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8. 18:48ㆍ모로코 여행기 2024
페즈는 이 왕국의 심장입니다.
그리고 이곳 글라우이 궁전은 페즈의 심장부 중 하나입니다.
그때는 그렇게 살았는데 말입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두 개의 화려한 의자가 놓인 사랑채 공간의 응접실로 보이는 방이
보이는데 글라우이 궁전에는 우리나라처럼 남자들이 거주하는 사랑채 공간과
주로 여성들이 거주하는 안채로 나뉘어 있습니다.
응접실 안에서 분수시설이 보이는 파티오가 있는 밖을 내다보면 보이는 풍경입니다.
말발굽형태의 출입문이 양쪽으로 두 개가 보이네요.
출입문이며 기둥 장식이 화려하기에 무슬림의 집안 장식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곳이네요.
무슬림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은 금하기에 주로 당초문양과 비슷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주로 보이고 반복되는 패턴도 자주 볼 수 있고 알라의 위대함을 알리는 글자도
자주 볼 수 있으며 또 채색된 타일도 흔히 볼 수 있더라고요.
사랑채와 안채에는 파티오라고 부르는 중정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남자들이 거주하는 사랑채의 중정이 훨씬 크고 안채의 중정은 조금 작습니다.
위의 사진은 안채에 있는 파티오로 예전에는 화려했겠지만, 가운데 분수 하나만 보입니다.
글라우이 가문으로 원래 마라케시를 근거지로 활동했었는데 당시 술탄이었던
무하마드 4세와 대를 이어 이후의 술탄 아래서 중요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다는데
이런 가문이었기에 모로코 여러 곳에 카스바와 요새화된 거주지를 지을 수 있었답니다.
손님이 찾아왔다고 글라우이 가문의 큰 어른이 문을 열고 우리를 영접하나요?
입구에 걸린 희미한 사진으로 지금은 옛 영화가 모두 사라지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던 곳으로 세월은 권력도 돈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을 지녔나 봅니다.
이곳 페스는 원래 마라케시와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글라우이 가문의 영역 밖이었으나
페스의 몰락한 가문의 재산을 슬그머니 차지하고 여기까지 영역을 넓힌 셈이겠네요.
남의 불행은 분명 나의 행복임을 알고 그대로 실천해 제1 명문 가문으로 우뚝 서게 되었겠네요.
그러나 위의 삽화에서 보이는 하피디야 내전동안 가문의 수장인 마다니 글라우이는
그동안 섬겼던 술탄 압델라지즈(Sultan Abdelaziz)을 배신하며 등을 돌리고
술탄의 형제인 아브드 알 하피드(Abd al-Hafid)를 지지하며 힘을 보탰답니다.
그러니 고무신 거꾸로 신고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는 의미겠지요.
이런 결정을 한다 함은 일종의 도박으로 본인은 물론, 가문 전체가 흥망의 기로에 놓이는
도박과도 같은 대단히 중요한 선택인데 이 가문은 새로운 세력에 배팅했던 모양입니다.
1907년 아브드 알 하피드와 마다니가 승리를 거두자 마다니는 전임 술탄 압델라지즈의
충복이었던 전 재무장관 하지 오마르 타지(Tazi)의 재산 대부분을 압류했다는데
그중 하나는 페즈에 있는 궁전이었는데, 지금 우리가 구경하고 있는 글라우이 궁전입니다.
타지는 19세기 후반에 이 궁전을 지었다고 하는데 죽 쑤어 개 주었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요.
그럼 타지가 죽이고 글리우이 가문이 개가?
페즈의 글라우이 궁전은 모로코에서 전기와 난방을 갖춘 최초의 건물이기도 하다네요.
이런 곳이기에 모로코는 물론 이슬람 세계에서 또 세계적으로도 보호해야 하지요.
1911 년 이후 프랑스가 페스를 점령했을 때 궁전은 임시로 프랑스 전권 대사의 임시 거주지로
사용되었고 이로서 마라케시의 수장이 파샤(Pasha)로 임명되어 남부 모로코를 통치하게
되었으며 압델하피드는 마다니를 고관으로 타미를 마라케시의 파샤로 임명함으로써
글라우이 가문에 보답했답니다.
그러나 다시 억압정책으로 시민들이 봉기하자 술탄은 그 책임으로 글라우이 가문으로
돌리고 둘 사이에 다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바람에 글라우이 가문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며 외세에 의지해 힘을 키워 술탄과의 불안한 동거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런 불안한 관계는 지속되는 듯했지만, 종국에는 술탄에게 모든 힘이 집중되며
결국, 글라우이 가문은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1956년 그 가문의 모든 재산은
몰수되어 국가에 귀속됨으로 인생무상을 처절하게 느꼈을 겁니다.
한마디로 토사구팽 당했다는 말입니다.
압류당한 큰 궁전은 와르자자트에서 우리가 보았던 위의 사진 속의 Telouet의
Kasbah와 Marrakesh의 Dar el Bacha와 여기 페스 있는 이곳 궁전이었는데
당시로는 최고의 명문 가문으로 가장 돈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술탄에 이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가문은 이로서 최후를 맞게 되었는데
1956년 모로코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되찾은 후 타미 엘 글라우이는
모하메드 5세 국왕에 의해 지위를 박탈당했고, 글라우이 궁전은 방치되기 시작했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구경하고 있는 페스의 글라우이 궁전은 다시 환원되어 여전히 글라우이 가문의
개인 소유이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대부분 황폐화되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력이란 무상하여 원래 형체가 없어 성긴 대숲을 지나는 바람 같은 것은 아닌지요.
지금 구경하는 궁전은 12 채의 집과 터키식 목욕탕인 하만, 꾸란 학교, 마구간, 대규모 주방 및
넓은 정원을 포함한 수많은 별관 및 시설이 있는 궁전 같은 규모가 제법 큰 곳입니다.
위의 사진은 주방의 모습으로 아궁이도 보이고 타진이라는 요리기구도 보입니다.
단지의 가장 큰 부분은 중앙 분수대가 있는 중앙 직사각형 수영장이 있는
넓은 내부 안뜰을 중심으로 있으며 그 옆에는 작은 물동이에서
솟아오르는 두 개의 다른 분수가 있습니다.
궁전의 장식은 글라우이 가문의 부를 반영하며 타일장식, 페인트를 칠한 나무,
조각된 치장벽토와 같은 당시 최고의 모로코 장인 정신을 특징으로 한다네요.
하루빨리 이런 곳은 후원단체가 생겨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면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마라케시에서 바히아 궁전을 구경하고 왔지만, 개인적으로 이곳이 더 좋았습니다.
비록 바히아 궁전은 완전히 리모델링하여 새롭게 관리되어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을지라도 폐허 상태인 이곳에 비해 오히려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곳도 이곳처럼 술탄을 모시던 사람의 저택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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