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왕궁(Palacio Real de Madrid)과 스페인 국기

2016. 3. 24. 08:30스페인 여행기 2014/마드리드

마드리드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마드리드 왕궁과 대성당이지 싶습니다.

권력과 종교가 지배했던 중세에 이 두 가지 모두가 집중해 있던 곳이

바로 대성당과 왕궁이 아니겠어요?

위의 사진은 그 두 곳의 모습을 멀리서 잡아보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예전의 영광은 사라지고 말았을 겁니다.

 

이슬람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술탄이라고 한다네요.

만약, 그 술탄이 종교적인 지도자의 힘까지 겸비한다면 그를 일컬어

최근에는 칼리프라고 한다네요.

칼리프의 지위에 오르면 그야말로 현세에서는 더 이상의 힘이 있는 사람이 없지 싶어요.

원래 칼리프의 의미는 마호메트의 뒤를 이어 종교적인 수장이라는 의미였다 합니다.

 

오늘은 마드리드 왕궁을 찾아봅니다.

1561년 국왕인 펠리페 2세가 당시 수도였던 톨레도에서 이곳 마드리드로 도읍을 새로 정하며

이곳을 스페인의 수도로 정했다 합니다.

 

마드리드는 스페인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지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인

배꼽에 있기에 수도로써는 누가 뭐래도 최고의 입지조건을 지닌 곳이라 생각됩니다.

마드리드란 도시가 스페인의 수도로 정한 지 이미 450여 년이 지났네요.

우리나라 서울이 수도로 정해진 지 600여 년이 지났으니 마드리드보다는 형님뻘인가요?

 

마드리드라는 말은 물의 원천이라는 아랍어의 마헤리트(Mayrit)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사실 마드리드의 지명은 로마 시대는 마드리툼이라고 불렀으니 유래는 각자 다른 말이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지리적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한가운데 있기에 수도로써 무척 적합한 지역으로 생각되네요.

 

또 누구는 마드리드 솔 광장에 있는 곰과 마드로뇨라는 나무 조각상을 보고 그 나무 이름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마드리드를 수도로 건설할 때 이 부근에서 마드로뇨 나무를 붙잡고 열매를 따는

모습의 곰을 보고 했다고도 하여 지금 그때의 모습을 조각상으로 솔 광장 한가운데에 만들어 놓아

마드리드의 상징으로 생각한다고도 하네요.

 

이곳을 수도 정한지 어언 450여 년.

레콩키스타 운동으로 국토를 회복하고 대항해 시대를 열어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며

그곳으로부터 가져온 재화에 합스부르크가와의 결혼으로 스페인도 유럽뿐 아니라 세상에서는

대단한 강대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으니 마드리드라는 지역의 땅의 힘은

대단한 氣가 있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그 기가 조금은 고개를 숙여 세상에서 반걸음 뒤에 물러선 듯 보입니다.

원래 이 지역은 9세기 후반 이베리아 반도에 발을 디밀고 건너온 이슬람 세력이

지금 마드리드 왕궁터에 요새를 건설한 곳으로 그들을 물리친 후 요새 자리에 왕궁 건설을 함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지금의 마드리드 인구가 약 300만 명 조금 넘는다 합니다.

그러니 당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온 이슬람 세력과 다시 국토를 되찾으려는 기독교 세력이

서로 상충하던 접경지대라는 말이지 싶습니다.

 

왕궁의 동남쪽에 있는 구시가지는 주로 17~18세기에 건설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18세기 후반 카를로스 3세 때 프라도 박물관이나 왕궁 등 많은 건물이 지어졌고 및 도로 등을

건설하게 되어 제법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네요.

 

스페인의 국기는 풍요로운 국토를 상장하는 노란색에 국토를 지키는 국민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의 띠가 아래위로 있습니다.

가운데는 국기가 만들어질 때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다섯 왕국의 문양을 조합해

하나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왕관은 왕실을, 방패에는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등 다섯 왕국의 문양이랍니다.

 

스페인은 하나의 나라지만, 지방색이 강하기에 지역마다 서로 다른 말을 쓰기도 하고 독립하려

는 움직임도 많은 나라라죠?

