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월스트리트는 핑야오 고성(平遙 : 평요)의 서대가입니다.

2012. 3. 14.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흔히 중국에서는 산서성의 핑야오를 중심으로 많은 부자가 태어났다 합니다.

이 지역이 옛 진(晉)나라가 터를 잡았던 곳이었기에 이곳의 상인을 진상(晉商)이라 부른 모양입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이런 게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 지방이 부자 마을로 각인되었고

지금도 중국의 대표적인 상인을 진상과 휘상으로 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신중국을 움직이는 힘도 그들이라고 하고요.

 

우리에게도 만상이니 개성상인이니 하며 우리 나름의 맥이 있습니다.

중국은 사람이 많은 나라이기에 규모의 경제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방영된 드라마 상도라고 있었지요?

만상의 사환으로 들어가 대방의 지위까지 오르며 상단을 이끌던 임상옥이라는 실존인물을

재조명한 드라마 말입니다.

오늘 이곳에 온 김에 그들을 몰래 곁눈질하여 돈 버는 재주라도 배워갈까요?

 

만약에 말입니다~

佳人이 완벽히 돈 버는 이치를 터득하고 돌아간다면 아마도 만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럴 리 전혀 없겠지만, 혹시라도...

 

아주 먼 옛날...

춘추시대 이곳 진나라에는 계연(計然)이라는 뛰어난 장사꾼이 있었나 봅니다.

그는 적저지리(積著之理)라는 장사의 이론도 세웠다 합니다.

적저지리라는 말의 의미는 "재산을 모으는 이치"라는 말이라 하네요.

세상에 재산을 모으는 이치만 알면 이 세상의 모든 돈은 佳人의 몫이 되는 겁니까?

 

오늘 혼자만 배우고 글로 남기지 않을 겁니다.

알려달라고 졸라도 어림없는 이야기네요.

그래도 조금은 이야기하렵니다.

우선 계연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니 계연이라는 사람을 진상의 시조로 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 사람은 佳人처럼 손만 대면 손해를 입는 마이너스의 손이 아닙니다.

당시에 뭐든 손만 대면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얼마나 소문이

자자했던지 이미 주변 나라에 알려졌지요.

그 당시 월나라의 구천이 오나라의 부차가 몰래 숨어 섶에 누워 자면 애비 원수 갚겠다고

한 일 때문에 절치부심하며 칼을 갈고 덤비는 바람에 혼줄이 납니다.

대를 이은 복수혈전으로 머리 나쁜 부차에게 구천이 포로가 되었지요. 

 

결국, 구천은 섶에 누워 자면 복수혈전을 다짐하며 덤비는 부차에 패하고 볼모가 되어 부차 애비인

합려의 무덤이나 지키며 지내다가 "부차 너는 자빠졌냐? 나는 맛본다!"라고 하며 병이 나 누운

부차의 변도 맛을 보는 구천상분(句踐嘗糞)이라는 더러운 놀이를 하며 

다시 나라로 돌아오는 영광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 후 고국으로 돌아와 빨기 전문인 구천은 이번에는 다시 쓸개를 빨기 시작하며 다시 복수혈전

시즌 투를 꿈꾸며 우선 거덜 난 나라를 살리기 위해 택한 일이 바로 제일 먼저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진나라의 계연을 찾아 가르침을 받고 월나라의 곳간을 불렸다는

뉴스는 이미 인터넷에 올랐고...

 

구천의 비서실장인 범려까지 구천의 지시로 계연을 찾아 심부름하며 귀동냥으로 배달사고를

위장한 고물을 먹어  부자가 되어 나중에 오나라가 무너지던 날 피비린내로 진동하는 고소대 아래에서

서시와 드라마틱한 재회를 하는 감동을 맛보며 물안개 자욱한 태호를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서시와 함께 사랑의 애정행각을 하며 거상이 되어 부자로 행복한 말년을 보낸 이야기는

아직 신문에도 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범려의 편지 한 통이 구천에게 도착합니다.

