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 로마라는 고슬라르

2021. 1. 11. 05:15독일·오스트리아 2018/고슬라르

고슬라르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가게에서 파는 마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마을은 예전부터 마녀의 전설이 있는 곳이라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 눈에도 낯익은 빗자루를 탄 마녀의 모습이 많이 보이고

또 전문적으로 마녀 인형도 많이 팔더라고요.

 

그러나 이곳은 마녀보다는 하르츠산을 끼고 있어 황제가 머물기도 했던 황궁이 남아있는

곳이며 또한 독일 전통의 목조 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소도시 중 한 곳입니다.

따라서 골목길을 걷는 즐거움도 있는 곳이지요.

 

고슬라르는 중세시대에는 북방의 로마라고도 불렸다지요?

고슬라르를 북방의 로마라고 부른 이유가 바로 하인리히 3세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때문이라고

하며 그는 재위 시절 서로 정통성을 두고 싸우던 교황 세 명을 모두 추방해버리고

새로운 교황을 임명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녔다네요.

 

따라서 그의 권력은 독일 전역을 넘어섰기에 그가 머물렀던 이곳 고슬라르를 북방의 로마라고

불렀다고 하며 그랬던 그도 안에서 곪아 터져 내치에 실패한 군주로 지방 군주들의 반란으로

실각하기에 이른 비운의 황제였다고 합니다.

누구처럼 뭣이 중헌 지 알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았네요.

 

그러나 많은 사학가는 그를 독일 역사상 최강의 군주로 부른다고 하며 당시 막강한 힘을 가진

교황과 힘겨루기에 이겨 세 명이나 갈아치울 정도의 권력을 지녔기에 그렇게 평가하나 봅니다.

그랬던 그도 죽은 후 이곳 궁전 지하에 잠들었다네요.

 

그러나 이곳에 오면 두 개의 세계문화유산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그중 하나인 광산은 생략하려고 합니다.

이곳은 황제의 별장이 있던 곳이고 신교의 뿌리가 깊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황제는 이곳 광산 개발로 큰 돈을 거머쥐었다네요.

 

광산 개발은 황제의 권위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전쟁마저 없었던 시기라

태평성대였다는데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도 이곳은 폭격으로부터 자유로웠기에

  중세 형태의 가옥이 그대로 남아있네요.

구시가지는 기차역 남쪽에 있어 길을 따라 황궁까지 오면 고슬라르의 대부분을 본 셈입니다.

 

광산 때문에 부자 마을이었고 황제까지 이곳에 별궁을 마련할 정도로 호사를 누렸네요.

세계문화유산인 라멜스베르크(Rammelsberg ore mines) 광산은 959년에 채굴을 시작해

은과 동 그리고 주석을 주로 캐냈다고 합니다.

 

이 광산은 최근인 1988년까지 채굴했다고 하니 천 년을 넘도록 유지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광산이 고슬라르를 먹여 살렸는데 이제부터 고슬라르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합니까?

 

이런 광산이 바로 마을 뒷산에 있었기에 경제적으로는 부러움을 샀던 마을이겠네요.

지금은 폐광한 후 그곳에 박물관을 만들어 입장료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관광객만 바라보는 일이 아닌가요?

 

그동안 광산에서 채굴한 광물이 2천만 톤이 넘었기에 이제는 고갈되어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하여 결국, 광산은 문을 닫았지만, 시민들은 광산 일부를 문화시설로

재단장하여 놓았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곳으로 폴란드의 비엘리치카를 생각할 수 있네요.

그곳은 소금광산으로 폐광 후 지금은 소금광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큰 성공을 이룬 곳이죠.

 

우리나라 태백과 비슷하지만, 태백은 도박시설로 흥정거리고 여기는 문화시설이네요.

따라서 고슬라르를 제대로 즐기려면 광산 투어를 해야 하지만, 

시간이 없어 구시가지만 집중적으로 구경하고 오후는 힐데스하임으로 가야 합니다.

 

이제 돌아가는 길에 한 곳을 들리려고 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지멘스 그룹이라고 있는데 그 그룹 회장의 생가가 이곳에 있다고 합니다.

굳이 그 집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그곳으로 가는 길은 전통 독일의 가옥형태인

하프팀버 양식의 집을 볼 수 있는 골목길이라 일부러라도 걸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독일의 지맨스(Siemens)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미국의 애플 정도로 유명했던

회사였는데 우리 어린 시절에는 지멘스라는 상표를 자주 보았기에

눈에 익은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오라고 초청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집 구경이나 하며 기운이나 받아볼까요?

 

지멘스 가문이 1693년에 지은 집이라고 하니 4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이곳에 살았네요.

두리번거리면 집 주변을 거닐다 보니 우리 외에도 많은 여행자가 이 집을 찾아오네요.

대부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며 돌아보는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지멘스 회장이 나와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나오지는 않지만요.

황동으로 만든 문고리 한번 잡아보고 돌아서지만, 그래도 찾아옵니다.

문고리만 잡아도 부자의 기운을 받아갈 수 있을까요?

 

물론, 내부 공개도 한다고 합니다.

사유재산이며 현재도 지멘스 가문이 살고 있어 비록 제한적이지만요.

매주 화,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 10시부터 12시 사이에만 집안 내부 공개를 한다고 하네요.

 

지금도 대단히 큰 집이지만, 이 집을 지을 당시 이 근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주변에 이만큼 큰 집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저택이라고 하지만, 정원이나 다른 부속 건물은 보이지 않고 집만 덩그러니 있네요.

 

고슬라르 대성당 입구인 현관 앞까지 왔습니다.

1819년 아쉽게도 대성당은 붕괴되고 그 후 재건하지 않아 지금은 입구인 현관만 남은

상태로 이 성당은 현재 고슬라르에 있는 모든 성당 건물의 교과서 역할을 했던

의미 있는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다니며 보았던 고슬라르의 모든 성당의 지붕 첨탑이 두 개로 같은 모습이더라고요.

그러니 이곳 대성당이 모태로 모두 씨만 다른 형제라는 말이지요?

1050년에 처음 지은 대성당은 800년밖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유럽 여행에서 천 년이 훨씬 넘는 성당도 많이 보고 다녔는데 여기는 부실공사였나 봅니다.

아직까지 그냥 빈터로 남겨둔 이유는 자금난 때문이라고 합니다.

광산으로 떼돈을 벌었지만, 성당 건축에는 인색했나요?

아니면 이곳이 신교의 세상이라 가톨릭은 크게 힘을 쓰지 못해 그랬을까요?

이제 고슬라르를 떠나 힐데스하임으로 갑니다.

하루에 두 개 도시를 구경하자니 조금은 빡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