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림(關林) 그리고 적토마

2013. 3. 11.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오늘은 관우의 머리만 묻었다는 관림에 왔으니 관우를 잠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관우는 원래 고향에서 살인하고 도망 다니는 떠돌이 신세였답니다.

이렇게 이름도 바꾸고 주거지도 일정하지 않은 노숙자 관우는 흘러 흘러 어느덧 유비와 장비가

살던 탁현으로 오게 되었고 철저히 호적 및 신분세탁을 한 덕분에 시치미 떼고

탁주에 머물게 되었답니다.

당시 천하가 전산시스템이 가동되기 전이라 지문조회도 없었고 주민등록증도 없었을 테니...

 

그곳에서 장비를 먼저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 데 그 이야기가 재미있네요.

그게 장비가 힘자랑한다고 우물 안에 고기를 줄에 묶어 넣어두고 뚜껑을 덮고

 그 위에 큰 돌을 올려놓았다 합니다.

그때는 장비가 고기장사 할 때였기에...

이때의 이야기는 먼저 했으니 그냥 지나갑니다.

 

좌우지간, 탁현에서 유비와 장비를 만났고 복숭아나무 아래에서의 멋진 도원결의라는

것을 하고 당시 세상을 뒤숭숭하게 만든 황건적을 진압한다고 민병대를 조직해

여러 사람 밑을 전전하며 지냈나 봅니다.

나중에 황제가 된 유비지만, 시작은 이렇게 미약했다 합니다.

 

들리는 소문에는 늘 세 사람은 한방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남자끼리 한방을 쓰면 서양사람은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움직일 때는 늘 유비 옆은 관우가 지켰으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하네요.

관우의 충성을 보여주는 말이네요.

 

나중에 조조에게 사로잡혀 잠시 몸을 의탁해 있는 동안 결국, 약속대로

유비의 소식을 안 후에 피객패를 내세운 조조에게 안녕을 외치고 오관육참이라는 전설을 만들며

조조의 곁을 떠나 유비에게로 돌아옵니다.

 

조조가 관우의 환심을 사려고 집이며 여자며 많은 보석을 내렸고 천자의 이름으로 관우에

편장군이라는 칭호도 내렸지요.

이때 조조는 관우의 환심을 사려고 크고 작은 연회를 매일 열어주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조조는 집에 있는 관우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사람을 보내 자주 확인했지만,

관우는 매일 집안에 있으며 춘추라는 책만 읽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춘추각이라는 누각을 가끔 보게 되고

그 안에는 관우가 춘추라는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죽간시대로 책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관우는 유비가 원소 밑에 있다는 것을 안 후 조조 곁을 떠날 때 하사품으로 받은

모든 것을 봉인한 체 편지 한 장 남기고 그대로 길을 나섰지만,

적토마는 타고 떠났습니다.

이 일 때문에 관우의 일편단심의 마음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며 신의 반열에 오르는

계단 역할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조조가 내린 적토마는 왜 관우가 욕심을 부리고 타고 갔을까요?

이렇게 법도에 벗어난 일을 했기에 재물신이 되었을까요?

 

그 적토마는 동탁이 여포를 수하로 두기 위해 선물했던 것을 조조가 가지고 있다가

관우에게 다시 선물한 것이지요.

사실 시간 계산을 하면 말이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당시 최고의 명마였던 적토마는 이렇게 좋지 않은 일에 주로 쓰였나 봅니다.

그런데 관우는 왜 조조가 준 다른 것은 모두 그대로 남겨두었지만, 적토마는 가지고 튄 겁니까?

 

남자는 옛날부터 타는 것에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지금도 남자는 자동차에 무척 관심이 많잖아요.

그래도 주군 따라 천 리도 마다치 않았던 멋진 수염의 사나이 관우는

빠떼루를 받아야만 합니다.

 

적토마 곁은 지나려니까 누가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적토마입니다.

그 내용이 적토마는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만 누볐다 합니다.

여포를 태우고... 그리고 관우를 태우고.

 

사람은 말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을 모른다 투덜거립니다.