"폐하! 이 편지를 읽으실 때쯤 이미 저와 서시를 찾으실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월나라가 오나라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진 지금은 폐하께 더 이상 필요치 않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입니다.

서시의 미모는 폐하마저도 미혹할 수도 있으려니와 저 또한 전쟁에 이김으로

세력이 커져 오히려 폐하의 머리만 아프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만 작별을 고합니다. 再見~"

 

사실은 토사구팽 당하지 않으려고 떠났을 겁니다.

떠날 때를 안다는 일은 사람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지요.

지금도 떠날 시간을 몰라 아직도 권력의 주위를 맴도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기보다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

 

세상에 범려처럼 대단한 장사꾼은 없다 생각합니다.

천하를 얻는 데 전 재산을 투자한 여불위만 한 장사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여자인 서시를 나라를 위해 선뜻 내놓을 사람은 많지 않지요.

 

서시가 누굽니까?

佳人이 제일 만나보고 싶은 여인의 1순위가 아닙니까?

물론, 서시 또한 같은 생각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월을 잘못 타고난 서시와 佳人은 애달프기 그지없습니다.

사실이지만, 이런 말 하는 佳人이 매우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상의 할배를 계연이라 한다는군요.

그의 장사 철학은 "가뭄이 든 해에는 미리 배를 준비해 두고 수해가 난 해에는 미리 수레를

준비하는 게 사물의 이치다.

 6년마다 한 차례 풍년이 들고 6년마다 한 차례 가뭄이 들며 12년마다 한 차례 흉년이 든다.

비싸질 대로 비싸지면 헐값으로 돌아오고 싸질 대로 싸지면 비싼 값으로 되돌아간다.

비싼 물건은 오물을 배설하듯 내다 팔고 싼 물건은 구슬을 손에 넣듯 사들인다."라고 했답니다.

 

아주 평범한 말입니다.

그러나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살아있지요.

문제는 알면서 행하느냐 아니면 행하지 않느냐가 인생을 가르는 일이 아닐까요?

 

이 이야기는 지금의 주식시장처럼 주기적으로 주가는 오르고 내리기에 객장에 애를 업은

아줌마들이 나타나 애기 울음소리가 진동하고 중국 객장에 승려가 나타나 주식 투자하겠다고 하면

고점이라 생각하고 주식을 오물 배설하듯 팔아버리고 여기저기서 주식 실패로 자살했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바닥이라 생각하고 주식에 투자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알고 보면 별거 아니네요.

버핏이 별겁니까?

이미 계연이 천기누설했는데 말입니다.

사실, 지금 주식투자도 이런 이론이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바닥인지 알고 들어갔는데 젠장...

지하 2층, 3층으로 마구 두더지처럼 파고 내려갈 때는 환장합니다.

 

그가 진나라 사람이었기에 이 지방의 상인을 모두 일컬어 진상이라 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중국은 아무래도 고만고만한 작은 군주국이었기에 나라마다 상인연합이 있었고

그런 연합은 상방(商幇)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연합이 계속 명맥을 유지하여 명나라에 이르러는 전국적으로 큰 조직이 10여 개 정도가

있었다는데 그중에 제일은 진상이었다네요.

 

진상을 최고로 치는 이유가 계연으로부터 시작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집단이라는 점이 아닐까요?

두 번째로는 그들이 중원에 자리 잡았기에 취급물품이 어느 한 지방에 나는 물품으로 편중되지 않고

곡물은 물론 차나 소금에 비단, 그리고 철물까지 다양한 제품을 취급했다는 점입니다.

인공위성과 항공모함도 그들이 거래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취급하지 않는 제품은 별로 크게 구매력이 없는 제품이라는 말일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진상의 위치가 중국의 한가운데이다 보니 활동영역이 넓다는 점입니다.

중국 국내뿐 아니라 북쪽으로는 러시아에서 남으로 동남아시아, 그리고 동으로는 일본까지

모두 진상의 나와바리라는 말이지요.

