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야오 고성에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2012. 3. 15.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핑야오 고성의 길은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아주 간단하게 이름 지었습니다.

고성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북과 남에 각각 하나씩 있고 동과 서는 두 개씩입니다.

그리고 남쪽은 성벽이 동서로 일자로 곧게 만들지 않고 굴곡지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북문으로 들어가면 남쪽으로 난 큰 도로가 북대가(北大街)라고 부릅니다.

 

 

그 도로가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와 만나서 오른쪽 동대가와 왼쪽의 서대가로 나뉩니다.

북대가는 계속 남으로 나 있지 않고 왼쪽인 동쪽으로 조금 더 가야 남쪽으로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 길을 남대가라 부릅니다.

이게 핑야오에 있는 큰길 전부입니다.

물론 작은 골목길은 무수히 많지만,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길을 아닙니다.

그러니 주역이니 뭐니 따지지 않고 단순 무식하게 거리 이름을 동서남북으로 큰길이라 지었습니다. 

 

 

핑야오 고성은 거북 모양이라 합니다.

위의 지도를 보시면서 살펴볼까요?

남문은 거북 머리이고 북문이 꼬리에 해당한다 하네요.

그럼 동서로 각각 두 개씩 성문을 드나드는 문이 있고 그 밖을 지키는 월성이 있는데

아마도 그것을 다리라 할 겝니다.

72개의 작은 성루와 3천여 개의 화살 구멍이 있고 내부는 황토로 쌓았습니다.

주변에 산은 없어 돌을 구할 수 없고 모두가 황토 평원이라 흙으로 지을 수밖에요.

큰 거리라는 大街가 4개 있고 그 사이로 작은 길이 8개 그리고 골목길이 모두 72개가 있다고 합니다.

무척 복잡해 보이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생긴 고성입니다.

 

 

중국 여행을 하다 보면 마을마다 무엇을 닮았다는 주장을 칩니다.

며칠 후 우리 부부가 갈 예정인 장비 꾸어바오라는 마을은 용을 닮았다고 하더군요.

용이 흔한 나라이기에 용도 자포자기했겠지만 말입니다.

용이 이 말을 들었다면 "재들 원래 그래요~"라고 코웃음 칠 겁니다.

그곳에 가면 용의 속을 화아아악~ 뒤집어 버릴 겁니다.

 

 

거북이를 닮든 용을 닮든 호랑이를 닮든 그게 뭐 그리 대수입니까?

그런다고 세상이 바꾸기라도 한답니까?

살아가는 일이 너무 무서워 용을 불러오고 거북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닙니까?

얼마나 도둑과 전쟁에 시달렸으면 형체도 없는 용을 불러다 보호받으려 하십니까?

중국인들은 너무 힘들게 살아왔나 봅니다.

 

위의 사진으로 다시 보세요.

북쪽인 위는 거북이 꼬리라 하고....

아래는 거북 머리로 두 눈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눈이라고 하는 곳을 직접 찾아가 보니까 그냥 물웅덩이였습니다.

 

 

용이나 거북이보다 차라리 적의 공격을 한 방만 쏘아도 날려버릴 탱크를 닮았다고 하면 어떨까요?

날지도 못하는 거북이나 용보다는 포탄이라도 쏘며 화살에는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을

탱크가 더 실속 있지 않겠어요?

위의 지도에다 덧칠하고 보니 거북이보다는 차라리 바퀴가 달린 탱크라 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중국 여행을 하며 가장 많이 본 것은 우리에게는 없는 자연의 모습입니다.

그다음이 오래된 유적입니다.

그리고 자주 보게 되는 것이 고성의 모습이지요.

그리고 아주 오랜 전통을 유지하며 내려온 특산물이 있을 겁니다.

여기에도 유명한 것이 술집이라고 합니다.

 

 

이 집은 장승원이라는 술도가입니다.

그 역사가 무척 오래되어 한때 문화혁명으로 가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다시 잇고 있다고 하네요.

서태후도 이 집의 술맛을 보고 "굿!"이라고 했답니다.

