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공주 2 - 화친을 위해 토번으로 시집간 얄궂은 운명의 여인

2012. 8. 31. 08:00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중원을 흐르는 모든 강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지만,

반대로 강물을 거슬러 동쪽에서 서쪽으로 시집을 가는 문성공주의 마음은 무척 슬펐을 겁니다.

문성공주는 척박한 땅 티베트로 시집을 가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중원에서는 경험해보지도 못한 살을 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문성공주는 이름은 공주라 하지만, 사실 당태종의 딸도 아니고 여동생도 아닙니다.

더더욱 이씨 성을 가진 왕후의 딸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공주라 했으며 티베트로 시집보냈을까요?

우리는 그게 알고 싶은 겁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궁에 들어갔다가 황제인 태종의 눈에 들었다 합니다.

워낙 품행이 단정하고 용모 또한 출중하였기에 태종이 그냥 궁에 살라 했고 공주로 책봉되어

얼떨결에 공주가 된 얼떨리우스 공주표 여인이었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임금님표 여주 쌀도 있고 황제표 수의도 있는데 공주표 여인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쵸?

상대가 모르면 공주로 알고 그렇게 평생을 살다 죽으면 그게 공주가 아닌가요?

지금도 문성공주는 티베트나 중국에서도 공주라 부르고 우리도 공주로 알고 있잖아요.

사실 머리 나쁜 공주보다 더 아름다운 일을 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당시 당나라와 주변과의 관계는 무척 골치 아픈 관계로 발전 중이었다 합니다.

중국의 서남부에 자리한 토번이라 부르는 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강성해지며

제법 주변국을 위협할 정도로 무럭무럭 성장 중이었나 봅니다.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유목생활만 하던 민족인 장족이 논찬농낭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태어나며

주변의 모든 부족을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게 하는 통일의 꿈을 이룬 겁니다.

유목생활로 떠돌이로 살아갈 때는 중원에 아무런 위협도 주지 못하지만, 하나의 깃발 아래 뭉쳐.

말을 몰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중원에서도 그냥 두고만 볼 문제가 아니지요.

원래 혼자 나쁜 짓 하는 사람보다 써클을 만들어 하면 같은 짓이라도 파괴력이 더 크고 법적으로도

불법단체라 하여 더 큰 벌을 주는 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인 기종농찬은 외아들로서 어려서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로 지혜와 용기를 지닌 사람이며

거기에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자랐기에 날개를 단 꼴로 변해갔다 합니다.

 

과거를 모두 알아 미래를 볼 수 있고 즉석에서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답니다.

여기에 무술솜씨 또한 뛰어난 인물로 모든 사람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자랐답니다.

활쏘기, 말타기, 검술, 씨름, 전략 등

 

드디어 나이 열 세 살에 토번의 국왕이라는 찬보에 올랐고 사람들은 그를 송찬간포가 부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사내가 티베트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찍 선왕이 죽자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니 지금까지 숨죽이고 살았던 귀족세력이

어린 송찬간포를 업신여기고 여기저기서 반란을 도모했다네요.

그러나 송찬간포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씩 처리해나갑니다.

 

작은 세력은 하나로 단결시키고...

병사와 민초를 사랑으로 보살피니 주변의 여러 세력이 점차 송찬간포의 깃발 아래 다시 모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16살이 되자 그 주변에 모인 군대가 1만 명이 넘어서고 그는 군대를 조련하고 그 힘으로

주변을 하나씩 제압하며 다시 모이게 했다네요.

 

633년 드디어 지금의 라싸로 수도를 옮기며 명실상부 제국의 모습을 갖추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원래 아버지가 나라를 세운 산남지방은 남방지방의 구석진 곳으로 전국을 하나로 묶는 일에는

거리상 부족한 곳이었다네요.

명실상부한 티베트 고원의 중심인 라싸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며 씨족사회로 이루어진 유목민족의

부족국가에서 제대로 된 나라의 기틀을 세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라싸로 천도하며 티베트는 나라로써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시간이 지나자 송찬간포는 몸소 군사를 이끌고 티베트의 동북쪽에 자리한 소비라는 제법 강한 나라를

점령함으로 주변에 티베트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그러나 송찬간포는 그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웃한 당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융성하게 하고 싶어진 겁니다.

그래서 여러 신하와 머리를 맞대고(사실 왕과 신하가 남자끼리 머리를 맞댈 사이는 아니지요.)

어찌하면 중원의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리를 하던 중 똘똘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재상인

녹동찬이 한마디 했다는군요.

 

뭐라고?

"폐하!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 사신을 보냅시다.

그리고 혹시 사용하지 않은 남은 딸 하나 보내달라고 하는 겁니다.

어차피 사용하지 않는 딸이라면 보내 줄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똘똘한 사람과 혼인시키겠다고 하면 서로 사돈 간이 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니라 안사돈 좋고 바깥사돈 좋고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인구가 한 사람 늘어 좋고 뽀얀 살 냄새 나는 중원의 하얀 피부의 여인을 얻고

그 여인으로부터 줄줄이 사탕처럼 따라오는 문명도 들여올 수 있어 좋고요.

그런 다음 뻔질나게 처갓집이라고 드나들며 어디 씨암탉만 잡아주겠어요?

새로운 문명도 배워오는 겁니다.

풀 방구리 쥐 드나들 듯 말입니다."

 

"오케이~ 그렇게 하자!"

이렇게 송찬간포가 결론을 내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당나라에 사절단을 바로 보냅니다.

성질 한번 급합니다.

이게 바로 송찬간포에 물어보니

"오빤~ 토번 스타일~"이랍니다.

 

그러나 그때 하필이면 당나라는 북쪽에 있는 토혼국과 돌궐에서도 당나라에 혼인을 요청한 상태였습니다.

당나라 태종이 무슨 공주 생산 공장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딸만 달라고 한...

"줄을 서시오~"라고 해도 공주가 품절되어버렸습니다.

진작 이럴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생산해 비축해 놓을 건데...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