이미 국제무역까지 그 시대에 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지리적인 이점 또한 진상이 최고의 상방이 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상권분석이고 나발이고 따질 필요도 없이 저잣거리에서도 좌판이 80%는 먹고 들어간다 하잖아요.

 

진상은 일찍이 이미 회사를 현대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주식제도를 도입했고,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하여 직원 자신이 일을 찾아서 스스로 하게 하였습니다.

그다음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였으며 친인척을 직원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때부터 수습생인 인턴제도를 도입해 장래에 회사의 동량이 될 사람을 키우는

일에도 투자했다 합니다.

이것만 봐도 이미 진상이란 현대의 경영기법을 수백 년 전부터 도입한 앞선 조직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런 일만으로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만, 다른 상방보다 앞서 나갈 수는 없습니다.

진상은 근면과 성실을 업무의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거짓으로 장사의 파트너를 속이지 않고 눈속임하거나 일시적인 이익을 위해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지도 않았습니다.

나와 거래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익을 남겨야 하며 그 이익은 서로가 만족할 만한 선에서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지금 중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확히 반대로 보면 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는 회사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국내 최고의 회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는 중요한 일은 이익 일부분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지원과 투자를 지속해서

아끼지 않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진상을 누가 의심하며 미워할 수 있겠어요?

 

진상의 3대 기본 수칙은 신용, 근면, 지혜라 합니다. 

그래서 진상을 두고 부르는 다양한 商道를 여러 가지 다른 말로 표현한다 합니다. 

'작은 부자는 머리를 쓰고 큰 부자는 덕을 짓는다.', 는 말이 있답니다.

'군자는 재물을 구하되 도리로써 취한다, '라는 말도 있다네요.

또 근면함을 나타내는 말로 '참새가 있는 곳에 반드시 그 옆에는 진상이 있다.'라고도 했답니다.

진상은 새대가리라는 말인가?????

그리고 노력하는 말로는 '시장은 스스로 기회를 찾는 자에게 열린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청나라 옹정제 때 이야기입니다.

이 지역의 순무인 유어의(劉御義)라는 사람이 황제에게 이런 글을 올렸다 합니다.

그가 올렸다는 글은 물론 佳人이 쓰는 한글이 아니고 어려운 중국어로 써서 올렸을 겁니다.

 

"산서성에서는 똑똑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은 모두 장사를 합니다.

장사꾼이 못 될 것 같으면 농사를 짓거나 군인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도 저도 아닌 자는 글을 읽고 공부하여 과거를 준비합니다."

 

환장할 말입니다.

이게 황제보고 엿 먹으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우리의 현실과 정반대의 말이 아닙니까?

그만큼 이 지방에서는 장사를 한다는 게 인생의 목표라는 말이기에

진상을 중국 최고의 상방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겠지요.

잘난 놈들... 오메 부러운 거~

진상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핑야오에는 다른 곳과 다르게 표호(票號)가 무척 많습니다.

그 이유가 표호라는 중국 은행업무의 시작이 바로 진상의 뿌리인 핑야오에서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당시의 중국은 주로 화폐로 백은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보았듯이 키세* 초콜릿처럼 생긴 원뿔형 그런 은 덩어리 말입니다.

 

그런데 장사를 다니는 사람에게 백은을 지니고 다닌다는 게 무척 불편했을 겁니다.

푼돈이나 벌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야 크게 문제 되지 않겠지만, 제법 규모의 장사를 하는

상인에게는 무겁고 부피도 많이 나가는 백은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일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부피로 말미암아 백은이 있다는 게 사람의 눈에 바로 보이잖아요.

강도의 표적이 되는 셈입니다.

원래 이게 중국의 힘입니다.

강도의 힘 말입니다.

나라도 빼앗고, 주변 나라도 삼키고, 역사마저 빼앗는 얼굴 두꺼운 일을 낙으로 삼고 있는 나라 말입니다.

후 안 무 치!!!!

