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사 이야기 5 - 여산 봉화

2009. 9. 26. 00:23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위의 사진 속의 여인이 바로 포사로 석문잔도인 포사잔도 입구에 세운

석조각상으로 유왕 궁열은 어느 날, 날을 잡아 여산으로 포사를 데리고 올라가니

모처럼 멋진 경치와 풍경에 포사가 기뻐합니다.

밤이 되자 산 위에서 가무를 즐기던 때 갑자기 명을 내려 일제히 봉화를

올리니 순식간에 봉화는 산에서 산으로 이어져 수십 리 멋진

불기둥을 연출하며 장관을 이룹니다.

 

이런 게 불장난 맞습니다.

밤에 오줌 싼다고 어른들이 못하게 하는 불장난 맞습니다.   

곧이어 수레와 말굽소리와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여산 아래 제후국들의 군대가 집결합니다.

 

 

이렇게 위의 사진처럼 여산 아래 모인 제후의 군사는 유왕에게 명령을 하달해

달라고 하자 유왕은 "돌아들 가라! 제대로 비상연락망이 작동되나 시험하기 위한

민방위 훈련이었다." 라며 김을 뺍니다.

제후들은 투덜거리며 속으로 "뭬야? 우리들을 똥개 훈련시킨 게야? 그런 게야?" 하며

돌아갑갔다는데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인 양치기 소년과 늑대 이야기의 중국 버전입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을 후대 사람들은 여산 봉화라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그러니 개 같은 경우라는 말입니다.

 

 

포사는 대규모 군마가 일시에 몰려왔다 투덜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는

그 사건이 꽤나 재미있었는지 모처럼 신나게 깔깔거리며 웃었다고 합니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좋은 악기로 명곡을 연주한 것과도 같이 유왕의 심금을 울렸고

포사의 웃는 얼굴은 꽃이 만발한 듯이 아름다워서 그 모습을 본 유왕은 더욱 신이 나

 기쁜 나머지 춤을 추며 포사에게 달려가 포옹을 하며 다시 봉화를 올리라고 했다네요.

유왕도 정말 싱거운 친구군요?

이렇게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여러 차례 봉화를 올리며 제후국을 기만하자

제후국에서도 화가 나는 겁니다.

 

위의 그림에 보이는 모습이 포사가 깔깔거리며 웃는 장면이고

그 모습을 본 유왕은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변태 남녀의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겁니다.

그 아래 보이는 군사는 봉화를 보고 황급히 군사를 몰고 왔던 제후국의 군사입니다.

여자의 웃음을 보기 위해 이런 짓을 한다는 일은 이해하기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중국의 주나라의 유왕과 포사 사이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네요.

 

여러분은 사랑하는 여인을 웃게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佳人은 또 어떤 일을 했을까요?

여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지는 못해도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뭔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귀가하시면 집에서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가족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고

표도 나지 않는 일을 한 부인의 손이라도 슬그머니 잡고 "여보! 오늘 하루도 힘들었지?

수고했어~"라고 하시며 가만히 안아보세요.

"왜 이래요! 징그럽게~"라고 말하지만, 사랑의 바이러스가 집안을 가득 채워

코로나 바이러스도 사라질 겁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미소 짓게 하는 일은 여산에 올라 봉화나 올리는 일 말고도

쉽고 간단한 방법이 많습니다.

일단 해보시라니까요~~

 

 

이런 안을 짜낸 괵석보에게 황금 천냥을 내립니다.

이것을 일소 천금(一笑千金)이라고  한답니다.

 

남을 웃게 한다는 일....

누구는 천금의 포상금을 받는데 제가 웃기면 실성했다는 말만 듣습니다.

웃음이란 사람에 따라 많이 다른가 봅니다.

 

이렇게 제후국에서 주나라 천자가 올린 봉화를 보고 군사를 몰아 돕기 위해 호경으로

모여드는 일은 당시 군주국과 제후국의 끈끈한 관계를 볼 수 있는 일이지요.

