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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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공원 동물원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는 바람에 동물원 구경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때는 동물원을 창경궁에다 만들었을 겁니다. 그 후 창경궁은 예전의 궁으로 되돌리고 동물원은 새롭게 과천으로 옮기게 되었지요. 아이들을 자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대공원에 가끔 들렀지요. 그 후 잊고 지내다가 손자가 생기니 손자를 데리고 서울 대공원에 다녀왔습니다.
2017.08.19 -
눈길이 머문 낙선재( 樂善齋)
위의 사진은 창덕궁 낙선재 후원의 모습입니다. 층계 모양의 단을 만들어 변화를 주고 거기에 꽃을 심어 꽃의 계단처럼 만들었습니다. 밋밋한 곳일지라도 이렇게 변화를 주어 아름답게 꾸민 조상의 조경기술을 보는 듯합니다. 게다가 굴뚝도 단 위에 만들었는데 굴뚝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조경시설로 보일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평범할 수 있는 후원을 이렇게 꾸며놓으니 아름다운 정원으로 다시 태어난 듯합니다. 위의 사진은 낙선재에 있는 방문입니다. 덧문 안쪽 문에도 이렇게 변화를 주어 멋을 냈습니다. 사각형의 평범한 문보다 이렇게 변화를 주니 그 아름다움의 느낌은 몇 배나 더하네요. 이렇게 우리 조상은 멋도 있는 분들입니다.
2016.02.13 -
창경궁 통명전(昌慶宮通明殿)
창경궁 안쪽 창덕궁과 연결되는 곳 부근에 통명전이라고 부르는 전각 하나가 있습니다. 그러니 서북쪽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셈이죠. 이 건물의 용도는 대비의 처소나 왕의 침전 겸 연회용으로 지은 곳이라 합니다. 창경궁 통명전은 보물 제818호로 지정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조선 성종 15년인 1484년에 세운 건물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임진왜란 때 한번 불탄 건물로 광해군 8년에 다시 지었지만, 정조 14년에 또 화재를 당해 전소하였다고 하네요. 목조 건물은 정말 화재에 취약했나 봅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34년에 창경궁을 재건할 때 지은 건물이라네요. 통명전이라는 현판에 어필이라는 글이 보입니다. 이는 순조가 화재로 소실된 통명전을 다시 지으며 직접 현판을 썼다고 합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제법 규모..
2015.07.29 -
창경원 춘당지(春塘池)
창경궁 뒤편으로 가면 아름다운 연못이 있습니다. 연못은 춘당지라고 부르는데 그 뒤로 아주 작은 연못이 하나 더 있는데 그 연못은 소춘당지라고 부릅니다. 소춘당지는 볼 게 별로 없습니다. 역시 춘당지는 앞에 보이는 게 멋지네요. 위의 사진은 춘당지의 가을 모습입니다. 현재의 춘당지는 원래 연못이 아니었다 합니다. 1909년에는 이곳을 내농포(內農圃라고 불렀답니다. 당시 내농포에는 11개의 논이 있었다네요. 그곳에는 논과 뽕밭이 있었다네요. 그러니 왕궁에서 농사와 누에치기를 장려하기 위해 실제로 왕과 왕비가 농사일과 양잠을 체험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바로 그 위에 있는 지금의 창덕궁 터의 춘당대와 짝을 이룬 연못은 소춘당지라고 하네요. 춘당대란 곳이 예전에 과거 시험을 치른 곳이기도 하지요. ..
2015.07.19 -
창경궁 문정전에서 숭문당 함인정의 모습
문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을 뒤로 돌아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명정전은 동향인데 반해 문정전은 남향으로 앉아있습니다.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신하들과 어전회의를 하던 그런 장소랍니다. 그러나 여기는 우리도 잘 아는 아픈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사도세자이지요.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이고 아들 이산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자결하라고 칼 한 자루 던져주었지만, 세자는 거절했고 결국 영조는 아들이 갇힌 뒤주에 못질하게 되었지요. 뒤주에 갇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도세자와 그의 아버지 영조,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그리고 이를 바라보고 울음소리조차 밖으로 낼 수 없었던 혜경궁 홍 씨... 바로 이런 ..
2015.07.18 -
명정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창경궁은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른 후 1418년 상왕인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지은 수강궁이 있던 곳이라 합니다. 그 후 성종 14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 덕종의 비 소혜왕후, 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 터에 명정전, 문정전, 통명전을 지음으로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네요. 그리고 이름도 창경궁이라고 정했답니다. 창덕궁과 더불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동편에 있어 동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네요. 창덕궁과는 담도 없이 후원도 함께 사용했다고 하니 같은 궁이라고 봐야 하겠네요. 창경궁은 창덕궁으로는 협소해 왕과 왕비는 물론 후궁이나 공주, 궁인의 처소로 사용되었고 그러다 보니 정궁의 모습과는 달리 동편을 향해 지었고 내부도 자유스럽게 만들었다 합니다. 이유는 동쪽에 있는 왕실 동산인 함춘원이 있고..
2015.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