적토마도 잘 생긴 암말 하나 만나 사랑도 하며 살고 싶답니다.

전쟁터만 다니는 게 말이 살아가는 목적이 아니라 사랑도 하며 말입니다. 

말에게도 그럴 권리가 있다고요.

 

이때 유비를 찾아가며 위나라를 빠져나가는 다섯 개의 관문을 지키던 여섯 명의 장수를

청룡언월도로 멋지게 해치우고 갔다고 해 오관육참이라는 말로 회자하기도 하지요.

바로 위의 사진이 오관육참하며 거침없이 나아가는 광경입니다.

그래도 많이 지친 모습이죠?

그리고 뒤로는 유비의 두 부인인 미 부인과 감 부인을 모신 마차도 보입니다.

 

이 오관육참 후 조조의 부하가 계속 추격하려 하자 조조는 "사람은 누구나 각자 주인이 있다.

더는 쫓지 말라."고 하며 보내주었다고 하지요.

간웅 조조라고 알려진 공공의 적이라는 사람이 어찌 이런 대범한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조조란 작가에 의해 과소평가 된 게 아니라 변질한 듯하지 않나요?

이런 조조 한번 만나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후일 이 사건이 적벽에서 패주하는 조조의 길목인 화용도를 지키다

목숨을 살려주는 이유가 되고 맙니다.

바로 위의 사진이 화용도의 현장사진입니다.

물론, 이 사진은 조작된 게 맞습니다.

정사에는 없는 이야기를 작가가 마음대로 자를 들이대고 재단하면 만든

소설 속의 이야기니까요.

 

조조를 살려주고 돌아온 관우에게 공명의 추상같은 명령인 "명을 어기고 조조를 살려 보낸

관우의 목을 쳐라."라는 명령에 유비가 식겁하고 쌍심지 돋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공명은 못 이기는 체 살려줍니다.

이 일로 관우는 그때까지 유비의 2인자라 생각하고 공명의 지시에 툴툴거렸지만,

이후부터는 '오메~ 기죽어~'라 했답니다.

그러니 오나라에 잡혀 효수당하기 전에 공명에 먼저 목이 잘릴 뻔 했군요?

 

그 후 관우는 승승장구하며 잘나갔지만, 결국, 징저우를 지키라는 공명의 명을 어기고

주제넘게 나서다 맥성에서 오나라 군사에 포위 돼 싸우다 여몽의 계략에 빠져 219년 12월

 어느 몹시도 추운 겨울날 아들 관평과 함께 잡혀 참수를 당해 죽고 맙니다.      

이때 관우 나이 59살이었다 하네요.

위의 벽화 사진에 관우와 그 아들 관평이 오나라에 잡혀 포박당한 모습이네요.

 

사실 관우는 동오에 잡히기 얼마 전에 손권을 모욕한 일이 있었습니다.

손권이 자기 아들과 관우의 딸을 혼인시키려고 추진하자 사신으로 온 공명의 형인 제갈근에게

범의 딸을 어찌 개의 아들에게 보낼 수 있겠느냐고도 했고 번성의 포위 작전 때 손권의 지원군이

늦게 도착하자 손권을 오소리라 불러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돈지간이 될 뻔 했습니다.

만약, 두 사람의 혼인이 이루어졌다면 삼국지는 좀 더 오래도록 재미를 더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사자와 호랑이가 혼인해 라이거라는 신품종이 나오지만, 호랑이와 개가

아무리 혼인해도 신제품인 타이도그는 없잖아요.

호랑이는 개를 배우자 취급을 하지 않고 개를 순전히 개 취급하며 간식으로 생각할 겁니다.

심심풀이 땅콩이 생각날 때처럼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관우를 대단한 인물로만 평가하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관우의 말과 행동은 무척 경솔하고 무례한 일입니다.

결국, 번성 전투에서 서황군이 도착하며 싸움에 패배하고 여몽의 계략에 말려

관우는 아들 관평과 함께 손권군에 사로잡혔고 마지막으로 참수당하게 됩니다.

