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푸(曲阜 : 곡부)로 갑니다.

2012. 7. 10. 08:00중국 여행기/산동성(山東省)

11월 6일 여행 27일째

 

오늘은 카이펑을 떠나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 : 곡부)로 갑니다.

취푸라는 고장과 공자라는 이름은 우리 한국인에게도 무척 친근한 이름입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계신다는 공자께서 우리 부부가 취푸로 찾아가는 것을 아실까요?

이제 우리 부부의 여행도 거의 끝나 가네요.

아침에 어제 미리 예매해 두었던 버스를 타고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탈 버스는 분명 취푸행으로 틀림없이 끊었는데 그 시간에 출발하는 취푸행 버스가 없습니다.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에 우리 표를 보여주니 어느 버스로 인도하는 데 목적지가 취푸가 아닙니다.

다시 확인하니 기사도 맞는다고 타라고 합니다.

사진에는 희미하지만 지난(제남)행 버스입니다.

그러면 제남으로 가는 버스가 취푸로 돌아간다는 말인지...

 

기차는 취푸로 가는 게 돌아가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버스는 4시간만 걸린다 하고 9시 20분 취푸행 버스는

한 대뿐이라 해 덜컥 표를 샀는데 아무래도 찜찜합니다.

정시에 출발한 버스는 1시간 20분 정도 달리다 어느 도로변에 세우더니 우리 부부와

서양인 한 사람을 내리라 합니다.

뭬야!

외국인은 버스도 태우지 않는단 말인가요?

공자가 그리 가르쳤어요?

 

그런데 버스에서 내려보니 그 앞에 다른 버스가 한 대 서 있습니다.

우리 부부와 서양인을 그 버스에 인계하네요.

이게 무슨 인신매매도 아니고...

왜 그곳에 태안행 버스가 서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버스를 옮겨 타고 다시 달립니다.

물론 돈을 더 내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공자의 마을인 취푸라고 쓴 버스가 아니라 태안이라고 쓴 버스네요.

 

결국, 카이펑에서 취푸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었고 이렇게 중간에 정저우에서 태안행 버스와 연계시키나 봅니다.

좌로 가던 모로 가든 취푸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가요?

지도를 그려보면 대강 위의 지도처럼 처음 카이펑에서 타고 온 지난 행 버스는 취푸와 지난으로 갈라지

지점에 도착해 취푸로 가는 우리 일행 세 사람을 내려주고 그곳에서 정저우에서 취푸를 거쳐

타이안으로 가는 버스에 인계한 것입니다.

왜?

중국이니까... 

 

잠시 후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 섰다 갑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중국어, 한글, 일본어 그리고 영어로 써 놓았습니다.

언제부터 중국이 이렇게 글로벌하게 논답니까?

휴게소에 내려 유일하게 키가 큰 서양인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니 네덜란드라네요.

그 젊은 친구도 취푸로 간다 합니다.

그래서 취푸까지 다시 뭉치기로 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네덜란드 친구와는 축구 이야기와 히딩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급호감을 표시하더군요.

  

우리 부부는 제일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옆에 공자의 후손임을 자부하는 늙은 오빠 두 분이 앉았습니다.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니 취푸랍니다.

우리도 거기로 간다고 하니 반갑다고 하면 취푸에는 산꽁(三孔)이 있답니다.

그게 바로 공묘, 공림, 공부를 말한다 합니다.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출발할 때 중국의 큰 도시 중 방문 예정이 주요 도시의 지도를 만들어 왔기에

보여주며 위치를 알아봅니다.

자기 동네 지도가 우리 손에 들여있으니 신기한가 봅니다.

이것이 혹시 중국의 일급비밀은 아니겠죠?

지도를 미리 복사해 들고 다니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우리가 원하는 곳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고

쉽게 의사표시도 할 수 있어 우리 같은 초보 여행자에게는 무척 큰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방향을 알 수 있어 길 찾기에 무척 수월합니다.

객지에서 동서남북을 쉽게 알 수 있다면, 이미 그곳 지리에 반은 통달한 셈이잖아요. 

 

다시 버스를 타고 3시간 가까이 더 달립니다.

이 버스가 태안행으로 취푸 터미널에 서느냐고 물어보니 흐미~ 고속도로에 내려준답니다.

이제 고속도로라면 절대로 무섭지 않습니다.

오밤중에도 내려서 걸어갔는데 벌건 대낮에 내린다고 우리가 겁먹을 것 같습니까?

역전의 용사가 아니겠어요?

고속도로의 용사인가요?

 

우리와 함께 뒷자리에 앉았던 그 사람들도 취푸에 내린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시내버스를 타고 중심지로 갈 수 있느냐 물어보니 시내버스가 있답니다.

아주 쉽게 갈 수 있게 되었네요.

버스를 함께 타고 온 취푸의 늙은 오빠들에게는 우리 부부에게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라고

해도 되지 않겠어요?

말이 통하지 않아 펑여우하지 않겠지만...

 

오후 2시가 다 되어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톨게이트가 있는 큰 길가에서

취푸에 내릴 사람만 내리고 태안으로 떠났습니다.

버스가 서는 곳에 택시 몇 대가 서서 타라고 합니다.

서양인과 함께 "택시 노!"를 외치며 버스를 기다립니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들었는데 왜 비싼 택시를 탑니까?

