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촉한의 시작과 끝

2013. 10. 23.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2012년 11월 13일 여행 26일째

 

오늘은 무후사를 가려고 합니다.

무후사는 삼국지 기행에 상당히 중요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삼국지의 한 축을 담당했던 촉한의 황제 유비의 무덤과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이 함께 있는 곳이니까요.

 

함께 여행 중인 친구는 삼국지 기행에 그리 큰 관심이 없기에 의논 끝에 오늘은 어메이 산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워낙 독실한 불교 신자이기에 무후사보다는 아무래도 어메이 산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습니다.

아침에 바로 코앞에 있는 신남문 터미널에서 어메이 산으로 가는 버스를 태워 보내고 우리는 시간이 넉넉하기에

천천히 걸어서 시내 구경도 하며 무후사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청두는 유비에 행운의 땅이고 꿈의 구장입니다.

제대로 연고지조차 없이 남의 운동장을 빌려 눈치나 보며 연습하다가 이제 반듯한 홈그라운드를 마련했으니까요.

그뿐인가요?

이곳에서는 명함에 CEO 유비보다 더 폼 나는 촉한 황제 유비라고 이름을 새겨 천하에 돌릴 수 있었잖아요.

 

오늘의 일정은 청두 시내를 차를 타지 않고 두 발로만 걸어서만 다니려고 합니다.

친구와 함께하면 마음껏 걸을 수 없지만, 우리 부부 둘 만이기에 질릴 정도로 걷고 싶습니다.

숙소에서 무후사까지는 그리 먼 곳이 아니기에 우선 쓰촨대학 캠퍼스를 들렀다가 무후사를 갔다가 그 옆에 있는

진리 거리를 걸어보고 다시 티베탄 거리를 갔다가 인민공원을 거쳐 콴샹즈라는 거리도 걸어보려고 합니다.

쓰촨 대학은 어제 밤에 만난 미국인이 추천해준 곳입니다.

 

물론 티베탄 거리도 어제 만난 같은 숙소의 미국인이 소개한 곳으로 무척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지만,

미국 경찰과 달리 그곳을 경비하는 중국 경찰은 총이 없어 안전하다고 합니다.

공명을 모신 무후사가 가까이 있으니 미국인조차 중국 공안을 읽어버렸습니다.

미국인은 먼 거리가 아니기에 우리보고 걸어보라고 추천하더군요.

자기는 자전거를 가지고 타고 다니면서...

 

위의 인형을 보니 오른쪽의 제갈량과 4명의 무장이네요.

그런데 금마초라는 마초장군이 빠진 듯합니다.

쓰촨이라는 관광지는 우리에게도 무척 많이 알려진 곳으로 한국인이 즐겨 찾는 곳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이곳의 정보는 인터넷으로 키보드 한 번만 두드려도 대부분 알 수 있는 곳이지요.

쓰촨의 청두라는 곳이 중국에서도 제일 많이 알려지게 된 동기가 바로 유비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관우가 아무리 유명해도 그는 이곳에 구경도 오지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위에 보이는 오호상장에는 마초까지 출연했습니다.

무후사를 포함해 다른 여행 정보는 많은 분이 소개했기에 佳人은 이곳을 다른 각도로 접근해 보려 합니다.

이번 여행의 주제가 삼국지 기행이니 삼국지와 관련된 이야기로 여행기를 쓸까 합니다.

그러니 이게 내 마음대로의 여행이고 이야기라는 말이 되겠네요.

 

위에는 누가 또 빠졌을까요?

쓰촨(四川)이라는 지명은 민강, 금타강, 부강, 가릉강이라는 네 개의 강이 흐르기 때문에 그야말로 네 개의 강이라는

의미인 사천(四川)이라고 이름붙인 곳이라는군요.

쓰촨이라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가 제갈량과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함께 세운 나라인 촉한의 근거지지요,

 

촉(蜀)이라는 글자에 사용된 罒는 원래 눈이 큰 사람을 의미하는 한자였다고 합니다.

눈이 크다는 말은 동양인이 아니라는 의미지 싶습니다.

