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모란갑천하(洛陽牡丹甲天下)란다.

2012. 6. 22.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뤄양(落陽 :낙양)...

"그대가 고금의 흥망성쇠를 알고 싶다면, 낙양성에 한 번 가 보게나~"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 북송시대의 역사학자인 사마광이 했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뤄양이라는 도시는 당시에 중국 역사의 모든 것을 함축한 곳이었을 겁니다. 

 

천여 년 전에는 뤄양에 볼 게 있었나 모르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흥망성쇠는 무슨 흥망성쇠?

낙양에는 낙양성도 모두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데?

뭐가 있어야 흥망성쇠라도 느끼지...라고 佳人은 생각하고 삽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佳人의

여행기이기에 이렇게 같은 장소라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또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모습은 완전히 달라지나 봅니다. 

 

정말 낙양이라는 도시는 우리도 익히 아는 아주 유명한 고대도시임에는 분명한 곳이지만

그러나 사실 佳人의 우매한 눈에는 낙양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고대도시였습니다.

이름은 세상의 역사를 모두 보여주는 도시라 했지만, 볼 게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낙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여행하다 보니 이렇게 트집을 잡습니다.

佳人은 이렇게 무식하게 여행 중입니다. 

 

낙양은 중국의 7대 고도의 하나라고 하더군요.

이곳을 거쳐 간 나라만 해도 夏나라로부터 상, 서주, 동주, 동한, 조위, 서진, 북위, 수, 당, 후량,

후당, 후진 등 여러 왕조가 낙양을 수도로 삼고 나타났다 사라진 곳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名都로 불리는 지역이라 할 수 있잖아요.

 

한 국가의 도읍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이 따릅니다.

전국을 아우를 수 있는 지리적인 여건, 교통의 편리성, 산물이 모일 수 있는 여건, 기후조건도

온화해야 하고 너른 농토가 있어야 하며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어야 하고,

그리고 외침으로부터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지리적인 이점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여기가 바로 그런 조건에 합당한 곳이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수(隋), 당(唐) 시대에는 뤄양의 서쪽에는 장안(지금의 시안.西安)이 있어 중국 정치

1번지로서의 역할을 한 도시인데 반해 뤄양(洛阳)은 장안과 달리 경제도시로

황하를 따라 수송되는 강남의 물자 집산지로 번영하였다고 하더군요.

또 뤄양은 학술과 예술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고 했나요?

전국시대의 노자, 당나라 때의 두보, 이백, 백거이 등 많은 문인의 활동 근거지였기도 했다고

하기에 그러니 예술도 활짝 꽃핀 곳이 여기가 되겠네요.

 

그런데 낙양이라는 곳이 많은 나라가 이곳을 도읍으로 정했다 함은 틀림없이

이곳만의 장점이 있을 듯하며 13개 왕조가 이곳을 도읍으로 정했고 8개 왕조가

낙양을 제2의 도시로 삼았다고 하니...

이곳은 도읍으로 정하기 전혀 나무랄 곳이 없다는 말이 되겠네요.

여기가 중국의 오랜 세월 동안 주목을 받은 이유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선 수도로서의 모든 장점을 지니고 있고 황하를 통한 물류 또한 원활했기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게 되었고 지형 또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와도 같은 곳이었기에

여러 왕조가 이곳을 근거지로 삼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니 수도가 아니더라도 제2의 도시로 언제든지 활발하게 움직였던가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역사 속의 고도는 모두 극심한 황하의 범람으로 모두 땅 밑에

잠겨버리거나 전쟁과 화재로 사라지고 말았나 봅니다.

지금 현재 땅이 과거에 화려했던 도시를 덮어버려 수십길 땅을 파 내려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리며 꽃이 피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지는 것은 금방입니다.

그 대단한 문명도 황하의 범람과 전쟁과 화재로 말미암아

지금은 별로 눈에 띄는 유산조차 없어 보입니다. 

