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부(曲阜)에서의 만보가인(漫步佳人)

2012. 7. 11. 08:00중국 여행기/산동성(山東省)

네덜란드 젊은이와 헤어진 후 숙소를 잡고 배낭을 던져놓고 모래 일정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합니다.

내일은 온종일 취푸를 구경하지만....

이번 여행 출발할 때의 계획은 취푸를 거쳐 타이산으로 올라가 타이산을 본 후 톈진으로 올라가

인천행 배를 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이곳으로 오는 도중 예상하지도 않았던 여러 군데를 들려오다 보니 일정이 많이 바뀌어버렸습니다.

 

이미 우리는 10일 11시경에 출발하는 배표를 예매해 놓았기 때문에 늦어도 9일 전에는

톈진에 도착해 있어야 하기에 여유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내일 7일은 취푸를 하루 종일 구경하고 8일 아침에 출발하면 바로 톈진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늘 예정에도 없는 곳을 다녀오느라 우리 부부의 여행은 이렇게 끝날 무렵에는 용두사미처럼 흐지부지해집니다.

앗! 제가 용두사미라는 단어를 사용했나요?

佳人도 중국을 다니다 보니 용이 익숙해졌나 봅니다.

 

헉!

여러부우우우운~ 만보가인(漫步佳人)이랍니다.

어쩌면 이리도 정확하게 佳人이 여행하는 모습을 이해하고 그대로 표현했답니까?

공자의 마을 취푸의 어느 가게는 미리 佳人이 방문할지 알고 佳人의 마음을 그대로 적어놓았습니다.

역시 공자가 태어나고 살았던 마을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네가 어찌 佳人의 마음을 이리도 정확히 집어내더란 말이냐?

정녕 공자가 그리 일렀더란 말이냐?

2.500년 후에 佳人이 온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었더란 말이냐?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일부 식당에는 식탁에 미리 이렇게 랩을 씌운 그릇 세트를 올려놓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만, 이 그릇은 멸균 소독한 깨끗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러니 청결한 이것을 사용하라는 말이기도 하지요.

고객의 위생을 위한 배려겠지만, 이런 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 그릇 세트를 사용하려면 음식값에 추가로 돈을 더 내야 합니다.

 

이 그릇을 보면 그냥 일반적으로 쓰는 그릇은 구정물에 담갔다가 그냥 꺼내 준다는 말입니까?

식당의 기본은 청결이 아닐까요?

기본이 구정물에 들어간 중국이라는 말인가요?

사실 이 그릇마저도 중국에서는 믿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닐까요?

식사하는 내내 찝찝한 기분은 왜일까요?

구정물 속에 든 중국을 여행하기 때문일까요?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일은 슬픈 일입니다.

 

취푸의 북쪽으로 유명한 타이산이 있습니다.

타이산이라 함은 한국인에게도 무척 친근한 이름의 산입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 정도는 읊조렸던 기억이 있는 산 이름입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는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의 시조에 나오는 말이죠.

 

아마도 한국사람은 이곳 태산에 오르며 이 시조를 흥얼거리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佳人은 이 시조를 접한 어린 시절에 태산이 히말라야에 있는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은 산인지 않았으니까요.

세르파의 도움 없이 그리고 산소마스크 없이는 절대로 오를 수 없는 곳인지 알았어요.

양사언이라는 어른에 태산에 올라보시고 이 시조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조의 내용으로 보아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보다 더 높아 보이네요.

 

또 다른 속담이 있지요.

"티끌 모아 태산이다."

정말 태산은 산 중의 산인가 봅니다.

 

어디 우리나라만 그런가요?

천하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진나라의 일꾼인 이사도 한마디 했잖아요.

진나라의 이사가 자신이 잘려나갈 즈음에 "태산은 불사토양하고 하해는 불택세류니라!"라고 하는 바람에

백수를 면하고 다시 근무하게 되었다고 했나요?

그런데 이사도 정말 태산에 올라보고 그랬을까요?

 

그래서 사실 佳人의 두 발로 태산을 밟아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돈 독이 올라 중국의 대부분 산에다 케이블카를 설치해 돈을 벌고 있습니다.

우리의 양사언 어른께서 이곳에 오셨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 만은 헐!

오잉? 아니네~ 그냥 케이블카 타고 슝~하고 오르면 된다고 하셔야 하지 않겠어요?

 

산 정상에서 장사꾼이 장사하는 나라는 중국 외에는 많지 않을 겁니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맞습니까?

그들의 핏속에, 뼈마디마다 철저한 자본주의가 스며있지 않을까요?

 

태산은 산동성에 있는 산으로 중국의 오악 중 한 곳이라고 했나요?

산동성이라는 말 자체도 태항산의 동쪽이라는 의미라지요?

그 높이가 겨우 1.532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왜 많은 사람이 높은 산을 의미할 때

인용을 많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로비에 무척 강한 산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취푸가 가까이 있기에 공자께서 로비라도 한 게 아닐까요?

세상에는 이렇게 사실과 다르게 과대 포장된 경우도 많고 실제보다 저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지 않겠어요?

그래도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게 들은 곳이라 이번 여행을 통하여 한번 제 발로 밟고 올라서 볼 생각이었지만,

그냥 미수에 그치고 말겠네요.

 

태산의 정상은 옥황정(玉皇頂)이라 했나요?

정상에 오르면, 아무래도 전망 하나는 죽여줄 겁니다.

그 맛에 고생하며 올라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도 예전에 그곳에 올라 "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게 보이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라고 하셨다네요.

공자께서도 오르셨나 봅니다.

 

그러나 공자께서도 조금은 과장이 심하십니다.

공자님마저 이러시면 정말 아니 돼 옵니다.