아마도 예전부터 지방마다 서로 다른 도시국가 형태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많이 남아있는 나라 같네요.

최근에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점점 그 힘을 더해가는 중이지요.

 

방패 모양의 틀 안에 왼쪽 위는 성채의 모습으로 카스티야 왕국, 오른쪽 사자는 레온 왕국,

그 아래 황금색 쇠줄 모양은 나바라 왕국이며 왼쪽 아래에 보이는 네 개의 붉은 색 세로줄은

아라곤 왕국을 일컫는 의미입니다.

석류꽃은 그라나다를 가운데 세 개의 나리꽃은 현재 왕실인 부르봉 왕가를

왕관은 왕실의 관을 의미한다네요.

양쪽의 기둥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지브롤터와 세우타를 뜻하며 그 기둥에 보이는 글자

풀루스 울투라(PLUS ULTRA)는 보다 먼 세계로라는 의미라 합니다.

 

마드리드 왕궁을 일명 동쪽 궁전(Palacio de Oriente)으로 부르기도 한다지요?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식 왕궁 중의 하나로 9세기경 무어인들이 지배할 당시

요새화 된 왕궁을 개조하여 오스트리아 왕가의 성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합니다.

 

1734년 화재로 전소한 곳에 부르봉가 왕가의 시조이며 베르사유 궁에서 유년시절 보낸

펠리페 5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하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돌과 화강암으로만 짓기 시작했다지요?

1764년 완공되었고 1764년 펠리페 5세 아들인 카를로스 3세 때부터 살기 시작하여

후안 카를로스 현 국왕의 조부인 알폰소 13세가 왕정의 문을 내린 1931년까지

역대 스페인 국왕들의 공식 거처로 사용되었다지요.

 

한 면의 길이가 140m에 이르는 장방형의 건축물로서 왕궁 안의 방은 크고 작은 것을 합하여

2,800여 개에 달하며 1931년까지 국왕의 거처였으며 현재는 박물관, 영빈관으로 사용되며

국빈 리셉션 등 국왕 공식행사를 이곳 왕궁에서 거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보안상 관광객들이 마음대로 관람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가이드가 동반하는 관람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10유로)

특히 특이하게 꾸며져 있는 가스파리니의 방과 145명을 영접할 수 있는 대식당이 유명하다네요.

그러나 입장을 위해서는 위의 사진처럼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EU 국가나 라틴 아메리카 여권을 소지한 사람은 시간에 따라 입장료가 무료라고 합니다.

 

왕궁 뒤로 녹지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과거 무어인이 주둔한 지역이라는 캄포 델 모로(Jardines del Campo del Moro)입니다.

이곳은 지금 공원으로 꾸며놓은 곳이지만, 무어인들이 가톨릭 세력과 이 지역을 두고 전투를 벌였을 때

무어인의 성채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그들은 1109년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정하고 마드리드를 빼앗기 위해 주둔했기에

 캄포 델 모로라 이름을 지었다네요.

이것은 스페인어로 무어인의 캠프라는 뜻이랍니다. 
오늘날에 이곳은 녹지공간으로 로맨틱한 정원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곳 디자인은 왕궁 정원을 디자인한 건축가가 했기 때문이 왕궁과 이곳의 정원을 비교하며

관람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 멋진 곳을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저녁 늦게만 들어가다 보니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일은

행복한 일 중의 가잘 불행했던 일입니다.

 

특히 해지는 저녁 석양의 모습을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일은 큰 즐거움이라고 했는데...

사바티니 정원(Jardines de Sabatini)은 왕궁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는 정원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풀루스 울투라(PLUS ULTRA)라는 "보다 먼 세계"의 의미는

처음에는 NON PLUS ULTRA라고 했다네요.

이 말은 지브롤터 넘어 더 이상의 땅을 기대할 수 없었기에 이것 넘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대서양을 건너 라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나니 부끄러운 글이 되었습니다.

카를로스 5세는 "이게 아닌가 봐"라고 하며 앞에 쓴 NON이라는 글자를 떼어버렸답니다.