그래서 장사를 다니는 상인은 미리 표국에 금이나 백은을 맡기고 이곳에서 발행하는

종이에 쓴 환을 간단하게 지니고 다니다

필요하면 거래처에 환을 주거나 그곳에 있는 표국의 지점에 백은으로 찾을 수 있어

무척 편리한 제도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당시로는 엄청난 변화였을 겁니다.

내 금과 백은을 맡기고 달랑 종이 한 장에 쓴 금액으로 바꾼다는 일은 모험이잖아요.

이런 엄청난 변화는 신용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애비도 누가 진짜 애비인지 믿을 수 없는 중국에서 천지개벽할 일입니다.

 

여기에 착안한 영리한 산서상인인 진상이 지금의 수표나 어음과 같이 현금을 대신해

유통할 수 있는 표호를 만들게 되었답니다.

 진상이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많은 사람의 호응으로 정착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동안

오랜 세월을 두고 신용과 성실을 바탕으로 성장했기 때문일 겁니다.

중국답지 않은 일이지만....

 

이 어음과 같은 표호를 쓰는 사람을 신방(信房) 선생이라 불렀다네요.

처음에 신방 선생이라는 말을 듣고는 첫날밤에 남녀의 상열지사의 요령을

 일러주는 선생인지 알았잖아요~

이 사람은 회사의 이익분배에 제외되고 주식 등 지분도 가질 수 없는 무척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평판이 있어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고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 자연히 이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쉽게 생각하시면 佳人같은 사람...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러니 회사에서는 당연히 신방 선생에게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게 되었겠지요.

지금으로 연봉이 은 400~600냥에 달했다 합니다.

당시 지방의 현을 책임지는 현의 수장의 연봉이 은 40~60냥이었다니

얼마나 대우가 좋았나를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 표국은 일승창(日昇昌)이라 하더군요.

일승창은 중국 최초로 표호를 설립한 곳이며 그때 영업을 했던 가게 터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박물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일승창만이 아니지요.

일승창이 큰돈을 벌자 이 마을에 돈 좀 만진다는 사람은 너도나도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위태후(蔚泰厚), 일신중(日新中), 협동경(協同慶), 백천통(百川通) 등

많은 곳이 표호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이 표호를 발행했던 표국은 주로 西大街와 南大街에 몰려 있습니다.

핑야오 고성의 북문은 원래 이름이 공극문(拱極門)입니다.

그 문을 들어오면 앞으로 큰길이 있는데 그 길을 북대가(北大街)라 부르고 그 길은 중간쯤에서 동서로

연결된 길과 만나며 T자 모양의 길이 되는데 왼편인 동쪽으로 난 길을 서대가(西大街)라 부릅니다.

표국이 있는 곳은 대부분 이곳 서대가에 몰려 있습니다.

 

위태후는 원래 비단이나 천을 취급하는 포목업을 하여 큰돈을 번 곳으로 설립자 후백만은

사업이 번창하여 이 지방 최고의 부호로 성장했다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옆집인 일승창을 보니 표호업무를 하며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게 보이기에

바로 표호 업무로 전업해 버려 이곳 핑야오에서는 두 번째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합니다.

원래 누가 장사 좀 된다 하면 누구나 뛰어들고 싶잖아요.

 

그래서 핑야오에서 표호 일을 하는 이들을 통틀어 평요방(平遙幇)이라 불렀다 합니다.

이렇게 일취월장하다 보니 중국은 물론 미국, 러시아, 일본을 비롯하여

동남아로 사업을 넓혔다 하네요.

청 왕조 도광 32년인 1906년에는 중국 전역에 포호가 전부 51개가 있었는데 그중 22개의

표호 본점이 핑야오에 있었고 평요방은 전국적으로 404개의 표호 지점을 거느렸다 하니

이들이 얼마나 이 사업에 앞서 있었나 알 수 있네요.

 

그래서 지금의 어음처럼 환으로 만들고 환을 발행함으로 간단하게 종이 한 장을 들고 필요한 곳에서

찾아 쓰는 제도로 지금 은행이 하는 그 일을 개인이 시작하였다는데 이게 어지간히 신용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

그리고 이 업무가 이곳 핑야오가 중심이 되어 시작하였다 하니

이곳의 물류거래나 돈이 많이 돌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부근에는 중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부자가 많이 탄생했고

그들의 개인 저택인 대원이 수백 개에 이른다 합니다.

