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였느냐?

2012. 2. 11.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현공사의 회랑이나 구름다리는 구도자나 참배자만 다니기 위해 만든 게 아닙니다.

그 안에 모셔놓은 부처와 공자 그리고 도교의 모든 신을 서로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어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신과 신만 연결하는 고리겠어요?

이곳은 아울러 중생을 신의 세계로 사바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다리라 보아야 할 겁니다.

한마디로 서로 통하게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곳에 오른 덜수도 세상과, 신과, 그리고 하늘과 通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만약, 여기를 올라 세상과 통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조금은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사바세계는 미물에 불과합니다.

처마 끝에 걸린 용머리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낭창 한 팔작지붕에 황금색 기와로 멋을 내고 워낙 짧은 지붕이라

잡상을 많이 올리지 못하고 봉황을 탄 기봉 선인만 올려놓았습니다.

 

또 하나의 사당이 있어 들여다보니 포신불(抱身佛)이라고 모셔놓았네요.

그런데 눈을 유리로 끼워 넣어 캄캄한 곳에 반짝거려 깜짝 놀라게 하네요.

차라리 중국인이 잘하는 조명장치를 눈 안에 해 놓아 윙크하듯 오른쪽 왼쪽 눈이 번갈아가며 반짝거리게 하던가

레이저로 쏘아버리면 구경하는 사람이 식겁하지 않겠어요?

 

이번에는 응신불전(應身佛殿)입니다.

여기도 비슷한 형상입니다.

같은 사람이 만든 모양인데, 너무 생각 없이 만든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여기도 눈을 유리로 만들어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부처는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중생의 상황이나 때와 장소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나 도와주나 봅니다. 

 

이번에는 뢰음전(雷音殿)이라는 곳입니다.

만든 사람은 화려하게 만든다 했겠지만, 보는 사람은 정신이 사납네요.

이런 모습에 마음을 가다듬고 수양을 한다는 일은 우리 같은 중생은 택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대단한 경지에 올라야만 마음이 안정되며 득도의 길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제 이곳을 빠져나오면 계단 아래에 전각 뒤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좁은 토굴 같은 개구멍이 보입니다.

워낙 좁은 면적에 건물을 올리고 드나드는 길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방법이겠지요.

기다시피 허리를 숙이고서야 빠져나갈 수 있겠네요.

 

그곳에는 삼관전(三官殿)이 있습니다.

아마도 공자, 노자 등 여러 신을 모셔놓았나 봅니다.

먼지라도 털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황금색의 옷을 입혀드리면 무엇합니까?

 

현공사는 1.500여 년 전, 북위의 도사(道士) 구겸지(寇謙之)가 그의 제자인 이교(李皎)에게

"공중에 사원을 건립하라."라고 한 유언에 따라 북위 태화 15년(491)에 이곳에 현공사를 짓고,

처음에는 지금의 현공사(懸空寺)가 아닌 도교적 수식어를 사용한 현공사(玄空寺)로 이름을 지었다 전해집니다.

 

이곳은 불교와 도교, 유교 통합의 독특한 사찰로 한 전각에 노자와 공자와 부처를 함께 모셔놓은 곳이기도 합니다.

또 이곳에는 삼국시대 제갈량이 출사표를 쓰고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절벽에 길을 만들어가며

군사와 물자를 이동시켰다는 잔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답니다.

 

또 전해지는 다른 이야기로는 현공사가 있는 산기슭으로 강물이 흐르는데 폭우가 내릴 때마다

홍수피해가 생기곤 했다네요.

사람들은 이런 홍수피해가 금용(金龍)의 장난에 의한 것이라고 여겨 탑을 세워 그 용을 누르고자

현공사를 세웠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 오늘날의 현공사가 있는 밑 부분의 공간이 교통 요충지였기에 옛사람들은 사찰을 절벽에

매달리게 짓는 방법을 생각해내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는군요.

현공사가 있는 이 협곡의 이름이 금룡협이라 한다네요.