아~ 죄송합니다.

서태후는 영어를 못했다 하네요.

그러면 "하오(好)~"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이 집에서 만드는 술이 누렇다 하여 황주(黃酒)라고 이름을 지은 술이라네요.

그 외에도 이 지방에서 제법 유명한 것이 술과 더불어 식초라 하네요.

주로 발효하며 사는 동네인가 봅니다.

그러다 보니 고성 안의 모습도 발효하고 있는 중으로 생각됩니다.

 

 

고성이란 성벽을 치고 그 안에서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일이지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담장의 문화라 해도 틀린 밀은 아닐 겁니다.

제일 바깥으로는 만리장성을 국경으로 삼아 둘러싸고 마을은 고성으로 둘러싸고 살았습니다.

골목은 일직선으로 만들지 않고 좁고 구부러지게 만들어 도적이 말을 타고

골목 안을 빨리 달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중국의 후통이라는 곳은 얼마나 오랜 세월 도적과 외부 침입에 시달렸으면 삶의 흔적마저

도적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만들고 살았을까요? 

그리고 가정집은 높은 담장으로 쌓아 올려 아무도 넘어오지 못하게 했지요.

이 부근의 부자들은 개인 집을 마치 큰 고을의 성벽처럼 엄청나게 높게 치고 살았더군요.

 

결국, 이런 형태의 삶이 중국인의 민족성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뭐든지 속으로 감추고 구부러지고 편협된 생각에 자기주장만 펴는 답답한 민족성 말입니다.

자기를 보호한다는 성벽은 마침내 스스로 가두는 일이 되어버리잖아요.

 

 

아~ 해품고...

해를 품은 고성이 보입니다.

해를 품은 핑야오 고성의 성벽입니다.

워낙 온종일 운무에 덮여서 반짝거리는 해 모습이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해를 째려보아도 괜찮을 정도로 짙은 운무입니다.

 

 

중국은 공자, 노자, 장자 등 성인군자도 많고 스승도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한 말은 모두 착하게 살라는 하나의 말로 귀결됩니다.

그러니 묻고 따지고 들어가면 그 내용이 대단한 게 없다는 말이죠.

그런 위대한 역사적인 사람이 한 말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자라며

늘 부모님에게서 들은 단순한 이치입니다.

우리 모두를 힘들게 키우신 부모님께서 바로 중국의 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말이 아닌가요?

 

가르친다는 의미의 교(敎)라는 글자는 효도한다는 의미의 효(孝)와

회초리로 친다는 의미의 복(攵)의 합성어가 아닌가요?

아이들에게 매를 아낀다는 말은 유럽에서도 바보로 만든다는 속담이 있잖아요.

요즈음 너무 학생 자율만 강조하다 더 큰 일을 그르칠까 걱정입니다.

자율도 좋지만 때로는 학생 신분의 규제도 함께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닐까요?

 

 

얼마나 도둑이 많았고 남의 재산과 목숨을 앗아가는 살벌한 세상이었으면

마을마다 그렇게 담장을 높게 치고 살았을까요?

어디 마을 뿐인가요?

개인 집도 담장이 만리장성보다 더 높게 치고 살더군요.

오늘도 또 성벽을 바라보고 혼자만의 생각만 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말이죠..

가끔 그런 답답한 답장에 이렇게 이백(李白)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멋을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도 다니다 보면 이렇게 우리를 가끔 빙그레 미소 짓게 하기도 하지요.

오늘 한번 이백의 시 한 수 읊어보고 갈까요?

 

춘일독작(春日獨酌)이라는 시는 우리에게도 무척 친근한 시지요?

여기는 황주의 본거지인 장승원이 있는 핑야오 고성이잖아요.

어느 봄날, 홀로 술 마시며...

캬~ 죽여준다~

이게 요즈음 우리가 한다는 혼술을 시로 표현했나 봅니다.

 

東風扇淑氣(동풍선숙기) : 봄바람은 맑은 기운 부채질하고

水木榮春暉(수목영춘휘) : 물과 나무는 봄빛에 무성하구나.

