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15. 00:33ㆍ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동탁이 여포의 방천화극을 맞고 통나무 쓰러지듯 가버렸습니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시간을 며칠 전으로 돌리겠습니다.
동탁이 여포로부터 초선을 보호하기 위하여 초선을 데리고 장안을 떠나 미오성으로 가던 날...
동탁의 권세가 얼마나 강했으면 그가 움직일 때 거리의 주변은 모두 휘장을 쳐
먼지가 나지 않게 하였으며 연기를 피우지 않기 위하여 음식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여포는 동탁의 행차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 숨어 먼발치에서 초선의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기 위해 인파 사이에서 서서 지켜보고 있는데 마차를 타고 가던
초선이 여포를 발견하고 소리를 죽여 입속으로 말을 합니다.
분명히 "장군! Help me. Please~" 였고 자기 가슴을 가리키는 의미는 "마음이 아파요.
저를 꼭 구해 데려가 주세요.
저는 오매불망 장군만을 사랑하는 일편단심 민들레야요~"라고 하는 뜻이라는 것을
둔한 여포는 감지합니다.
물론 제가 봐도 그렇게 느꼈으니까요.
사랑하는 연인의 애절한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포는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본다면 사내라면 누구나 마음이 아려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 동탁에게 달려들어 요절을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주위에 있는
호위병들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그냥 아픈 가슴 부여잡고 발만 동동거립니다.
아~ 사랑하는 여인을 이리 그냥 떠나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하는 인간인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요사이 살아왔는데 내가 전생에
무슨 업보를 받고 태어났기에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만 보고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아야 하는가?
초선은 여포를 영웅이라고 말했고 분명히 나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수만 가지 생각이 여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때 누가 여포의 어깨를 툭 칩니다.
뒤를 돌아보니 왕윤입니다.
"자네 왜 함께 가지 않는가?"
젠장 왕윤이 천일염 왕소금으로 염장 팍 지르며 들어옵니다.
"제가 가긴 어딜 갑니까? 영감탱이가 저를 피해 도망을 가는데요..."
말투가 곱지는 않지요?
왕윤이 왕눈을 뜨고 묻습니다.
"아니 그럼 아직 두 사람이 혼례도 치르지 않았다는 말인가?
내 딸을 태사가 노리갯감으로 가지고 놀고 있다고?
우찌 세상에 그런 해괴한 일이 있단 말인가?"
아주 작심하고 왕소금을 팍팍 뿌려댑니다.
그래도 여포는 모처럼 자기편이 되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을 만나 기쁩니다.
"이봐! 사위 이럴게 아니라 우리 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해 봄세.
자네 시간이 있는가?"
사위라고 합니다.
여포는 왕윤만이 당연히 자기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 시간이 없겠습니까?
이제 아비가 초선이를 데리고 멀리 떠나면 남는 게 시간인데요.
초선이 없는 佳人도 백수가 되니 남는 게 시간뿐입니다.
이렇게 왕윤의 집에 도착한 여포는 그간의 일을 소상히 장인인 왕윤에게 하소연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확고한 의사를 표현합니다,
"제가 초선이를 사랑하고 초선이도 저만 사랑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왜 우리 사이에 늙은 영감탱이 동탁이 끼어들어 사랑을 훼방 놓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초선이 만큼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다시 구해 올 것입니다."
드디어 목숨을 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포의 확고한 결심을 듣고 왕윤은 이제 이 드라마가
거의 종영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당연한 말이 아닌가? 일개 저잣거리 시정잡배들도 지 계집은 함부로 남의 손을
타지 못하게 하는데 자네는 천하의 영웅이라는 여포가 아닌가?
목숨을 열 개라도 바쳐 우리 딸을 구하여 행복하게 사시게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자네는 영웅이 아니고 겁쟁이지.
후세 역사가가 자네를 뭐라 기록하겠는가?"
칭찬인지 욕을 하는지 전의를 북돋우는 격려의 말인지....
왕윤이 여포의 결심을 듣자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이는 짐승보다 못한 파렴치한 일이네!
아무리 의부라도 어찌 자식의 연인을 인터셉트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에 여포는 저절로 힘이 불끈 솟습니다.
사실 당나라 현종은 친부일지라도 자식의 애첩인 양귀비를 슬쩍하긴 했지요.
중국에서는 자주 있는 일입니다.
하물며 친부도 아니고 의부인데 무슨 큰 허물이 되겠습니까?
"만약 그 영감탱이가 의부만 아니었다면 이미 죽여버렸을 겁니다."
드디어 죽여버린다는 말이 여포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입니다.
자기 목숨을 건다는 말과 동탁을 죽인다는 말이 다 나왔으니
이제부터는 일이 빨리 진척이 되겠군요...
이 말에 왕윤이 바로 들이댑니다.
"자네 성이 무엇인가?"
"그건 왜 생뚱맞게 물어보십니까? 여씨지요."
"그럼 의부의 성은?"
"나 원 참... 아니 장인어른! 제가 바봅니까? 동 씨가 아닙니까?"
"그래 자네 바보 맞아!
자네는 여 씨고 동탁은 동 씨인데 어찌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란 말인가?
아니야~ 아비가 되어 며느리가 될 여자를 가로챈다고?
동서고금을 막론한고 신문에 날일이 아닌가?
그런 아비도 아비로써 자격이 있단 말인가? 나 원 참
내가 초선이를 보낼 때 분명히 자네에게 준다고 했고, 자네는 내 발아래 무릎을 꿇고
나를 장인어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라고 태사는 초선이를 훌륭한 며느리감이라고 그날로 바로 데리고 갔고 혼례를 치러
둘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내게 약속을 했지...
그런데 둘이 자네와 초선이 아니고 태사였다고?
나 같으면 아비고 뭐고 없이 당장 요절을 내고 말았을 게야.
세상에 도덕이 이렇게 땅바닥에 떨어졌단 말인가?"
여포는 오랜만에 시원한 말을 듣습니다.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주는 왕윤이 눈물 나도록 고맙습니다.
사실 혼자는 생각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말을 해 주지도 않았고
또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장인어른 그럼 이제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오냐! 기다리던 말이다.
이제부터 국가전략 연구팀에서 만든 최종 계획을 브리핑할 시간입니다.
여포에게는 무지개 사이로 한 줄기 희망의 빛줄기가 하늘에서 내려 비치는 듯합니다.
이제부터 미인계는 왕윤과 초선 둘만의 인생 과업이 아닙니다.
적의 손을 빌려 적을 치는 겁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라고 하던가요?
그동안 여포는 동탁을 제거하고 초선이를 구출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동탁은 양아버지가 아닙니까?
사랑을 따르자니 양아버지가 울고 양아버지를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신파가 바로 이런 이야기인가 봅니다.
이때 여포의 마음을 꿰뚫어 보던 왕윤의 결정적인 한 마디...
"사위!!! 자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는 내일 마지막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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