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행렬(Fürstenzug)

2020. 7. 17. 06:00독일·오스트리아 2018/드레스덴

프라우엔(Frauen) 교회를 구경하고 슐로스 광장(Schlossplatz)으로 접어드는데

눈앞에 나타난 놀라운 모습인데 이런 벽화가 시내 건물 벽에 그려져 있다니요?

이 그림은 처음에는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인데 훼손을 막기 위해

나중에 도자기 타일로 바꾸게 되었답니다.

 

이 타일 벽화는 드레스덴에서 보았던 군주의 행렬(Fürstenzug)이라는 작품입니다.

영어로는 Procession of Princes라고 표기하더라고요.

작품이 너무 장대하기에 사진으로 찍기가 무척 힘든 곳이었습니다.

 

유럽에서도 그 유명하다는 마이센 도자기로 만든 레지덴츠 궁전의 벽화인

군주의 행렬(Fürstenzug)은 정말 놀라운 작품이더라고요.

뭐... 자기 집 벽에다 만들었으니 누가 뭐라겠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위의 사진에 보듯이 연합군의 엄청난 폭격 속에서도 시내는

초토화되었는데도 전혀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2만 3천 개 중 수백 개의 도자기는 손상을 입었지만,

1979년에 말끔하게 복원작업을 마쳤다네요.

 

그러나 우리가 갔던 날도 오른쪽 끝부분은 위의 사진에 보듯이 아직도 복원작업

중으로 102m의 장대한 도자기 벽화는 여기 말고도 세상에 또 있을까 생각할 정도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니 중국에서 도자기로 만든 아홉 마리의 용을 그린 구룡벽이라고는

있는데 이런 형태로 만든 것이지요.

 

이곳은 가로세로 각각 20.5cm 크기의 타일 23.000여 개로 Meissen 도자기 타일을 붙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곳으로 벽화의 내용은 이 작센 지방을 다스렸던 통치자들의 모습을

연대순으로 그림 아래 이름까지 넣어 행진하는 모습을 빌려 하나의 벽에다

대부분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근 천 년의 세월 동안 이곳을 지배했던 작센 가족 94명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의미지

싶고 Stallhof의 바깥벽에 1871년부터 1876년 사이에 길이가 102미터, 높이가 10.51m의

장대한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예술가 Adolf Wilhelm Walther의 의도는 베틴(Wettins) 왕조의

800주년을 축하하는 것이었다네요.

 

그러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이렇게 비바람에 노출된 열린 공간에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은

세월이 흐름에  노출되어 오래 유지할 수 없는 단점이 있겠지요.

그래서 1904년과 1907년 사이에 Meissen의 도자기 타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이 패널은 역대 군주 35명과 공작을 비롯한 중요한 과학자, 장인, 농부, 심지어 아이들과 같은

모든 연령대의 사회에서 평범한 59명의 사람을 연대로 나누어 묘사했습니다.
시대로 본다면 1127년과 1873년 사이의 인물을 예술가는 작센에서 존재했던

왕, 공작, 선거인 및 유권자까지 묘사했습니다.

벽화 오른쪽 끝나는 부분에 단 한 명의 여성이 아이와 함께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고

하지만, 그곳은 복원 작업 중이라 가림막으로 막아두어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위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화살 방향이 아래로 된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원래는 이런 모습이라고 합니다.

위의 두 장의 사진을 보시고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자세히 보시면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이 작품을 만든 Wilhelm Walther는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고

하는데 이 모습도 복구 작업을 한다고 가림막으로 가려놓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화살표를 오른쪽으로 표시해 두었습니다.

제일 오른쪽 끝에 그려 넣었기에 위의 두 번째 사진에서 가림막이 있는 제일 오른쪽 부분을

보시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비록 태어날 때 씨가 달라 군주는 될 수 없지만, 그림만 잘 그려도 이렇게 군주의 행렬에 끼어

대대손손 영광을 누리지 싶습니다.

원래 사람만 숫자로 치는데 여기에는 수십 마리 말도 보이고 두 마리의 개도

그려졌다고 하니 우리 속담에 견마지로를 다 한다는 개와 말이 이곳에도 등장하니

 이곳에 가시면 꼭 개도 찾아보세요.

위의 사진 중간에 보시면 흑인 아이가 목줄을 잡고 있는 개 두 마리가 보이실 겁니다.

 

그림의 왼쪽부터 보면 한 사람이 군주의 행렬 제일 앞에 서서 이끌고 그다음 풍악을 울리는

악대가 뒤따르고 그 다음 12세기 Margrave Conrad를 시작으로 오른쪽 끝에 20세기 마지막 군주였던

 2년 동안만 왕이었던 Saxony의 George까지 연대순으로 행진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답니다.

그런데 이곳이 바로 외양간 담벼락이라는 것...

 

그러나 단체 사진 찍을 때 화장실이라도 갔는가 이런 가문의 잔치에 빠진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겠지요?

하인리히 1 세 폰 에일렌 부르그 (1089년경)와 작센의 마지막 왕으로 1904년부터 1918년까지

통치했던 프레더릭 아우구스투스 3세 (Frederick Augustus III)라고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인물이 바로 말을 탄 Margrave Conrad의 모습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군주의 행렬을 그려 넣기 전에는 1598년까지 이미 다른 벽화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고 1889년 베틴 가문은 이곳을 지배한 지 800여 년이 다가오자 뭔가 후세에

가문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싶었나요?

그래서 당시 최고의 예술가였던 빌헬름 발터 (Wilhelm Walther)에게 조상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한

그림을 의뢰하게 되었고...

러자 그림은 비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급격히 훼손되어가자 1904~1907년 사이에

마이센 도자기로 대체하게 되었다네요.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장대한 모자이크 타일 벽화는 중국 여행 중 보았던 구룡벽이라는 게

있으며 중국에서는 유명한 세 개의 구룡벽이 있는데 모두 벽으로 막아두어 입장료를 내야만

볼 수 있도록 했거든요.

왼쪽에 보이는 자금성 안에 있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오른쪽 사진은 따퉁은 길가에 있는데도

벽으로 가려두어 안으로 돈을 내고 들어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원래 타일을 벽에 붙이려면 타일과 타일 사이에 작은 틈을 두어 붙여야 하는데 작품의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중국의 구룡벽과는 달리 타일 사이의 틈도 만들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타일의 강도를 높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고 1.000도 이상에서

세 번이나 구었다고 하네요.

이런 노력 때문에 1945년 2월 13일 연합군의 대폭격에서도 타일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온전하게 붙어있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점은 타일 벽화 그 모습만이 아니라 무료로 아무나 지나가다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57년부터는 타일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방지하려고 주변 진동을 억제하기 위해 트럭 등

큰 차의 이동조차 금지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