白日照綠草(백일조녹초) : 밝은 해는 푸른 풀을 비추고

落花散且飛(낙화산차비) : 떨어진 꽃은 흩어져 날리는구나.

孤雲還空山(고운환공산) : 외로운 구름은 빈 산을 돌고

衆鳥各已歸(중조각이귀) : 뭇 새들은 모두가 둥지로 돌아갔다.

彼物皆有托(피물개유탁) : 그들은 모두 저 갈 곳이 있는데

吾生獨無依(오생독무의) : 내 인생은 의지할 곳 하나 없구나.

對此石上月(대차석상월) : 이 바위 위의 달을 바라보며

長醉歌芳菲(장취가방비) : 오래 취해 봄날 꽃다운 풀을 보며 노래하네.

 

자유여행이란 말이죠~

이렇게 담벼락에 희미해져 가는 그림 하나를 바라보고 우두커니 서서 춘일독작을

노래하고 가도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없기에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자유여행이란 그야말로 자유를 듬뿍 누리는 일이잖아요? 그쵸?

그런데 혼자 술 마시면 술맛이 납니까?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백은 왕따 당했나 봅니다.

무척 외로운 사내였나 봅니다.

혼자 술을 마실 정도면 알코올 중독에 진입하는 입문 과정이 아닌가요?

 

 

위의 사진을 보니 이백의 모습이 마치 춘일독작을 떠올리는 모습인 듯합니다.

노주방이라는 간판과 가게를 지키는 할머니 집에서 佳人과 이백이 함께 할 수 있다면,

춘일독작말고 오늘 밤에 자리를 함께하며 추야다작(秋夜多酌)은 어떻겠습니까?

이백이 시를 짓고 佳人이 난을 치고...

어디다가?

담장에다가....

사실 佳人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합니다.

그래도 늘 마음만은 말 술 마신 사람처럼 즐길 수 있습니다.

 

 

오늘 핑야오에 도착하자마자 고성을 돌아보았습니다.

해품달이 아니라 해를 품은 고성 안을 말입니다.

잠시 들어와 쉬다가 다시 불을 밝힌 핑야오 고성을 둘러보렵니다.

같은 곳이라도 낮과 밤이 다르고 아침과 저녁의 모습이 다를 겁니다.

 

 

물론, 같은 핑야오 고성도 찾아오는 관광객에 따라 어느 분은 무척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분은 그저 그런 곳으로 생각될 곳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그런 곳은 없습니다.

 

 

산서성은 본모습과는 달리 사실 우리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산서성이야 말로 황하문명의 발상지요,

오랜 세월 많은 나라가 생겼다 사라진 곳이 아닌가요?

석탄의 발달과 더불어 밀가루 음식이 발달하여 우리에게도 친숙한 누들로드의 시발점인 곳이지요.

 

 

어찌 보면 가장 중국적인 모습을 간직한 숨은 보석이라 봐도 무난하지 않을까요?

"근대 100년의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를, 500년의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으로, 그리고

5000년의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역사도 깊고 볼 게 많은 곳이지만, 교통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도 요즈음 베이징을 왔다가 산서를 찾는 한국인이 점차 늘어나며

우리 부부도 찾게 되었나 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중국의 지하(地下) 문화재는 산시(陝西)에, 지상(地上) 문화재는 산시(山西)에 있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빗자루를 땅바닥을 쓸기만 해도 모두 문화재가 아닐까요?

 

 

산서성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술의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핑야오 고성은 명, 청 왕조에 대부분 건설되었다 하지만,

그 역사는 2천5백 년 전인 서주(西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합니다.

주변에는 대원(大院)이라 부르는 어마어마한 부자들의 저택이 즐비하다 합니다.

타이위안에서 이곳을 올 때 보통 많이 들리는 교가 대원이 있지만, 우리 부부는 치커우에서

지름길로 핑야오로 바로 오는 바람에 교가 대원을 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면산으로 가기 위해 들리는 지에시우에 가까운 왕가 대원을 들려보려 합니다.

