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상부의 꿈이 자라는 곳.

2012. 5. 2.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황성상부의 내성과 외성과는 또 다른 별천지와 같은 공간이 이곳에 있습니다.

이곳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더라면 억울할 번 했네요.

이곳의 주요 용도는 아름다운 원림을 만들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진 서방네 후손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는 서당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 여인들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귀한 곳은 숨겨놓을 듯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선 학동이 공부하는 곳부터 들어가 보겠습니다.

남서원(南書院)으로 들어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달 모양으로 만든 문을 지나면 앞에 조벽을 멋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감도 주고 고운 마음으로 자라기를 바라며 예쁘게 꾸민 것처럼 생각됩니다. 

 

1651년 청나라 순치 8년에 세운 남서원(南書院)은 이름처럼 진씨네 후손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일종의 사립학교인 셈입니다.

재력에 권력까지 움켜쥐고 살았던 가문이라 집안에 이 정도의 육영사업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이런 노력이 진 서방을 최고의 가문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교육...

정말, 지하자원조차 변변히 없는 우리나라를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세운 힘이

바로 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극성스러우리 만치 우리 부모는 자식 교육에 올인하며 살았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마네킹을 이용해 재현해 놓았습니다.

아마도 명심보감 암기 숙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부 앞에 서서 낭랑한 목소리로 명심보감이라도 외우는 모양이네요.  

 

나머지 학동은 차례를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제가 옆으로 다가가도 눈길도 주지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니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더군요.

 

잘난 조상 초상화라도 붙여놓고 후손이 조상처럼 공부 열심히 하여 높은 벼슬길에 오르는 꿈을 가지라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이렇게 출세한 조상을 보며 꿈을 키우라 했나 봅니다.

그런데 사내들 앉은 자세가 대부분 쩍벌남이네요.

 

명나라 때 벼슬길에 오른 사람과 청나라 떼 벼슬한 사람이 관복으로 완연히 구별되네요. 

남서원이라 공부만 하는 건물만 있는 게 아니고 앞쪽과 뒤쪽에 원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공부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 쉽고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잖아요?

佳人이 가장 못한 게 바로 공부였습니다.

 

이렇게 계단을 만들어 산으로 뛰어놀게도 하였습니다.

공부도 체력이 따라야 잘한다는 사실을 이미 진 서방은 알았나 봅니다.

 

물을 보고 마음을 씻으라고 관수세심(觀水洗心)도 하게 했습니다.

공부란 사실 재미없는 일이기에 가끔 이런 곳에 나와 머리도 식히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라고 한 모양입니다.

 

관수세심을 했다면 물론, 꽃을 보며 아름다운 마을을 지니라고 관화미심(觀花美心)도 깨우치라 했겠지요.

황금색 장미를 심어 황제의 지근거리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최면이라도 거는 겁니까?

 

짜증 나고 지겨운 공부를 하는 학동을 위해 피로도 덜고 눈을 잠시 돌릴 수 있는 아름다운 원림을 만들어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한 점은 기발한 발상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대원의 숨 막히는 공부방보다 역시 열린 사고를 한 진 서방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과거시험에 급제한 명단을 적은 방을 이곳에 붙여놓기도 했네요.

우리 학교 다닐 때는 합격자 발표를 저런 식으로 운동장이나 어디에 붙여 놓았지요.

요즈음에는 모두 전산으로 처리하여 운동장까지 가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게시물에서 공부하는 학동에게 최면을 걸어 자기 이름이 맨 앞에 오르는 꿈을 꾸게 한 모양입니다.

 

꿈!

역시 꿈을 많이 꾼 사람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나 봅니다.

佳人도 이곳에서 꿈을 꾸었지요.

바로 소저원에서의 일장춘몽...

왜 佳人의 꿈에는 여자만 나타나는 겁니까? 나 원 참!!!

 

공부하는 공간은 규모 또한 방대하고 학동이 전통적인 교육을 받도록

아름답고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보이네요.

佳人이 만약 이런 곳에서 공부했다면 절대로 집중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주변이 아주 아름다워 다른 일에 매진했을 겁니다.

