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공과 여희 이야기 6 - 용의 씨앗

2010. 9. 10. 08:57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한참 동안 하늘이 놀라고 땅이 요동치는 경천동지를 겪은 두 사람은

옷매무시를 고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숲 속을 빠져나옵니다.

물론 양오는 제가 보니 그녀에게서 10m 떨어져 뒤에서 나오더군요.

그러다가 빙그레 웃으며 물끄러미 쳐다보는 저를 보고 기겁합니다.

"양오! 자네 무얼 그리 놀라시는가? 놀라지 마시게나. 난 투명인간이야..."

사람이 바른길을 가지 않으면 이렇게 그냥 바라만 보며 웃고 있는 사람을 보아도

식겁하기도 하지요.

 

열경루에 도착해서 그녀는 누각 안으로 들어가고 양오는 문밖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습니다.

잠시 후 하녀들이 음식을 장만하여 열경루에 도착을 하자 양오가 그녀들에게 크게 꾸짖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 뭐하느라고 이렇게 꾸물댔느냐?

마마께서 얼마나 시장하시겠느냐? 어서 음식을 올리거라!"

잡것...

배가 왜 고프냐?

여희는 이미 왕과 심복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 배가 부른데요.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왔더라면 우짤려고?

제가 양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저를 보고는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며 외면합니다.

 

이제 여희에게 남은 일이라고는 하루빨리 용의 씨앗을 잉태하여 잘 키운 알라 용 하나가

열 이무기 부럽지 않게 만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녀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헌공의 밤낮 없는 노력봉사로 드디어 특제품이 탄생하고

그 이름을 해제(奚齊)라고 지었으니 이제 그녀의 지위는 하늘을 찌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알라 용이 사실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습니다.

헌공의 씨앗인지 양오의 씨앗인지....

세상은 정말 요지경 속입니다.

 

궁궐에서 아들 딸 구별 말고 잘 기르자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아들이란 확실한 권력이고 자기의 훗날을 위한 완벽한 행복을 보장하는 보험증서입니다. 

 

헌공에게는 모두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여희의 동생인 소희에게도

탁자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매는 이미 예비용 보험 증서도 하나 더 마련해 두었지요.

태자는 원래 제강의 소생인 신생이라고 있었고 헌공은 즉시 태자를 바꾸려고 했지만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고 오히려 여희가 반대를 합니다.

 

네~ 앞서 가는 최첨단 마케팅 전략입니다.

 "폐하! 이미 신생은 그간 공도 많이 세웠고 현명한데 소첩 때문에 대업을

그르치시려고 하십니까?" 하면서..

옴마나~ 이쁘기도 한 게 마음 씀씀이마저 아름답습니다.

 

이러니 헌 왕이 여희를 더욱 사랑하지 않으려고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사내란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여자는 그 사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미 양오는 여희의 노리갯감으로 만들어 필요시에는 언제든지

리모컨으로 누르면 즉각 반응합니다.

 

이제 남은 인물은 고지식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순식이라는 헌공의 측근입니다.

그는 여러 번 여희가 암시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없자 전략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점잖다고 소문이 난 공자님도 밤에는 점잖지 않으시고

그냥 불같이 타오르는 평범한 사내라고 했는데...

순식이란 사내는 참말로 이상한 남자이옵니다.

 

그래서 그를 자기 아들의 고액 가정교사로 의뢰하고 헌 왕도 기뻐하며 사인을 합니다.

이미 고액 과외의 역사는 오래전부터입니다.

스승에게는 제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할 리가 없으니까요.

오히려 스승을 뛰어넘는 청출어람이 되기를 스승은 갈망합니다.

이런 훗날에 필요한 깊은 음모를 깔고 순식을 자기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만반의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다음 단계로 진행해야 합니다.

원래 이런 일은 직접 하면 일을 그르칩니다.

그래서 양오를 동원하여 당시 국경지방을 자주 침범하는 서융의 기를 꺾기 위해 태자인 신생을

그리로 보내고 다른 아들들을 다른 지방의 국경을 담당하게 합니다.

물론 대신 중 껄끄럽게 생각했던 사람을 함께 묶어서 말입니다.

 

다음 단계는 양오를 동원하여 태자의 험담과 여희의 아들인 해제의 총명함을 계속 어필시키면

헌공도 그렇게 믿게 됩니다.

그때 북적이라는 오랑캐가 국경지방을 침공하자 여희는 태자 신생에게 늙은 병사와 낡은 전차 등

무기를 허술하게 쥐여주고 물리치라고 했으나 젠장 열악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큰 공을 세웁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꾸기로 결심합니다.

 

어느 날 여희는 헌공에게 원림으로 둘만의 나들이를 제안합니다.

헌공은 원림으로 나들이 가자는 의미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압니다.

그건 저도 알고 여러분도 다 아는 일이 아닙니까?

헌 왕이 마다하겠습니까?

그곳에만 가면 베토벤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곳을 걸으며 그날따라 여희가 우울한 표정을 짓습니다.

헌 왕은 그런 여희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Why?" 하며 묻자 여희는 매우 걱정스러운 듯 말합니다.

"폐하의 연세가 점점 높아지는데 소첩과 해제는 나이가 어려 아직도 제대로 보필을 못합니다.

그러니 신생을 불러들여 가까이 있게 하시면 비록 소첩이 낳은 자식이 아니더라도 든든합니다."

 

헌 왕이 이 말을 들어보니 옴마나~ 정말 여희의 마음은 장한 어머니 상을 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 어찌 이렇게 자식사랑이 낳은 자식과 구별하지 않고 착합니까?

세상에 천사가 바로 옆에 있습니다.

이런 여자와 함께 살아가는 남자는 복 받은 남자입니다.

 

그래서 단번에 "알았쪄!"라고 했으며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여희는 표정관리에 들어가며 헌 왕의 손을 잡아끌고 원림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그날은 베토벤의 스페셜 서비스에 앙코르 공연까지 이어집니다.

 

다음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