이 모두가 자업자득이 아닐까요?

 

관우의 숨기고 싶은 사진 한장을 소개합니다.

사진 제목은 "형제는 용감했다"입니다.

그러나 사실, 형제는 비겁했다로 고쳐야 합니다.

 

위의 사진을 잘 보시면 왼쪽에 청룡언월도를 든 자가 관우지요.

오른쪽에 장팔사모를 들었으니 물론 의심의 여지도 없이 장비입니다.

그리고 위에 쌍칼을 들고 예비황제라고 황금색 옷을 입은 자가 유비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아래 한 사람 방천화극이라는 무기를 든 여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관장이 용맹한 게 아니라 여포가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파워가 센 무장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장비 혼자 호뢰관에서 여포와 대결을 벌였지만, 천하의 장비가 밀립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비가 점점 불리해지자 관우와 유비가 연이어 뛰어들고,

그제야 여포가 물러난 장면을 그리 벽화그림입니다.

이후 비위가 상한 장비는 관우에게 “내가 여포에게 진 게 아니고 내 말이 적토마에게 진 것”이라고

푸념하며 자존심이 상해 자기가 탔던 말의 목을 베어 버립니다.

 

목수가 연장 탓한다고 하나요?

공부 못하는 학생이 참고서 탓하듯...

장비는 말 탓을 합니다.

여기서 장비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기보다 다른 곳에다 패인을 전가하려는

비겁한 성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뒤 자기 맘에 드는 말을 산 것이 옥추마(玉追馬)라고 하네요.

옥추마 역시 삼국지에 출연하는 명마 중 하나라 합니다.

말이 좋아 전쟁 잘한다면 말이 유능하지 사람이 말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아닌가요?

 

전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람 중에는 여포가 있고(人中有呂布 : 인중유여포), 말 중에는 적토마가 있다

(馬中有赤兎 : 마중유적토)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고 합니다.
당나라의 시인 이하(李賀)라는 사람도 마시(馬詩)에서 ‘赤兎無人用(적토무인용)

當須呂布騎(당수여포기)’, 즉 "적토마는 탈 만한 사람이 없으니,

모름지기 여포가 타야 하리," 라고 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적토마는 소설 속에서는 동탁으로부터 여포, 조조를 거쳐 관우에게 전해지지만,

사실은 여포만 탄 말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건 아니죠.

한 사람을 두고 셋이 떼거리로 덤빈다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핑계를 대라면 여포가 탄 말이 적토마라 혼자서는 당할 수 없었다고 할 겁니다.

그런 유비는 빼고라도 결국 말만도 못하다는 말입니까?

그럼 장비 + 관우 < 말이라는 말입니까?

관우는 소설 속이지만, 이때 적토마의 위력을 알았기에 조조가 그에게 선물로 준 적토마는

떠날 때 끝내 돌려주지 않고 아니? 돌려줄 생각조차 하지도 않고 타고 줄행랑쳤지요.

 

관우를 마트 덤 세일 하듯 1+1행사처럼 관우에 장비를 합해도 적토마보다

못하다는 말은 아니겠죠?

보세요.

적토마가 이 말을 듣고 얼마나 황당했으면 눈만 껌뻑거리겠어요.

관우 얼굴색이나 적토마 색깔이나 커플 티를 입은 것처럼 같은 색깔이랍니다.

 

아마도 삼국지에 출연한 무장 중 여포가 가장 센 사내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하는 모습이지요.

물론 가장 좋은 말은 당연히 적토마였고요.

이런 적토마를 영어로 설명한 글을 보면 Red rabbit horse라고 적어놓았더군요.

적토마가 영어를 몰랐기 다행이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얼마나 웃었겠어요? 그쵸?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비록 오만한 성격 때문에 오나라 여몽의 계략에 빠져 목숨을 재촉한 관우지만,

오직 엉아로 모신 유비에 대한 충정은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송나라에서는 왕으로, 명나라에서는 황제로 그리고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관우는

아예 신이 된 사나이입니다.

뭐 누구나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귀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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