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보다 더 아름다운 비엔나 시립 중앙묘지

2022. 6. 17. 04:00독일·오스트리아 2018/비엔나

아침 9시 개장에 맞추어 벨베데레 궁전을 구경하고 하궁(Lower Belvedere)으로 나와 트램을 타고

시립 중앙 묘지인 젠트랄프리드호프(Zentralfriedhof)를 찾았습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빈(Wien:비엔나) 시내에 있는 묘원이지요.

묘지에 무슨 구경할 것이 있다고 찾아가느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음악가인 모차르트,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슈베르트, 요하네스 브람스 같은 악성(樂聖)들이 활동한 고전음악의 성지(聖地)로 기억되고 있지요.

따라서 중앙 묘지는 200만여 명의 빈 시민에게는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되겠네요.

 

이곳 빈의 시립 중앙 묘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음산한 분위기의 공동묘지가 아니고

정원처럼 아름답게 가꾸고 묘지를 장식하는 동상도 예술작품처럼 관리하는

예술공간과도 같은 묘원이랍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빈을 찾는 자유 여행자 대부분은 이곳 중앙 묘지를 찾지 싶습니다.

 

여기는 음악가 외에도 오스트리아에서 유명한 과학자나 작가 그리고 정치인 또는 군인들의 묘역도

있다고 하는데 다만 우리 같은 여행자는 주로 음악가들이 모여있는 묘역을 중심으로 보고 오니까

빈 시립 중앙 묘지는 음악가 묘지만으로 알고 있지요.

 

정문에서 직선도로를 따라 100여 m 들어오면 왼쪽에 32A 구역이 있는 데

이곳이 바로 음악가의 묘역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중앙 출입문은 막스 헤겔레가 1905년에 제작한

유겐트슈틸(아르 누보)의 걸작이라고 하네요.

 

31A 구역은 트램 중앙 묘지 제2문(Zentralfriedhof 2 Tor)에서 내리고

이 문을 통해 들어가야 지름길입니다.

제2문 정류장은 시내 벨베데레 아래 궁전 앞에서 71번 트램을 타면 종점 번 정류장입니다.

빈 시립 중앙 묘지는 3곳의 전철 정거장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음악가들이 있는 묘역 앞에는 위의 사진에 보듯이 MUSIKER라는 팻말이 있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그곳에는 인류의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지만 가장 불행했을지도 모를

3명의 묘가 있는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반 베토벤

그리고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의 묘가 있습니다.

팻말이 있는 곳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위의 사진처럼 보일 겁니다.

가운데 모차르트 그리고 왼쪽 뒤에 베토벤과 오른쪽 뒤로 슈베르트의 무덤이 보입니다.

아마도 이 세 사람의 묘지가 여기서는 핵심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위의 사진에 보이는 모차르트의 묘는 시신이 없는 가짜로 만든 묘로 기념비라고 해야겠네요.

당시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기라 모차르트가 죽자 시신을 운구했던 인부들은 그의 시신이 담긴

관을 무연고로 죽은 자를 위해 파 놓은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갔기에

후에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묘비에 세운 천사가 흐느끼고 있나요?

 

세계적으로 지금은 가장 유명하지만, 그때는 이곳에 있는 음악가 세 사람은 모두 불행했지 싶습니다.

천재 모차르트는 죽음이 불행했고, 악성 베토벤은 전성기가 불행했으며,

클래식 음악의 완성자 슈베르트는 삶 자체가 불행했다지요.

예술이라는 게 힘든 일이라 불행했을까요? 아니면 불행해야 세계적인 음악이 탄생하기 때문일까요.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하며 “죽어서 그의 곁에 묻히고 싶다"라고 소망했던 30살의

무명 음악가가였던 슈베르트는 훗날 가장 위대한 음악가 반열에 올랐지만,

사실 당시는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무명에 가까웠다네요.

모차르트 베토벤 등과는 달리 생전에 거의 인정을 받은 바흐도,

그의 곡이 귀족들에게 비싸게 팔린 적도 없었잖아요.

 

그래서 생활은 늘 궁핍했고,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하지요.

어떤 음악 역사가는 슈베르트에 대해 “사실상 굶어 죽었다”라고 얘기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런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관을 운구하며 소망했던 일인 베토벤의 곁에 묻혔으니

결국 자신의 꿈을 이뤘네요.

그런 역경을 딛고 이곳에 묻혔으니 여신도 슈베르트의 머리 위에 월계관을 씌워주나 봅니다.

 

독일 본에서 태어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성인이 된 후 독일을 떠나 거의 여기서 살았다지요.

