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 고묘박물관에서 부른 노래

2012. 6. 23.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오전 중 용문석굴과 향산사 그리고 백거이 묘까지 모두 구경하고 나오다가 입구에 있는 상가 중

한 군데를 들어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다시 아침의 역순으로 아까 내린 버스 종점에서 81路 시내버스를 타고 뤄양 기차역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오후에는 반나절만 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가 보려 합니다.

뤄양에서는 처음 계획에는 백마사도 보고 관우의 묘인 관림도 보고 소림사를 가려고 했지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고묘 박물관을 가보려 합니다.

 

고묘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는 뤄양 기차역 광장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광장 왼편 끝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81번 버스를 타면 고묘 박물관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용문석굴행 버스를 탔던 광장 반대편에서 타면 됩니다.

내리는 곳은 고묘 박물관이 아니라 낙양 고대 예술박물관인가 봅니다.

버스 기사에게 "꾸먀오 보우관"을 이야기하면 내리는 정류장에서 알려주고 내리는 곳에서

안으로 더 들어가라 알려주더군요.

 

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앞에 박물관이 보입니다.

들어가는 입장료는 착하게도 무료입니다.

중국은 박물관 대부분이 무료입니다.

중국 여행에서 박물관 구경은 필수로 해야 하겠어요.

 

가이드는 중국어 가이드만 있으며 30원이라 합니다.

오디오 가이드는 2시간에 10원이며 보증금을 100원 받는다고 하네요.

영수증은 꼭 챙겨두셨다가 보증금을 돌려받으셔야 합니다.

우리 부부는 중국어를 모르기에 그냥 들어갑니다.

 

요즈음 중국 관광지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아무리 비싸다 해도 중국 정부에서야 관광지마다 구경꾼이 미어터지는데 굳이 입장료를 내릴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국민소득으로 비교하면 중국의 입장료는 인민의 등골 빼는 수준이지요.

드라큘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부분 박물관은 입장이 무료라는 점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인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라잖아요.

세상의 일등 국가를 추구하는 나라이기에 인민에게 일등 국가의 인민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소득과는 무관하게 관광지 입장료를 다른 나라보다 우선하여 가장 많이 내게 함으로

세상에서 제일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함이잖아요. 그쵸?

중국 인민으로 태어나 세상의 어느 곳보다 가장 비싼 입장료를 내고 관광지에 들어가니 얼마나 영광스럽겠어요.

중국 인민 여러분!

중국 인민으로 태어난 게 정말 자랑스럽죠?

 

이제부터 중국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은 박물관 위주로 다녀야 할까 봅니다.

중국의 박물관은 개인적으로 볼 때 제법 볼 게 많습니다.

워낙 오랜 역사와 유물로 말미암아 박물관이 제법 풍성합니다.

 

지금 우리가 구경하는 박물관 주변은 모두 농장이나 주택가로 변했지만, 아마도 이곳이 그 유명한

북망산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북망산이란 우리나라에도 널리 불린 산 이름이 아니겠어요?

죽으면 간다는 그 유명한 산이 바로 여기였네요.

북망산.

우리의 삶 속에도 함께 한 곳이 바로 여기라니...

세상의 모든 사람이 마지막으로 가는 산이 북망산이라 생각했습니다.

 

처음 들어간 건물 안에는 이 지역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북망산에 만들어졌던 옛날 묘의 위치를 표시한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 건물 뒤로 빠져나가면 지금 방금 들어갔던 똑같은 모양의 건물이 보입니다.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그 밑에 이 근방에 발견된 묘를 그대로 복원하여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는 말은 산 자가 죽은 자를 만나러 들어가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진열된 묘의 숫자는 모두 28기로 그 시대는 한나라(BC 206년 - AD 220년)부터

송나라(960 - 1227년)까지의 묘입니다.

이곳에 진열된 묘를 살펴본다는 일은 고대의 장묘문화에 대한 연구자료로 아주 훌륭한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음 뤄양 인근에 발견될 당시의 역대 제왕과 유명한 사람의 묘가 있었던 위치를 표시한 지도인가 봅니다.

 

우리 부부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장묘문화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거나 연구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이곳이 바로 성주풀이라는 우리의 노래와 어느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입니다.

성주풀이와 낙양의 고묘 박물관과는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요?

우선 성주풀이의 가사부터 보고 가렵니다.

 

낙양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

우리네 인생 한 번 가면 

저기 저 모양이 될 터이니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우리 귀에도 친근한 노래인 우리나라 민요 성주풀이입니다.

여기 노래에도 佳人이 나오니 제가 이곳을 찾는 것은 필연이 아닌가요?

 

우리의 한이 물씬 묻어나는 노래가 아닙니까?

웬 뜬금없이 성주풀이라는 노래가 나오느냐고요?

