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9. 7. 00:24ㆍ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초선을 보낸 다음 날 여포가 씩씩거리며 왕윤의 집을 찾아와 묻고 따지기 시작합니다.
왜 안 오겠습니까?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리다가 꿈속에서 그리던 초선이 부도가 나버렸는데요.
한 마디로 여포가 뚜껑 열렸다는 말입니다.
"왕대인께서 제게 초선을 준다고 하고 왜 제 의부에게 패스를 합니까?
제게 딸 가지고 이중플레이를 하세요?"
왕윤은 태연스럽게 껄껄 웃으며 "태사께서 아직 장군에게 말씀을 안 하셨습니까?
태사께서 바쁘신가?"
능청 한 번 떨고 여포의 표정을 살핍니다.
"어제 택배로 포장되어 온 초선을 의부께서 방 안에 꽁꽁 숨겨놓고
저에게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다."
"걱정 마세요. 어제 조회 때 제가 초선을 장군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태사께서 며느리감을 즉시 직접 확인하시겠다고 친히 우리 집에 오셨고 초선이
영웅인 아들 여포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기뻐하셨습니다.
특히 초선을 절세가인이라고 하셨지요.
헉! 머시라꼬? 佳人이라고요?
제가 길일을 택해 날자를 잡아 보내겠다고 하니 손가락으로 '자축인묘...'하고
집어보시더니 바로 어제가 제일 좋은 날이라 하시며 즉시 데리고 가시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마 곧 날을 잡아 두 분의 혼례일을 잡으실 겁니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
아마도 장군을 놀라게 하려고 Suprise Party 라도 준비하실 모양입니다.
놀라며 즐거워할 여포장군을 보기 위해 태사께서 그러시는 모양입니다"
노련한 왕윤의 말을 들은 머리 나쁜 여포는 부끄럽기도 하고 경솔했다는 마음뿐입니다.
Suprise Party라... 정말 흥분되는 파티죠?
장인어른과 의부인 동탁이 그렇게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성질 급한 자신의 행동이 몹시도 부끄럽습니다.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볍고 콧노래도 절로 나옵니다. 룰루랄라~
태사부로 돌아온 여포는 집안의 분위기가 혼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보여
시녀에게 물어보니 "어제 태사께서 미녀 한 분을 데리고 오셔서 함께 잠자리에 드시고
아직도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입니까?
함께 잠자리에 드셨다니요?
경천동지...
바로 하늘이 놀라고 지축이 흔들리는 일이 아닙니까?
아니 그러면 자식의 신붓감인 며느리를?
장병 신체검사도 눈으로만 확인한다는데 그럼 직접?
아직 착한 여포는 초선의 손도 잡아보지 못했는데?
여포는 돌아버리겠습니다.
아무리 의부라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어찌 자식의 연인을....
의부는 짐승입니다.
이것은 여포가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지요.
절대가인이라는 양귀비는 어떤가요?
아비라는 당 현종이 아들의 후궁인 양귀비를 인터셉트하고 들어 왔잖아요.
그래도 시녀가 잘못 보거나 오해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여포는 제 눈으로 본 것만 믿자는
마음이 들어 그래서 살그머니 태사의 방으로 다가가 창문으로 방안을 넘겨다 봅니다.
흐미~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창문 너머로 어지럽혀진 침대가 보이고...
초선은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가 여포와 눈이 마주치자 "Help me"라고
하며 구해달라는 듯 자기의 가슴을 두드립니다.
사슴처럼 애잔하고 커다란 초선의 눈에는 눈물이 금방 가득 고여 버렸고 가슴을 치는
초선의 애처로운 모습을 본 순간 여포의 가슴은 미어집니다.
당장 동탁의 허리를 두 동강을 내버려 요절내고 싶습니다만, 그래도 아비인데 어찌합니까?
그리고 심증은 가나 아직 확실한 현장을 잡은 것도 아니고요.
누구나 자다가 일어나면 침대가 어지럽혀지잖아요.
게다가 침대에는 초선만 보이고 의부인 동탁은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때 동탁은 다른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포는 의부에게 다가가 헛기침을 합니다.
동탁이 밥 숟가락은 뜨다 말고 쳐다보며 "아침부터 웬 일?"하고 묻자.
여포는 "아침 문후 인사!" 그리고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 갔다 하며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지난밤 무슨 일?' 하며 물어보고 싶으나 자식으로서는 차마 묻지를 못합니다.
동탁도 낌새가 이상해 "일 없으면 가 봐~" 하자 두 사람은 선문답만 나누고
여포는 속으로만 투덜거리며 터덜터덜 걸어 나옵니다.
지금의 동탁이 혼자 힘으로만 태사의 자리에 올랐습니까?
여포가 옆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보필하여 그리 된 것이 아닙니까?
