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화 거리의 천후궁(天后宮) 구경하기

2012. 8. 1. 08:00중국 여행기/산동성(山東省)

고문화 거리 한가운데에 천후궁이 있고 그 반대편에 누각이 하나 보입니다.

이름이 희루(戱樓)라고 편액이 걸려있는 게 아무래도 저 누각 위에서 연극을 하지 않았나

생각되며 그 누각 아래를 통과해 강변으로 더 나아가면 그곳이 바로 옛날 부두인 듯합니다.

아마도 이 부두를 통해 많은 짐이 드나들었을 겁니다.

그러면 톈진의 발전은 바로 여기부터라는 말이 아닐까요?

 

그러니 여기가 바로 톈진의 시발점이자 기본 기지인 셈인데 지금이야 톈진이라는 도시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큰 도시지만, 처음 시작이야 작았을 겁니다.

희루를 등지고 돌아서면 바로 천후궁이 보입니다.

바로 이 부두를 통하여 뱃사람이 들어왔을 것이고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천후궁으로 바로 들어갔을 것이고 다시 먼 항해를 위해 출발할 때도 마지막으로

천후궁에 들려 천후에게  항해의 안전과 부자 되게 해달라고 빌었을 겁니다. 

 

천후궁 안이 천진 민속박물관인가요?

칙건천후궁(勅建天后宮)이라고 썼나요?

그렇다면 황제의 칙령에 따라 천후궁을 만들었다는 말이 아닐까요?

27살에 요절한 무속인 임 씨를 천후로 봉한 사람이 청나라 건륭황제 라 했잖아요.

 

안으로 들어갑니다.

삼진복주(三津福主)라는 편액이 걸린 건물이 입구에 있네요.

이 건물이 전전(前殿)이라는 건물입니다.

 

원나라 때 만든 건물로 명나라 때 중수했으며 홀 안에는 가운데 왕령관(王靈官)이 서 있습니다.

왕령관은 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합니다.

양쪽으로 악신도 있고 선신도 있네요.

천 리를 보는 눈도 있고 바람에도 날려오는 소리를 듣는 신도 있습니다.

정말 귀신처럼 멀리도 보고 듣기도 하나 봅니다.

이 모든 신이 천후를 보호하기 위한 신이라네요.

 

오호라~

기린이시여~

제게 기를 내려주세요.

복을 내려 주세요.

오래 살고 돈도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저 여인의 표정에서 미루어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냥 조형물로 보이지만, 중국인에게는 빌고 싶은 대상인가 봅니다.

"아줌마~ 그것은 천후궁을 지키는 문지기래요~"

 

멋진 기린이 양쪽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고 이 기린을 잡고 많은 사람이 반들거리게

손으로 쓰다듬으며 놓아주지 않습니다.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을 보시면 역시 인구가 많은 중국의 신이란 대접조차도 다르네요.

기린 꼬리에 또 작은 기린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작은 기린을 배낭에 슬쩍 집어넣어 가져오고 싶습니다.

저 녀석을 우리나라에 가져다 잘 키우면 나중에 크게 되지 않겠어요?

 

천후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는 무료로 돈도 받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당황스럽습니다.

여기 천후궁을 찾는 세계 인민 모두에게 무료로 복을 주려나 봅니다.

바다를 영업지역으로 하는 천후는 인심도 후합니다.

 

중국의 전형적인 사찰의 모습이 아마 이런 연기로부터 시작할 겁니다.

야구 방망이만 한 향을 태우며 말입니다.

여기 톈진에 있는 천후궁은 원나라 태정 3년인 1326년에 지어진 건물로 톈진에 사는

상인이나 주민이 안전과 복을 비는 곳입니다.

특히 선원에게는 아주 중요한 장소가 바로 여기입니다.

천후궁이란 바다와 물을 다스리는 신이라는 천후신을 모신 곳입니다.

 

천후란 백과사전에 의하면 민간 신앙에서의 신(神)의 하나. 뱃사람들이 신앙하던

바다의 여신(女神)이었는데, 점차 민간에 퍼져 중국의 중부, 남부의 연해, 타이완 등지와

그 인근의 나라에 전파되었다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포세이돈과는 사촌 간인가요?

 

톈진의 천후궁이 중국에서도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으며 처음 뱃사람의 안전을 위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나 찾아와 안녕과 복을 비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과연 천후가 자기의 나와바리도 아닌 사람들까지 챙겨줄지 두고 봐야겠어요.

요즈음에는 중국의 새해나 명절만 되면 천후도 정신 사납게 다 찾아와 복과 평안을 빈다 합니다.

공자도 농사는 늙은 농사꾼보다 모른다 했거늘, 천후에게 바다 외의 일도 부탁하면

과연 들어줄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바로 천후궁이 있는 앞으로 톈진에서 가장 큰 마터우라는 부두가 있었고 이 물길을 따라

많은 배가 드나들며 장사를 했던 곳이라 마방의 역참처럼 선원에게는 아주 중요한 장소인 셈입니다.

바로 그런 곳에 물을 다스리는 천후를 모셔 항해의 안녕을 빌었을 겁니다.

천후궁은 건물 자체로도 톈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일 겁니다.

 

천후궁은 다른 말로 낭랑궁 (娘娘宮)이라고도 하는데 娘娘은 고대 황후와 비를 통칭해서

일컫는 말이라고도 하며 예전에 톈진은 이 주변을 중심으로 발전했을 겁니다.

천후는 주로 복건성을 중심으로 중국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믿는 신일 겁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여러 도시에 천후궁이 있고 중국 남방사람이 이민 간 동남아시아에도

화교가 사는 곳에는 천후궁이 있다는군요.