잠시 당시의 시대상을 보고 갑니다.

 

 

위의 지도는 처음 시안 부근에 터를 잡고 있었던 제후국이었던 주나라의 영토입니다.

지금의 중국과는 달리 영토가 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먼저 은허를 중심으로 산둥성

일대에 자리 잡았던 군주국이었던 은나라를 멸한 후 그 지역까지 병합하느라

영토가 은나라보다 훨씬 더 넓었기에 당시에는 교통이나 통치 수단 등이 시원치 않아

지도에 보이는 지역을 하나의 나라로 다스리는 일이 쉽지 않았기에 지역을 나누어 

공신이나 인척을 제후로 임명해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위의 지도를 통해 보면 주나라는 중원 전부도 아니고

지금의 시안 부근에서 산둥성 일대를 영토로 합니다.

그럼에도 통치가 쉽지 않았다는 것은 기원전에는 열악한 교통과

통신수단이었을 듯합니다.

 

 

또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림이 바로 태공 강상망으로 당시 주나라 문왕과

처음 만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는 바늘도 없이 위수의 지류인 반계에 앉아

천하를 낚은 사람으로 유명한 강태공이지요.

 

은나라를 패망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태공 강상망은 후에 가장 동쪽에 있는

제나라라고 불린 곳에 제후로 삼아 다스리게 했고 도읍 부근에는 직계 제후에게

조금 먼 곳은 공신 등에게 나누어 주나라는 지방분권제를 도입한 것이지요.

이런 관계이다 보니 군주국과 제후국 간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연방제와는 달리 대단히 끈끈한 관계입니다.

 

요즈음 가끔 데뷔를 길거리 캐스팅되어 연예계에 발을 딛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강태공은 길거리가 아니라 위수에서 낚시하다

주나라 문왕에 의해 스카웃되어 정계에 데뷔한 경우네요.

길거리 캐스팅의 시작은 강태공의 낚시로부터 시작되었네요.

 

 

그러니 강태공의 낚시 전법은 물고기를 낚기 위함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낚기기 위해 기다린 사람이지요.

佳人도 오늘부터 낚싯바늘도 없는 낚싯대를 들고 한강에 나가

세월이나 낚아야 할까 봅니다.

혹시 누가 佳人을 총리로 발탁할지 압니까?

이런 소리 자꾸 하면 누구에게 연락해 정신병원에 처넣는다고요?

 

강태공은 주 문왕과 그의 아들인 무왕까지 2대에 걸쳐 섬기며 은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게 되었지요.

아이디어 뱅크로 그가 지은 병법서인 육도는 중국 최초의 병법서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주왕이 제위 한 지 3년 만에 너무 피곤해 일찍 죽자 후에 성왕이 될

주왕의 아들이 어려 그를 도와 잠시 섭정을 하며 자립할 수 있게 도왔던

숙부인 주공 단은 노나라 군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고요.

위의 사진 속의 모습이 바로 어린 조카를 보살피며 성인으로 자립할 때까지

보살피고 난 후 노나라로 돌아갔던 주공의 모습을 볼 수 있네요.

 

위에 언급된 두 사람은 태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제나라와 서쪽에 노나라를

봉지로 받아 다스렸던 인물이지요.

따라서 주왕과 더불어 주공 단 그리고 강태공은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린

가장 중요한 3인방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나 아래 그림에 등장하는 3인방은 주나라를 말아먹은

유왕 궁열과 포사와 괵석보일 듯합니다.

 

주나라와 군주국은 그냥 천자와 제후의 일반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렇게

끈끈하게 관계를 맺어왔기에 봉화를 올려 도움을 요청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견마지로를 다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도 똥개 훈련시키듯 유왕처럼 이상한 짓을 하면

어느 군주나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마도 제후국에서는 유왕 궁열을 GSGG라고 했을 겁니다.

 

 

포사는 자신이 웃음을 아낄수록 유왕의 애간장을 태운다는 것을 알고

마지막 승부의 웃음을 준비합니다.

