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화신 서태후 11- 마지막 이야기

2011. 9. 3. 00:27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73세 생일을 맞아 원세개는 여우털로 만든 두 벌의 예복과 들보모양의 비녀, 보석으로 만든 귀걸이,

사람 키만한 산호를 보냈으며 성선회라는 관리는 송, 원, 명대의 명품서화와 1.000냥의 황금을 사용해 금빛으로 번쩍이는

아홉자루의 여의봉을 만들어 바쳤다 합니다

그놈의 여의봉이 손오공이 휘두르던 마음먹은 대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여의봉이라면 좋겠습니다.

 

자희는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을 움켜잡고 놓지 않습니다.

광서 34년(1908) 10월 22일, 광서제가 감금당한 영대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즉시 순친왕 재풍의 아들인 푸이(溥儀)를 황제로 세우고 선통(宣統)이라는 연호를 정합니다.

이 당시 부의의 나이가 겨우 세 살이었다 합니다.

그렇지요. "황제가 아직 나이가 어려 공부에 전념해야 하니 모든 정무는 나의 훈령에 따라 시행하라."는 조서를 내립니다.

하셔야죠? 그래요 혼자 다 하셔야죠.

이제 우리 귀에도 익은 선통제 푸이가 등장하는군요.

 

그러나 그 다음날...

자희는 중해의 의란전에서 74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억울해서 어찌합니까?

아니되옵니다.

그렇게 잘먹고 좋은 것만 골라 보석으로 몸을 휘감고 살았는데 죽다니요?

 

천 년을 살고 싶었고 만 년을 권력을 누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짧게 살고 가다니요.

죽고난 뒤 그녀에게는 멋진 휘호에 시호가 더해졌습니다.

"효흠자희단우강이소예장성수공흠헌승희배천광성현황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방 크면 공부 잘한다는 말 같기도 합니다.    

 

자희의 죽음은 광서제의 죽음과 하루 간격입니다.

두 사람의 죽음에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많은 소설에서는 자희가 광서제를 독살했을거라고 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광서제가 죽으며 살아생전 좁힐 수 없는 간격으로 자희를 데리고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만약 자기만 죽으면 모든 권력이 그동안 자기에게 괴롭힘만 당했던 광서제에게로 가고 광서제는

자신이 그동안 했던 못된 짓에 대한 복수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되잖아요.

혹시 부관참시라도 한다면...

 

그래서 먼저 독살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승길에서도 광서제를 괴롭히고 싶었나 봅니다.

광서제가 사랑했다는 이유로 후궁인 진비까지도 살해한 서태후가 아닙니까?

 

그녀가 죽기 전에 "앞으로 절대 여자가 정사를 농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합니다.

평소 "궁중에는 총명한 여자는 한사람이면 족하다."라는 생각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하며 살았던 여인이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참새가 날아가다 우습디고 뒤집어 날아갈 일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나 잘 하세요."

 

사실 이 당시 만들어진 문화유산은 극히 일부사람이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한때 세상에 4대 발명품을 만들고 문명국이었던 중국이지만, 일부 상류층의 유희문화로 인해 세상과 단절이 되고

우등생이 덩치만 큰 열등생이 되어 주변 여러나라에 휘둘리게 됩니다.

 

청일전쟁에서 패하게 된 이유도 해군의 군비확장을 위해 마련한 돈 은 2.400만냥, 미화로 5.000만 달러를 전용해 연합군에 의해 파괴된 이화원의 재건비용으로 전용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일본과의 해전에 대패할 수 밖에 없었고 조선도 일본 수중에...

그리고 중국이라는 대국도 일본에 휘둘리며 지냈잖아요.

 

이런 무소불위의 건력을 휘두른 서태후도 해보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오문의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비록 48년간이나 중국을 손아귀에 넣고 주물럭거렸지만, 황제가 아니었기에 오문의 가운데 문을 통해 드나들지 못했지요.

이 문은 황제와 황후의 결혼식날 딱 한번 가마를 타고 드나들 수 있고 전시에 합격한 1. 2. 3등만이 나갈 수 있는 문입니다. 

 

자희(慈禧)...

무슨 인자함을 배풀었던가요?

또 무슨 경사스러운 일이 많았던가요?

그녀가 인자함을 베푼 것은 민초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진정 배푼것은 서구 열강에게 백은 12억 6.500만 냥이었으며 할양된 중국의 토지만 7만 평방킬로미터였습니다. 

혼란의 시대에 태어나 권력을 휘두르며 더 큰 위기로 몰고간 자희는 중국을 고통과 도탄에 빠지게 했을 뿐입니다.

48년간 대국이라는 커다란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살았던 자희는 진정 행복한 여인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