 

우리가 읽은 삼국지에도 백정 출신으로 예쁜 동생이 황후가 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큰 벼슬을 하게 된 하진과 십상시라는 내시들이 서로 박 터지게 싸우는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동탁은 쉽게 도읍인 낙양을 접수하고 바로 황제인 소제 보고

 '너 내려와! 그리고 헌제 너 황제해 볼텨"? 하고는 원소와 조조마저

멀리 보내며 전횡을 휘둘렀다 했지요?

 

밀려난 원소가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모여라~' 하고 깃발을 올리자 주위에 많은 세력이

낙양성 주위에 구름 떼처럼 모여들자 동탁은 "오잉~ 이게 아닌가벼?" 하고는 열세를

눈치채고 헌제를 납치하고 100여 년 전에 네로 황제가 로마를 불 질렀다는 뉴스를

접하고 자기도 황제의 꿈을 연습하기 위하여 도읍인 낙양을 불태우고 지금의 시안인

옛 도읍인 장안으로 야반도주했다고 소문이 난 곳이 바로 낙양이었던가요?

그때도 낙양성은 화재를 당해 또 사라지고 말았겠지요.

 

어디 화재로 불타는 낙양만 아름답겠습니까?

낙양은 말 그대로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 낙조가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오늘 우리 부부가 낙양에 있는 동안 비가 내리고 운무가 잔뜩 끼어 낙조는 무슨 낙조?

개털이 되고 말았습니다.

낙조가 아름답다는 말은 워낙 늘 운무에 싸여있는 지방이라 어느 날 맑은 날이라도 보여준다면

저녁에 서산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오줌이라도 저릴 만큼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겠어요?

해만 떠도 개가 짖는다는 촉견패일이 여기가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이 동네에는 낙양삼절(洛陽三絶)이라고 있다 하네요.

낙양 모란, 낙양 수웨이수(水席 : 수석), 그리고 용문석굴을 말한다 합니다.

 

모란이야 워낙 중국인이 좋아하는 꽃이라 어디 낙양에만 피겠습니까 만은

이곳에 피는 모란은 그중에서 색깔이 더 깊고 아름다워 낙양 모란을 모란 중에도

으뜸으로 친다고 합니다.

용문석굴도 다른 지방의 석굴에 비해 크기와 아름다움에 비교되는 곳이지요.

 

뤄양 수웨이수는 천 년이나 된 이 지방의 음식이라 합니다.

수석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데 하나는 뜨거운 음식은 모두 국물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이 흐르듯이 음식이 차례대로 계속 나온다는 말이라 하네요.

물론 만한전석처럼 3박 4일간 먹는 것도 아니고 북경의 오리구이처럼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지만, 이 지방에서는 경조사 때 반드시 이 음식을 먹는다 하네요.

이러다 보니 음식 종류도 많고 순서도 까다롭고...

현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 방법일 듯하네요.

 

낙양모란갑천하(洛陽牡丹甲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낙양의 모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지요.

이 말이 생겨난 것은 측천무후 때라고 하네요.

 

당나라의 무후가 한겨울에 술에 취해 온갖 꽃들에 꽃을 피우라 하니

모든 꽃이 앞다투어 꽃을 피웠답니다.

지금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佳人을 비웃고 계시죠?

맞습니다. 비웃어도 좋습니다.

아마도 무측천이 술주정했던지 꽃이 정신 나간 꽃이든지 말입니다.

중국을 오래 다니다 보면 저도 중국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믿고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로지 모란만이 꽃을 피우지 않고 버티더랍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말입니다.

이에 화가 난 무후가 모란을 낙양으로 귀양을 보냈답니다.

귀양 온 모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낙양에 온 후 아름다운 색깔의 꽃을 활짝 피웠다나 뭐나...

 

이리하야 낙양의 모란이 모란 중에도 최고라고 찬사를 받는 것이 답니다.

귀양 온 모란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아마도 모란도 탱자보다는 귤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남방의 귤나무가 회수(淮水) 이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 말입니다.

이 말은 중국에서도 공부깨나 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요?

열심히 공부하고 한다는 짓이 동북공정이니 오만리장성이니 하고 역사에도 없는

사실을 날조하며 자빠진 후안무치한 놈들 말입니다.