보이지도 않는 천하를 작게 보인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정말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다 보일까요?

 

그럼 에베레스트에라도 오르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요?

우주가 보이셨다고 하셨을 것 아니겠어요.

공자님도 과장을 하니 중국인의 피를 타고나셨나 봅니다.

만세사표(萬世師表)라 하시는 공자님마저 이러시면 이제 중국 사람이 하는 말은 정말 믿을 수 없잖아요. 그쵸?

 

만약, 佳人이 그곳에 올랐다면 한마디 하고 내려왔을 겁니다..

"태산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하가 모두 발밑에 있다지만,

佳人이 내려다본 것은 佳人의 발등만 보았다네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 아래 佳人이 있다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 없이 그대로인데 佳人만 내려다보고 올려다봤다네." 

 

정상의 옥황정에는 옥황대제가 모셔져 있다고 하네요.

그곳에 있다는 벽하사의 벽하원군은 옥황대제의 딸이라 하니 태산은 그 집안의 나와바리인가요?

그곳에 글자가 없는 無字碑가 하나 서 있다고 합니다.

한나라 무제인 유철이 세웠다고 하던가요?

 

한무제가 그곳에서 봉선 의식을 올린 후 그곳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이를 글로써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글을 새기지 않은무자비로 남겼다 하니 그게 더 오만 방자한 일이 아닙니까?

아니군요?

여백의 미학인가 봅니다.

측천무후도 자기 무덤에 글을 남기지 않고 그냥 비석만 세우라고 했다지요?

잘난 사람은 이렇게 튀고 싶어 비석 가지고도 장난하나 봅니다.

 

중국에서는 제법 유명한 무자비가 세 개 있다고 하더군요.

가장 오래된 것은 동진의 재상 사안이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잘났기에 죽은 후에 자랑질할 게

글로 모두 기록할 수 없다고 생각해 비석에 글을 남기지 않았답니다.

세상은 가끔 이런 뇌 구조를 지닌 사람이 있더군요.

 

그리고 남송 시기에 금나라와 치열한 전투를 할 때 한족의 악비를 모함하여 죽게 한 진회라는 인물로

"더럽고 너무 추한 행위를 하였기에 글로 차마 담을 수 없다."고 하여 비석에 글을 남기지 않았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측천무후의 무자비, 그녀는 전자인지 후자인지 알 수 없지만,

좌우지간 무자비로 비석을 남겼다 합니다.

 

비석에도 이렇게 잘난 놈의 비석, 나쁜 놈의 비석, 그리고 이상한 놈(?)의 비석이 있나 봅니다.

사실, 비석에 남긴 글보다 후세 사람의 평가가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 삼공에 있는 비석의 숫자가 시안의 비림에 보관한 비석 숫자보다 많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하며 오르기도 전에 하늘을 비유하며 겁부터 주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버스와 케이블카만 타면 우리처럼 저질 체력도 쉽게 오를 수 있다고 하네요.

뭐 예전에도 황제나 돈푼깨나 있는 사람은 걸어 올라갔겠어요?

그런 사람들은 가마 타고 올랐을 겁니다.

체력이 약한 사람이나 무릎이 좋은 편이 아닌 사람은 걸어 오르지 말아야 합니다.

 

톈진은 제법 먼 곳으로 생각되어 기차를 타고 갈 생각으로 숙소 주인장에게 기차표를 어디서 사고

어느 역에서 타느냐고 물어보니 주인집의 남편이 기차표 파는 곳으로 같이 가자 합니다.

참 고마운 사람이네요.

사실 그냥 알려주어도 우리 부부는 잘 찾아다니지만,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데 거절하기 어려워 따라나섭니다.

 

아까 버스 내린 곳 건너편에 기차표 파는 코너가 있네요,

모레 아침인 11월 8일 8시 16분 옌저우(兖州)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네요. (73원+수수료 5원/1인)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은 10일 오전입니다.

취푸 동역을 가면 동차가 있는 모양이지만 그냥 옌저우에서 출발하는 특급열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옌저우로 가는 방법은 이곳에서 버스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옌저우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면 옌저우 기차역까지 바로 간다고 알려주네요.

일단 주인과 헤어진 후 우리 부부만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구경 다닙니다.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옛날 공자가 걸었던 그 길일 겁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때 그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공자도 걸었고 佳人도 걸어보니 길은 같은 길이 돼 생각은 다른 길입니다.

 

사실 공자가 과거에 동양문화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동서양을 모두 아우르는 사상가며 철학자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어요?

흔히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있잖아요.

 

공자의 사상은 한때 그의 고국에서조차 사라질뻔한 적도 있지만,

공자라는 이름만으로도 돈이 되고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중국 정부에서도 무척 공을 들이나 보네요.

그러니 노벨과 맞짱 뜰 수 있는 인물이라는 말인가요?

그러면서 문화 대혁명 때는 왜 그리 미친 짓을 했나 모르겠네요.

 

중국인이 노벨 평화상을 탄다고 축하는 못할망정 반발하여 공자평화상을 만드는 뻘 짓 하는 후안무치한 나라.

공자와 평화는 무슨 관계입니까?

공자의 비석을 해머로 부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공자 평화상입니까?

부끄럽지도 않나요?

 

오후 내내 별로 하는 일이 없어 시내를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늦은 밤에도 돌아다녔습니다.

한가하면 佳人의 머리는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어깃장과 투정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나 봅니다.

역시, 佳人은 소인배였나 봅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목적을 둔 여행을 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은 코하고 자고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三孔을 구경하렵니다.

공자네 집안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물어보며 다니렵니다.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니 눈치가 빠삭해졌기에 취푸도 공자도 佳人 손안에 잡힐 겁니다.

그런데 공자도 佳人이 여기에 온 것을 알기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