 

 

다만 핑야오 고성은 몇 군데 들어가는 비용이 150원이라는 것은 조금 부담이 가는 금액입니다.

사실 우리 같은 여행자는 그게 어느 구석에 붙어있는지조차 모를뿐더러 대부분이 표호

박물관으로 대부분 비슷한 구조라서 크게 차별화되지 못하였기에 공연히 헛심만 쓰는 일이지요.

차라리 따로따로 입장료를 받으면 보고 싶은 몇 곳만 둘러보는 편이 좋겠지만....

 

 

큰길로만 다니는 관광객에게 이곳 모습은 환상으로 비치겠지만, 한 걸음만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우중충한 색깔의 집, 미소를 잊은 모습으로 표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관광객이 떨구고 가는 돈으로 살아가지만, 청나라 때만 해도

중국의 상권을 좌지우지한 곳이 아니겠어요?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하고 그 배상금을 이곳 진상에서 물어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릴 정도로 이곳 핑야오는 개도 환을 물고 다녔다 합니다.

지금 핑야오 개는 관광객 얼굴만 쳐다봅니다.

 

 

핑야오 고성은 처음부터 계획도시로 설계되었다 합니다.

대동맥 구실을 하는 큰길과 모세혈관과 같은 작은 골목길들이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며 마치 바둑판처럼 네모 반듯하게 설계되었습니다.

워낙 주변에 언덕조차 없는 그런 평야 지방에 만든 고성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이렇게 계획적으로 바둑판 모양의 도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남대가라 부르는 큰길에 우뚝 솟아있는 시루라는 누각은 핑야오 고성의 랜드마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시루로 올라가려면 150원이나 주고 산 통표는 무의미합니다.

10원을 따로 받는 곳입니다.

이 누각은 핑야오 고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1756년 지금의 모습으로 지어졌다고 하네요.

좁은 계단을 따라 꼭대기에 오르면 성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한때는 성벽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으려 했지만,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겨우 파괴되는 아픔을

면했으며 지금은 1년에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세계에서 모여들어 이곳 핑야오에 사는

9만 명이 먹고 살뿐 아니라 이 주변의 수십만 명의 주민이 관광객이

쓰고 가는 돈의 혜택을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때는 이곳의 돈이 전국으로 퍼져나갔겠지만....

 

 

밤의 풍경은 윈난의 리지앙만 못하고 쩐위엔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큰 강이 흐르는 펑황 고성만도 못한 곳이 핑야오 고성입니다.

리지앙은 꽃과 물이 흘러 아름다웠고 펑황 고성이나 쩐위엔 고성은 큰 강이 흘러 시원합니다.

 

그러나 핑야오 고성은 높게 쌓은 성벽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그 안은 우중충하고 뿌연 스모그로 뒤덮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가장 완벽한 고성이라는 자랑도 표정 없는 칙칙한 색깔이 만든 모습은

마치 미소조차 짓지 않는 무표정한 사람의 얼굴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아~ 또 성벽 위를 비추는 저녁해의 모습입니다.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왔나요?

핑야오 고성은 佳人에는 그리 환호가 나오지 않는 조금은 실망스러운 곳입니다.

고성 안은 온통 장사로만 혼잡스럽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많은 중국인 관광객도 그렇고요.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곳도 이렇게 개인적으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그런 곳이 있습니다.

오늘 밤도 코~ 하고 자렵니다.

내일 다시 핑야오를 돌아볼 생각이니까요.

밤에 또 전기가 나가버렸습니다.

물론 한 시간 후 다시 들어왔지만, 佳人은 중국의 밤이 무섭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누가 뭐래도 핑야오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고성입니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그런 곳입니다.

우리에게 잠시 거꾸로 여행하게 합니다.

그러나 佳人에는 그렇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佳人은 가리키는 곳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가리킨 손가락의 때만 바라보았습니다.

감동도 없고 그냥 혼잡한 저잣거리로만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