유비가 촉한을 세우기 이전에 이 지방에는 이미 촉이라는 나라가 있었기에 한나라의 후손인 유비가 세운 촉을

구분하기 위해 촉한이라 부르나 봅니다.

 

청두에서 멀지않은 삼성퇴라는 유적에서 발굴된 청동문화는 아직 그 기원이나 어느 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합니다.

상나라 시기에 중원에서는 투박한 청동 솥이나 만들었지만, 그 이전에 이곳 청두에 살았던 민족은 아주 정밀한

얼굴상과 그외 정교하고 아름다운 많은 청동제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발견된 청동 인면상은 외계인처럼 눈이 정말 큰 얼굴이거든요.

그래서 눈이 큰 사람들이 만든 나라가 촉이라 하여 이 지역을 눈이 큰 사람이 만든 나라라는 의미로

蜀이라고 했지 싶습니다.

믿을 수 있는 정보냐고요?

佳人을 잘 아시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곳 촉한을 유비가 세웠다고 하니 좀 그렇네요.

창업이라기보다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상권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싸움의 달인만을 동원해 윽박지르고

갈취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갈취라는 말은 너무 심한 표현이 아닐까요?

 

사실 이곳에 유비가 나라를 세운 일은 도움을 요청한 종친인 유장의 사업장을 싸움꾼을 거느리고 들어와

공갈과 협박을 동원해 대표자 명의를 변경하고 먼저 전임 대표는 시골 오지로 들어가 쉬라하고 주식을 100%

차지하고 스스로 대표에 취임해 떵떵거린 사람이 바로 유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우리 속담처럼...

 

유비와 같은 유씨 집안의 유장이 다스리던 곳이 한중으로부터 위협을 받자 도와준다고 군사를 이끌고 들어가

그냥 소리소문없이 낼름 삼켜버렸지요.

그 이면에는 장송이라는 사람이 유비를 직접 찾아오게 했으면 그를 통해 기절할 만큼 접대함으로

장송이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달라고 서천의 자세한 지도까지 주는 일을 하게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런 장송을 볼기를 때려 내쫓은 조조가 양반이네요.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했나요?

굴러 온 돌이라기보다 예약한 돌이죠.

이미 일찍이 유비가 삼고초려를 할 때 공명이 건넨 계책에 익주를 접수하라는 사인이 있었으니

예약한 돌이 박힌 돌을 뺐다고 봐도 되겠네요.

그런데 하나만 뺀 게 아니라 아주 그 동네의 돌을 모두 빼고 자기 돌로 바꿔치기 했지요?

 

어떤 사람은 유비의 아주 뻔뻔스러운 작업의 결과였다고 말하기도 하죠?

손권도 유비가 떠날 때 매제인 유 서방이 날 강도질 하기 위해 간다고 엄청나게 욕을 했다잖아요.

많은 신하가 반대했지만, 종친이라고 믿을 수 있다고 했던 유장을 무척 머쓱하게 만든 유비였다네요.

세상에 누가 누구를 믿는단 말입니까?

유비 믿다가 발등 찍힌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꺼진 불보다 가까운 종친도 다시보자는 표어도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배 째고 들어오는 욕이 없다고 뻔뻔스럽게 익주를 접수하고 이곳에서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유 서방이 아니겠어요?

그러니 여기가 바로 유비가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셈입니다.

그리고 비록 천하 통일을 하지 못하고 한실 부흥도 이루지 못했지만, 유비 스스로는 이곳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그야말로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큰 소득을 올리고 꿈을 이룬 근거지였을 겁니다.

돗자리나 짚신을 팔던 사람이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둥근 모서리는 특허라고 세상의 돈을 긁어모은

누구처럼 세상에 성공한 사람 그룹에 들어갈 겁니다.

 

대업에 실패하면 어떻습니까?

이 풍진 세상에 태어나 인간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렸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한실 부흥이라는 일은 하고 싶지도 않았는지 모릅니다.

다만, 명분으로써는 더 이상의 좋은 조건은 없잖아요.

 

관우가 죽자 복수의 일념으로 동오로 떠나는 유비에게 공명과 조자룡이 그렇게 말렸잖아요.

