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8. 04:00ㆍ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주변의 조용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오늘의 장소입니다.
남양 성모 순례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많은 순교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라고 합니다.
종교가 나라의 근간을 뒤흔든다고 생각했기에 그랬나요?
이곳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고 하는데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남양의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라고 합니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고 하네요.
그 후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가꾸어져 오던 남양 순교지는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되었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이곳은 화성시에서 화성 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홍보하고 있을 만큼
성지 내부가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 묵주 알,
그리스도 왕상, 성모 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 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네요.
이곳 남양이 왜 순교지가 되었는가 하면 조선조 때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남양 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 행정에 관한 권한 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네요.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함으로
이곳이 무명 선교자들이 많이 생긴 이유라고 하네요.
위의 사진을 보니 폴란드 출신의 교황 바오로 2세도 다녀가신 곳인가 봅니다.
그리고 남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고요.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남양 성모성지 입구에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은 주차료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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