 

서양인과 이야기하니 그 친구는 북쪽에서 내려오며 보다가 이곳을 본 후에는 더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여기를 보고 난 후 북쪽인 톈진으로 올라가 이제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갈 계획입니다.

그래서 다음 이동할 곳의 기차표부터 함께 사기로 하고 취푸 훠처짠으로 함께 가기로 하고 시내버스를 탑니다.

 

취푸에서 공묘, 공부는 서로 담 하나 사이로 붙어있습니다.

공자의 묘라고 하는 공림은 조금 떨어져 있지만, 천천히 걸어가도 되는 먼 거리가 아닙니다.

일단, 시내버스를 타고 훠처짠을 찾아갑니다.

서양인은 한자를 모르기에 더 답답하게 여행 중입니다.

영어로 된 여행안내서 하나만 들고 여행 중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친구가 우리와 함께 움직이기를 원하네요.

 

이렇게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국경도 없고 나이도 불문입니다.

혹시 중국어를 몰라 여행이 두려우신가요?

여행안내서 책 한 권 들면 누구나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 나라 말을 모르는 배낭 자유여행은 용기만 필요합니다.

우리 세대 중 배낭여행을 꿈꾸지만, 덜컥 출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언어일 겁니다.

서양인도 대부분 중국어를 하지 못하고 여행 안내서 한 권만 들고 돌아다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톨 게이트에서 1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와 5번으로 갈아타고 기차역으로 갑니다.

서양인은 난징행을 사야 하고 우리는 톈진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젠장! 사진에 보이는 취푸역에는 난징이나 톈진으로 가는 기차가 없습니다.

취푸 동역으로 가서 동차를 타야 한다는군요.

우리처럼 텐진으로 가는 일반 기차는 옌저우(兖州 : 연주)라는 이웃 도시에 있는 기차역으로 가야 한답니다.

그러나 기차역에서는 어디로 가면 표를 살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고 그냥 한 마디 '메이요!"라는 말만 합니다.

 

기차역에서 표를 사지 못하고 다시 시내로 돌아와 숙소를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서양 젊은이는 이미 유스호스텔을 예약했다고 하네요.

우리 부부는 그냥 무작정 숙소를 구하는 타입인데...

 

공부 입구에 버스를 내려 서로 앞으로 계획을 이야기하는데 여학생들이 주위에 갑자기 모여듭니다.

그 여학생은 외국인을 보자 영어가 하고 싶었나 봅니다.

결국, 그 학생들이 서양인에게 유스호스텔 위치를 알려주었고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로 합니다.

혹시 내일 구경하다 우연히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말입니다.

  

우리 부부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삐끼를 따라 여기로 왔습니다.

이 동네는 삔관의 바다입니다.

얼마 전까지 버스 터미널이 있어 무척 많은 사람이 묵어갔겠지만, 지금은 썰렁합니다.

하루 60원씩 이틀에 120원에 묵기로 하고 배낭을 풀었습니다.

아마도 터미널이 이전하지 않았다면 이 가격은 어림도 없는 가격이었을 겁니다.

 

오늘 아침에 카이펑을 떠나 취푸로 왔습니다.

원래 오후는 아무 일정이 없습니다.

내일 하루 종일 산꽁(三孔)을 모두 들려볼 예정이니까요.

그래도 어디 숙소에 머물 수가 있겠어요?

시내 구경이라도 하며 시간을 보내야지요.

 

여기는 공자의 탄생지이며 중국 문화를 이끌어 온 노나라의 도성이 아니었어요?
일찍이 소동파는 취푸를 말하기를
‘옛날의 기풍이 남아있어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글 읽는 소리가 거리에 넘친다’고 했답니다.
지금도 초, 중, 고, 전문학교, 대학교를 합쳐 219개의 각급 학교에 학생 수만도 13만 8천여 명이나 되는

학문의 고장으로 고대 문화유적이 많은 세계 자연문화유산의 소재지라고 해도 될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글 읽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자동차 클랙슨 소리와 오토바이에서 나는 엔진 소리만 들립니다.

그 중심에 삼공(三孔)이라 부르는 공묘(孔廟)와 공부(孔府), 공림(孔林)이 있는데

공묘는 지성묘(至聖廟), 공림은 지성림(至聖林)이라고도 한다는군요.

삼공(三孔)의 주인이신 공자(孔子)는 기원전 552년 춘추전국시대 노(魯) 나라에서 태어나

기원전 479년에 돌아가셨으며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라 한답니다.
노나라에 벼슬하여 대사구(大司寇)가 되었으나 물러나 진, 초 등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13년간을 방랑한 끝에

고향에 돌아와 제자를 기르고 경서를 정리하였는데 제자가 3천이나 되었고 육례(六藝)에 능통한 자도

72명이나 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인(仁)을 근본으로, 효(孝)와 제(悌)를 실천윤리로 하는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역설한 유교(儒敎)의 시조인데
그의 언행을 모아 저술한 책이 논어(論語)라고 하던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예전 버스 터미널 부근이라 삔관이 넘쳐나지만, 

이제 터미널이 서쪽으로 멀리 이전하고 없기에 지금은 무척 저렴한 가격에 묵을 수 있는 곳입니다.

아이구! 터미널이 이사하고 나니 이 많은 삔관이 완전히 개털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살이가 잘 나갈 때가 있으면 이렇게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할 때도 있나 봅니다.

이게 살아가는 일이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