 

그래서 낙양모란갑천하라는 말이 생겼고 이 말의 의미는 모란도 잘났지만,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홀로 독야청청한 모란을 많은 사람이 흠모하였기에

사랑을 받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모란은 꽃 중의 꽃이라는 화왕(花王) 또는 부귀화(富貴花)라고 불릴 만큼

꽃이 아주 화려하다고 하네요.

 

하남성에 있는 낙양(洛陽)시의 꽃(市花)이 바로 모란이라고 하네요.

매년 4월 20일경부터 5월 초까지 낙양시 시내 왕성공원에서 모란 축전을 개최할 정도라고

하니 모란은 낙양뿐 아니라 중국에서 가장 귀여움을 받는 꽃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웃 도시인 카이펑은 국화 산지로 유명한 곳이지요.

뤄양을 본 후 나중에 국화 구경하러 카이펑으로 갈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란에 얽힌 이야기가 있잖아요.

선덕여왕의 현명함을 이야기할 때 말입니다.

신라 진평왕 때 당나라 태종이 덕만공주 시절의 선덕여왕에게 붉은색, 보라색,

흰색의 모란꽃 그림과 꽃씨 서 되를 보냈답니다.

그 그림을 보고 영특한 덕만공주가 "이 꽃은 분명히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말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모란꽃은 향기가 없을까요?

그 이유는 덕만 공주는 그림을 보니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어서 향기가 없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하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쓴 김부식과 일연은

덕만공주의 말이 사실이었다고 기록했답니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모란은 향기가 있습니다.

김부식과 일연도 모란을 직접 보지 않고 이야기만 듣고 쓰다 보니 그런 실수를 한 겁니다.

 

그러면 이런 오해는 어디서 왔을까요?

덕만공주는 안타깝게도 중국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고 김부식과 일연은

물증도 없이 심증으로만 기록함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세 사람 모두 모란이라는 꽃을 보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요?

 

중국에서 보낸 모란 그림을 그린 화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림에 나비나 벌을 그리지 않았던

것이며 화가가 모란을 그리는 그 시간에 벌과 나비가 단체로 M/T라도 함께 갔을 겁니다.

아니면, 화가가 꽃이나 나무처럼 식물 전문가이고 나비나 벌인 동물은 잘 그리지 못하는

반쪽짜리 화가이었든가...

아닌가요?

벌과 나비의 알레르기가 있어 원천적으로 기피했을 수도 있겠지요.

 

모란이라는 글자의 모(牡)는 수컷이라는 의미라고 하는군요.

본초강목에 모란은 종자를 맺지만, 뿌리에서 싹이 나오므로 모(牡)라고 쓴다고 했답니다.

꽃이 붉기 때문에 란(丹)이라는 말도 붉을 단(丹)을 쓴다는데 丹은 란으로도 읽고

단으로도 읽는 단어라고 하고요.

 

우리의 나라꽃은 무궁화지만, 중국은 國花가 없는 나라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란을 국화로 하자고 하지만, 아직 국화를 결정하지는 않았답니다.

아마도 모란이 부귀를 의미하고 당나라 시절부터 많은 중국인에게 사랑을 받았기에 친근한

꽃이 되었을 것이고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모란이 향기도 없고 꿀도 없는

꽃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부귀의 상징이고 花中之王이라고 존경을 받는 모란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삐치지 않았을까요? 

 

위의 사진은 용문석굴을 구경하다 본 돌입니다.

중국인은 이 돌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왜?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모란석이니까요..

돌에 비치는 무늬가 모란꽃처럼 보이시나요?

왜 佳人은 국화빵이 먹고 싶을까요?

 

내일은 우리 민요 성주풀이에도 나오는 북망산 고묘 박물관을 가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그러나 배가 항구에 있다는 일은 배의 목적도 아니고 존재 이유도 아닙니다.

사람이 가장 안전한 곳은 집안입니다.

그러나 집안에만 있다는 일은 사람이 할 일은 아닙니다.

비록 거칠고 위험한 길이지만, 여행은 떠난 자만이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야만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