 

이곳이 독특하게 3교가 함께 하는 이유는 아마도 북위가 북방민족을 통일하며 융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북위는 원래 불교를 억압하다가 담요에 의해 불교를 받아들이며 석굴 파기 전문 국가로 거듭 태어났잖아요.

그 증거로 다통에 운강석굴이 있고 도성을 뤄양으로 이전하고 난 후에 뤄양에다 또 용문석굴을 만들었잖아요.

 

누각은 창문이 없습니다.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든 모두 거침없이 반대편으로 흘러갑니다.

자연에서 온 것은 가두지 않고 모두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전각의 무게도 줄이고 일거양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득도를 한다는 일은 내게 들어온 것을 가두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일인가 봅니다.

진리는 바로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요.

세상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고 내 마음속에 들어온 것을 가두어 두면 그게 그대로 남아

그 마음이 나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곳은 흘러들어온 바람마저 가두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냅니다.

이런 단순한 진리조차 깨닫지 못하고 수십 년간 수도를 했다는 어떤 구도자는

자기 마음에 들어온 미움을 그대로 발설합니다.

그래서 언제 성불하시렵니까?

 

깨달음이란 오랜 시간 수도를 통하여 얻어지는 게 아니라 아주 쉽고 단순한 일부터 깨닫는 일입니다. 

내 마음으로 들어온 미움을 흘려보내면 덜수처럼 득도하십니다.

만약, 마음에 탐욕을 남겨놓는다면, 성불은 고사하고 인간도 되지 못하는 망나니가 됩니다.

버리세요.

이곳처럼 들어온 바람을 그대로 흘려버리듯이 버리시면 애초에 고요하고 잔잔하고 맑은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속세의 이야기를 흘려버리지 못하고 마음에 남겨두시니 맨날 핏대만 올리며 아수라처럼 추해지십니다. 

 

그곳에는 또 천수관음전이 있습니다.

청소도 하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네요.

먼지란 바로 자연에서 날아온 티끌이 아니겠습니까?

날아온 먼지가 다시 날아가지 못하더라도 그냥 함께 세월을 견디나 봅니다.

이 지역이 석탄생산지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먼지조차 석탄가루였습니다.

 

아닌가요?

워낙 속이 타 새까매졌나요?

탄가루를 그냥 두시면 천수관음일지라도 진폐중에 걸릴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탄가루에 좋다는 삼겹살을 먹을 수는 없잖아요.

 

천수관음상만 보면 어린 시절 했던 놀이가 생각납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한 사람이 고개를 숙이면 손가락으로 뒷목을 살짝 찌르는 놀이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어느 손가락이게~"

만약, 천수관음상과 그런 놀이를 했다가는 한 번도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확률은 1:5.000입니다. 헐!

왜요? 천 개의 손에는 각각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어 모두 5천 개나 되잖아요.

 

이곳에 보관된 금나라 때의 비석에 세 종교를 합친 것에 대해 칭송했다 하네요.

그러니 신이라도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되는 겁니까?

총 40칸의 건물과 80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네요.

 

당신은 무얼 그리 바라보십니까?

풍경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 당신!

그동안 마음에 쌓아 두었던 佳人에 대한 미움을 창문도 없는 누각에 서서 모두 흘려보내셨습니까?

풍경소리란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부디 佳人에 대한 미움을 모두 흘려보내셨기를 기원합니다.

 

이번엔 당신은 무얼 그리 간절히 바라십니까?

"내년에도 당신과 같이 여행하게 해 달라고..."

"그러면 그런 작은 소원은 내게 이야기해야지 바쁘신 부처, 공자나 노자에게 부탁하면 기억이나 하겠어요?"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남은 삶 동안 당신을 더 사랑하며 살게 해 달라고..."

"당신... 덜수같은 佳人과 함께 살며 정말 속이 새까매졌지......"

 

佳人아! 이제 세상과  하였느냐?

