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저우(郑州)에선 어디를 갈까?

2012. 6. 26.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오늘은 뤄양을 떠나 정저우로 갑니다.

뤄양은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옛 도시지만,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사실 뤄양에 대한 기대도 많았고 여러 곳을 다녀오리라 생각했지만,

와서 보니 너무 빨리 떠나네요.

우리 여행이 중간에 예정에도 없이 여러 번 경로 이탈을 했기에 이제 남은 여행 날짜가

많지 않아 대부분 그냥 지나칩니다.

계획에는 정저우로 가기 전 소림사를 들려보려 했지만, 이마저 미수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어제 정저우행 기차표를 예매할 때 좌석이 없어 입석으로 표를 구했습니다.

뤄양에서 정저우까지 한 시간 반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는다고 하기에 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입석표를 끊고 11시 54분 출발 기차에 오르자 제법 사람이 많네요.

 

우리 부부는 입석표를 끊었기에 배낭을 내려 짐칸에 올리려는데...

그러자 자리에 앉았던 젊은이들이 갑자기 일어나더니만 우리 부부를 자리에 앉으라 합니다.

괜찮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우리 부부를 거의 반강제로 앉게 하더군요.

너무 사양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앉았습니다.

할 수 없이 좌석에 앉았으나 미안한 마음에 함께 앉아가자고 하여 2인용 의자에

 세 사람이 앉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맞은편 좌석에는 울 마눌님도 앉았고요.

 

정말 이번 여행에 고마운 사람을 많이 만나 여행 자체가 즐겁습니다.

젊은이들은 학생이 아니라 커다란 보따리를 든 농민공으로 보였습니다.

정저우에 일하러 간다 합니다.

기차는 오후 1시 22분경 정저우 역에 도착하는데 기차역이 정말 혼잡하더군요.

역시 정저우라는 도시는 교통의 중심지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이나 설날 귀향 때 보던 그런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정저우 기차역 광장 건너편에 장도 버스 터미널이 있습니다.

내일 카이펑으로 가려고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했지만, 기차역은 인산인해..

이게 무슨 추석날 예매표를 파는 줄도 아니고 평일 날 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은

아수라장으로 도저히 표를 사는 게 기가 막혀 광장 건너편에 가서 버스 편을 물어보니

수시로 다니고 아무 때나 와도 표를 살 수 있다고 하기에 그냥 내일 일어나 시간을 보면서

버스표를 사서 카이펑으로 가렵니다.

사실 이곳 정저우에서는 무엇을 할까 딱히 작정한 것이 없습니다.

 

우선 정저우에서의 사전 계획은 없었기에 박물관에 들리고 황하풍경구라는 곳을 가보려 합니다.

사실 정저우란 도시는 교통의 중심지로 하남성의 성도이지만, 관광지가 별로 없다 하네요.

일단 기차역 부근에 숙소를 구하려는데 대부분 외국인은 받지 않는다 하여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숙소를 정했네요.

한 시간 가까이 숙소 구하는데 진을 빼고나니 별로 정저우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젠장! 기차역 부근에 큰 호텔도 외국인은 받지 않겠다고 하네요.

 

일단 식사를 한 후 어디부터 갈까를 고민하다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고 박물원부터 가기로

하는데 무식한 佳人이지만, 갈 곳이 생각나지 않을 이럴 때는 머리에 든 게

많은 것처럼 박물관입니다.

정저우에 있는 하남성 박물원은 베이징과 시안과 더불어 중국 3대 박물원의 하나라 자랑한다

하며 박물원은 내부에만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과는 다르게 야외에도

유물이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라 하네요.

 

정저우도 아주 오래된 도시라 합니다.

이미 기원전 1.500년 전에 번창했던 은나라의 중심이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한다네요.

아마도 황하를 끼고 무척 넓은 평원의 입구이기에 땅이 비옥하고 살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땅 위에 남은 유적은 별로 없고 땅속에만 있어 지금은 박물원에만 유물을 전시했나 봅니다.