그러니 복건성 사람이 사는 곳이나 장사를 위해 배를 타고 드나들었던 곳에는

쉽게 천후궁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여기도 관우가 버티기에 들어갔습니다.

천후와 관우가 사귀는 것도 아니고 이곳이 관우의 나와바리도 아니고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두 사람 사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도 중국 어디를 가나 쉽게 관우를 만날 수 있기에 우리에게도 이제 많이 친숙합니다.

마치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하네요.

 

1년 전 중국 내륙지방이 구이저우성 쩐위엔이라는 고성을 갔을 때도 그곳에서 천후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류가 자동차나 기차를 이용하여 움직이지만, 예전에는 중국 내륙으로도

운하를 통한 배를 이용한 물류의 이동이었기에 그 내륙 지방도 물길을 따라 이 지방 사람이

드나들며 장사하였기에 천후궁을 지어놓고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을 겁니다.

 

보통 3명의 여신이 함께 있는데 가운데가 천후로 960년 송나라에서 태어나 27살에 죽었다고

알려졌고 그녀는 실재 인물로 무녀 임(林)씨라 하는데 푸젠성 포전미주서라는 작은 섬에

살았다 하며 그녀는 살아생전 탁월한 능력으로 바다와 관련된 신비한 힘을 발휘함으로

사후에 많은 뱃사람이 그녀를 추모하였다 하는데 나라에서도 그녀를 기려 남송 소흥 26년에는

부인(夫人)으로, 경원 4년에는 비(妃)로 원나라 지원 15년에는 부인보다는

더 높은 천비(天妃)로 봉해졌다 합니다.

청나라 강희 23년에는 드디어 천후(天后)로 봉함에 따라 대미를 장식했답니다.

일개 무녀에서 천후로 모셔진 사람도 보기 쉽지는 않을 겁니다.

 

천후는 어려서부터 질병을 치료하고 날씨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해 고기잡이 나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날씨와 뱃길을 알려주었다 합니다.

사후에 신이 되어 구름을 타고 다니며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평생도 살지 못하고 27살에 요절한 천후가 과연 얼마나 효험이 있기에

이리도 많은 사람이 북적거립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 했나요?

자신의 병조차도 치료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인이 어찌 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안전을 도모한다는 말입니까?

이번 우리 부부의 여행이 인천과 톈진을 오가는 페리를 이용하였습니다.

아직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가야 하니 천후에게 안녕을 빌어야 할까 봐요. 그쵸?

 

천후신 오른쪽에는 자비의 여신이라는 관인(Guan Yin)이 있고

왼쪽에는 혜안의 여신이라는 쉬웨이성니앙(Shui Wei Sheng Niang)이 있습니다.

가운데는 역시 이 집 주인인 천후입니다.

 

톈진은 나루터로부터 시작한 도시잖아요.

바로 여기에 나루터가 있습니다.

강을 이어 만든 옛 운하가 중국 동부에는 실핏줄처럼 퍼져있고 중국을 문명국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벽에 타일로 만든 옛 모습의 풍경을 보는 순간 왜 갑자기 청명상하도라는 그림이 떠오를까요?

한참을 서서 우리 선조의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북송의 수도였던 카이펑보다 오히려 뱃길 따라 서해바다를 건너 톈진으로 오기가 더

쉬웠을 것이고 이곳에도 우리 선조가 많이 드나들었을 텐데... 

 

지금 톈진의 고문화 거리에서 물론 당시의 옛 모습은 찾기 어렵지만,

바로 하이허라는 강을 따라 물류가 드나들었기에 이곳 나루터가

바로 톈진의 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의 모습을 타일로 벽화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그림을 들여다보며 당시의 번창했던 모습을 상상합니다.

 

천후궁을 바라보며 청나라의 강희가 왜 위대한 황제인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청나라의 역대 황제는 이웃 동네 출신인 원나라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을 겁니다.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까지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원나라가 왜 중원 경영에 100년도 채우지 못하고

97년 만에 고향 앞으로 갔는지 만주족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나 봅니다.

 

중국인의 마음에 영원한 사부로 자리 잡고 있는 공자를 위해 뻔질나게 취푸를 드나들어

고치고 확장하고... 이백이 묻혔다는 뤄양을 찾아가 이백의 묘와 향산사도 둘러보며

이백이 자신의 정신적인 지주였다고 글도 남기고... 

그리고 남부지방에 사는 사람이 섬기는 천비를 천후로 격상시켜 모시게 함으로

민초의 니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천후로 격상시켰다고 황제의 위상이 격하되는 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런 마케팅의 덕분인가요?

영원하고 위대한 징기즈칸의 후예였던 원나라보다 딱 3배나 더 많은 296년간

중원 경영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천후궁을 구경하다 어느 사당 안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문을 열고 막 밖으로 나오려는 험상궂은 모습을 한 조소상이 보입니다.

제단까지 차려놓았지만, 아직도 성이 차지 않나 봅니다.

무엇이 佳人을 놀라게 했을까요?

여러분도 찾아보세요.

위의 사진 속에서 찾으셨나요?

 

찾지 못하신 분을 위해 제가 자세히 확실하게 보여드립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노란 원 안을 자세히 보세요.

그런데 그 조소상은 세상 사람에게 무슨 불만이 있었기에 저런답니까?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렇게 논답니까?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모르겠어요.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천후만 모셔서 화가 났을까요?

그래도 이것은 아니잖아요? 그쵸?

돌아서 나오려는 佳人의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자꾸 헛것이 보이나 봅니다.

우리 부부의 여행도 이제 거의 끝나가나 봅니다.

왜 저런 게 눈에 띄었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을 향해 무슨 불만이 많아 그랬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