이고 그곳에 정군산이 있고 무후묘가 있고 양평관이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석문잔도가 보이고 그곳은 북으로 가는 포사도와 진창도가 있지만,

험하기로 유명한 진령산맥이 가로막고 있지요.

따라서 동쪽이나 남쪽도 높은 산이 가로막아 서쪽으로 가 북서로 올라가면 공명의

1차 북벌 루트인 천수가 나오고 남으로 내려가면 바로 광위엔으로 이어지는

명월협과 금우도가 나옵니다.

진령산맥에서 시작한 한수라는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며 한중을 관통합니다.

한중에서 북으로 가거나 남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서쪽에 있는 면현으로 나가야

수월하게 갈 수 있습니다.

 

 

이번은 진령산맥을 넘어가는 여러 루트를 보겠습니다.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은 무척 눈에 익은 길 이름이 보이실 겁니다.

한중을 출발해 왼쪽 길로 올라가는 기산도는 공명이 1차 3차 그리고

4차 북벌 때 이용한 길입니다.

진창도는 2차 북벌 때 이용을 했고 유방이 항우를 치기 위해 이용했던 길일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5차 북벌에서는 가운데 길인 포사도를 이용해 북벌을 감행해

오장원에 주둔하다 죽게 됩니다.

 

왜 공명은 제일 오른쪽의 길인 자오도를 이용하지 않았을까요?

위연은 처음 이 길로 올라가자 했으나 공명이 뭉개버렸다지요.

사마의 중달도 공명이 1차 북벌 때 자오도로 군사를 이끌고 올라왔더라면 장안은 방비도

하기 전에 함락당했고 이어 뤄양까지 무너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해

위나라는 패했을 거라고 했다는데...

 

 

이번에는 한중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지도를 보시지요.

이러다간 공명이 계획한 북벌의 군사기밀을 佳人이 오늘 모두 폭로해야 하겠어요.

지금의 청두에서 한중까지의 루트입니다.

제일 아래 왼쪽의 청두는 당시 유장이 머물던 서천의 도읍인 익주지요.

 

그 위의 면죽관이 보이고 그 위의 백마관이 바로 매복했던 유장의 군사에게

화살을 맞아 방통이 죽으며 유비에게 청두로 진격할 명분을 만들어 주었던

대단히 중요한 곳으로 방통이 죽으며 드디어 유비도 제대로 된 근거지인 프랜차이즈를

갖게 되는 행복한 일이 생겼습니다.

방통의 불행은 유비의 행복이었던 겁니다.

 

그 위로 올라가며 검문관이 보입니다.

강유가 공명이 죽은 후 위나라의 공격을 3만의 병력으로 수십 만의

위나라 병사를 맞아 용맹하게 싸웠던 중요한 관문입니다.

위로 더 올라가면 명월협이라는 잔도가 보입니다.

오랜 세월 중원과 서천을 연결했던 아주 중요한 잔도가 있는 곳입니다.

그 위의 양평관은 한중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곳으로 촉에서 북으로

들어가 길목인 동시에 위나라가 남으로 내려오기 위해 필히 거쳐야 할

관문으로 이 관문이 무너지면 한중은 쉽게 들어오지요.

 

 

이제부터 이런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을 생각하며 하나씩 보며 청두로 내려가렵니다.

佳人과 함께 하시면 사진으로 모두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그중 제일 먼저 보았던 오장원이 있었고 오늘은 한중과 양평관이 있는 정군산입니다.

지금 지도에 나타난 중요한 관문이나 잔도를 이번 여행에서

대부분 버스만 타고 두 발로 걸어보았습니다.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하고 튼튼한 근거지인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는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한중의 서쪽에 있는

면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양평관을 먼저 점령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북으로나 남으로 들고나는 길목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삼국지 전투 중 한중을 중심으로 한 전투에서 양평관이 무척 많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크게 볼 것은 없는 곳이지만, 삼국지 기행을 하며 풍경보다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죠.

佳人이 즐거운 곳은 다른 분에게는 썩 멋진 곳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에게는 꼭 권해드리고 싶은 그런 장소이지요.

 

 

버스는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터미널에서 면현으로 가는 버스가 수시로 다닙니다.

그러나 버스는 아주 작은 그런 버스네요.

