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 이야기

2010. 8. 2. 09:56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사마천의 사기

 

춘추시대 제나라에 관중이 죽은 지 100여 년 후에 안영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공자가 살았다고 합니다.

제나라의 영공, 정공, 경공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냈으면서도 여우가죽으로 만든

옷 한 벌로 30년을 입을 만큼 검소하였기에 공자도 그를 무척 존경하였다고 합니다.

 

재상이 되고 나서도 밥상에 두 가지 이상의 고기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했으며,

첩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매일 고기반찬을 두 가지는 먹었고 첩은 두고 살았군요.

이렇게 살고도 무척 검소했다고 하는 겁니까?

중국에서는 이 정도면 아주 검소하게 살고 존경을 받는 모양입니다.

 

월석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지만 어쩌다 죄를 짓고 남의 노복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안영이 외출했다가 월석보를 보자 자기 수레의 왼쪽 말을 풀어

속죄금으로 바치고 난 뒤 노예로 지내던 월석보를 자기 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노예 값이 말 한 마리와 같았던 모양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안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동안 얼굴도 내밀지 않았답니다.

이에 월석보가 떠나려 하자 깜짝 놀란 안영이 의관을 갖추고 사과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인정이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대를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이처럼 성급히 떠나려고 하십니까?"

 

월석보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그 억울함을 참을 수 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뜻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노복들 무리에 있을 때 그들이 저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께서 저를 구해 준 것은 뭔가 느끼는 바가 있어서일 터니

저를 알아주는 지기입니다.

그런데 지기가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니 저는 오히려 노복들 사이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영은 그를 상객으로 모셨다 합니다.

 

안영이 제나라 재상으로 일할 때였습니다.

하루는 외출을 하는데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그 모습을 엿보았습니다.

재상의 마부인 남편은 널찍한 차양을 받쳐 들고 네 필의 말에 채찍질을 하며

의기양양하고 흐뭇해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자 그의 아내는 떠나겠다고 했답니다.

남편인 마부가 그 이유를 묻자 "안 자라는 분은 키가 6척도 안 되건만

재상의 자리에 올라 제후국 사이에서도 이름이 높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외출하는 모습을 보면 늘 자신을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는 큰 키에 남의 마부로 일하면서

스스로 흡족해하는 것 같더군요.

이것이 제가 떠나려는 까닭입니다."

중국은 마부의 아내조차 이렇게 높은 이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 원 참!!! 

 

그 후 마부는 자신을 절제하여 겸손한 사람이 되었는데 이를 이상히 여긴

안영이 까닭을 알고 마부를 대부로 삼았다고 합니다.

안자지어(晏子之御)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안자의 마부라는 뜻으로 변변치 못한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믿고

우쭐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게 바로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우리나라 속담과도 같은 예입니다.

 

 

이도살삼사(二桃三殺士)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제나라 경공에게 공손접, 전개강, 고야자라는 세 명의 무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빌려 법과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월권을 일삼았답니다.

 

안영은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복숭아 두 개를 경공에게 바치며 공이 있는 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답니다.

공손접과 전개강이 각각 자신의 공을 내세워 복숭아를 차지하자 이에 질세라

고야자 역시 자신의 공을 내세웠습니다.

고야자의 말에 두 사람은 부끄러워 수수로 목을 찔러 죽자 고야자도

혼자 사는 것은 인이 아니라며 자결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교묘한 계책으로 상대를 자멸하게 하는 것을 이도살삼사라도 한답니다.

정말 중국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복숭아 하나 얻어먹으려고 목숨을 거는 사람이니까요.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안영이 두 번째로 모시던 장공이 어느 날 신하인 최저의 집에 들릅니다.

최저의 아내를 보는 순간 장공은 그만 넋을 잃고 맙니다.

아니되옵니다를 외치는 신하의 부인과 기어코 정을 통하고 맙니다.

그는 결국 최저의 손에 살해당하고 맙니다.

아픕니다 많이 아파요...

목숨을 걸만큼 남의 아내가 탐이 났습니까?

신하의 아내를 탐하다니요.

너무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왕이 죽자 어느 누구도 조문을 하지 못합니다.

최저의 위세가 졸지에 최고에 달했으니까요.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안영만이 장공의 시신 앞에 엎드려 곡을 하며

예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군왕이 나라를 위하여 죽었다면 나 역시 따라 죽을 것이나 사사로운 욕심 때문에

죽었기에 그럴 수 없다. 그러나 군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가 장례조차

치러 주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하겠느냐"

"부끄러운 죽음이지만 장례는 치러줍시다."라는 말이지요.

결국 안영은 다음에 왕위에 오른 경공까지 모시게 됩니다.    

 

흔히 안영을 세 임금을 섬겼으되 세 가지 마음이 아닌 한마음으로 모신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마천도 안영이 살아있다면 내 비록 그의 마부가 된다 해도 흠모하며 섬기겠다고 했답니다.

사마천을 마부로 부린다...

그것 할만한 일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