 

여기에 볼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기에 이곳에서는 중국정부에서 야심 차게 중국인을 신비의 세계로 인도하는 조형물이 있다고

며 중국의 젖줄이라는 황하를 굽어보며 중국인의 조상인 염제, 황제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상을 이곳에 만든 이유가 바로 중국 문명의 발상지가 여기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면, 보여줄 게 없어 그나마 먼저 엄청난 크기로 인공조형물을 만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인은 크게만 하면 중심이라 생각하는 아주 단순한 머리를 가진 민족이니까요.

 

그곳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찾아가는 방법은 정저우 역 광장에서 역을 등지고 왼쪽으로 갑니다.

광장이 끝나고 도로 건너편에 버스 정류소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황하유람구 가는 버스는 위의 사진처럼 16번 버스를 타면 갑니다.

그런데 그게 역사적으로 고증된 것도 아니고 그냥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되어

오늘은 과감히 포기합니다.

 

기차역 좌우에서는 박물원으로 가는 버스는 무척 많습니다.

버스에 올라 기사에게 물어보면 내리는 곳을 알려줍니다.

 

일단 오늘은 하남성 박물원을 보러 왔습니다.

입장은 무료이지만,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중국 여행을 하시려면 무조건 박물관은 꼭 들리기를 추천합니다.

볼 것도 많을뿐더러 입장료가 살인적인 중국에서 신통방통하게도 무료이니까요.

 

우리 외국인은 여권으로 대신하는군요.

여권을 확인하면 플라스틱 카드를 여권과 함께 돌려줍니다.

 

이제 들어가 봅니다.

건물의 모양은 피라미드를 흉내 낸 것이라 하겠지만,

佳人의 눈에는 인류가 이곳에 자리하며 처음 살았던 모습인 움막집을 지은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데 만약, 그런 의도로 만들었다면, 설계자의 생각이 佳人에게도 전해진 겁니다.

피라미드로 보인 사람에게는 설계자의 생각 전달이 실패한 셈이겠지요.

 

박물원 안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을 끄는 조형물이 전면에 보입니다.

양쪽으로 코끼리가 뒷발로 서 있고 가운데 사람이 양손으로 코끼리를 잡고 있네요.

이 조형물이 의미하는 것은 아마도 이 지역이 오래전에 더운 지방으로 코끼리가 살았으며

인간은 그 코끼리를 이용해 농경 생활을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는 코끼리와 인간의 동거로 새로운 문명이 이 지방에서 탄생했다는 뜻이겠죠.

그 근거로 이 지방을 위(豫 : 예)라고 부른다잖아요.

자동차 번호도 그렇다 하고요.

이 말은 코끼리 상(象)이 들어간 글자이며 豫라는 말은 사람이 코끼리를 끌고 가는 의미니까요.

 

인도라는 나라에 소는 힌두교의 삼 신 중 제일이라는 파괴의 신 시바가 타고 다니기에

이름도 난디라 부르고 인도사람 중 힌두교를 믿는 사람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하잖아요.

그 이유도 소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농경을 하며 보호해야 하는

동물이기에 그리했을 겁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소고기 수출의 탑 랭킹에 인도가 들어있다는 일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모르겠어요.

 

1층 전시실의 주제로 보이는 글이 있네요.

중원고대문명지광이라는 글이 보입니다.

이 지방을 중원이라 하고 고대 문명의 시작이라는 황하문명이

이 동네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되지 않겠어요?

 

여기에 전시된 유물이 돌부터 시작해 13만여 점이라 하네요.

중국 역사의 시작이라는 상나라 때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숫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런데 정말 저 돌이 돌도끼니 뭐니 하는 그런 돌입니까?

채석장에 가면 저런 돌이 부지기수 아닌가요?

佳人이 궁금한 것은 저런 돌과 흔히 볼 수 있는 돌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면 무식하다고 하기에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서서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처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도 보통 흔히 보았던 보통 돌과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

여러분은 구분이 되세요?