아침 8시에 버스를 탑니다.(10.5원/1인)

일찍 움직여야 오늘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겠네요.

 

 

내일은 일찍 어제 너무 늦어 들어가지 못한 고한대를 아침에 보고 광위엔으로 갈

예정으로 그곳으로 갈 버스도 여기서 출발하며 시간까지 확인해 두었습니다.

 

한중에서 면현으로 가는 길은 평지입니다.

중간에 큰 강을 하나 건너는데 그 강의 이름이 바로 한수라고 하는 漢江입니다.

한중을 출발해 평지를 달리던 버스가 처음으로 산과 마주하는 곳이

바로 면현에 있는 정군산이라는 산입니다.

그러니 바로 위나라가 촉한이 한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배수진을 친 곳이 여기

정군산으로 여기가 뚫리면 바로 한중까지는 그대로 무너질 수밖엔 없겠네요.

이렇게 다니며 지형을 보니 삼국지 소설에서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손에 잡합니다.

 

 

버스는 40분 정도 걸려 면현에 도착합니다.

위의 이정표를 보니 무후묘와 정군산은 같은 방향에 있고 그 거리는

3km와 4km로 그리 먼 곳은 아니네요.

걸어가자니 오늘 일정이 바쁘기에 버스 편을 알아보니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

시내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 합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무후사당과 마초묘가 있는데 2km 정도로 멀지 않습니다.

모두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곳에서는 자동차처럼 생겼는데 자동차가 아닌 것같기도 하는 미니 택시가 있네요.

재미있는 일은 오토바이 엔진을 얹은 미니 택시라도 바퀴가 4개짜리와

3개짜리의 요금이 다르다는 겁니다.

번호판을 보니 이 지역에만 운행하는 관광객 전용 택시인가 봅니다.

그러나 정식 택시는 제법 가격이 비싸다고 버스 기사가 택시를 타지 말고 미니 관광택시를

타라고 하며  정군산까지는 10원 정도면 갈 거라고 조금 전 우리에게 귀뜸해주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여행하며 거의 택시를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 중 이곳 면현에서 유일하게 택시를 탔네요.

3-4km의 거리는 우리 부부에게는 그냥 산책하는 셈 치고 다녀오는 가까운 거리잖아요.

그러나 함께 한 친구가 있어 걷자고 하기 미안해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는 네 사람이 겨우 탈 정도로 좁습니다.

소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나고요.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심지어 사진에 보이듯이 선루프가 있어 천장 뚜껑도 열리게 되어 있네요.

 

 

택시는 10여 분만에 정군산 입구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내리라 하네요.

그러면서 정군산을 구경하고 산을 넘어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그곳에 무후묘가 있어

무후묘를 구경하고 무후묘 앞에 택시가 있으니 그 택시를 타고 시내를 거쳐

마초묘나 양평관으로 가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에 가실 분은 우리처럼 입구에서 택시를 내리지 마세요.

중국의 택시는 늘 이렇게 사람을 잘 속입니다.

더 올라가야 하는데 입구에 내리게 했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다른 차는 더 올라가 내려주나 봅니다.

 

그리 먼 길이 아니기에 산책 삼아 걸어 올라갔지만...

현지 사정을 모르면 초보여행자는 당할 수밖에 없잖아요.

어디 중국뿐인가요?

우리나라도 외국인에게 가까운 거리도 돌아가고 요금도 수십만 원씩 받는

나쁜 사람도 많습니다.

특히 콜밴이라고 하는 것 말입니다.

 

 

택시를 내린 곳에는 벽에 그림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촉의 장수 황충이 위나라 장수 하후연을 멋지게 베는 장면이네요.

이 그림 하나가 바로 정군산 전투를 함축해 알려주는 그림일 겁니다.

이런 일이 실제 여기 정군산에서 있었으며 이 사건으로 위나라는 비세가 되며

촉한의 공격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한중을 포기하게 되었잖아요.

 

 

정군산을 지켜주는 관문이 바로 양평관이라는 성이고 지형으로 볼 때 양평관은

전략적으로 더할 나위 없는 요충지임이 분명하죠.

그러기에 삼국지에서 위와 촉이 서로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요?

