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라 왕국의 여름 궁전, 시토라이 모히 호사(Sitorai Mohi Xosa)

2019. 10. 26. 09:00우즈베키스탄 2019/부하라

물에 비친 건물의 반영이 아름답습니다.

이곳은 부하라 왕국의 여름 궁전이라고 하는 시토라이 모히호사(Sitorai Mohi Xosa)라는

곳으로 건물의 모습과는 달리 이곳은 매일 여자의 한숨이 새어 나왔던 후궁의 처소 하렘입니다.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모두 함께 시토라이 모히호사(Sitorai Mohi Xosa)

여름 궁전을 찾아 갑니다.

크게 구경거리는 없는 곳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갈 곳 또한 많이 없고 오후에는 아르크성이나

욥의 우물을 가기로 했으니 오전 중에 다녀오면 되지 싶어 갔습니다.

 

우리는 여름궁전을 그냥 대중교통인 버스를 타고 다녀오려고 합니다.

버스비는 1.000숨/1인으로 무척 저렴하네요.

여러 사람이 동행할 때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이동입니다.

 

우리 부부야 늘 어디를 가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녔으니 그렇겠지만,

다른 분은 택시 이동만을 했던 분도 계시기에.

그 팀은 우리와 함께 다니는 게 불편했는지 나중에 부부끼리만 우리 일행과 떨어져

택시를 이용하기는 하더라고요.

차라리 모든 일정을 스스로 하면 그게 더 서로 간에 편한 마음으로 다니지 싶습니다.

 

버스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Toqi Telpak Furushon Bazaar 앞에서 탔습니다.

이 바자르도 역사가 제법 깊은 곳이라 대상들이 많이 이용했던 곳이라고 하네요.

이곳은 구시가지의 종점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곳이며 관광안내소와

관광 경찰이 근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버스 타는 곳 바로 옆에 있는 사라이라는 건물입니다.

터키에서는 한이라고 하지만, 여기는 사라이라고 부르나 보더라고요.

그러니 옛날 카라반이 낙타를 끌고 도착해 먹고 자며 장사도 했던

일종의 호텔과도 같은 곳이지요.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부하라 버스 정류장(Buxoro Avtoshov Bekati :Bukhara Bus Station)이라

곳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바꿔 타거나 택시를 타면 궁전 앞에서 내립니다.

택시 요금도 1.000숨/1인씩 계산했으니 버스를 타나 택시를 타거나 요금은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여기서 내려 그냥 걸어가도 될 정도로 멀지 않은 곳에 여름 궁전이 있습니다.

구시가지에서 출발해 40분이면 궁전 입구에 도착할 수 있더라고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지도가 궁전의 간략한 약도입니다.

건축물이 몇 개 없고 왕궁이라기 보다는 어느 시골 농장처럼 보이지는 않습니까?

 

궁전 입구의 모습입니다.

오른쪽에 매표소가 있습니다.

입장료는 15.000숨/1인으로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2천 원이 조금 넘지만,

내국인은 거의 무료에 가까운 금액으로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이 무척 심하네요.

 

궁전 규모는 상상외로 작았습니다.

주랑이 보이고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리셉션이라고 되어있네요.

예전에 국가적인 행사가 이곳 뜰에서 열렸을까요?

 

리셉션 내부의 모습입니다.

크지는 않지만 호화롭게 꾸몄네요.

그러니 전혀 부하라 왕국의 전통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유럽풍의 모습이 아닌가요?

 

이 방은 유럽풍이 아닌 듯 보였습니다.

독특한 문양과 아름다운 색으로 단장해두었습니다.

 

헉!!! 표트르 대제가 왜 여기서 나와?

16세기에 청동으로 만든 표트르 1세의 모습입니다.

유럽인이 되고 싶고 유럽에 진출하고 싶어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읍을 옮긴

러시아의 차르가 아닌가요?

 

부하라 왕국의 왕은 표트르 대제를 멘토라도 삼고 싶었을까요?

점차 목을 죄어오는 러시아의 압력에 사라져가는 부하라 왕국이 눈에 보여

이렇게라도 러시아의 황제였던 표트르 대제를 궁전 안에다 모셔놓고 보여주고 빌고 싶었을까요?

 

이곳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지도자나 왕을 아미르(Amir)라고 부른다지요?

그러니 이곳 궁전은 Amir가 살았던 곳이라는 말이겠네요.

위의 사진에 이곳에 살았던 왕의 사진이 보이시지요?

왕이라고는 하지만, 검소해 보입니다.

 

화려하게 꾸미자고는 했지만, 조금 어설퍼 보이기도 합니다.

벽감을 만들어 도자기를 전시해 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당시에는 도자기가 귀중품이었나요?

 

이 궁전에서는 망기트(Mangit) 왕조의 마지막 두 명의 왕(Amir)이 거주했다고 합니다.

나라가 저물어가는 시기라서 마음이 우울했을 듯합니다.

위의 사진처럼 채색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한 곳도 있지만...

 

이곳은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비가 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곳을 구경하며 제일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렇게 바래져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초빙한 건축가가 지었기에 이곳 우즈베키스탄의 건축양식은 별로 보이지

않아 러시아 어디 시골 영주가 살았던 그런 분위기가 나는 곳입니다.

건축 시기가 아마도 부하라 전통의 양식에서 이곳도 서서히 서구화 영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때가 아니었을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1910년에 완공되었다니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오래된 곳은 아닙니다.

나라가 점차 기울기 시작했을 때이니 이곳에 살았던 왕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듯합니다.

궁전의 규모도 그리 커 보이지는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의 궁전이라기보다는 어느 중소 도시의 부잣집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