사실 포사는 경국지색은 맞지만, 나라까지 절단 내려고 한 짓은 분명 아닙니다.

웃기지도 않은 일에 한 번 웃었다고 유왕이 웃기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포사는 교태 넘치는 몸짓으로 하늘거리며 유왕의 가슴팍을 팍~ 하고 파고들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합니다.

가슴 파기 전법에 유왕도 당해낼 재주가 없었나 봅니다.

"그대 등 뒤에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라는 노래가 이미 장안에

파삭하게 펴졌다고 했잖아요.

포사가 이런 가슴 파기 전법을 사용한다고 함은 분명 큰 요구가 있다는 말이지요.

 

"폐하! 신나라로 도망간 전임 태자인 의구가 외조부의 힘을 빌려 다시 이곳으로 쳐들어

온다면 우리 모자는 물론 폐하까지...." 하면서 고운 얼굴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니

유왕은 포사를 가슴에 품으며 눈물을 닦아주며 "걱정마라. 내게도 방법이 있다.

 

 

그를 불러들여 꼼짝 못 하게 단속 하마~" 하자 포사는 두 손으로 유왕의 뺨을 어루만지며

(스킨십은 더 큰 효과가 있음) "그냥 태자만 오라고 하면 의심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 태자는

그냥 두고 제후들을 모두 소집하면 틀림없이 그의 조부인 신후도 올 것이고

그때 혼자 신나라에 남아있는 그를 처치하면 될 것입니다."

이제 포사가 유왕에게 군사작전 지시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나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포사는 한 번 웃어 줍니다. 

그래야 자기의 제안이 바로 채택된다는 것을 아니까요. 

이 웃음 한 방에 유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도 특별 서비스에 들어갑니다.

 

유왕이 욕정에 불타오르자 먼저 포사가 유왕을 끌고 "Be the one?" 하며 침대로 가며 여러 번

미소를 날려 서비스하는 것을 잊지 않자 유왕과 포사는 이날 스페셜 운우의 정을 나눕니다.

 

 

신나라의 신후는 유왕의 소집 명령서가 도착하자 유왕과 포사의 음모를 눈치챕니다.

여러 신하를 불러 그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자 모두 이 기회에 포사를 죽이자고

쿠데타를 결의하는데 이는 제후국이 군주국을 치는 하극상입니다.

그러니 신나라의 힘만으로는 열세임을 알고 주변에 있는 서융의 일족인

견융의 힘을 요청합니다.

 

서융은 예전부터 주나라와는 앙숙관계로 서주를 무너뜨리려는

야심을 갖고 있어 의기투합합니다.

이들이 나중에 진(秦) 나라의 공격을 받고 흡수되며 주축 세력으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드디어 신나라와 서융의 연합군이 서주로 쳐들어 오자 황급히 괵석보에게 봉화를 피워

적의 침입을 알리라고 하였으나 이미 전에 여러 번 봉화에 농락당한 제후들의

"또 늑대가 나타났어?"  하며 아무도 병력을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후국에서는 군주국의 명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렇게 명이 서지 않는다면 그 권력은 이미 쇠진해 끝장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명을 거역한 것의 원초적인 잘못은 군주에게 있는데 군주는 늘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요.

 

 

그때 봉화가 오르는 것을 본 제후국에서 뭐라고 했을까요?

바로 위의 자막에 나왔던 저 말을 했을 겁니다.

물론, 입만 벌리면이 아니라 봉화만 올리면이라고 했겠지만요.

 

그러니 아무 대비도 없었던 주나라 유왕과 신나라와 서융의 연합국 간의 싸움은 일방적입니다.

서주는 우왕좌왕만 할 뿐 유왕은 겨우 호위병 몇 명과 포사와 태자인 백복만 데리고 여산으로 튑니다.

튄다고 가면 어디까지 가겠어요?

이미 왕궁은 불타고 모든 영화는 여융과 신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신나게 타고 있습니다.

 

 

뒤쫓아온 신후의 병사들이 도망가는 이들을 발견하고는 화살을 쏘아 유왕을 죽여버립니다.