 

이곳 진상은 사업의 기본 물품은 차와 소금이었던 모양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우리가 후하허오터에서 다퉁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보았던 소금 호수가 있었지요?

진상은 소금 사업을 독점하며 돈을 벌었고 그다음 품목이 차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이었습니다.

진상은 "큰 부자는 머리가 아니라 덕에서 나온다."라고 하였다니 그들의 신용을 바탕으로

표호업무를 시작한 것은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정말 의심이 하늘을 찌르고 도둑이 횡횡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핑야오의 일승창(日昇昌)은 뇌이태(雷履泰 1770-1849)라는 사람에 의해

1823년 도광 3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합니다.

그는 처음 염료를 취급하는 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뇌이태는 환을 찢어주는 일을 제일 먼저 시작한 셈입니다.

좌우지간 찢어지는 게 특기였나 봅니다.

핑야오 고성에서도 금융가라고 부르는 서대가에다 개업을 했다 합니다.

 

그럼 바로 이곳 서대가가 중국판 월 스트리트라는 말이 아닌가요?

전국적으로 35개 도시에 진출하였으며 환업무 외에도 정부의 은 보관에서부터 조세나

군인의 급여나 예금, 대출 등 지금 은행의 업무 대부분을 했다고 보입니다.

청나라 황궁에서도 일승창을 신뢰하고 거래했다고 알려졌으니 대단한 곳이었나 보네요.

 

입구에 걸린 일승창기라는 편액은 가경 말년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한 진항(陳沆)이 썼다고 알려졌습니다.

장원급제한 사람의 글이라 수고료도 많이 지급했겠지만,

이런 사람의 글도 간판으로 사용한다는 자부심과 오만함도 함께하지 않았을까요?

 

어때요?

잘 쓴 글입니까?

佳人이 쓴 글 말고 간판에 쓴 글 말입니다.

 

일승창기(日昇昌記) 현판을 가만히 살펴보면, 해라는 의미인 日이란 글자가

네 개나 들어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무슨 의미겠어요?

해가 뜨고 또 뜨고 자꾸만 뜨니 매일매일 사업이 동녘 하늘에 해가 두둥실 떠오른 듯

번창하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한때 세상으로 진출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있었듯이 여기는 해가 4개나 있으니...

 

이렇게 잘 지은 이름 때문인가요?

아주 돈도 많이 벌고 해피하게 사업을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북유럽에 가면 백야가 있어 밤에도 해가 지지 않으니 이름을 백야라 지었으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잠자기가 어려워 너무 피곤했을 겁니다.

또 표국의 업무 중 중요한 것이 지금의 택배사업처럼 전국의 지점을 연결해

다른 소상인의 상품을 옮겨주는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이곳 핑야오 고성에는 주로 이런 표국만 들어가는 데 150원짜리 문표를 팝니다.

물론 성벽 위에도 올라가게 하지만...

들어가 봐야 마네킹 몇 개 두고 주판이나 보고 사진 찍고 나오기에

우리는 과감히 들어가기를 포기합니다.

물론 표호에 대한 연구를 위해 오시는 분은 지하 금고도 보셔야 하기에 돈이 아깝지 않겠지만,

백수는 돈이 아까워 들어가지 않고 간판만 찍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아낀 돈으로 또 다음 여행을 꿈꾸며 다닙니다.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스스로 잘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아들이 보태주면 고마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간판만 찍고 돌아다닌 데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사실 내부의 모습은 이미 TV 프로그램을 통해 대부분 보았기에 굳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본 만큼 佳人도 알면 되지 않겠어요?

계연에게 물어보면, 이것도 돈 버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할는지 모릅니다.

이곳의 돈 버는 비법을 혼자만 알고 있으려 했으나 전부 글로 써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