사실 동탁도 여포가 없을 때는 여러 지역에서 잘난 사람이 군웅활거할 때
그중 하나였습니다.
One of them이고 우리말로는 도토리 키재기라고 하지요.
황제가 힘이 없으면 원래 잘난 사람이 많이 나타나잖아요.
그러나 여포가 동탁의 진영에 합류하며 천하의 기운은 동탁 한 사람으로 몰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태사의 지위에 단숨에 올랐고 황제도 사실, 마음대로
갈아버리고 지금 황제에게 그 자리를 물려받기 직전에 와 있습니다.
이는 오로지 동탁의 힘이 아닌 여포의 힘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납니다.
동탁은 초선의 미혹과 끊임없는 사랑공세에 나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뼈가 녹고
살이 타는 밤을 보내다가 드디어 그만 덜컥 병이 나고 맙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이때 동탁의 나이가 54살이었거든요.
기와 진이 모두 빠져 기진맥진해 버렸습니다.
노래도 있잖아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
오버 페이스를 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팀의 에이스라도 오버 페이스 하면 홈런도 맞고 몸에 맞는 공도 던집니다.
심하면 2군에도 내려갔다 와야 합니다.
인생이란 단거리가 아닙니다.
마라톤처럼 페이스를 조절하며 뛰어야지 인생을 살 만큼 산 동탁이
아마추어처럼 왜 그랬을까요?
페이스 메이커라는 돈 받고 초반에 뛰어주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가다 보면
개망신당하는데 인생은 자기 능력껏 살아가야지 영화처럼 살면 영화처럼 사라집니다.
다 체력이 받쳐주고 기력이 따라야지 사랑은 의욕만으로 하는 게
절대로 아닌데 말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고 싶으신 게요?
그런 겁니까?
이를 기회로 초선은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듯 식사며 약이며 시간을 맞추어
보살펴주니 동탁이 보기에는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는지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이런 것을 바로 병 주고 약 주고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동탁의 입장에서 보면 태어나 이런 호사를 누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장어는 여름철 보양식품이죠.
이런 장어를 먹고 나면 힘이 솟고 의욕이 충만하고...
여름철 더위도 거뜬히 견뎌낼 수 있지요.
동탁이 몸이 아파 드러눕자 여포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동탁의 처소로 다가가
기웃거리다가 초선과 눈이 마주칩니다.
초선도 누워 잠이 든 동탁을 뒤로하고 살그머니 방을 빠져나와 여포의 품에 와락 안깁니다.
"장군님~ 저를 구해주세요.
저는 당신의 여자이옵니다.
제가 왜 태사의 품에 안겨 이런 치욕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합니까?
제가 밤마다 짐승 같은 동탁의 품에 시달림을 받으며 흘리는 눈물과 소첩의 마음속 깊이
간직한 영원한 사랑인 당신을 그리며 흘리는 눈물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기나 하시는 겁니까?
천하의 여포 장군이 어찌 자기 여자 하나 책임을 지지 못하신단 말입니까?
영웅이란 말은 모두 뻥이었습니까?" 하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습니다.
이게 열여섯 살 어린 소녀가 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대본에 따라 달달 외워하는 말입니까.
여자의 눈물은 아무리 강한 남자라도 녹여버립니다.
더군다나 단순 무식한 여포는 눈 앞이 캄캄합니다.
그리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초선을 가슴팍에 꼭 안아주는 일 외에는요.
초선이 흘린 눈물 몇 방울이 여포의 옷에 흐르자 여포는 결심을 굳혀갑니다.
그리고 초선은 한 마디 더 합니다.
"마음을 준 분과는 함께 하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분과 늘 함께 한다는 고통을 아세요?
제발 자주 오셔서 제 마음의 영웅을 지근거리에서 뵐 수만 있어도 저는 행복합니다.
저는 장군을 위한, 장군에 의한, 장군의 초선이옵니다."
그때 안에서 동탁이 잠을 깨 밖에서 초선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
"게 누가 왔느냐?" 하고 묻습니다.
"네 여포 장군께서 병문안을 오셨기에 지금 주무시는 중이라고 아뢰고 있었습니다."
병은 무슨 병?
그러나 늙은 동탁은 벌써 눈치를 채고 소리칩니다.
"여포 네 이놈! 부자간의 정리와 도덕을 잊고 아비가 아픈 틈을 노려 순진무구하여
솜사탕보다 부드럽고 오뉴월 아이스크림보다도 쉽게 녹아버리고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 같은 초선에게 수작을 걸어! 당장 네 이놈을!"
여포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순간은 튀는 게 상책입니다.
오늘은 튀는 일까지 진도가 나갔습니다.
영웅이라는 여포도 매일 튀는 모습만 보여드려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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