유왕이 천 명의 여인이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지만, 화살 한 촉만

가슴으로 날아와도 두렵다고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마차의 휘장을 걷자 백복을 품에 안고 있는 포사를 발견하고 그녀의 품에 안긴

백복을 빼앗아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버립니다.

어린 백복은 지지리 복도 없는 놈인데 왜 이름은 백복이라고 지었을까요?

 

포사는 워낙 출중한 미모 때문에 죽이기가 아까워 서융의 족장에게

전리품으로 챙겨 선물로 전해줍니다.

돈이 많은 부자에게는 아들이 없고 상속인만 있다고 합니다.

권력이 가진 제왕에게도 아들은 없고 그 권력을 탐하는 자만 있습니다.

그러면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佳人이 행복한 사람일까요?

 

인간의 삶이란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여섯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후딱 지나가는

것을 순간적으로 보는 것과 같이 짧은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이 짧은 시간을 살며 우리는 움켜쥐고 싶은 게 무에도 그리 많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시작했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끝내느냐.'입니다.

 

 

이로써 중국에서는 제법 긴 역사인 300여 년간 존속해 왔던 서주는 유왕의 죽음과 함께

멸망하니 이때가 기원전 771년입니다.

이듬해 여러 제후들은 의구를 새로운 천자로 옹립하고 서융에게 짓밟힌 호경(서안)을 버리고

낙읍(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동주라는 나라를 세워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됩니다.

 

그러니 서주나 동주 모두 주나라이나 도읍을 한 번 옮겼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구분을 위해 서주와 동주로 불렀다고 봐야겠네요.

내부 수리를 일부만 하고 간판만 바꾸고 신장개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유왕의 아들인 태자 의구가 도읍만 옮기고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위풍당당한 위의 석상이 바로 호경을 떠나 낙읍으로 천도하며 서주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동주의 시작을 알린 유왕 궁열의 아들인 의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서융의 족장에게 선물로 전해진 포사는 그 후 어찌 되었을까요? 

그건 제가 서융까지 따라가 보지 못해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아마도 서융의 족장을

오늘도 또 웃음으로 어떻게 뇌살 시킬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성문 앞에서 하루 종일 서서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고객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인형처럼 인사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포사라는 여인 때문에 나라가 멸망한 여산 봉화 사건과 은나라 걸왕의 주지육림이라는 말과

관련된 매희와 포락지형이라는 말이 생긴 은나라 주왕 때 달기를 두고 후대에 중국의 왕들이

미색을 탐하면 신하들이 늘 이 이야기를 하며 비유를 드는 여인들입니다. 

 

 

그냥 시골에서 살았다면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냇가에서 빨래나 하며 지아비를 모시고

평범하게 살았을 텐데 예쁜 얼굴 때문에 포홍덕이 아비를 구하겠다고 미인계로 스카우트되어

이용되다가 슬프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더러운 정치판에 휩쓸려 안타깝게 스러진 것이 이게 포사만의 잘못인가요?

 

여자도 적당히 예뻐야지 너무 예쁘면 미인박명이라고 불행하게 끝나는가 봅니다.

그리고 이런 여인을 너무 아름다워 나라까지 말아먹는다고 경국지색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수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까요.

 

애첩을 웃게 만들기 위해 저지른 여산 봉화로 인해 나라가 멸망하는 일이 벌어진 서주라는

나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코미디를 보는 듯합니다.

우리는 봉화를 올릴 능력도 없으니 그냥 손마디가 거칠어진 부인의 손이나 넌지시 잡으며

"여보 사랑해~ 힘들었지?"라는 말만 하면 됩니다.

 

일단 한번 해 보시라니까요.

오늘 저녁 반찬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정말이라니까요.

 

이로써 포사 이야기를 모두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인사 올리며 물러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백성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니 처벌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설령 오해와 그릇된 마음으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아예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 있는 것이니 
어찌 백성을 탓할 것인가?
- 세종대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