부부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사랑은 세상의 시작이고 완성이니라.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다만, 껍데기만 보았을 뿐이니라.

만졌다고 해도 껍데기만 만진 것이니라.

인간이란 껍데기만 보고 환호하는 그런 부류이니라.

느껴야 하느니라.

그게 마음으로 통하며 알아야 세상을 알아가는 길이니라.

그게 바로 通하는 것이니라~

겉만 명품으로 포장하기보다 내면을 명품으로 채우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곳은 대웅전입니다.

이곳은 부처만 아니라 공자, 노자까지 모셔놓은 곳입니다.

한 지붕에 세 가족이 지내고 계시는 곳입니다.

한 지붕이 아니라 한 방 안입니다.

유리로 막아놓아 정면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옆으로 찍어보았습니다.

원래 사진 촬영을 금하는 곳이라...

 

우리가 이곳에 오면 왜 저런 곳에다 절을 지었을까?

그리고 왜 하나의 신을 모시지 않고 노자와 공자 그리고 부처를 함께 모셨을까?

이 두 가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구겸지는 북위 시대 때의 도사(道士)였다고 합니다.

도사란 도(道)를 닦는 선비(士)란 말이 아니겠어요?

여기서 말하는 도(道)란 도가(道家), 도교(道敎)의 도(道)를 의미할 겁니다.

도교란 바로 신선사상이 아니겠습니까?

구겸지는 상당한 위치에 오를 정도로 도에 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마도 이 정도의 높이는 그냥 붕붕 날아다녔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말입니다.

 

그런 자신감으로 세상에 나와 자신의 영험한 재주를 알리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곳 다퉁에 도착해 황제인 태무제에게 도교에 관한 책을 선물하고 황제의 스승이 되었다 합니다.

이래서 북위는 한동안 불교를 배척하고 도교를 국교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황제 앞에서 구겸지가 구름을 부르고 붕붕 날았을까요?

 

그런데 도교란 사람이 생전에 열심히 도를 닦은 후 죽으면 신선이 된다는 사상이라 했나요?

그러니 신선이란 바로 구겸지처럼 대단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에게는 우선권이 주어졌겠지요.

그래서 구겸지는 그의 제자인 이교(李皎)에게 하늘에 걸린 사원을 세우라 했었던 모양입니다.

 

바로 인간세상과 하늘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곳이 현공사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현공사에 가면 아마도 하늘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구겸지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도를 득한 사람에게는 보일 수 있겠습니다.

오늘 구겸지와 통하셨습니까?

통하셨다면, 더는 희로애락에 연연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도사란 우리와는 다른 존재이기에 가끔 이렇게 기상천외한 엉뚱한 짓을 하나 봅니다.

 

두 번째 의문인 한 군데에다 유교 도교 불교의 3교를 함께 모셨는가입니다.

심지어는 한 방에다도 모셨습니다.

그 이유는 도교란 불교의 영향도 받고 신선사상도 포함하고...

그러기에 많은 종합 종교가 아니겠습니까?

백화점처럼 원 스톱 쇼핑을 할 수 있게 말입니다.

 

사실 중국을 다니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와는 많이 다른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절이란 부처만 모시는 곳이 아닌 곳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민간신앙이 체계적으로 더 발전한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도 주변에 많은 신을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일도 아찔한 경험을 계속하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현공사에 佳人과 함께 올라 거시기가 통하였습니까?

아직 아무것도 통하지 않으셨다고요?

그러시면 직접 그곳을 가셔야 할 듯합니다.

현공사에 서서 바라보면 정말 신선이 된 듯하답니다.

 

아무리 둔한 佳人도 그곳에 올라 내려다보니 세상이 우습게 생각되더이다.

세상이 우습게 보인다는 일은 바로 신선의 문턱에 선 게 아닐까요?

제가 정신이 몽롱해 거시기해진 겁니까?

거시기와 通하기가 이렇게 쉽고 간편하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