 

여기에 진열된 유물은 아마도 주로 이 부근 지방에서 출토된 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돌멩이부터 시작해 토기, 도자기, 청동기, 옥기 등으로 만든 유물 등...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갈 때 무거워 미처 가져가지 못했을 겁니다.

위의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가호인(賈湖人)이라 불린 사람의 목걸이가 눈에 띕니다.

아주 잘생긴 가호인을 눈여겨봅시다.

 

저 사람이 아마도 덜수가 아닐까 생각하며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이곳 하남성 오양현 가호(賈湖)촌에서 발견된 많은 유물 가운데 더 놀라운 게 있습니다.

이제부터 가호인이 된 덜수의 활약상을 기대해 봅니다.

 

그 옆에 전시된 피리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이 피리는 지금의 피리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이 피리는 중국 음악의 기원이라 할 정도의 대단한 발견이었다 합니다.

이 골적(骨笛)이라고 부르는 동물의 뼈로 만든 피리는 하남성 오양현 가호(賈湖)촌에서 발견된

피리로 신석기시대의 여러 유물과 갑골문과 함께 발견된 유물로 동물의 뼈로 만든 피리라 합니다.

 

맞습니다.

피리구나 생각하면 그냥 그렇습니다.

당시 출토유물 발표회장에서 실제로 연주자가 강단에 올라 지금도 하남성에서 널리 불려지고

는 골적(骨笛) 음악인 샤오바이차이(小白菜)라는 곡을 직접 연주함으로 발표회장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합니다.(탕은 빼고요)

바로 그냥 피리처럼 생긴 뼛조각이 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지요.

오호라~ 놀라워라~

8천 년이나 땅속에 묻혀 잠들었던 피리가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연주한 이 악기가 신석기시대인 8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니 시공을 초월해

그 음악이 전달된 것이지요.

이 피리를 만든 사람은 후세에 자기가 만든 피리가 후손에 의해 연주되리라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러니 이런 대목에서 그냥 지나칠 사람이 있었겠어요?

발표회장은 경악과 열광과 흥분과 탄성이 터져 나왔을 겁니다.

 

모두 16개의 피리가 발견되었다 하는데 맹금의 퇴골로 만든 것으로 길이가 22.2cm이며

구멍이 모두 7개입니다.

음을 조절하기 위해 두 번째와 네 번째 구멍 옆으로 작은 구멍을 두 개씩 추가로 뚫은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8개 음이지만, 당시는 7개 음으로 연주했을 듯합니다.

이 피리를 모티브로 한 덜수와 덜순이의 지고지순한 8천 년 전의 사랑의 시를 써보고 싶습니다.

 

내일도 또 박물관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 생각으로는 그때 살았던 사람은 돌멩이나 죽창을 들고 동물이나 쫓아다니며 소리만

지르고 사냥하며 살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니지요,

가끔 덜수는 덜순이 뒤꽁무니만 쫓아다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환장하게도 사랑하는 덜순이를 위해 교교히 흐르는 달빛 아래 앉아서 덜수는

이 피리로 연주하며 사랑을 속삭였다고 생각하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니겠어요?

덜수는 인류 최초의 로맨티시스트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랬습니다.

비록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8천 년 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어디 가겠습니까?

눈을 가만히 감으면 사랑은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 아름다운 영상으로 우리에게 비추어집니다.

어디 그림만 보이겠습니까?

소리도 들립니다.

소리가 들리고 눈에 아름다운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덜수가 보이십니까?

덜수도 가끔 이런 멋진 면이 있걸랑요.

 

위의 사진에 보였던 가호인의 목걸이를 한 덜수가 덜순이를 위해 애잔하게 사랑을 고백하며

피리를 연주했을 겁니다.

아! 오늘 밤 둥근달이 두둥실 떠오르면 덜수의 피리 소리나 들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8천 년 전의 지고지순했던 영혼의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오잉?

피리가 없다면 가브리엘의 오보에 소리는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