지금은 음악의 성인이니 악성이니 하지만, 그때는 30살 때부터 병약한 몸 때문에 병을 달고 살았다네요.

결국은 그런 질병으로 인해 청력마저 나빠져 들을 수 없는 난청 작곡가가 되었겠네요.

 

그는 한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생각도 했지만, 오히려 정신력으로 극복하며 더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난청인 상태에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간 베토벤은 분명 하늘이 내린

천상의 작곡가였나 봅니다,

납중독이나 선천성 매독이라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평소 삶은 명성에 비해

대단히 불행한 삶을 살았나 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묘지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왈츠의 왕이라고 했나요?

묘비를 장식한 여신도 악기가 연주되면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왈츠라도 추려고 하나 봅니다.

 

아직도 악상 때문에 머리가 아픈 브람스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 편히 쉬시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묘지입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라지요?

왈츠의 아버지라고 하니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왈츠입니까?

대표작인 라데츠키 행진곡이 유명하다지요?

 

프란츠 주페의 묘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인 경기병 서곡을 작곡한 사람이지요.

 

우리처럼 트램을 이용해 음악가 묘역만 구경하려면 두 번째 정류장에서 내려

정문을 통해 들어오면 됩니다.

현재 매장 묘지에는 30만 개의 묘소가 조성돼 있는데 대부분이 가족묘인 이곳은 한 묘소에 4기까지

안치할 수 있어 무려 120만 영혼의 안식처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 묘지를 조성할 당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화장해 이장한 것까지 합치면 300만 기가

넘는 규모고 그래도 108년 전인 1874년 처음 문을 연 시립 중앙 묘지는

아직도 5만 기의 여유가 있다고 합니다.

250만 평방미터의 크기로 유럽에서는 독일 함부르크의 올스도르프 묘지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묘지라 하네요.

 

워낙 넓게 조성된 묘지라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입구로 들어서면 안내판이 있기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싶습니다.

중앙 큰길을 따라 큰 성당이 보이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왼편에 우리 눈에 익은 음악가의 동상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우리가 아는 음악가 대부분이 반상회라도 하듯이 위의 사진처럼 한 구역 안에 모여있더군요.

 

이들은 이미 죽어 고인이 된 지 오래되었지만, 우리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죽은 게 아니라

죽음에서 다시 영원히 부활하고 있지요.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있다면 분명 죽은 게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각에 묘지라고 하면 그리 썩 기분이 좋은 곳은 아니지요.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에는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묘지가 아름다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듯합니다.

마치 빈에 오면 누구나 들러보고 싶은 유명한 관광자원처럼 말입니다.

예술에 대해 전혀 감각이 없는 우리도 이곳에 들렀으니...

 

가족묘는 한가족 4명까지 묻힐 수 있으며 지하 2m 70cm까지 수직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4구가 다 찬 가족묘는 다시 4구를 한 곳에 입관해 3구의 여유를 확보할 수 있어

최대 16구까지 한자리에 입관할 수 있어 한정된 묘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지혜로운 방법이네요.

 

오스트리아에서는 묘지뿐만 아니라 장례도 철저하게 정부가 관리하고 있답니다.

각 지방 자치 정부는 해마다 장례업체들과 계약을 체결해 허가받은 업체만이 장례를 맡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만약 장례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하거나 지나치게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게 유도하는

업체가 있다면 다음 해 계약에서 제외돼 문을 닫아야 한다네요.

 

이 때문에 장의차와 관, 꽃값까지 모든 비용이 표준화된 규정에 따라 정해진다고 하니 이런 점은

수의 값으로부터 시작해 시신을 두고 장삿속으로 비치는 가격결정을 밀고 당기는

우리나라도 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중앙 묘지는 빈 시당국이 1894년 5군데에 나눠져 있던 묘지를 한 곳으로 모아 조성한 곳으로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모차르트 묘지는 물론이고 역대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묘지가 있는 곳이지요.

빈 숲은 시 면적의 3배나 되는 녹지대로 도시 빈의 허파기능을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겠네요.

 

인구 증가 문제 및 도시에 흩어진 공동묘지를 통합하는 목적으로 1874년에 공식적으로 개장한 묘지는

빈 외곽에 위치하며 묘지 중앙에는 돔 형태의 세인트 찰스 보로메오 묘지 교회

(Friedhofskirche zum heiligen Karl Borromäus)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음악가 묘역 부근인데 이곳 반지하에는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에 알아두시는 게 좋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가 아는 세계적인 음악가의 삶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나 봅니다.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 때를 풍미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더 불행했고 더 힘들게 살았나 보네요.

인간의 삶이란 대동소이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