연애질...

 

진 서방네 자손이 이곳에서 두루 학문을 익히고 유학을 배우고

윗사람을 섬기고 조상의 공덕을 느끼며 유학을 공부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공부하여 과거시험에 영광의 합격을 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발상지가 바로 이 장소입니다.

그러니 진 서방네 힘의 원천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정원 속에 있는 이 서원은 사립학교로 손색이 없었고 진씨네 후손은 모두 이곳에서 엄격한 훈련과 공부를 한 후

과거시험을 통해 벼슬길에 올랐습니다.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 무려 그 숫자가 80여 명이었다 하니 이곳은 그야말로 맞춤형 고시원이 셈입니다.

 

황성촌에서 북쪽으로 500여 m 떨어진 곳에 진정경의 묘지가 있다 합니다.

패방과 비석, 神道, 석상 등이 묘지를 둘러싸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런 황성상부는 워낙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지금도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이곳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기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잘 키운 아들 하나 열 이무기 부럽지 않습니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곳곳에 아들 때문에 이곳이 더 가치를 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 후대에 접어들며 자식들이 변변치 못했는지 지방에서 치러진 과거에만 급제했고 황제 앞에서 치른

베이징의 전시에는 별로였나 봅니다.

세상은 열흘 붉을 꽃이 없다더니만.... 

 

여인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위의 사진에 보듯이 아름다운 발코니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저곳은 금남의 구역이었을 겁니다.

저 발코니에 앉아 차도 마시고 원림을 바라보며 꽃을 감상하고 벌 나비를 희롱하며 지냈을 겁니다.

 

아니군요?

나비는 희롱해도 벌은 사양했을 겁니다.

말벌을 희롱했다가는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게 추석 즈음 벌초하다 말벌에 쏘이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광우병으로는 죽은 사람이 없지만, 추석 즈음에 조상 벌초하다 말벌에 쏘여 죽는 사람이

매년 무려 수십 명에 이른다 합니다.

사실입니다.

 

이곳은 오인루(悟因樓)라는 곳입니다.

오인(悟因)이라면 깨닫는다는 말인데 원인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라는 의미인가요?

오인루는 진정경의 둘째 아들인 진예붕의 딸인 진정연이 시집을 갔다가 서방이 죽어 과부가 되어 다시

집으로 들어와 살 때의 거처라 합니다.

 

그러니 서방이 죽은 원인 분석을 하라는 말인가요? 

오인이라는 말은 오각전인(悟却前因)을 줄여서 쓴 말이라 하네요.

그러니 인생에 대하여 차분히 생각하라는 말인가 봅니다.

 

그런데 만약에 말입니다.

혹시 진정경의 둘째 아들인 진예붕의 딸인 진정연이라는 처자가 우리 부부를 면산에서 만나 이곳으로 추천한

그 아가씨로 환생해 이곳으로 오게 한 게 아닌가 생각했답니다.

혹시 기억하세요?

佳人에 애교스럽게 황성상부를 꼭 가보라고 신신당부한 그 예쁜 아가씨 말입니다.

 

네!

기억하시는군요?

바로 이 소저가 佳人을 이리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왜 소저원에서 佳人의 소매를 잡고 더 머물다 가라느니 밤에 물레방앗간에서 만나자느니 하며

애원한 덜순 소저 말입니다.

인연이 아닌 사람과 만나면 박복하게도 이렇게 일찍 서방을 여의고 혼자 살아가잖아요. 그쵸?

그때 만나지 못해 애태우며 헤매다 지금에야 佳人이 이 근방을 지나가니 이 아가씨로 환생해 佳人에 접근해

회포나마 풀려고...

아~ 덜순소저! 

정말 환장하겠습니다.

 

이곳에는 과부로 살며 자식 교육에 충실했던 어머니로 표현한 마네킹이 있습니다.

권력이면 권력, 돈이면 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아버지를 둔 여자이지만, 서방 복은 마음대로 되지 않나 봅니다.

