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문(Zviedru vārti)을 지나 리가 구시가지로...

2018. 7. 9.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라트비아

 

리가 구시가지로 들어가 오른쪽을 보면 화약탑이 보이고 야곱의 병영이 있습니다.

화약탑을 지나면 성벽이 보이고 그 성벽 중간 즈음에 왼쪽으로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을 스웨덴 문(Zviedru vārti)이라 부른다네요.

 

 

오늘 스웨덴 문을 활짝 열고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갑니다.

문짝이 없어 이미 열려있네요.

위 두 장의 사진은 문 안팎에서 각각 찍은 사진으로 비슷한 듯 다르네요.

 

 

문 위로는 사자 머리의 장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쪽으로 1698이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이 숫자의 의미는 건축연도가 아닐까요?

 

 

사자란 바로 스웨덴의 상징이라 하지요.

1698년은 스웨덴이 이곳을 점령한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라트비아 입장에서는 과거의 치욕적인 역사의 흔적인데 이들은 이것도 소중한

역사라고 그냥 두었는데 이 또한 역사의 흔적이라고 판단해 그냥 두었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와는 매우 다릅니다.

이들은 불행했던 역사일지라도 이 또한 역사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우리는 무조건 부정하고 역사 지우기에 골몰하는데...

오히려 잘못된 역사일지라도 이들처럼 그대로 두고 후손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 좋지 않을까요?

 

 

이곳 리가에 머무는 동안 스웨덴 문을 여러 번 통과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 어느 날 문 아래서 여성 악사가 곡을 연주하는데

우리 귀에도 매우 익숙한 백만 송이 장미라는 곡입니다.

라트비아에서는 국민가요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는 것은 문 안팎 양쪽으로 모두 네 개의 대포를 두었는데 포신을

땅바닥에 거꾸로 박아두었습니다.

이렇게 거꾸로 박아둔 의미는 당시 스웨덴 병사의 군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스웨덴 병사의 군기가 엉망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의미라 하니 재미있는 방법이네요.

그런 군기가 엉망이었던 나라에 침략당해 지배를 받았다면 이 나라는 스스로를

지킬 힘마저도 없었다는 의미인지, 아마도 적은 인구 때문에 자신 스스로

나라를 지키기에 힘겨웠는지 모르겠네요.

 

 

스웨덴 문을 지나 위의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듭니다.

좁은 골목길에 차량 통과를 금한다고 가운데 철 구조물을 설치했는데

그런 것까지 예술적으로 만들어 설치했습니다.

 

 

리가 구시가지에는 많은 건물이 있고 그런 건물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많은 건축물 중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이 750여 개나 있다고 하네요.

건물이 참 아름답더군요.

 

 

예쁜 건물도 많지만, 관리가 부실해 흉물처럼 변해가는 건물도 보이기도 하고요.

사람이나 건물이나 사랑이 있어야 하고 관심이 필요한 가 봅니다.

관리하지 않으면 모두 흉해지는 것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많더라고요.

창문 위에 있는 옥탑방에 기다란 막대를 밖으로 설치하고

도르래처럼 생긴 줄을 걸어두었습니다.

 

 

이런 모양의 건물은 주로 항구에 있는 도시의 공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로 건물 위에 도르래를 설치해 아래에서 물건을 고리에 걸어 위로 올려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이거나 꺼내기 위함이겠지요.

 

 

우리 생각에는 그냥 계단을 통해 올리고 내리면 어떨까 생각되지만...

이런 오래된 건물은 대부분 오르내리는 계단이 좁기에 무겁고 큰 짐은 실내의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기 어려우니 선택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중세 건물의 특징은 계단이 무척 좁고 가파르기에 사람이 오르내리는

용도 외에 짐을 지고 오르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싶습니다.

이런 방법이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이사할 때 사다리차를 이용하는 것이겠지요.

 

 

골목길을 빠져나가니 라트비아 국회의사당(Parliament of Latvia) 건물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그 건물 앞에 설치한 기념물 Barricades Memorial (Latvian: Barikādes)입니다.

1991년에 이 자리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다는 의미인 듯합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국회의사당에서 보았던 자유의 외침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여기 라트비아 리가에서도 같은 저항운동이 있었고 바로 이 자리가

그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장소였네요.

그동안 변변한 나라조차 없었던 발트 3국이 아니었나요?

 

 

국회의사당 뒤로 보이는 고딕식 건물은 성 야고보의 성당(St. James's Cathedral)이라고 합니다.

많은 건물이 리가 구시가지에 있지만, 라트비아 사람에 의해 만든 유일한 건물이 국회의사당이라

하며 리가 구시가지에 있는 중세시대의 건물 대부분은

독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사실 리가라는 도시 자체가 독일에서 온 대주교가 건설했던 도시라 인구가 적은 라트비아로는...

 

 

성 야고보 성당(St. James's Cathedral/Rīgas Svētā Jēkaba katedrāle)의 위치는

라트비아 국회의사당 건물과 삼 형제 건물 사이에 있고 1225년에 지어졌다고

하나 역사가 무척 오래된 건물로 라트비아 최초로 루터교 교회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구시가지 안에서 유일한 가톨릭 성당이라 하네요.

 

 

야곱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제임스,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산티아고라고도 부르더라고요.

그의 무덤은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묻혔다네요.

우리가 까미노라고 부르는 산티아고 가는 길은 바로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거잖아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는 2014년 가을에 까미노를 잠시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도 올레길이 벤치마킹한 것이 스페인의 까미노라고 했나요?

까미노란 바로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걷는 일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길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길을 걷는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