글쎄요.

오늘은 우리 가락을 들으며 이야기를 계속하렵니다.

 

성주풀이라는 곡의 제목에 나오는 성주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당들은 성주풀이를 노래하는 이유로 집을 새로 지었다는 의미로 성조(成造)에서 왔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는 성주(城主)의 의미가 아닌가 한다는군요.

 

성주란 바로 백제 의자왕이 머물던 부여성의 성주였던 주인의 애달픈 사연을 노래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고요.

물론, 성주풀이의 사전적인 해석은 다릅니다만, 어디 한번 다른 가설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죽자고 덤비시면 무섭습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지하에 만들어 놓은 무덤 속이잖아요.

佳人의 이야기는 "아니면 말고"라는 사실을 잘 아시죠?

 

만약, 무가에서 나온 노래라면, 첫대목에 나오는 낙양성은 어디를 말하며 왜 묻고 따지지도 않고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중국의 낙양성을 들먹였을까요?

이 노래에서 나오는 낙양성은 바로 중국의 낙양이 아닐까요?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낙양의 북쪽으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정확히 북망산이 있답니다.

 

맞습니다.

낙양 시내에서 북쪽으로 정확히 5km 떨어진 곳에 북망산이 있습니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10리를 4km가 아니고 5km라 한다 했나요?

북망산은 우리에게도 알려진 산으로 죽어서 가는 산이잖아요.

바로 이곳에 북망산이 있습니다.

 

"낙양성 십리 허에~"라는 노래 가사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요?

이야기가 점점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여기에 지체가 높고 낮은 사람의 무덤과 영웅호걸의 무덤이 무지 많습니다.

노래 속에 佳人도 나오는군요?

그럼 佳人도 죽어 이곳에 와야 하나요?

노랫가사가 아주 제대로 들어맞는 말입니다.

 

"황천길이 멀다 해도 대문 밖이 황천이라~"

하며 상여가 나갈 때 부르는 노래에 나오는 북망산이 바로 성주풀이에 나오는 낙양성 북쪽 10리라네요.

수천 년간이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기에 죽어서 가는 마지막 산으로 동양권에서는 특허등록이 되었잖아요. 그쵸?

 

660년 나당 연합군에 백제의 장군인 계백이 황산벌에서 장렬히 전사하고 백제는 패망하게 되었지요.

그 후 백제의 의자왕을 비롯해 12.000여 명의 백제인이 당으로 압송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패전국의 비애가 아니겠습니까?

오호~ 통재라~

나라 잃은 설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낯설고 물 선 곳까지 끌려온다는 말이 웬 말입니까?

 

중국 땅에 끌려온 그들은 모두 낙양에 살게 되었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며 죽으면 이 지역에서 죽으면

누구나 가는 북망산에 묻히지 않았을까요?

백제인이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죽을 때 누구나 우리나라의 파란 하늘을 생각했을 겁니다.

 

백제의 부흥운동을 벌였던 흑치상지와 태자인 부여융(扶餘隆)의 묘비가 여기 망산에서 발견되었답니다.

그러나 함께 이곳에서 생을 마친 의자왕의 무덤이나 비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네요.

중국인은 발견하고 슬쩍 파괴했을지도 모르고요.

 

과연 성주풀이는 백제의 패망을 아쉬워하고 의자왕을 애도하며 부른 노래일까요?

佳人은 이 자리에 서서 마음속으로 우리 선조의 슬픔을 느껴보려 했습니다.

머나먼 타국에 와 고국을 그리며 남은 평생을 살다가 눈을 감았을 우리의 선조를 말입니다.

그리고 성주풀이도 소리 내 불러보았습니다.

"낙양성 십리 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냐~"

이 노래가 그런 의미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중국 속담에 ‘성짜이 쑤항, 쓰짱 베이망’(生在蘇沆, 死葬北邙)이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살아서는 소주 항주, 죽어서는 북망.’라는 말이라 합니다.

우리말에 生居鎭川 , 死去龍仁(살아 진천, 죽어 용인)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요?

중국도 마찬가지로 북망산이 죽어서 가는 최고의 명당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은 낙양의 고묘 박물관이라는 곳에 들렸습니다.

여기는 우리의 무척 슬픈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백제의 패망과 함께 우리의 백제유민이 끌려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이곳에서 지내다 고국으로 돌아가

꿈만 꾸다가 고국을 그리며 세상을 등지고 여기 북망산에 묻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찾아와 보았습니다.

내일은 이곳 고묘박물관 지하에 전시된 옛날 묘 속으로 깊숙이 여행해 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 합니다.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 사는 사람입니다.

부부간에도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을 실천하면 어떨까요?

그런데요~

佳人은 언제나 받는 사랑이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