이런 애통했던 모습을 보여주려고 佳人을 이리로 인도했나 보네요.

 

마네킹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우리를 꼭 들렀다 가라고 한 아가씨와 어찌나 닮았는지 순간 졸도할 뻔했습니다.

덜순 소저~ 잘 있으시게~

佳人은 이만 마눌님 따라가야 한다네~

이번에는 바짓가랑이 잡는다 해도 정말 가야 한다오~

 

울 마눌님은 아직 佳人과 함께 여행할 수 있어 어느 정도 서방 복이 있지 않나 생각되지만...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요?

물어보려고 돌아보니 벌써 저 멀리 가고 있습니다.

헐~~

혹시, 佳人의 속내를 눈치채기라도 했을까요?

머눌님~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이제 자리를 옮겨 황성상부의 마지막 볼거리인 지원(止園)으로 갑니다.

지원은 청나라 초기에 만든 원림으로 진 서방네 최대의 원림입니다.

지원이라 하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쉬었다 가는 정원이 아니겠어요?

 

부지 면적이 만 천 제곱미터의 넓이라 하니 무척 큰 원림인 셈입니다.

물론 원림의 전문가인 강남의 원림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곳은 제법 강남의 원림을 흉내 낸 듯합니다.

 

이 원림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꽃향기가 가득하며 기암괴석이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작은 도랑을 통하여 물이 언제나 졸졸 흐르기에 마음이 즐거워지는 곳입니다.

물소리 새소리에 즐겁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쵸?

 

어쭈구리!

우리나라 경주 포석정과 비슷한 곳이 이곳에도 있습니다.

이곳은 술을 마시며 시를 짓기에 이 이상의 장소는 없을 듯합니다.

실제로 진 서방은 이곳을 즐겨 찾고 지인을 불러다 함께 술을 마시고 시를 짓고 즐겼다 합니다.

 

진 서방!

정말 오랜만이우~

진 서방이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던 佳人이 지금에야 왔수~

오늘 우리 함께 여기에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나 나누면 어떻겠수?

 

지금... 세월이 흘러 진 서방은 가고 말았습니다.

비록,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진 서방네 지원에 그때는 초대받지는 못했지만, 오늘 佳人도 한마디만 하고 가야겠어요.

 

꽃이 핀다,

꽃이 핀다.

꽃이 핀다 좋아 마라.

 

꽃이 진다.

꽃이 진다.

꽃이 진다 서러 마라.

 

세월이 흘러가며

우리네 삶도 피었다 지거늘

피었다 지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이 아니겠소.

 

진 서방이 앞서갔고

佳人 또한 따라가네

 

세상에 피고 지는 게,

어디 꽃뿐이라 하겠는가.

 

잠시 정원에 앉아 죽은 진 서방을 불러내어 함께 노래 한번 했습니다.

진 서방이 귀가 가려울 겁니다.

 

이제 우리는 황성상부를 어느 정도 둘러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 문을 나서게 되면 들어온 입구 옆으로 만들어 놓은 출구로 나가게 됩니다.

 

하산루(河山樓)는 그 누각의 모양이 웅장하고 대단히 큽니다.

중도장(中道庄)은 예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두축거(斗築居)는 뜰과 뜰을 교묘하게 연결하여 외부 침입에 대비해 놓았습니다.

장병동(藏兵洞)은 병사를 숨기기 위한 곳으로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어 기묘하고

남서원(南書院)은 글을 읽는 곳이라 아늑하게 꾸며놓았습니다.

서화원(西花院)은 정원과 더불어 운치를 자랑합니다.

 

이제 佳人의 능력으로는 대부분 다 보았습니다.

더는 자세히 요구하지 마세요.

근처에 있다는 선비의 마을이라는 곽욕촌을 찾아가 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모두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왕가대원의 삭막함보다 이곳은 무척 정감이 가는 곳입니다.

자금성보다도 더 아기자기하고 건물의 용도를 하나씩 뜯어보며 다니다 보니

아주 잘 왔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기회가 되시면, 이곳을 다녀오시라 권해 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먹물을 많이 먹은 곳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