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 촛대의 갤러리

2016. 7. 26.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바티칸

바티칸 박물관을 계획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미리 공부라고 하고 가시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야 본전이라도 뽑을 텐데 佳人처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돌아보면 석상은 전부 돌인데

 모양만 조금씩 다른 돌로 보입니다.

정말 미리 신화 책이라도 한 권 읽고 가야지 어느 정도 만족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지루한 박물관 구경을 하는 중입니다.

어제까지 대강 회화관과 조각관은 구경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다른 곳을 찾아갑니다.

 

박물관은 2층 촛대의 갤러리로 이어집니다.

워낙 많은 방과 수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작품이 전시된 곳이기에 방 이름을 구분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퇴색한 기억이라도 되살려가며 구경합니다.

 

촛대의 갤러리는 그 길이가 약 80여m 정도 되는 방으로 촛대의 갤러리라고 이름 지은 것은

8개의 촛대 모양의 조각상이 이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냥 걸어가지만, 아름다운 천장 프레스코화를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습니다.

 

전시된 작품에만 시선이 가는 게 아니라 벽이나 천장을 장식한 그림이 무척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교황 레오 13세는 당시 교황청 소속전속화랑의 감독관이었던 루드빅 자이츠와

도미니코 토르티에게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를 천장과 벽에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여러 예술가가 참여해 약 4년간 그린 것이라 합니다.

 

이곳에 그린 그림은 일종의 눈속임이라는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했다 합니다.

프랑스어인 속인다는 의미인 트롱퍼와 눈이라는 말인 외이가 합쳐진 합성어로 2차원 벽에 그린

그림이 마치 3차원적 입체처럼 느끼게 그린 것이라는 말이라네요.

그러니 실제의 것처럼 착각할 정도의 세밀한 묘사라는 의미라 하니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림은

평면에 그린 그림으로 마치 조각품처럼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것이죠.

 

그뿐인가요?

바닥은 또 어떻습니까?

신발을 신은 채로 걷는다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곳입니다.

 

위의 그림은 왼손에 승리의 상징인 야자수 잎을 들고 오른손에는 묵주 로사리오를 든

승리의 여신이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묵주를 건네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의미는 세상에 많은 적으로부터 신앙의 힘으로 용기 있게 대적하라는 의미라 합니다.

루드빅 자이츠의 프레스코화입니다.

 

위의 그림은 루드빅 자이츠가 그린 프레스코화인 "성스러운 미덕"입니다.

농부와 천사의 만남을 통해 예수를 간절히 바라는 농부에게 천사가 전하는 메시지가 그들 머리 위에

적혀있는데 라틴어로 적은 내용은 "우리가 이루고자 절실히 노력하면 신의 은총으로 끝내는

얻을 것이다, "라는 말이라 합니다.

 

위의 그림은 "엉터리 철학자의 패배"란 그림으로 루드빅 자이츠의 프레스코화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를 든 천사들이 엉터리 철학자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동안 거짓 괴변으로 혹세무민 했던 엉터리 철학자들은 놀라 뒤로 벌렁 자빠지는 모습을

그렸는데 지금도 우리 주변에 혹세무민 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위의 그림도 두루드빅 자이츠의 프레스코화로 "교황들의 지도 아래 로마 예술 부흥의

풍자"라는 작품입니다.

뒤로는 콜로세오부터 포로 로마노와 산 피에트로 성당의 모습도 보입니다.

 

루드빅 자이츠의 프레스코화인 "로마 성당에 무릎을 꿇고 그의 작품을 바치는

토마스 아퀴나스"로 그는 신학자이며 철학자로 오랜 세월 가톨릭 사회의 주요한 학파인

토마스학파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죠.

그는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해 스콜라 철학을 집대성한

중세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존경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답니다.
위의 그림에서도 그의 역저를 신에게 바치는 모습입니다.

아래 머리에 손을 괸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가 밟고 있는 석판에 그의 이름 아리스토텔레스라고 적혀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너무 화려해 어디로 먼저 눈길을 돌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교황은 역시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인가 봅니다.

황제도 부러워할 그런 모습으로 호화롭게 꾸미고 살았습니다.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도 호사를 누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