실제 한중의 가장 서쪽에 있는 양평관은 진령산맥과 대파산, 한강 등으로 둘러싸인 채

한 사람이 잘 지켜내면 만 명이 들어와도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수성에 유리하고 공성은 어려운 곳이었다고 하네요.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양평관을 차지해야 하는데 그 첫 전투가

바로 오늘 구경하는 정군산에서 벌어집니다.
위나라는 하후연이 죽음으로 지키려고 했고 촉은 비록, 늙은 장수지만 용맹한

황충이 나서 서로 대적했지만, 하후연은 황충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황충의 칼에 맞아

정군산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면 아주 리얼하게 보여주잖아요.

자는 듯이 땅바닥에 고꾸라진 하후연의 저 비참한 모습...

 

하후연 장군!

어서 일어나시게나~

그리 누워있으면 중동 축구선수들이 하는 침대 축구 모습이 생각난다네.

요즈음은 침대 축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체놀이까지 하는 중동 선수라 오해한다네.

황충장군이 엉덩이도 아니고 허리도 아니고 목을 툭 쳤는데 왜 자빠져 계시나~

현장 사진을 보니... 확실하구먼!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 대군을 이끌고 정군산으로 한걸음에 달려오지만

결국 또다시 패하고 맙니다.

조조가 양평관으로 물러나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공명은 황충과 조운에 양평관 주변의 산에 불을 지르라는 했고 장비와 위연에

조조군의 군량미를 차단해 조조군의 숨통을 조이는 작전을 전개합니다.

 

 

조조는 수하장수 허저에게 정예병 1.000여 명을 주며 식량을 호송하도록 했으나 허저는

술을 마시고 식량을 호송하다가 장비의 기습 공격으로 크게 패해 상처까지 입고 후퇴하게

되었는데 위의 사진을 보니 허저는 폭탄주 체질로 보입니다.

그리고 조조는 곳곳에 매복한 촉군과 장비, 조운, 황충의 협공으로 양평관이 포위되자

후퇴하고 겨우 야곡 경계로 도망쳐버립니다.


이에 조조의 셋째 아들 조창이 지원군을 이끌고 달려와 촉군의 오란을 죽이고 혈로를 뚫어

 조조를 구하고 다시 반격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유비는 유봉과 맹달에게 군사 5.000여 명을 주어 단숨에 조창을 격파시켜버렸지요.

 

 

조조는 고민합니다.

여기가 군사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거점이지만, 여기서 공연히 지구전에 돌입해 발도

빼지 못한다면 지금 배후에서 호시탐탐 위나라의 뒤를 노리는 오나라가 걱정됩니다.

전쟁은 한 곳에 집중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데 두 군데로 분산하면 죽을 맛이지요.

더군다나 한중은 중원에서 보면 진령산맥으로 막혀 오가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군사를 주둔시키고 관리하기도 어려운 곳이지요.

 

 

영채에 돌아온 조조는 그날 밤 구호를 묻는 장수에게 혼잣말로 "계륵이야 계륵"이라 하자

장수는 그날 밤의 구호를 계륵이라 전달합니다.

그러나 똑똑하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행군주부 양수가 계륵의 뜻을 알아채고

퇴각할 준비를 합니다.

이를 안 조조는 양수를 처형하고 다시 공격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마초가 뒤에 나타나 조조군의 영채를 습격해 불을 지르고 조조는

위연의 화살에 맞아 큰 상처를 입고 죽을 뻔하고 말 그대로 후퇴하고 맙니다.
그날 조조는 식겁했을 겁니다.

그날 조조는 난생 처음 저렸을 겁니다.

뭘?

식겁하면 저절로 나오는 것 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조조는 결국 한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내린 암호가 유명한 고사인 계륵(鷄肋)입니다.

닭의 갈비를 뜻하는 계륵은 먹기에는 별로 먹을 게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운 물건이나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당시 한중을 놓고 벌인 유비와의 싸움에서 조조의 복잡한 심경을 잘 드러낸

함축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지요.

 

한중 사람들은 닭갈비를 먹을까요?

닭갈비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기분이 나빠 먹지 않을 것 같지만, 한중에도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체인점이

한집 건너 하나씩 있더군요.

닭 날개면 어떻고 또 닭 다리면 또 어떻습니까?

조조도 닭 갈비는 별로 즐기지 않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