작은 일보다 천하 통일의 대업을 생각하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듣지 않고 관우 원수 갚겠다고 떠난 유비가 한실 부흥이라고요?

이런 일을 소탐대실이라 해도 되지 않겠어요?

 

조조는 자기가 천하를 속일지언정 천하가 자기를 속이는 꼴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지만.

천하를 속인 일은 별로 없었다고 봅니다.

왜?

조조는 워낙 속이 뻔히 보이는 말과 행동만 골라 했으니까요.

 

그러나 유비는 그런 말도 하지 않고 천하를 속인 셈이 아닌가요?

죽으면서까지 띨띨한 아들을 공명에 부탁하는 뻔뻔스러움...

그러면서 능력이 되지 않으면 공명 보고 대신 황제 자리에 오르라고요?

유선이 함량 미달로 능력이 되지 않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인데...

자기가 황제가 되어 자자손손 계속 황제 자리를 이으면 그게 한실이 되기는 하겠군요?

 

한실부흥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도 안 되고 아니면 황제의 자리를

선양한 헌제를 이곳으로 모셔오던가 모셔오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체 헌제는 이미 죽어버렸기에 그도 어렵다면

가장 가까운 서열의 황족을 모셔와 황제의 자리에 앉히고 보필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살아생전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보았는데요. 뭘~

 

손권의 오나라는 장강을 품고 국력을 키웠지요.

장강은 천혜의 요새와 같았고 조조도 쉽게 껄떡거리지 못한 이유가 장강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비옥하기까지 하니...

 

그렇다고 조조의 위나라는 어땠나요?

물론 황하라는 큰 강이 지나가기에 큰 나라를 유지하기에 더없는 지역이지요.

인구가 제일 많았고 물산 또한 풍부한 지역이었다네요.

게다가 주로 북방계 사람이라 건장하고 용맹하기까지 하잖아요.

특히나 기병은 빠르고 무척 용맹스러워 땅 위에서는 천하무적이지요.

 

그런데 촉은 어떨까요?

큰  강이 없다고 쫄면 되나요?

바로 촉이 자리한 사천은 비록, 큰강은 없지만, 작은 강일지라도 네 개나 있기에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곳입니다.

사천이라는 곳의 지명이 바로 네 개의 강이 있는 곳이라는 四川이 아니겠어요?

 

쓰촨은 인구가 적고 사천 평야를 빼고 나면 넓은 평야는 별로 없는 곳입니다.

삼국지 중 두 나라와 비교하면 제일 열세인 곳이죠.

그러나 진령산맥이 버티고 있어 중원에서는 옛날부터 이곳을 쉽게 점령하지 못한 곳이잖아요.

지리적으로 보면 공격보다는 수비에 적합한 땅이 쓰촨 지역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중원인 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험하기로 유명한 금우도를 넘어야 하고, 그 험로를 지나면 다시

진령산맥이 가로막고 있지요.

우리가 바로 그 길로 넘어와 보았기 때문에 그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파산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분지형태의 지역이 지금 청두라는 곳이라 했나요?

 

그러나 들고 나는 일만 없다면 이곳은 외부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 천연적인 안전한 곳이군요.

그 안은 무척 기름지고 살기에는 그만이 곳이었나 봅니다.

촉이 이때까지 외침에서 벗어났던 이유는 바로 이런 지형 때문이었을 겁니다.

조조마저도 쉽게 이곳을 침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쓰촨은 소문내지 않고 자기들끼리 먹고 살기에는 그만인 곳이라 합니다.

이미 공명의 수첩에는 부동산 투자 1순위로 올라가 있었고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하게 되었지요. 

늘 유비가 어떻게 짐승처럼 같은 종친의 땅을 삼킬 수 있겠냐고 순전히 정치적인 발언만 하기에

뜸만 들이고 있었지요.

이게 아주 웃기는 말장난이 아니겠어요?

이미 수첩에는 늘 서천을 먹어야 "Dreams come true?"라고 적고 아래에는 밑줄까지 쫘아아악~

그어놓고 말입니다.

종친은 무슨 얼어죽을 종친입니까?

같은 유 씨이기에 누가 이 지역의 맹주가 되든 사실은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