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22.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이제 마호애묘를 나서 바로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 오우사가 있는 오우산을 올라갑니다.
마호애묘는 우리와는 다른 장묘문화를 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역시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중국은 이렇게 죽은 자를 위한 공간도 무척 다양한 모습입니다.
석벽을 파고 그 안의 내벽을 아름답게 조각을 해 부조를 새겨놓은 모습은 죽어서도
참 멋진 일이라 생각하며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도 구경할 수 있잖아요.
무덤도 이렇게 앞에서 보니 마치 무슨 사람이 모여 사는 연립주택으로 보입니다.
그 안에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간단하게나마 만들어 놓은 일은
비록 죽은 자를 위한 장소지만, 무척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그곳 벽면에 조각한 많은 그림 중 해학적으로 표현해 놓은 모습을 볼 때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최대한 서비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죽은 자가 무덤에 누워 그 모습을 보고 키득 키득거렸을까요?
슬픈 죽음 앞에서도 그런 생각으로 묘지를 만든 그들에게 손뼉을 쳐주고 싶습니다.
돌아보는 내내 수천 년의 흐른 지금이지만, 얼굴에 미소가 슬그머니 떠올라
무척 재미있게 보았고 디따 크게만 만든 돌쇠처럼 생긴 낙산 대불보다
왜 마호애묘가 더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우산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참 멋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치 이곳 다리는 인간세상에서 신선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 드는 다리
모습으로 중국 여행을 하다 보면 다리도 관광자원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전에 산지앙의 풍우교를 보려고 마안짜이의 동족 마을을 일부러 찾아간 적도 있으니까요.
위에 보이는 두 장의 다리 사진은 제일 가운데 아치 위에서
서로 반대편을 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다리를 좌우동형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왜 비슷한 사진을 겹쳐 올렸느냐고 생각하셨죠?
동족의 풍우교도 멋진 모습에 반해 찾아간 적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다리 대부분은 무지개 모습의 아치형 다리로 만들어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모두 만족하게 하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 그 옛날 그들의 삶이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만 사랑이 있었겠어요?
다리란 이렇게 세상과 사람을 이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잖아요.
다리 위에 서서 멀리 뒤돌아보니 방금 지나온 어촌이 보입니다.
저 어촌의 모습이 바로 배처럼 만든 마을이라 합니다.
저 어촌에 살며 중년의 사랑을 꿈꾸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보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의 사랑처럼 이 다리 위를 오가며
불꽃처럼 불살라버리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그런 중년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불륜이라고요?
사랑은 국경도 나이도 극복하는 그런 상상 밖의 일이잖아요.
다리를 건너며 佳人은 잠시 환상에 빠졌네요.
이제 다리를 건너서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2시 45분경으로 오전 11시경에 러산대불 경구 문을 통과했으니
여기까지 천천히 두리번거리고 왔으니 거의 4시간이 가까워집니다.
잠시 산을 오르니 정자 하나가 보입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이라 잠시 쉬었다 가렵니다.
방금 낙산 대불 앞에는 많은 중생이 바글거렸지만, 이곳 오우사로 가는 산길은 우리
뿐으로 우리가 가려는 오우사라는 절은 산너머 반대편인 강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며
이곳 동문에서 들어가 오우사를 가려면 방법은 이렇게 산을 완전히
넘어가야 하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네요.
산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이 산에는 애묘라 부르는 돌을 파낸 옛날 묘가 무척 많이
보이는데 이곳은 방금 보고 온 마호애묘보다 입구가 작아
석관 하나 들이밀 정도의 크기네요.
그래도 묘실 앞에는 제법 멋을 부려 지붕도 만들었네요.
산을 오르는 길에 돌만 있으면 이런 묘실을 만들었습니다.
이 부근에 500여 개나 이런 애묘가 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두 개의 묘실을 나란히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부부의 묘가 아닌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세월이 지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빈자리만 남았지만, 이 작은 곳에 영원한
안식을 취한 사람도 살았을 때는 지금 우리처럼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살았을 겁니다.
서로 처음 만났을 때 사랑이 싹 텄을 것이며 사내 덜수는 덜순이를 본 순간
뻑소리나게 갔을 것이고 비록 아까 본 마호애묘보다 규모는 작지만, 이곳에 묻힌
사람의 사랑과 꿈은 큰 무덤에 묻힌 사람과 비교해 작지만은 않을 겁니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따라 오르니 드디어 오우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러산대불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대불만 보고
돌아가기에 이곳에는 우리 외에는 일반 관광객이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어느 절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천왕전이 있습니다.
유리로 앞을 가려놓았습니다.
오우사는 천왕전 외에도 미타전. 미륵전, 관음당 그리고 나한당이 있습니다.
크기가 그렇게 큰 절은 아니지만, 무척 아기자기하게 자리했습니다.
대불로 가는 능운사는 많은 사람으로 복잡했지만,
여기는 찾는 사람이 없어 조용히 둘러볼 수 있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무량수불이라는 말은 아미타불을 높여부르는 말로 부처의 수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길기에 그 은혜마저도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지 싶습니다.
사찰 앞에는 청의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그 정자에 오르면 앞이 탁 트여
바로 민강을 그대로 볼 수 있으며 민강은 대불 앞을 지나 오우사 앞으로 흘러 장강으로
내려가는데 청의정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이리로 흘러내려 온 청의강에서
이름을 빌려 온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대웅전으로 들어가면 안으로 계속 들어가게 하여 놓았습니다.
우리나라 사찰과는 다르게 사찰의 형태도 사합원으로 지었기에 답답합니다.
건물 간 간격이 좁아 답답한 느낌이 들더군요.
마치 중국의 전통가옥인 사합원을 여러 개 겹치게 한
그런 대원 안을 걷는 그런 기분입니다.
오우사에서 가장 볼만한 게 오백 나한을 모신 나한당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무척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나한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옷 모양이나 표정이 모두 달라 돌아보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오백 나한은 마하가섭부터 주로 인도의 승려를 모셨다는데 중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석가모니부터 주로 중국의 선사들이라 합니다.
이곳은 특히 신라인인 무상 스님이 455번째로 모셔진 게 특이하다 하답니다.
복도 가운데 천수관음상이 있는데 먼지 때문에 조금 지저분하다는 생각이네요.
이제 러산에서 모든 일정을 끝냈습니다,
아까 올라온 곳이 아닌 반대편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민강이 흐르는 모습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말입니다.
산 아래에 도착하면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이곳 가게에서 향을 파는데 지금 사진에 보듯이 향의 길이가 장대 크기입니다.
佳人은 이신바예바가 장대높이뛰기 할 때 사용한 장대인 줄 알았어요.
저 장대 같은 향을 사용하면 여기 오우산도 가볍게 나비처럼 날아 넘을 것 같습니다.
오우사는 산을 타고 넘어와 구경하는데 딱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침에 타고 들어온 버스인 13번 버스 종점이 바로 여기인가 봅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이 우리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알려줍니다.
비수기에는 여기까지 버스가 들어오지 않나 봅니다.
뭐 오늘 오우사에 오른 사람은 우리밖에 없기는 했지요.
천천히 걸어 다리 하나를 건너니 초파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보입니다.
터미널에 도착해 다시 청두행 버스를 타고 돌아가렵니다.
다음 편부터는 무후사 다녀온 이야기와 삼국지에 나온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제 세상에서 가장 큰 부처인 러산대불을 모두 구경했습니다.
역시 중국은 크기로 승부하는 민족인가 봅니다.
너무 크기에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게 한 대불이라는 느낌입니다.
그리 큰 감동을 받지 못한 이유는 佳人의 신앙심이 부족해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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